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즐거움,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2022/06/10
▶ 인생 2막 아름답게 꽃피운 ‘신나는 노년’
100세 시대를 맞아 이제 70, 80대는 노년이 아니다. 생물학적 나이는 70, 80을 넘었어도 마음이나 정신, 신체 활동을 젊은이 못지않게 열심히 사는 세 명의 워싱토니언에게서 ‘젊게 사는 비결’ ‘행복의 비결’을 들어보았다. 이들은 감사하는 태도, 나눔의 태도, 겸손, 긍정적인 마음, 사람을 귀히 여기는 자세, 봉사활동, 유쾌한 유머 감각 등의 공통점을 보여주었다. 현업에서 은퇴 후 ‘뒷방 늙은이’가 아닌, 인생 2막을 아름답게 꽃 피우는 3인에게서 삶의 지혜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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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 포시즌즈 골프장서 한인지도 신성철씨
골프레슨 20년, 은발의 재야 고수
“잘할 수 있는 것, 나눠서 좋아요”
버지니아 페어팩스에 있는 드라이빙 레인지인 포 시즌즈 골프장(Four Seasons Golf Center)에는 20년째 골프 레슨을 하는 은발의 한인 골퍼가 있다.
‘신 사부(師傅)’로 불리는 신성철씨(84, 폴스처치 거주)가 그 주인공으로 요즘도 그는 레슨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곳에서 40-60대의 중년 제자들을 가르친다. 가끔은 부모의 손을 잡고 오는 청소년들도 있어 지난주에는 15세와 7세의 남매를 가르쳤다. 근래에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60대의 초보 입문자도 드물지 않다.
40년이 넘는 골프 구력으로 ‘골프의 도’를 깨우친 그를 찾아 ‘한 수 가르침’을 받기 원하는 제자들로 항상 바쁘다. 현재는 실비만 받고 8명을 개인지도 하고 있다. 그는 티칭프로 라이선스를 따지 않은 채 가르치는 ‘재야 고수’로 불린다.
그에게 레슨을 한 이들이 골프장에 나가 골프를 치다가 난관에 빠지면 다급히 전화를 걸어 “사부님, 어떻게 해결하지요?”라고 SOS를 치는 일도 종종 있다. 그는 골프에 처음 입문하는 이들에게 ‘입산수도’하는 마음으로 ‘자연과 친구가 돼라’고 가르친다.
1971년에 이민 와 워싱턴 지역에서 줄곧 살아 온 그는 미국직장에 다니다 비교적 이른 나이인 55세에 은퇴했다. 미국직장에 다닐 때 동료에게서 골프를 배운 후 1980년대 중반 워싱턴한인골프협회 회장 시절부터 협회 회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후 워싱턴의 올드타이머인 고(故) 이종남씨의 부탁으로 그의 골프를 봐주게 됐다. 친구들과 ‘밥 사기’ 내기골프를 하면 늘 밥 사기가 이씨 몫이었는데 그에게서 배운 후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 걸 본 주변인들이 부탁을 하면서 골프 티칭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워싱턴 총영사로 있을 때 그를 지도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당시 한인골프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던 그에게 “골프도 배우고 동포사회도 알고 싶다며 레슨을 부탁해 그 분이 워싱턴을 떠날 때까지 인연을 유지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제게 배우는 이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요즘은 매일매일에 감사하며 지금까지 제가 골프를 봐줬던 모든 사람들이 늘 즐겁고 행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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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국문화전통예술원 김영자 고문
한국전통문화공연 봉사 20년
“제2 인생, 화려하게 꽃 피웠죠”
“남편을 따라 68년에 미국에 와 54년째 살고 있는데 미국의 가장 부러운 점 중의 하나가 자원봉사였어요. 학교나 지역사회 도서관, 공공행사에 가면 항상 자원봉사하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아 보기 좋았어요.”
메릴랜드 한국문화예술원의 창립멤버로 팔순을 바라보는 김영자 고문(엘리콧시티 거주)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는데 적극 나서게 된 것은 미국의 자원봉사 정신 때문이었다.
지난달에는 백악관에서 열린 아태계문화유산의 달 행사에서 전통 혼례복인 원삼 차림의 한복 패션쇼를 선보여 한복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미국인들에게 한껏 펼쳐보였다.
평생을 자녀양육과 살림에만 전념하며 평범하게 살던 그가 뭔가 보람된 일을 찾기 시작한 것은 1남2녀를 다 키워 막내딸이 대학에 간 이후부터.
처음에는 꽃꽂이를 배워 자신이 출석하는 벧엘교회 성전의 꽃 담당을 10년간 맡기도 했다. 그러다 20여년 전에 북, 장구를 배워 양로원과 공립학교, 애버딘에 있는 군부대, 교회 등에서 위문공연을 하며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게 됐다. 10여년전에는 주상희 무용가를 만나 메릴랜드한국문화예술원도 창립하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1년에 40회 정도 공연을 다닐 정도로 바쁘게 보냈다. 매년 설날 무렵에는 볼티모어에 있는 월터스 뮤지엄에서도 공연했었다.
그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지난해 가을 뇌출혈과 심장마비가 와 죽다 살아났다. 다시는 무용을 못할 걸로 생각했지만 기적적으로 회복돼 요즘은 매일매일 감사함과 겸손함으로 무용을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잦아든 요즘은 주 1회 단원들과 만나 연습하고 공연이 잡히면 더 자주 한다. 이달 중순에는 메릴랜드 찰스 카운티에서 6.25참전 상이용사를 위한 위문 공연이 잡혀 있다.
“힘은 들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더 노력할 겁니다. 미국에 한국을 알리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우리 후세대들에게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도록 열심히 춤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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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한인탁구협회 황학성 수석코치
매주 수·목요일 무료 레슨
“핑퐁으로 사랑 주고 받아요”
워싱턴한인탁구협회가 메시야장로교회에서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 1시부터 2시간씩 실시하고 있는 무료탁구교실에 가면 열심히 가르치는 인상 좋은 코치를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이 ‘탁구 고수’라 부르는 황학성 수석 코치가 바로 그다.
황 선교사는 70을 훌쩍 넘겼지만 탁구를 칠 때 만큼은 청년처럼 펄펄 난다. 탁구 경력 27년차인 그는 2000년 한국청소년 국가대표 전지훈련 때부터 5년간 매년 봄, 가을에 조인해 국가대표와 함께 맹훈련을 받으며 ‘탁구 코치 클리닉’ 과정을 밟았다. 당시 그는 한국 대학교 선교회(CCC) 소속 해외선교사로 아시아나 아프리카 선교지에 파송돼 현지 청소년들을 가르치기 위한 초석의 하나로 탁구훈련을 받았다.
이후 미얀마, 캄보디아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쳐 여자청소년 국가대표로 길러냈고,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아프리카 잠비아에서는 남자 청소년 국가대표를 육성하며 탁월한 지도자로 자리매김 했다. 잠비아에서는 탁구대 10개씩이 들어가는 탁구장 5개를 만들어 커뮤니티에 기증하기도 했다. 워싱턴 한인탁구협회 전종준 회장의 적극적인 후원이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2005년 워싱턴에 정착, 워싱턴한인탁구협회와 인연을 맺게 된 후에도 선교지를 오가며 생활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꼼짝 할 수 없어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버지니아 헌던에 머물며 지난해 탁구협회가 무료 탁구교실을 재개하자 시니어와 초보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레슨이 열리는 날이면 30여명이 몰려 탁구를 배운다.
“탁구를 치며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어떤 분은 다리가 저려 잠을 못 잤는데 탁구를 하고 잠을 잘 잔다고 했어요. 또 80이 넘은 다른 분은 태어나 잘한다는 칭찬을 처음 들어봐 살맛이 난다며 ‘탁구가 보약’이라고도 했고요.“
그는 앞으로도 워싱턴 한인사회에 즐거움을 주고 기쁨을 주는 봉사에 적극 나설 계획으로 요즘은 리더를 양성하는 ‘코치 클리닉’에도 힘을 쏟고 있다. 남을 위한 일이 선한 영향력을 주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미주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