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옥(장녀. 16) : 인곡여자고등중학교 6년
김명일(2남. 14) : 인곡남자고등학교 3년
김광숙(2녀. 13) : 인곡여자고등중학교 2년 휴학
김광호(3남. 11) : 인곡남자고등중학교 1년
[처가집 식구]
허문하(장모. 65) : 무 직
최치선(처제. 35) : 무 직
최정섭(처남. 27) : 철도기관차대 증기기관차 조수
최평섭(처남. 22) : 북부철도총국 부업선(어선) 갑판원
6.25가 터진 것은 김만철이 열 살 때였다.
마을의 상황은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워낙 북쪽의 두만강가에 있는 산골이라 전쟁 얘기는 거의 들을 수가 없었으나 마을의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끌려가고 노약자와 부녀자들만 남게 되자, 김만철도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수업이라고는 2시간 밖에 하지 않았고 나머지는 피난 훈련과 방공 대피훈련으로 시간을 메꾸었다. 오후에 마을로 돌아가면 마을을 경비하는 민청원(民靑員)들이 목총에 날창을 꽂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들볶았다.
“야, 조무래기들아! 미제와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너희들도 군사훈련을 받아야 된다. 특히 깜둥이는 무서운 놈들이다.
그놈들은 우리 인민 군대가 날창으로 배때기를 찌르면, 등으로 날창이 관통되었는지를 만져보고서야 비로소 그 자리에 쓰러지는 놈들이다. 알겠냐?”
책임자인 눈딱부리는 걸핏하면 이런 말로 아이들에게 겁을 주었다.
(타자치는 사람: 눈딱부리는 아이들이 그 사람에게 붙인 별명 같습니다.)
아이들은 겁을 먹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곤봉 훈련도 하고 밤에는 민청원들과 함께 죽창을 들고 마을을 순찰하기도 했다.
순찰의 목적은 미제의 스파이인 반동 분자를 색출하는 일이었다.
“야, 임마, 아직도 불이 켜진 집이 있다. 창문으로 다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봐.”
어느날 밤 김만철과 한조가 된 눈딱부리가 말했다.
김만철은 창문 밑에 쪼그리고 앉아 그 집의 불이 꺼질 때까지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방안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김만철은 저만치에 서 있는 눈딱부리에게 보고했다.
“야, 이 새끼야, 무엇인가 두런거리고 있었는데 아무 말도 안 하다니 이제보니 이 새끼가 순 악질 반동분자구나.”
눈딱부리는 어린 김만철의 따귀를 후려쳤다. 김만철은 다급했다.
“해, 했어요.”
“무슨 말을 했어?”
“반동 말을 했어요.”
“내용이 뭐냔 말이야.”
“모, 모르겠어요.”
그날 밤 열 살짜리 김만철은 퉁퉁 부어오른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화가 난 김정규는 눈딱부리에게 항의했다.
“여보시오, 민청원동무, 철없는 아이에게 그런 짓을 시키고 때리기까지 해서야 되겠소. 앞으로 우리 아이는 보내지 않을 테니 그리 아시오.”
“뭐라고? 미제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인데 동무는 반대한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동무는 남반부에서 온 전라도 개똥쇠아냐. 쓸데없이 아가리를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새파란 나이의 눈딱부리는 눈을 부라리고 김정규의 아래 위를 훑어보면서 을러댔다.
민청원들은 아이들에게 ‘예수쟁이’ 색출도 지시했다.
“이 마을에는 반동분자가 많다. 그놈들을 잡아내지 않으면 미제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중골이나 예배당에 모여서 쑥덕거리는 것은 모두 반동 모의를 하는 놈들이다. 너희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놈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철없는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탐정놀이였다. 아이들은 중골로 올라가는 길목의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불공드리러 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어느날 밤, 무장한 내무서원과 인민군
20여 명이 민청원을 앞세우고 마을에 들이닥쳤다.
“야, 조무래기들, 너희들은 즉시 마을 사람들을 집합시켜라.”
이윽고 2백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이자 눈딱부리가 말했다.
“지금부터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시오. 최덕술, 이칠바우, 용쇠 할머니, 김일남, 김용우, 재필이 엄마.......”
30여 명의 사람들이 앞으로 나왔다. 어른들 틈에 끼어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김만철은 가슴이 뜨끔했다. 모두 아이들이 일러바친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친한 친구 최철만의 할아버지 최덕술은 김만철이 장난삼아 적어낸 사람이었다.
내무서원들은 부녀자를 제외한 남자 20명을 새끼줄로 묶어 마을 뒷산의 보청개 골짜기로 끌고 갔다. 이윽고 요란한 총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골짜기로 달려갔다. 내무서원들은 시체를 일일이 발로 걷어차 보고 조금이라도 꿈틀거리는 사람은 확인 사살을 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시체라도 묻어주려고 했으나 내무서원들은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날 밤 김만철은 어린 마음에도 죄책감에 사로잡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그날 밤의 총소리는 오래도록 김만철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보신탕을 좋아하던 마을 사람들이 개고기를 입에 대지 않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개들이 시체를 뜯어먹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던 것이다.
나중에 사범학교를 나온 최철만이 당원도 교원도 되지 못하고 김책 제철소에서 평생 노동자로 일하게 된 것은 그의 할아버지가 그때 불교 신자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한 소년이 저지른 실없는 장난이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실제 김만철씨가 체험한 어릴때 이야기입니다
북에서는 절대로 종교를 믿는다 말할 수 없습니다
<남한 종교인들은 명심하고 분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