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헤어짐
인간이 인생을 산다는 것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인연(因緣)이라고 한다. 이때 인연의 원래 뜻은 니다나(nidāna)라고 하는데 ‘아래에 내려놓다’라는 말이다. 내가 사람을 만날 때 만남의 원인이 숨어 있어서 모르는 채로 만난다. 이는 서로의 만남은 과거의 원인이 있어서 생긴 결과로 만나는 것인데 누구도 과거의 원인을 모르고 만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의 만남은 악한 인연으로 만날 수 있고, 선한 인연으로 만날 수 있다. 이것이 지은 대로 받는 인과응보다. 그래서 악한 인연으로 만나서 괴로움을 느끼는 것도 내 탓이고, 선한 인연으로 만나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내 탓이다. 그러니 잘못된 만남의 인연의 아픔을 겪을 때 누구를 탓하겠는가. 내가 악연으로 만난 인연을 다시 악연으로 끝내면 또다시 악연으로 만난다.
사람의 마음은 파장이 있어서 서로 미워할 때 더 강력하게 끌어당겨서 다시 나쁘게 만난다. 이것이 내가 과보심으로 부여받은 잠재의식이다. 나는 잠재의식으로 사는데 잠재의식이 인연을 끌어당긴다. 이처럼 인연의 인과응보를 알아서 항상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끝내야 한다. 이것이 알 수 없는 인연에 대처하는 단 하나의 길이다.
사람의 만남은 반드시 내 의도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과거에 있었던 선한 인연이나 악한 인연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의 인연을 알았다면 좋은 인연만 만나고 나쁜 인연은 만나지 않겠지만,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선한 인연을 멀리하고 오히려 나쁜 인연을 만나려 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있다면 나를 위해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겠지만, 이런 내가 없어서 나는 업의 흐름에 만남을 맡기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혹시 악연으로 만나더라고 선한 인연으로 끝내야 한다. 왜냐하면 악연으로 헤어지면 다시 악연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도 즐기지만 싫어하는 것도 즐긴다. 어떤 경우에는 싫어하는 것을 더 즐겨서 항상 나쁜 파장의 힘을 축적해서 나쁜 관계를 더 끌어당긴다.
이때 나는 모르는 마음으로 만난 인연은 거부할 수 없지만, 만난 뒤에 헤어질 때는 내가 선한 인연은 선택할 수 있다. 과거의 원인은 모르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지만, 현재의 인연을 마무리하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는 만나기 싫은 사람도 만나야 하고 또 만나기를 원해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누구나 사람의 만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의 만남은 좋은 관계로 만나 좋은 관계로 끝날 수 있고, 좋은 관계로 만나 나쁜 관계로 끝날 수 있다. 나쁜 관계로 만나 나쁜 관계로 끝날 수 있고, 나쁜 관계로 만나 좋은 관계로 끝낼 수 있다. 누구나 만남의 원인을 알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만났더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인연을 좋게 유지하거나 좋게 끝내는 것이다.
설령 나와 나쁘게 헤어지더라도 아무런 미움 없이 보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악연이 생기지 않아 똑같은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 올 때 오고 갈 때 가는 모든 만남에서 벗어날 때 나는 인연을 집착하지 않아 만남에서 생기는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만남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좋은 만남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내가 좋은 관계로 끝내는 것은 선택할 수 있다.
좋은 관계로 끝내려면 나의 입장을 우선하지 말아야 하며, 나의 이익을 우선하지 말아야 한다. 남이 나를 버리더라도 그를 이해하고 그를 배려해서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 나도 모르지만, 그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다. 악한 행위는 미워해도 되지만, 악한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 된다. 그가 아직 모르기 때문에 한 것이라서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