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1940년대 영국 보다 못한 국민 수준 높여야 선진국
된다”
*박지향 전 서울대 교수 “1940년대 영국 보다 못한
국민 수준 높여야 선진국 된다”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송의달이 만난 사람]
박지향(朴枝香·69)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중진 학자이다. 서울대 문리대 서양사학과 졸업후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영국 노동사(勞動史)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영국사학회 회장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박 교수는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轉向)한 지식인이다. 유신(維新)체제 아래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그는 “한국 현대사처럼 불의(不義)에 찬 역사가 없다. 민주주의의 원조인 영국 역사를 공부해 한국을 제대로 비판하겠다”며 미국 유학길에 올랐었다.
1984년 4월 영국 광부(鑛夫) 노조가 파업을 벌였을 때, 런던에서 박사학위 논문 자료 수집 중이던 그는 광부 노조에 후원금을 보냈다. 박 교수는 “1년의 파업 끝에 노조가 패했을 때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 후 생각해 보니 그처럼 어리석은 짓도 없었다”고 했다.
◇좌파→우파로 전향...최근 5년 저서 3권
지금까지 16권의 저서를 낸 그는 2018년 8월 정년(停年) 후에도 공부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퇴임 기념작인 <제국의 품격>과 <평등을 넘어 공정으로>(2021년), <윈스턴 처칠, 운명과 함께 걷다>(2023년) 등 최근 4년 7개월 동안 3권의 책을 잇따라 냈다. 박 교수는 각종 단체와 학회·연구원 등에 강연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기자는 이달 20일 낮 서울대 관악캠퍼스 관정도서관에서 그를 만났다.
- 미·중 전략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최근 세계의 흐름을 진단한다면?
“제2의 냉전기(冷戰期)에 들어섰다고 본다. 공산주의가 1991년쯤 몰락하면서 첫 번째 냉전이 끝나고 10년쯤 좋다가 2001년 9·11 테러 때부터 세계가 격변하고 있다. 지금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자유 진영과 중국·러시아 등 전체주의 진영으로 대립 구도가 확연하다.”
그는 “이번 냉전은 과거의 냉전과는 몇 가지가 다르다”며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구(舊)소련이 주역이었으나 지금은 중국이 더 강력하고, 러시아는 종속 변수이다. 시진핑과 푸틴 모두 자기 민족의 부흥을 내걸고 있다. 한동안 사라졌던 민족주의를 끄집어 내 사악(邪惡)한 국가이기주의와 결합했는데, 이는 분명 역사의 퇴보이다. 다만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밀접히 연결돼 있어서 미·소가 철저히 분리되었던 1차 냉전 때와는 아무래도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한다.”
- 한국에게는 어떤가?
“탈냉전 이후 30년 가까이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으로 발전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혜택을 누렸으나 이제는 그게 불가능해졌다. 특히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공언대로, 중국이 대만 통일을 목표로 무력을 쓴다면, 한반도에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된다. 북한의 김정은이 이 틈을 타 한국을 침공할 수 있어서다.”
◇“美 전지전능 않아...‘安美經中' 이제 불가능”
-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조셉 나이 미국 하버드대교수의 지적대로, 중국을 과대평가해도 과소평가해도 안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친(親)중국·친(親)북한 노선을 버린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미국 역시 전지전능(全知全能)하지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국제사회에선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敵)도 없고 오직 이해(利害)관계만 있다’는 파머스톤 경(卿·Lord Palmerston)의 금언도 있지 않나. 자국의 이익을 해치면서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나라는 절대 없다. 지도자와 국민들이 이 사실을 분명히 각인해야 한다.”
- K컬쳐, K스포츠 등의 약진으로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분위기이다.
“폴 크루그먼과 같은 좌파 학자, 니얼 퍼거슨 같은 우파 학자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의 발전을 언급하며 최근 칭찬하는 걸 보면서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 됐음을 실감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정신과 의식 수준, 법·제도 준수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에 어림 없다.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선진국이 되는 게 아니다. 노래 몇 마디 갖고 우리가 세계를 제패한 것처럼 거만(倨慢)을 떨어서는 안 된다.”
박 교수의 이어지는 말이다.
“아테네와 그리스는 세계 최초 민주주의로, 로마는 관용적인 제국 경영과 시민의식으로, 영국은 자유와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식으로 세계 역사에 이바지했다. 우리 민족도 물질적 풍요를 넘어 무엇인가 세계 역사에 남기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노래 몇 마디로 세계 제패한 듯 거만해선 안 돼”
- 역사학자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럴려먼 무엇이 절실한가?
“국민들의 수준(水準)이 높아야 한다. 세월호, 헬로윈 참사 같은 게 터지기만 하면 정부 탓, 남탓만 하는 정신 상태로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피식 웃는다. 일본인의 자기 업(業)에 대한 치열함, 장인(匠人)정신이 한국엔 얼마나 있나?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正義)는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 이게 세계를 정복한 서양 근대의 프로페셔널리즘과 직결된다. 이 점에서도 한국은 너무 취약하다.”
- 영국 국민과 비교하면 어떤가?
“2023년 한국 국민 수준은 1940년대 영국보다 못하다. 영국은 1940년 5월 독일군의 암호 체계인 이니그마(Enigma)를 일찌감치 해독(解讀)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윈스턴 처칠은 해독한 이니그마 정보를 매일 보고받았는데, 그의 비서실장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 이 극비(極祕) 정보는 30년동안 지켜졌다. 국가적 소명(召命)을 믿고 명령에 복종한 영국 국민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애국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 최근 윈스턴 처칠 책을 냈는데, 그는 어떤 점이 뛰어났나?
“무엇보다 처칠은 국민에게 영감(靈感)을 주는 지도자였다. 그는 국민들이 하고 싶지 않는 일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설득을 통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국민된 자부심을 느끼도록 했다. 그게 진정한 지도자의 역할이다.”
◇“지도자는 영감 주며 국민된 자부심 부여해야”
박 교수는 이어서 말했다.
“역사를 무척 좋아했던 윈스턴 처칠은 여러 사안(事案)의 의미를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그 바탕 위에서 국민들의 설득과 이해를 구했다. 1940년 초 독일 나치스(Nazis)와 적당히 타협하려는 대다수 영국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히틀러와의 전쟁을 홀로 결단하고 수행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이 공감하고 수긍하는 비전을 제시해 국민들을 움직였다. 이런 비전이 우리나라에는 안 보인다. 대학에서 1000원 식사 확대와 마약 근절 같은 단순 처방 수준을 넘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움직이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 국민에게 영감을 준 그런 지도자를 한국 현대사에서 찾는다면?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근접한 것 같다. 그는 국민들에게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분명한 비전을 내걸고 영감을 발휘했다. 반대 시위도 있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비전에 공감하고 호응했다. ‘한강의 기적’은 국민들 스스로를 바꾸도록 이끈 박정희라는 국가 지도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외부 환경이 좋아서 거저 얻어낸 게 절대 아니다.”
-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대통령과 처칠·대처 등을 비교한다면?
“처칠이나 대처 같은 국가 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했다. 김영삼 이후 김대중, 노무현 등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여러 이유에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동일한 선상(線上)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박 교수의 말이다.
“윈스턴 처칠 같은 이는 인간의 자유·존엄성 수호라는 역사적 대의(大義)에 입각해 히틀러에 맞서 싸웠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우리나라 문민 대통령들은 인류 보편적 가치에는 눈감고 좁은 한반도라는 변방적(邊方的) 사고에 머물렀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완성한 우리는 이제 인류 보편 가치에 눈을 돌려야 한다. 국가 지도자가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움직일 때, 세계 역사에서 한국의 자리가 마련될 것이다.”
◇“한국 우파, 역사 흐름을 선취(先取)해야”
-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