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노무현 전 대통령. 그에게 모욕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전직 국가원수의 고뇌에 찬 선택에 대해 범부(凡夫)가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겠습니까? 그저 이승에서 겪은 그간의 고통과 갈등 모두 잊으시고, 편안히 쉬시길 빌 뿐입니다. 그를 떠나보내는 국민들의 심정이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때 많은 기대와 사랑을 했고 또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가 우리 곁에 있을 땐 이토록 서글프고 안타깝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임기 중의 공적과 과오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그래도 가장 깨끗했고 또 솔직했던 서민 대통령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여 정권을 찬탈하고 그 권력을 이용해 수천억씩 치부를 하고도 버젓이 목숨을 연명해가고 있는, 다른 두 전직 대통령들로 인해 그의 죽음이 더욱 애달플 따름입니다. 아! 바보 노무현.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 대접받는 사회, 반칙 없는 사회, 권위주의 타파, 깨끗한 정치, 지역패권주의 타파 등 그가 추구한 가치를 온전히 실현하는 일은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 스스로도 ‘새 시대의 장남’이고자 했으나, ‘구시대의 막내’가 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굴레를 모두 짊어지고 떠났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삶은 이제 역사의 평가에 맡겨졌습니다. 그러나 인간 노무현을 사지(死地)로 몰아간 우리의 현실을 한번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비극이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검찰과 보수 상업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우선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수사는 형평성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습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솜방망이를 들이댄 반면, 이미 죽은 과거의 권력에는 몽둥이를 들이댄 셈입니다. 권력 핵심뿐만 아니라 삼성재벌, 보수언론 사주처럼 소위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는 검찰 권력을 보아왔습니다. 국민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권력의 감시자가 되라고 검찰에 사법 권한을 위임했는데도 말입니다.
검찰은 시종일관 먼지털이식 수사로 정치인 노무현을 망신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여기에 족벌 보수 언론과 상업 방송이 가세했습니다. 검찰은 연일 범죄의 직접증거와 상관없는 정보까지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렸고, 언론은 이를 확인 없이 대서특필했습니다. 생일선물로 받은 1억 원짜리 시계가 좋은 예입니다. 그가 그처럼 고가인 줄 알면서도 받았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노 전 대통령처럼 검찰의 강압수사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거둔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고 정몽헌 현대 회장, 고 박태영 전남지사, 고 이수일 국정원 차장, 고 안상영 부산시장 등이 그랬습니다.
우리 헌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범죄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판결이 확정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말입니다.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형법상 피의사실 공표죄도 이 원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사건에서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스스로 범죄자가 되는 광경을 수도 없이 목격했습니다.
또 그가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이 지상파 방송이 모두 동원되어 생중계되었습니다.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혔다’는 그의 호소는 언론 상업주의 앞에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귀 기울이지 못한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된 심정입니다.
청와대를 위시한 정부 여당의 책임도 결코 적지 않습니다. ‘박연차 세무조사’로 시작된 검찰수사는 정치보복의 본보기였습니다. 지난 해 광우병 촛불시위에 놀란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그 정치적 배후로 노대통령을 지목하고 그를 손보기 위해 그와 그의 주변을 샅샅이 파헤쳤다는 해석이 설득력이 얻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지난 두 정권이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와 성과를 송두리째 부정하였습니다. 정권핵심부의 반민주적 분위기는 검찰의 과잉충성을 초래하여 정치보복 수사에 몰두 하게 했고, 그 결과는 이처럼 참담합니다.
이미 많은 국민들은 현 정권의 시작과 더불어 벌써 ‘1년 반이나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된 원인은 이번 정권 들어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가 완전히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께 촉구합니다. 부디 국민통합에 힘쓰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혹독한 경제 한파 속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서민들을 한 번 더 살피시길 바랍니다. 검찰·경찰·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이용하여 공안통치, 정치보복을 할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것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부탁하고 우리 곁을 떠난 바보 노무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인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