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번째 편지 -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면서
여러분 여름휴가 계획 세우셨나요. 코로나 때문에 몇 년간 외국 여행이 금지되었던 이유 때문인지 금년에는 여름휴가로 벌써 해외여행을 다녀온 분들도 있고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분들도 제법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희 가족 4명도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마침 아내가 금년이 환갑이라 겸사겸사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날짜 잡는 일부터 쉽지 않습니다. 당초에는 9월 5일부터 휴가를 하기로 하였으나 딸아이가 사정이 여의치 않다며 일정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일정을 잡기 위한 회의를 두 차례 하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8월 17일부터 휴가를 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일정을 잡는 과정에서 진이 다 빠질 정도였습니다.
다음은 행선지입니다. 여행 전문기자 친구 조성하에게 추천을 부탁하였더니 전 세계 여행지가 다 등장합니다.
“핀란드 헬싱키를 경유해서 노르웨이 오슬로, 베르겐의 피요르드를 보고 다시 헬싱키로 돌아와 에스토니아 탈린을 방문하는 일정도 좋지.
아니면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 최남단 카보산 루카스를 다녀오는 4박 5일 크루즈도 좋아. 여름이니까 알래스카 크루즈도 좋겠다. 9월 초까지 운영하니 일정은 확인해 봐.
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오버랜드 사파리 트럭 투어나 나미비아 사막과 에토사 국립공원 사파리 트럭 투어도 추천하고 싶네. 이 중 최고는 나미비아 사파리 트럭 투어이지. 시간만 맞는다면 이것을 강력히 추천하네.”
친구는 자신이 쓴 여행 기사를 몽땅 보내주었습니다. 이런 친구가 없습니다. 저는 여행할 때마다 이 친구 신세를 집니다.
가족들에게 자료를 보여주고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예전에 해외 연수했던 스페인이 어떠냐고 합니다. 1992년 7월부터 1993년 6월까지 저는 1년간 스페인 Madrid에서 연수한 적이 있습니다.
갑론을박 끝에 스페인으로 정했습니다. 스페인 연수기간 동안 일주일 이상 여행을 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저는 그 일정대로 여행하면 어떠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때의 일기를 공개하였습니다.
“1992.7.11. 토요일 오늘은 대장정을 떠나는 날. 스페인 북부 지방을 여행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꾸리기 시작한 짐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끝나 정작 오후 3시 20분에야 Madrid를 출발, A6 고속도로에 접어들 수 있었다.”
아마 그날도 아내와 다투었을 것 같습니다. 일찍 떠나고 싶은 저와 느긋하게 출발하는 아내는 여행 출발 전부터 늘 싸우곤 했지요. 그날 일기를 계속 읽어 봅니다.
“Madrid에서 Avila를 지나 Salamanca까지는 Castilla y Leon 지방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황야, 누런 황톳빛 대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가끔 개인 농장으로 보이는 지역에 군데군데 나무가 널려 있었다.
스페인의 위대한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가 이 황량한 대지를 대상으로 훌륭한 시를 많이 남겼다는 데 틀림없이 엄숙하고 장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alamanca에 도착하기 직전 캠핑장 Regio가 나타났다. 캠핑장은 생각보다 자그마했고, 1급 캠핑장이라서인지 모든 시설이 깔끔했다. 텐트를 치고 밥을 하고 잠자리를 까는 모든 일이 딸 윤아에게 교육인 것 같았다.
밤이 되니 겨울이 된 것처럼 한파가 불어닥쳤다. 밤낮의 기온 차가 엄청났다. 옷을 있는 대로 꺼내 입고 덜덜 떨면서 밤을 지새웠다. 스페인의 새로운 밤 풍경이었다.”
그날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때는 캠핑 여행을 하였습니다. 힘들었지만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가끔 그때 생각을 하며 캠핑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곤 했는데 30년이 흘렀습니다. 아내도 다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저는 스페인 생활 1년 동안 일기의 썼습니다. 외국에서 1년간 산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 일기가 꼭 30년만에 여행 일정을 짜는 데 도움을 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저희는 지금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산티아고 순례길을 차로 30년 전에 간 것입니다. 이번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 Santiago de Compostela를 갈 것입니다. 그곳을 지나 스페인의 서북쪽 해변 길을 따라 Santander를 거쳐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뮤지엄으로 유명한 Bilbao도 갈 것입니다.
이제는 비행기표와 숙소를 정해야 합니다. 비행기 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여러 여행사를 비교하여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터키항공으로 정했습니다.
다음은 숙소입니다. 스페인에는 특별한 국영 호텔 Parador가 있습니다. '휴식처'라는 의미를 가지는 Parador는 과거 왕들의 웅장한 궁전이나, 귀족들의 화려한 저택, 아름다운 수도원 등 스페인의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건물을 개조하여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호텔입니다.
스페인 전역에 95개나 있습니다. 스페인에 연수할 때 두세 곳을 다녀보았는데 모두 아름다웠습니다. 며칠 전 가족들이 밤 11시부터 여행코스별로 Parador를 예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1시간이면 충분히 끝나려니 했는데 정작 Parador를 골라보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여행 일정을 정확하게 계산하여야 하고 또 그 부근에 있는 Parador를 골라야 하고 그 Parador의 평점을 확인하여 묵을 만한지 결정하여야 합니다.
정작 Parador를 골라도 저희가 원하는 일정에 방이 있어야 합니다. 거의 다 골랐는데 저희가 정말 가고 싶어 하는 Parador Costa da Morte에 방이 없다고 합니다. 아들이 현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언제 방이 있냐고 물어 간신히 방을 예약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일정이 다 뒤틀려 버렸습니다. 원래는 Madrid에 도착하자마자 북쪽으로 여행을 하고 일정 마지막에 Madrid를 천천히 구경하려 하였는데 Madrid를 먼저 구경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가족들이 총출동하여 전쟁 같은 예약을 하고 나니 새벽 4시입니다. 다들 피곤하였지만 여행하는 시간보다 여행 전에 이렇게 일정을 짜는 시간이 원래 더 흥분되고 재미있는 법입니다.
저는 이 몇 시간을 즐겼습니다. 여행 갈 때마다 제가 모든 것을 다 결정하고 예약하였는데 가족들과 같이하니 이 자체가 즐거움입니다.
“우리 여행 가서도 이렇게 재미나게 지내자. 서로 싸우지 말고. 장기간 같이 있으면 싸우기 마련이거든.”
“아빠, 여행 기간 동안 가끔 둘씩 짝을 지어 하루를 보내면 어때요. 저는 미술관을 좋아하니 아빠와 같이 Madrid의 Parado 미술관에 가고 엄마와 누나는 쇼핑을 하는 거예요.”
“좋은 생각이야. 아무튼 이번 여행이 가족들이 편하게 가는 마지막 가족여행일 수 있으니 다투지 말고 즐겁게 여행하였으면 한다.”
가족들 모두 같은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 기간 동안 가급적 제 생각을 고집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것이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어디를 가면 어떻습니까? 또 늦게 출발하면 어떻습니까? 또 계획했던 여행지를 못 보면 어떻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 함께한다는 사실인데요. 그런데 가끔 이것을 잊고 미술관 하나 못 본 것에 목을 맨 적이 있었지요.
훗날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일인데 늘 반복하곤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번 아내의 환갑여행 목표는 절대 다투지 않고 여행을 마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셨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7.18.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