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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잔티움과 이슬람의 史 원문보기 글쓴이: 마누엘 팔라이올로고스
로고테테스
(영어:로고테테, 그리스어 : 로고테테스 - 복수형 : 로고테타이, 라틴어 : 로고테타 - 복수형 : 로고테타이) 로고테테스는 동로마 제국에서 기원한 행정직책의 이름이다. 중기와 후기 중세 로마 제국에서 이 직책은 고급 공무원이 되어 국가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직책이 되었다. 이 직책은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받은 다른 국가에 차차 전파되어, 시실리, 세르비아 그리고 다뉴브 강 연안의 공국들도 이를 사용했다.
기원과 발전
그리스어로 로고테테스는 "책임지고, 계산하며 추론하는 사람" 혹은 문자 그대로 "단어를 배열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직책의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다: 로고테테스는 교부들이 다양한 하급 공무원을 나열해놓은 파피루스 문서에서 발견되며, 주로 재정적인 책무를 맡았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치세에서 로고테테스는 황제의 세수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게되는 등 권력을 얻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거둘 재화의 12분의 1을 가지는 것이 허락되었으며, 실례로 악명높은 "가위" 알렉산데르는 이런 방법으로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였다.
그러나 이 관직의 주요한 변화는 7세기에 있었다. 헤라클레이오스 황조 시대에 디오클레티아누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시대 이래로 지속적으로 이어져오던 개혁의 영향으로 로고테테스가 국가의 행정 직제로 편성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기존 체계에서 세 개의 최고 재무부서인 "프라이토리안 프레펙투레", "사크라이 라지티오네스", "레스 프리바타"들이 로고테시아(단수형.로고테시온, 아마 재무 부서를 가리키는 듯)로 바뀌었다. 이러한 과정은 극도의 영토적 상실의 결과였으며, 로마-페르시아 전쟁과 무슬림의 침입 동안에 세수 취합의 합리화를 필요로 하던 세크레타(행정부)의 필요로 인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개혁(이 때 집정관 폐지)에서도 그 전조가 보이고 있었다: 제국의 자산을 책임지던 레스 프리바타가 다섯 종류의 독립된 부서로 나누어졌던 것이다. 7세기 중반 무렵에는 "사크라이 라지티오네스" 역시 프라이토리안 프레펙투레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기능이 로고테테스의 지휘를 받는 여러 부서로 나눠지는 가운데서 결국 소멸하였다. 이 새로 생긴 부서들은 '재정 감사원장'의 역할을 한 사켈라리오스, 그리고 최종적으로 황제의 감독을 받았다.
로고테테스가 처음으로 고급 공무원으로써 언급된 것은 626년의 "가장 영광스러운 로고테테스이자 귀족"인 테오도시우스로써, 아마도 제니콘이나 스트라티오티콘의 수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생기는 직책들 상당수는 훨씬 후대에 가서야 확실한 증거가 나온다. 예를 들면 7세기 후반에 등장하는 최고 부서인 제니콘, 에(이)디콘, 스트라티오티콘 그리고 드로모스였다. 교회에서도 로고테테스는 대주교와 총대주교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고, 로고테테스 토 프라이토리우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독 휘하의 고급 공무원 역할을 맡았다.
알렉시오스 1세 황제 치하에서 '로고테테스 톤 세크레톤'이라는 모든 부서를 총괄하는 직책이 창설되었고 마침내 팔라이올로고스 황조 시대에 이르러 '메가스 로고테테스'(재상)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팔라이올로고스 시대 무렵에 다양한 로고테테스들은 소멸되거나 단순한 명예직으로 변하게 되었다.
기획 로고테테스
드로모스의 로고테테스(로고테테스 토 드로모)는 영어로 Dromos/Drome/Cource 혹은 Postal Logothete로 번역되며, 드로모스 부서와 공공 통신 부서의 수장 역할을 했다. 이 관직의 정확한 기원은 불명확하다. 이 관직은 대략 762년경 처음으로 언급되었으며, 일반적으로 공공 통신(우편)를 감독하던 옛 '쿠리오수스 쿠루수스 푸플리키(?)'의 발전판으로 여겨진다. 이 쿠리오수스 쿠루수스 푸플리키 관직은 4세기 후반 '노티티아 디그니타툼'에서 '마기스테르 오피키오룸'의 하위 공무원으로 기록되었다. 마기스테르 오피키오룸의 광범위한 책무가 점점 사라져감에 따라서 쿠리오수스 쿠루수스 푸플리키는 공공 통신/우편 뿐만 아니라 제국의 외교 업무, 심지어는 외국 백성들 중에서 지식인을 데려오는 일도 취급하게 되었으며, 외국 대사나 군주를 영접하는 일도 맡게 되었다.
점차 이 관직은 중요한 장관급 관직으로 발전하였으며, 황제의 중요한 조언자가 되었고, 세크레톤의 로고테테스에 의해 교체되는 12세기까지 존재하였다. 아울러 드로모스의 로고테테스는 매일 아침 황제를 예방하는 무리의 일원이었고, 콘스탄티노스 7세 저, "의례에 관하여"에 의하면 여러 의식에서 분명한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포상의 의식에서 고위 관료들을 대표하였으며, 포로 전시회뿐 아니라 외국 대사 영접식에서도 확실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알렉시오스 1세의 개혁 이후, 곧 대략 1108년경에 드로모스는 부서로서의 존재가 끝났지만, 해당 로고테테스는 잔존하였고 이제는 공무원들의 의사소통이나 콘스탄티노플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거주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드로모스의 로고테테스가 거느린 공무원은 아래와 같다.
총무 로고테테스
제니코스의 로고테테스는 종종 제니코스 로고테테스나 아니면 간단하게 호 제니코스로 불리며, 영어로는 General Logothete로 번역되며 "보편 재무 행정부"인 제니콘을 통솔했다.
제니콘은 일반적인 과세와 징세를 책임졌고, 경제 문제에 관한 법정 역할도 했다. 이것은 일찍이 사크라이 라지티오네스의 업무들을 거의 모두 포함하는 것이며, 프라이토리안 프레펙투레의 "총무부"로부터 분리된 것 같기도 하다. 제니코스의 로고테테스가 처음 나타난 경우는 수도사 테오도시오스가 기록된 692년이지만, 이 관직 자체는 626년같이 이른 시기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제니콘의 부서와 해당 로고테테스는 전체 중기 비잔티움(중세로마제국)에서 가장 높은 부서 중 하나였다. 콤네노스 황조 시대에 제니코스의 중요성은 감소했으나 앙겔로스 황조 시대에 다시 부각되었다. 120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과 제국의 해체 동안에 이 관직은 니카이아 제국과 수복된 팔라이올로고스 제국에서 단지 순수 명예직으로만 남아있었다. 이 관직은 대개 뛰어난 지식인들과 정치가들이 맡았다;게오르기오스 아크로폴리테스, 테오도로스 메토키테스의 경우. 제니코스의 로고테테스가 마지막으로 기록된 것은 1380년경에 기록된 요안네스 안드로세스이다. 그러나 그 무렵이 되면, 이 관직이 지닌 원 기능은 오래전에 잊혀져 있었으며, 가짜 코디노스의 문서에 의하면 "총무 로고테테스의 기능은 불명이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제니코스의 로고테테스가 거느린 공무원들은 다음과 같다.
군사사무 로고테테스
스트라티오티콘의 로고테테스는 군대를 고용하고 봉급을 지불하는 역할을 맡은 군사사무 로고테테스이다. 이 임무는 원래 프라이토리안 프레펙투레에서 행사되었다. 그러나 국방의 중추(스트라티오티콘)은 결국 분리되고 독자적인 로고테시온을 형성하였다. 이 군사사무 로고테테스가 처음 언급된 것은 680년의 “가장 영광스러운 아포 히파톤이자 귀족(파트리키오스)” 줄리안(아마도 율리아노스?)이다. 이 직위는 1088년이후 소멸하였다.
이 로고테테스의 정확한 임무가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다. 이의 정확한 기능에 관한 유일하고도 직접적인 증거는 “행정서”(콘스탄티노스 7세 저)에서 얻을 수 있다. 행정서에 따르면 군인들의 가정에 대한 세금 부과와 면제를 감독했다. 아울러 11세기경 에는 몇 가지의 사법적 기능도 수행하였다. 몇몇 학자(E.Stein의 경우) 이 군사사무 로고테테스가 군대를 고용하고 전체 군사 지출과 요새 건축 등, 군사 사무를 포괄적으로 감독하였는지 논쟁해왔다. 그러나 이 가정들은 증명될 수가 없다.
군사사무 로고테테스의 하위 공무원들은 다음과 같다.
● 세크레톤의 카툴라리오스들 : 이 부서의 고위급 소속 공무원이다.
● 테마타의 카툴라리오스들과 타그마타의 카툴라리오스들 : 각각 테마 군대의 재무 문제를 감독하였고, 타그마타의 문제를 감독했다.
● 많은 수의 레가타리오이 : 정확한 기능은 알 수 없다.
● 옵티오네스 : 군대 봉급의 분배를 맡았던 관리이다.
● 프로토칸켈라리오스 휘하의 많은 칸켈라리오스들
● 많은 수의 만다토레스(전령사)
가축국의 로고테테스
아겔론의 로고테테스는 영어로 Logothete of Herds로 번역되며, 곧 제국의 공공 통신 업무 및 군대를 위한 말과 노새를 기르는 서부 아나톨리아의 국영농장들을 맡았다. 이 관직은 종종, 코메스 레스 프리바타 휘하의 고대 로마의 프라이포시투스 그레굼의 발전판으로 여겨진다. 로고테테스들 중에서도 독특하게도 아겔론의 로고테테스는 클레토롤로기온(공무원-관료들의 서열을 기록한 문서. 노티티아 디그니타툼은 4~5세기, 이것은 10세기 경이다.) 군사 관료들(스트라타르카이) 중에서 발견되어, 이 관직이 지닌 군대와의 높은 연계성을 조명하고 있다. 이 관직의 중요성은 10세기부터 점점 증가하였고, 13세기 후반에 가장 중요한 관료들이 이 자리에 앉으면서 그 정점에 다다랐다.
아겔론의 로고테테스가 거느린 부하 공무원들은 아래와 같다.
● 아시아와 프리지아의 프로토노타리오스들 : 메타타(농장)들이 집중적으로 위치한 아시아와 프리지아의 농장들을 관리한다.
● 메타타의 디오이케타이 : 말 농장의 운영자이며, 로마 시대의 프로쿠라토레스 살툼의 후신이다.
● 에피스켑테타이(감독자)와 코메테스(백작들) : 후자의 기능은 불분명하다.
● 인장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 부서에는 엑 프로소푸(대표자), 그리고 카툴라리오스들이 존재했다고 한다.
첫댓글 요즘살이 디룩디룩 찌네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