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9 - 카잔 사원과 볼쇼이 극장을 보고는 톨스토이 집으로 가다!
선배님 부부등 우리 일행 4명은 오늘 아침에 제정 러시아 황제 짜르의 궁전이자
푸틴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크렘린 끄레믈리 Кремль 을 구경하고는.....
붉은 광장 끄라스나야 쁠로샤지 раснаяяПлощадь 의 성 바실리 사원
흐람 바실리야 블라젠나바 ХрамВасилияБлаженного 를 본다.
그러고는 다시 붉은 광장의 입구인 부활의 문으로 되돌아 와서는.... 바로 옆에
알록달록한 창에 황금색 돔을 가진 "카잔 사원 Казан " 을 본다!
조금전에 본 붉은광장의 성 바실리 사원이 이반 4세가 "카잔한국" 을 멸망시킨 것
을 기념해 건설했다는 데....
또 그와 같은 이름의 사원을 보니..... 새삼스레 "타타르의 멍에" 가 생각나네?
러시아인 들이 분열되어 국가를 세우지 못했던 9세기초에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만족
바랑인 들이 발트해를 건너와 루시(러시아인) 들과 섞여 거주하게 된다.
그 지도자 노르만 바이킹족 류리크 는 862년에 볼호프 강변 노보고르드를 지배하게
되는데 아들 올레그는 882년에 "키예프 루시국" 을 건설하니 러시아 최초의 국가다!
989년 블라디미르1세 때 영토를 흑해와 볼가강, 코카서스까지 확장하며 그리스 정교
를 받아들여 300년간 번영을 구가하나....
야로스라프 왕 사후 왕위 승계 문제로 내분을 겪으면서 터키족이 침략해 온다.
이무렵인 1,147년 유리 돈고루키 가 모스크바 강변에서 사냥 연회를 연 것을....
이 도시 모스크바 마스끄바 Москва 의 시작으로 본다고 하네!!!
이후 1,237년에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 가 볼가강 하류 카잔 에 근거지를 정하고
러시아를 침략하여 노보고르드를 제외한 전역을 정복한후 매년 공물을 거둔다.
한편 1,240년 서쪽에서 스웨덴과 리보니아가 침략해 오니 노보고르드 영주 네프스키
가 이를 격퇴하지만.....
이후에도 러시아인들은 "몽골의 과도한 공물"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래 신음한다.
이런 과도함 공물 때문에 러시아의 발전이 정체되니 이런 질곡을 러시아 역사에서는
"타타르의 멍에" 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여 1,380년 모스크바 영주 드미트리 돈스코이 는 타타르(몽고)를 공격하지만
불과 2년후에 모스크바는 굴복하고 다시 타타르에게 공물을 바친다.
1,480년 이반 3세는 타타르를 공격하며 아들 뇌제 이반 4세 는 러시아를 통일하고,
차르에 올라 1,552년에 카잔 을 공격하여....
타타르에 승리하고 5년후 멸망시키니, 비로소 타타르의 멍에에서 벗어나 러시아는
독립하는 것이다!
카잔 한국 은 킵차크 한국에서 분리해 나온 마프무데크가 건국하여 모스크바를
괴롭히고 한때 10만의 러시아인을 노예로 잡기도 했지만 이때 무느졌던 것이라!
카잔시 는 지금 러시아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의 수도로, 슈움비케탈 탑과 줄샤리프
회교사원 외에 카잔 대학교가 유명하다고 하네?
마네쥐 광장 마녜쥐나야 쁠로샤지 Манежнаяя Площадь 의 부활의 문
옆에는 공산당 집회 가 끝나 불과 수십명의 노인들이 정리집회를 하고 있는데....
지나다니는 젊은이 들은 낡은 이데올로기 공산당에 눈길도 한번 주지 않으니 한마디로
고단한 노인들이 외롭고 애처로운게 눈물겹다고 해야하나...
그 옆에 뱃지파는 아저씨만 신이 났는 데, 제정 러시아 황제들과 우주인 가가린과
레닌이 뒤섞여 있는게 이채롭다!!!
광장을 뒤로하고 맑스와 레닌의 동상을 지나 우리는 발레의 전당 발쇼이를 찾아간다.
한 10여분을 걸으니 저만치 화려한 건물이 보이는 데... 여기 볼쇼이 극장 발쇼이
찌아뜨르 Большой Театр 는 TV 에 보도된대로 대수리에 들어가....
옆 건물에서 임시로 공연을 하고 있는 데, 분수가 있고 극장 지붕에 네 마리 말이
질주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외관만 둘어보고는 아쉽지만 택시를 타고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깐세르 바또리야
치이꼽스까바 Консерватория им. Чайковского 에 내리니...
마침 TV촬영을 하는 데..... 마이크 앞에 선 순경이 긴장으로 더듬거리는 모습에
그만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러나 본격적인 차이코프스키 기념관이 아닌만큼.... 내부에는 그의 자취를 찾을
수 없어 실망스럽다.
그래도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은 뉴욕 맨하탄의 줄리어드 음악학교, 베를린 음악대학,
이태리 베르디 음악학원 및 런던 왕립음악원과 더불어 세계5대 음악학교 라고 하네?
울마눌은 부산의 오케스트라 BMO 단원으로 바이얼린 연주자인 탓인지 홀에서
1,812년 서곡,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이며....
피아노 협주곡등 그의 주옥같은 작품의 자취를 찾아보며 설명까지 해주건만 음악
에 문외한인 나머지 우리 일행 셋은 그냥 덤덤하다!
도로에서 노신사가 모는 BMW(!) 를 세워 "톨스토이집 박물관" 으로 가자고 흥정한다.
" 브 무제이 우사지바 딸스토바? 스꼴꺼 나 쉬촛치키? 쟈빨나쯔!"
( 톨스토이 박물관에 가느냐? 얼마냐? 적어달라 ) 고 흥정해 200루불에 타고 가는데,
세워준 곳은 러시아 정교 사원이니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가‘딸스또바’거리 에만 내려준 것이라.... 21번지를 찾기 위해
서는 여기서 300 여 미터나 걸어야 했네....
톨스토이집 무제이 우사지바 딸스토바 Музей Усадьба Толстого
는 톨스토이가 1805년까지 살았던 집으로....
전쟁과 평화등을 썼으며 4,000여점의 유물이 있다는 200여년 전 옛날 목조 2층집
인 데, 방이 16개나 되고 정원이 넓다.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노라니, 유독 집의 지붕이 낮은걸 보니... 아마도 추운 겨울철
난방 때문이리라 여겨진다.
그래도 식당방이 가장 넓은데 대식구가 모여 만찬을 즐기는 사진을 보니 부인, 특히
딸은 무척 예쁜 데.....
마눌의 말이 톨스토이는 어울리지 않게 산적(!) 같다나... 서재에서 옜날 톨스토이
이가 사용했던 펜이며 원고지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노인 톨스토이가 고리키와 찍은 사진을 보며 당시를 회상해 보다가... 서재에서
창으로 바깥을 내다볼수 있어.....
그 옛날에 여기 서쟈에서 글을 쓰다 물끄럼히 창밖을 내다보는 작가를 상상해 본다.
톨스토이는 만년에 이 좋은 집과 부인을 버리고 1,910년 80세에 장녀와 함께 집을
떠나 아스타포보라 불리는....
어느 한적한 시골 역사에서 객사한 작가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재작년에 톨스토이가 사후 100주년을 맞아 그가 죽은 시골역 아스타포보에서 그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려......
세계 각지에서 톨스토이 팬들이 모여서는 조촐한 추모회를 가졌다고 한다.
마침 강원도에서 온 여행사 단체 3- 40명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그러고는 다시
회상에 잠기노라니.....
어릴 때 부터 전쟁과 평화며 부활, 안나 카레니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
톨스토이가 우리 마음에 자리 잡았기에 마치 고향을 찾아 온듯하다.
그런데 이 집을 찾은 관광객 중에서 일부 사람들이 뒤꼍 계단에 앉아서는 음식을
먹다가는 야단을 맞는 것을 본다.
인근에 빠르크 꿀뚜르이역 에서 지하철를 타고 우리네 대학로 같은 젊은이의 거리
"스따르이 아르바트" Ул. Старый Арбат 아르바트 거리 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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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톨스토이,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한데 집필하시던 그 곳에서 얼마나 강한 감흥에 잡혔을 지 저로서는 도무지 상상조차
못하겠네요. 그리고 존경의 참의미를 되새겨 볼 좋은 기회였습니다.
톨스토이..... 인생의 영원한 스승이지요!!!
톨스토이가 다닌 대학이 카잔이요
아... 그런가요?
그렇네요...레닌도 카잔대 다녔고..지금은 작은도시지만 유서 깊은 볼가강의 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