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종일 집안일 열심히 했으니
오늘은 나에게 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 열심히 일한 그대, 한라산 등반권 당첨!"
노형동 이마트 앞에서 9시 10분 버스 타고 어리목 도착!
바쁘게 나서느라고 귤 세개만 달랑 넣고 와서
슬그머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제 막 연두빛 새순이 볼록 볼록 솟아나기 시작하는 어리목 들머리.
사람들이 다 어디로들 갔는지 조용~~
아직은 초록이 짙어지지도 않았고, 진달래도 피지 않았으니
한라산이 그닥 매력이 있을 계절이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산에 들어서자 그다지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오고 갑니다.
만세동산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는 저 계단, 계단...
헉헉~~
올레길 걸을 때는 모르겠던데 저 오르막 계단앞에 서니
몇 달동안 운동을 하지 않은 티가 팍팍 납니다.
날씨는 아주 맑습니다.
올라갈 수록 활엽수들은 아직 겨울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듯
실핏줄같은 가지들 사이로 푸른 하늘이 가득합니다.
활엽수 지대를 벗어나 만세동산에 이르니
지금껏 고요하던 바람이
드세게 불어댑니다.
모두들 배낭에서 점퍼를 하나씩 더 꺼내입기도 하고
모자를 여며 쓰기도 하는 모습들.
헉헉대던 숨을 고르며 느릿느릿 걸어갑니다.
아, 바람만 아니면 정말 따뜻했을 산책길인데...
드디어 윗세오름에 도착!
지난 번에 왔을 때는 저 나무계단들마다 사람들이 와글와글 했는데
오늘은 한가롭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너무 늦게 올라와서 그런가 모르겠습니다.
우와~~!
드디어 나도 윗세오름에서 육개장 한 사발 먹었습니다.
바람이 씽씽 불어대는 한라산에서
이 뜨끈뜨끈한 국물이 목젖을 타고 내려가니
온 몸이 확 풀립니다.
환경 호르몬이 있느니 어쩌니 해도
마음과 뱃속을 한꺼번에 행복하게 해주는
윗세오름의 사발면!
아이들이 까마귀들과 놀고 있습니다.
이 까마귀들, 사진으로는 잘 안나타나지만
등산객들 덕분에 얼마나 잘 먹었는지
깃털에 윤기가 좌르르 흐릅니다.
까마귀를 흔히들 흉물이라 여기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아주 멋지게 생겼습니다.
더군다나 한라산의 까마귀들은 더더욱 멋집니다.
ㅌ
지난번처럼 영실쪽으로 내려옵니다.
작은 윗세오름 부근의 제주 조릿대 군락!
이게 어디 4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나요.
영락없는 겨울 풍경입니다.
바삭바삭한 저 조릿대들 사이로 서걱서걱 바람이 불어댑니다.
고사목 지대도 여전히 겨울 모습입니다.
게다가 바람이 엄청 심하게 불어댑니다.
자칫하다가는 병풍바위 절벽으로 떨어져버릴 것 처럼...
그래도 산 아래를 내려다 보면
가슴이 확 뚫리는 듯 시원한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노꼬메 오름, 작은 노꼬메 오름, 바리메 오름...
하나씩 이름을 불러봅니다.
저 오름들에 올라서서 한라산을 바라보곤 했는데
오늘은 그 한라산에서 오름을 내려다 봅니다.
대체 진달래는 언제나 필까,
아니 피기나 할까 싶더니
그래도 내려오는 길섶에서
몇 그루 꼿봉오리가 몽실몽실 맺혀있네요.
아. 겨울인 듯해도 역시 봄은 봄입니다.
이렇게 절기를 맞추는 부지런한 아이들이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아무래도 진달래 가득 피는 오월에 다시 한번 오라고
이 아이들이 내게 미리 손짓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오월이 되면 다시 한번 너희들을 만나러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다시 오리라..
진달래 꽃 만발하기는 아직 오래 기다려야겠지만
아주 작은 꽃들이 아주 낮은 곳에서
나도 여기 있어요,
나도 여기 있어요.
하면서 소근댑니다.
제비꽃이랑...
개별꽃이랑...
흰 노루귀랑...
이렇게 꽃들이 피어나고 있는데
봄은 봄이지요.
단지 산이 너무 높아
봄이 느릿느릿 오고 있을 뿐이지요.
첫댓글 드뎌 호호아줌마님께서 행차하셨군요~~
늦게나마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