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청백리, 잠롱
지난 1992년과 95년에 우리나를 방문했던 잠롱은 태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당선되어 1985년부터 1992년까지 방콕시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청렴한 공직생활을 하여 ‘나이시안’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이는 태국 말로 ‘깨끗한 남자’라는 뜻이자. 당시 시장 선거를 치를 때만 해도 후보자로 나서려면 엄청난 선거비가 필요했다. 후보자 벽보를 붙이는 데만도 1백만 바트가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시장 선거를 치르면서 후보자 등록비 5천 바트와 벽보 제작비 1천 바트만을 썼다. 그렇게 적은 돈을 쓰고도 그는 역대 선거 가운데 가장 많은 표인 48만 표를 획득하면서 당선됐다.
잠롱 스리무앙의 청렴함은 가히 ‘세계의 청백리’로 불릴 만큼 검소했다. 그는 명색이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집 한 칸 없이 폐품 창고를 개조해 생활했다. 더구나 그가 받은 월급은 모두 자선 단체에 보내고, 부인이 국수 가게를 하며 번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또한 시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그는 약 40억 바이트(약 1천 2백억 원)나 되는 거금을 방콕 시에 남겨주었다.
늘 무명 저고리 같은 옷을 입고 생활한 그는 외국 내빈을 만날 때에도 별다른 예복을 갖추어 입지 않았다. 그래서 태국의 내무부 장관은 외국 내빈에 대한 결례라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그는 오히려 명예훼손이라며 장관을 나무랐다. 순박한 태국 농민들의 복장을 애용하고 있을 뿐이데, 그것이 어째서 결례가 되느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던 것이다.
『한눈에 쏙쏙 들어오는 이야기 채근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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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나이시안'을 양육하는 멋진 디아가 되자
지난 85년에 실시된 태국 방콕시장 선거에서 최초의 민선시장으로 당선된 「잠롱 스리무앙」은 4년의 임기동안 방콕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90년 재선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다.
뇌물이 아니면 크고작은 민원이 처리되지 않았던 방콕시의 부정이 잠롱 재임기간중 크게 줄었고, 부정부패 척결을 향한 그의발걸음이 성공하자 방콕 시민들은 그에게 ‘나이시안’(깨끗한 남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중요한 것은, 보통 사람으로 돌아간 지금도 청빈한 삶을 그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끼만 먹고, 20년전의 낡은 옷장을 그대로 쓰는가 하면 중학교때 쓰던 책상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나는 큰 집을 팔고 정원이 없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그래서 정원을 다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도둑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잠롱의 말이 우리네 귓전을 두드린다. 부정을 척결하려는 사람에게는 부정이 없어야하고, 남을 정죄하려는 사람에게는 불의가 없어야 한다. 우리 시대의 고뇌는 지도자,공직자,정죄의 칼을 든 사람들 모두가 떳떳하지 못하다는데 있다. 잠롱이 받았다는 별명 ‘나이시안’이 필요한 때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낭비하는 것이 너무 많다. 시간, 물질, 우리 주변의 필수품을 사용하면서 낭비하는게 너무 많다. IMF시대의 ‘아나바다’운동 정신이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
누굴 보면서 참 느끼는 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