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 윌리암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작가 ; 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
초연 ; 1945
줄거리
뉴올리언스의 환락가에는 그 이름과 달리 보잘 것 없는 주택이 줄을 잇고 있다. 어는 날 저녁 부란시라는 여인이 가방을 들고 여동생을 찾아온다. 스테라는 스탠리라는 남편과 이 도시에 있는 2층집 아래채를 세 얻어서 살고 있다. 부란시는 동생의 집이 너무 초라했고, 폴란드인과 결혼해 살고 있는 것에 실망했다. 그러나 결혼을 한 스테라는 언니보다 남편디 더 소중했다.
부란시는 고등학교 교사로서 과로 때문에 뭄이 쇠약하여 교육장의 배려로 휴가를 받아 놀러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학생을 유혹했거나 그와 비슷한 일로 파면된 것이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도 그녀의 사치와 낭비벽으로 모두 탕진해버렸다. 그 외에 또 여러 가지 어두운 과거가 있는 듯했다. 지금 부란시에게 남은 것은 자존심과 피로한 육체 뿐이었다.
스테라의 집은 더럽고 협소하고 초라했다. 폴란드 태생의 남편은 교양이 없었다. 생활은 무척 빈한했다. 이 모든 것이 언니인 부란시에게는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부란시는 스탠리의 포카 친구인 밋치외 친해졌다. 밋치는 효도하는 청년으로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빨리 결혼하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눈에는 부란시가 교양있는 여자로 보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하게 가까워졌다. 그러나 부란시가 나이가 너무 많고 어두운 과거가 있음을 알고 밋치는 부란시와의 관계를 끊었다.
동생 부부 사이에 어린애가 태어나자 언니인 부란시는 점점 귀찮은 존재가 되어갔다. 부란시는 자포자기 하지만 즐거운 여행을 떠난다. 마중 나온 사람이 있다고 횡설수설하지만 자존심과 현실 사이의 처참한 모순 때문에 부란시는 점점 광기가 더해갔다.
정신병원의 의사가 간호사를 대동하고 부란시를 데리려 온다. 여행의 동행자가 왔다고 착각한 부란시는 의사와 간호사를 보고 동행을 거부한다. 마침내 ‘누군지 알 수 없어도 나는 늘 이렇게 모르는 사람의 친절을 받아들이며 살아왔다.’라고 말하며 순순히 따라 나선다. 여동생 스탠리는 울면서 슬퍼하지만 그 한 때가 지니고 나니 이젠 남편과 단 둘이 되었다고 좋아 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온 부란시는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났다. 살아 있는 삶은 짧고 한번 지나가 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미국 현대 희곡의 거장 테네시 윌리엄스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몰락한 남부 귀족 가문의 블랑시 두보아를 주인공으로,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물과 현실에 철저하게 적응해 동물적으로까지 보이는 인물 간의 극단적인 대립을 상징적인 무대장치와 시적인 대사를 통해 감각적으로 보여 준다. 초연 당시 855회나 연속 공연되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테네시 윌리엄스는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과 뉴욕 극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나타난 성적 문화적 대립과 충돌을 분석한 글이다. 블랑쉬는 구 남부 시대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여성이고 스탠리는 부상하는 신 남부시대의 남성중심적 이민 계층을 상징하고 있다. 블랑쉬는 이중적 측면에서 시대적 도전을 받는 인물이다. 첫 번째는 귀족주의와 정신주의로 대변되는 남부 문화의 몰락이고 두 번째는 그 문화 속에서 암묵적으로 동의되던 수동적이지만 이상적인 여성성, 즉 성적으로 타락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고매하여 남성들의 존경을 받던 여성성의 몰락이다.
첫 번째 몰락은 부상하는 신남부의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에 의한 것이고 두 번째는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는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에 의한 것이다. 블랑쉬는 새로운 시대와 질서 속에서 남부의 정신과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스탠리로 대변되는 신남부의 물질주의와 남성중심주의에 의해 완벽하게 패배하고 만다. 이러한 패배는 곧 전통적 여성성이 부인되고 여성이 가부장제 속에서 열등한 존재로 완전히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블랑쉬의 여동생인 스텔라는 바로 이러한 종속되고 억압된 가부장제 내의 여성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윌리암스는 이러한 문화와 성의 대결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그는 블랑쉬가 대변하는 남부의 전통적 여성성이 블랑쉬가 주장하는 것처럼 절대적으로 우아하거나 이상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남성중심주의로서의 남부 문화가 만들어낸 허위적이고 위선적 이미지임을 보여주기 위해 블랑쉬를 완전히 순수하고 선한 인물이 아니라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성적 대결은 문화적 대결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이며 시대적인 산물로 이해된다.
<작가-테네시 윌리암스>
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는 미국의 극작가이다. 아이오와 주립 대학에서 극작을 공부하고, 그 후 희곡·시·단편 등을 썼다. 그의 작품의 무대는 그가 태어난 남부 지방이 대부분이며 그 곳에서 과거의 생활을 그리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슬픔을 시적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연극으로 상연되고 있다.
토마스 레니어 윌리엄스 3세는 미시시피 주의 콜롬버스시에서 에드위나 윌리엄스와 코닐리우스 윌리엄스의 2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인 월터 다킨은 미국 성공회의 목사였고 할머니인 로스 다킨은 음악선생님이였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술을 자주 마셨고 직업으로는 길거리를 떠돌면서 신발을 팔았다. 따라서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Southern Belle주의를 믿었다. 토마스가 태어난 후, 월터 다킨은 미시시피주의 클락크스데일시의 교구로 전직해서 토마스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따라서 클락크스데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윌리엄즈는 로즈 (1909-1996)라는 누나와 다킨 (1919-2008)이라는 남동생도 있었다. 그는 어릴 때 “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누나인 로즈와 굉장히 친하게 지냈다. 연극 학자 알리안 헤일은 토마스와 로즈의 관계가 거의 쌍둥이의 관계 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윌리엄즈 가정에는 아이를 보는 오지라는 흑인 여자도 있었는데 그녀는 로즈와 함께 어린 토마스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냈다. 따라서 헤일은 토마스가 어렸을 때 여자들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라서 그의 작품들에서 흔히 여자들에 대한 공감이 많이 나타난다고 추측한다. 특히 감수성이 풍부했고 수줍었던 로즈는 토마스의 작품들에서 나오는 많은 인물들의 영감이 될 수 있다고 헤일은 주장한다.
토마스는 어린 시절부터 치명적인 병 (디프테리아 혹은 류마티스성 열)에 시달려서 거의 1년동안 집에서 외출을 할 수 없는 불행을 겪었다. 토마스의 아버지 코닐리우스 윌리엄즈는 테네지 주의 동쪽에 거주했던 개척자의 후손이였고 거친 성격을 지니고 살았다. 그는 토마스의 여자 같은 성격을 싫어했고 토마스의 어머니 에드위나는 코닐리어스와의 원치 않은 결혼에 의해서 항상 토마스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렇게 문제가 많았던 토마스의 가족이 토마스의 많은 작품들의 자극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토마스가 8살일 때, 그의 아버지는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 시에서 일했다. 그는 직업이였던 신발회사에서 승진을 했으나 음주와 폭력적인 성격으로 토마스의 가족을 여러차례 이사하게 했다. 토마스는 자신의 작품인 유리동물원에서 나오는 솔단 고등학교에 다녔고 미주리 주에 있는 다른 공립학교로 전학을 하기도 했다. 16살의 나이에 그는 Smart Set이라는 작문 콘테스트에서 3등으로 수상을했고 1년 후에는 그의 단편소설인 The Vengeance of Nitocris가 Weird Tales라는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17살 때 토마스는 처음으로 유럽에 여행을 떠났다.
1929년부터 1931까지 토마스는 콜롬비아시에 있는 미주리 주립대학에 다니면서 저널리즘 수업을 들었다. 이 대학의 저널리즘과는 세계에서 최고로 손꼽혔으나 토마스에게는 수업이 지루하게 느껴졌고 다른 여자에게 깊이 빠져 있었다. 그는 시, 소설, 연극등을 쓰기 시작했고 작문대회에 자신의 작품들을 제출하면서 상금을 많이 받았다. 그는 Beauty is the Word(1930)와 Hot Milk at Three in the Morning(1932)라는 연극을 제출했다.
그 후, 토마스는 입대해서 훈련을 받으려 했으나 실패했고 대학교 2학년때는 아버지가 강제로 그를 신발회사에 취직하게 했다. 토마스는 이것을 굉장히 싫어했고 신발공장에서 일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글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그는 전후(戰後)를 대표하는 미국 극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시적인 대사 표현력은 극적인 분위기와 정서를 무대상에 풍기는 데 있어 발군의 힘을 갖는 작품이다. 한때는 모든 희곡이 윌리엄스조(調)로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할 정도였다. 여성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절묘한 맛을 풍기고 있는데, 그 밑바닥에는 감춰진 잔혹성과 같은 것이 있다. 왜냐하면 그가 그려내는 여성의 운명은 비참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청년시대의 그는 학생, 방랑생활, 구두 세일즈맨 등 어수선한 생활을 했는데, 최초의 장편희곡 <천사들의 싸움>(1940)은 그룹 시어터가 채택하여 보스턴에서 시연(試演)까지 했으나 브로드웨이에서의 공연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일에 손을 대어 지방극단을 위해 1막물 등을 쓴 후, 1945년에 상연된 <유리 동물원>의 대성공으로 일약 유명해졌다. <유리 동물원>은 남부를 배경으로 과거의 추억을 고수하는 어머니와 부끄러움이 많은 젊은 불구의 처녀, 그리고 생활의욕에 불타는 청년의 꿈과 좌절을 그린 매우 시적(詩的)인 극이다.
대표작으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47) <여름과 연기>(1948) <장미의 문신>(1951)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1955) <하늘에서 내려온 오르페우스>(1957) <청춘의 달콤한 새>(1959) <이구아나의 밤>(1962) 등이 있고, 양상과 형태가 다른 작품으로는 <카미노 레알>(1953) <지난 여름 갑자기>(1958)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로테스크한 내용을 취급하고 있다.
근작으로는 <밀크 열차는 이제 이곳에 서지 않는다> <작은 배의 위험신호>(1972) 등이 있지만 과거의 빛은 사라진 듯하다.
첫댓글 이 글을 읽으니 문학사랑방에서 수업한 내용이네요.
그때가 참 그립습니다.
저도요.
문학공부할 때 이 영화 보면서 많이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