도시의 그림자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단지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역 앞 광장은 매일 다른 얼굴을 한다. 분주한 출근길, 사람들 사이로 노숙자들이 자연스럽게 섞이어 있다.
두 세계가 공존하되 끝내 만나지 않는 평행선처럼, 각자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어떤 이는 담장에 기대어 짐 더미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들만의 질서가 있고. 그들만의 예의가 있다. 아침이면 이불을 개고 짐을 정리하며 보이지 않는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도시 속에서 그들은 없는 존재처럼 취급되나 그들 역시 엄연히 도시 일부이다. 아니, 어쩌면 도시의 솔직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포장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이고 치장하지 않은 삶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역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 보조 계단 아래에 작은 텐트를 발견했다. 처음엔 그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어도 여전히 그곳에 있는 쌓여있는 작은 더미에 시선이 머물게 되었다. 차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큰길 옆 빌딩 보조 계단 아래다. 텐트 옆에는 작은 수레에 한가득 실린 살림살이가 비닐로 덮여 잘 싸매어져 있다. 비닐 위에는 반듯한 글씨로 ‘물건에 손대지 마세요.’라고 적혀있다. 삼십 년 넘게 사무 일은 하면서 메모와 컴퓨터 작업을 한 나보다 필체가 좋다. 그 글씨 하나에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의지가 엿보였다.
누구의 텐트일까. 텐트 옆을 지날 때마다 눈여겨보았다. 어떨 땐 텐트가 꿈틀거려 깜짝 놀랐다. 그 안에 누군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광장의 노숙자들과 어울리기 싫은 사람일 것이라 짐작했다. 광장 생활에 익숙해진 노숙자와 달리 잠시 여름은 머물고 떠날 사람이라 여겼다. 출퇴근 시간에 간혹 마주쳤다. 칠십 대로 보이는 여성이 그 텐트 주인이었다. 작은 덩치에, 머리카락은 좀 엉클어져도 나름 단정하게 손질되었다. 무더운 여름은 지나 혹독한 겨울까지 그녀는 그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견뎌냈다. 어떤 의지가, 어떤 신념이 그녀가 추위와 외로움을 견디게 했을까.
해가 바뀐 이월 주말 오후, 사무실에 잠깐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옷가지를 정리하고 있는 그녀와 마주쳤다.
“지낼 만하세요?”
“잠바 하나만 주세요.” 그녀가 내게 한 첫마디였다.
마땅히 그녀에게 건넬 점퍼는 없었다. 대신 길모퉁이 작은 마트에서 핫팩 몇 개를 사다 주었다. 집은 어쩌고 이 추운 데에 나와 있느냐고 물었다. 내 집이 보수동인데 왜 멀쩡한 나를 집에서 쫓아내느냐고 화를 냈다. 언성을 높여가며 또박또박 나에게 말하는데, 세상에 대고 항의하는 목소리 같았다. 재개발이라는 명분 앞에 떠밀려 온 사연이었다.
그녀의 분노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었다. 평생 살던 터전에서 쫓겨난 절규였고, 갈 곳 없는 자의 마지막 항변이었다. 그녀 앞에서 나는 참으로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 동정은 할 수 있어도 실질적 도움은 줄 수 없는, 그저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느꼈다.
빌딩 사이 매서운 골목 바람이 부는 날에도 그녀는 작은 텐트 속에 머물렀다. 한 번씩 마주칠 때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지나갔다.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고 지내는지 궁금했으나 관여하지는 않았다. 갈 곳 없어 구석진 곳에 틀었던 그녀의 둥지는 일 년이 더 지난 두 번째 여름 즈음에 바람처럼 사라졌다. 빌딩 계단 앞은 깨끗이 청소되었다. 그녀의 둥지가 있던 자리에는 출입하지 말라는 줄이 처졌다. 그녀는 또 어디로 밀려났을까? 또 다른 모퉁이에서, 또 다른 어느 계단 아래에서 작은 텐트를 치고 있을까.
역 광장의 노숙자들도 서로 어울려 일상을 살아간다. 그들 사이에서도 햇볕이 잘 드는 땅을 차지한 사람이 있고, 언제나 그늘진 곳으로 밀려난 사람이 있다. 도시의 한 부분이고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젊은 날 한때는 세상을 풍미하며 살았을 사람들이 왜 저러고 있을까. 처음에 품었던 의문과 그들을 향한 내 측은지심(惻隱之心)도 오래가지 않았다. 하루하루 빠듯하게 지나가는 생활은 주변 사람들의 삶을 나와 상관없는 그들의 방식이라 치부하게 한다. 일상에서 쫓겨나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다.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부자가 되고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가 돈을 벌려고 우리나라로 몰려들고 있다. 국제 원조(援助)로 도움을 받았던 나라가 다른 가난한 나라에 원조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특히 디지털 생활 분야에서는 선도적 역할을 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추운 겨울밤을 길거리에서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이 모순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달팽이처럼 제집을 등에 지고 떠도는 그녀를 생각한다. 재개발의 불도저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을 그녀의 황망한 눈동자를, 그녀가 자신의 집에서 보낸 마지막 밤을.
진정한 발전이란 무엇일까. 높은 건물과 화려한 불빛만이 발전의 지표일까. 아니면 가장 약한 자를 따듯하게 품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문명일까. 그녀의 낡고 작은 텐트가 던지는 질문은 묵직하고도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