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이 일어나고 걷기는 산보정도, 일찍 하산해서 잘하면 2차도 가고…….
언제부터 17산악회가 이리 타락했단 말이냐. 오늘도 또 10시 집결, 하남에 있는
검단산에 간단다. 차편은 지난번처럼 김고문, 현총무, 김회장의 차가 동원된다.
놀랍게도 구바오로가 이 산행 같지 않은 산행에 참가하셨다. 웬일이냐 물으니
이번만 봐주고 다음부터는 이런 시시한 산행은 절대 참가 안 할 거라고 선언한다.
드디어 집행부가 구국의 결단을 내려야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워룸’ 하나 마련
해 드릴까.
10시, 잠실 집결지에 나가니 ‘조난팀의 정신적 지주’ 김태구회장님이 나오셨다.
등산화, 재킷, 배낭, 스틱 등 모두 최고급품으로 새로 마련하신 폼이 본격적으로
산악인으로의 변신을 시도하시는 모양이다. 얼마 전 새 골프클럽을 마련했더니
친구가 보고 “아깝다, 아깝다” 했다는데 17친구들은 김회장의 새 등산용품을
보고 “잘했다, 잘했다” 한다. 대환영! 열심히 참가하셔서 그 전설적인 ‘구찌’로
산악회에 새로운 즐거움을 추가해주십시오.
‘내비’장착한 현총무의 고급세단만 제대로 산곡초교 입구를 찾아가고 그 흔해빠진
‘내비’ 하나 없는 나머지 두 대는 약간 헤매다 11시 산곡초교 입구에 도착, 산행
을 시작한다. 657m밖에 안 되는 산이라고 우습게 알았는데 웬걸, 해발 50m 정도
되는 곳에서 출발했으니 고도를 600m나, 그것도 단숨에 올려야 한다. 별거 아니
라더니 왜 이렇게 힘드냐고 금세 투덜거리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잠시 휴식.
김경자여사가 나눠주는 콜라비(무우와 양배추 배접 종자라는 달콤한 무우) 먹고
기운 내 다시 출발. 12시 30분, 검단산 정상 도착. 엄청 붐빈다. 어떤 등산객은
“천호동 주민이 다 모인 것 같다”고 한다. 역시 우리는 대간 체질이야. 장터처럼
북적거리는 정상에서 얼른 증명사진 찍고 피신하듯 서둘러 내려간다.
정상에서 5분쯤 내려와 헬기장에서 점심식사. 구바오로가 함께 점심 먹으려고 기다
려줘 감동한다. 더 놀라운 것은 김경자여사가 한 그릇씩 돌린 매생이국. 산꼭대기
에서 매생이국 먹어본 사람 아마 우리밖에 없을 걸. 임총장이 마누라가 아침에 묵직
하고 커다란 짐을 지고 가라면서 절대로 열어보면 안 된다고 그럴 때 알아봤다며
눈을 흘긴다. 매생이국인 줄 알았으면 절대 안 지고 갔을 거 아니냐는 게 김여사의
항변. 남편까지 속여 가며 대원들 ‘따끈하고 시원한’ 국 먹이겠다는 김여사의 정성
이야말로 감동 한 사발이다. 유식이 죄인 김구라의 매생이 강의, 간단히 말해 같은
科에 속하지만 값 순서로 하면 파래, 매생이, 감태라는데 그 비싼 감태는 언제 먹어
보나. 임종홍표 김치찌개와 김태구표 김밥도 사이좋게 나눠먹고 있는데 갑자기 젬마
보이가 뒤로 벌렁 나둥그러진다. 앉아있던 등산용의자의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구바오로 왈, 그러니까 내가 체중 빼라고 그랬잖아.
1시 하산 시작. 미끄러운 진창길을 다 내려와 잠시 휴식, 오랜만에 오신 서울상대
3대 '구찌'의 한 분을 그냥 보내드릴 순 없잖아. ‘구찌’만 쎈 줄 알았더니 술도
쎄단다. 정상에서 포켓 사이즈 스테인레스 병에 담아온 위스키를 돌릴 때 알아
봤다(웬일로 김고문이 회칙위반을 슬그머니 눈감아줬다). 오늘 저녁 생일 날짜가
비슷한 사위 둘에게 생일 합동잔치 해준다고 집으로 불렀다기에 사위들이 술을
잘 마시냐 물으니 “무슨 소리, 두 놈이 나 하나를 못 당해” 큰소리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책이라도 한 권 읽자고 고향 가까운 속리산 복천암에 들어갔는데
책은 무슨 책, 같이 어울린 친구들과 매일 법당에서 술잔 기울이기 바빴단다.
보다 못한 주지스님 왈, “거 부처님 계신데 좀 돌아앉아서 마시지요” 했다고.
그 신도에 그 스님 아닌가?
검단산은 원래 팔당호를 내려다보는 전망으로 유명한 곳인데 불행히도 오늘 운무
때문에 전망이 시원찮다. 그래도 전망바위에서 일단 조망은 해야지. 흐린 시야
속에서도 호숫가에 최근 새로 지은 듯싶은 하얀 건물이 눈에 띈다. 저건 뭐냐는
질문에 현총무 왈, 러브호텔인 것 같다, 나도 죽기 전에 남들 다 가는 러브호텔
한번 가보고 죽어야 할 텐데... 그 처량한 독백에 모두 폭소. ‘현총무 러브호텔
보내기 위원회’라도 하나 구성해야 할까보다. 그나저나 현총무가 하산 길에 기자
에게 한 고백(물론 로맨스에 관한)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도저히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가 없어 기자 혼자 무덤까지 갖고 가기로 결심했다(절대로 묻지 말아
주세요, 저도 괴롭습니다).
2시 45분, 애니메이션고(이렇게 요상한 이름의 고등학교가 다 있는 줄 몰랐다).
3시간 45분에 걸친 산행을 마친다. 간단하다더니 걸을 만큼 걸었다고 다들 흐뭇
해한다. 기사 3명은 택시타고 산복초교로 차 가지러 가고 나머지는 벤치에 앉아
김영길대장이 사준 엿 먹으며 기다린다. 엿 잘 먹은 임한석고문이 갑자기 엿
누가 샀냐, 내 이빨 빠진 거 물어내라, 소리 지른다. 이빨 빠진 거는 본인 과실
70%다, 본인이 책임져라, 이렇게 흰소리들 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금세 기사들이
차를 대령한다. 오늘 종파티 장소는 현총무가 지난번에 못 갔다고 아쉬워한
가락시장의 우럭버럭 횟집. 목욕도 시장 근처에서 하기로 하고 각자 출발.
김고문차에 동승한 우리 일행은 볼 일 있다는 김태구회장과 구바오로를 문정역
에서 내려주고 가락시장 주차장에 주차했는데 다른 두 차는 임한석고문의 안내
로 시장 건너편의 불가마사우나로 직행했다는 전화가 온다. 하여간 전국의 맛집,
사우나, 여관 정보는 임한석고문한테 물어보면 된다니까요.
김고문과 우리부부 세 명은 가까운 곳의 목욕탕을 물어 따로 목욕하기로 했는데
결국 가서보니 바로 그 사우나다. 목욕 후 두 차에 열두 명이 포개 앉아 우럭버럭
으로 갔는데 시장 안 횟집이라 한 줄로 붙어 앉기에는 자리가 좁다. 두 줄로 앉으
라는 주인의 권유를 뿌리치고 기어이 한 줄로 상을 붙여놓고 다닥다닥 끼어 앉는다.
할수없이 평소와 달리 부부들이 나란히 포개 앉으니 임고문이 또 한마디 한다.
꼭 그렇게 부부끼리 붙어 앉아야 하나? 너무 좁아 움직일 수가 없다, 허리를 펼
수가 없어 디스크 걸리겠다,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아니, 누가 그렇게 좁게
앉으랬나, 나눠 앉으면 될 걸. 급기야 맨 끝에 앉은 김윤기동문이 밀려나 한쪽
다리는 등산화를 신고 바닥에 내려놓는 형국이 됐다. 엉덩이를 반만 바닥에 걸치니
한쪽 엉덩이는 뜨겁고 다른 쪽은 시리다고 한다. 그러면 역시 맞은편 끝자리에
앉은 임종홍과 교대로 바꿔 앉으면 된단다. 아이고, 누가 말려, 17산악회는 너무
사이가 좋아 한시도 떨어지지 못하는 게 문제다. 젬마여사님, 서방님이 그렇게
큰 고생하시지는 않았으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아니면, 따라 오든지.
도미, 방어, 광어, 농어 섞어 나온 푸짐한 회에 삶은 꼬막(김구라가 또 이건 호남
양반들이 드시는 참꼬막 아닌 개꼬막이라고 유식을 과시) 까먹으며 건배! 당분간
근교산행하다 5월쯤 덕유산 종주를 다시 한 번 하자는 데 만장일치. 다음 주말쯤
출간될 산행기 출판기념회도 적당한 날 잡아 하자는 데 또 만장일치. 현총무가
뒤늦게 회비를 걷는다. 김태구회장과 구바오로가 약속 있다고 먼저 갈 때 박정수
통신병이 그래도 회비는 내라고 챙겼다. 목욕도 안 하고 저녁도 안 먹는 사람한테
회비 3만원씩 받은 걸 좀 가혹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총무가 정산하면서 덕분에
오늘 적자 안 났다고 미리 두 사람 회비 확보한 통신병을 칭찬.
다음 주말(2월 21일)에는 현총무님이 집 근처 법화산에 초대했습니다. 2주일씩이나
안 보고 기다릴 수 없으니 중간에 한번 만나자는 겁니다. 맛있는 점심도 있습니다.
놓치지 마세요.
참가자(14명): 구명회, 김숭자(장원찬), 김영길, 김윤기, 김종남, 김태구, 박정수
(노순옥), 임종수(김경자), 임종홍, 임한석, 현해수. (노순옥 기록)
첫댓글 김태구님 바지도 물론 금방 라벨 뗀 거 였었고 등산용, 하산용 장갑까지... 속옷도 멋진 거라는데 아쉽게 확인은 못했습니다.
Fiction 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소설가 자질이 너무 뛰어나서 깜빡 속았습니다. --노순옥
현총무! 노순옥기자를 감쪽같이 속여서 무덤까지 가져가려는 괴로움을 안겨 준 그 Fiction을 다음 산행 때 공개하여 노기자 괴로움을 덜어드려라.
누구는 패션쇼 하러 가고 등산은 입으로 하고 참 재미 있었겠다 아이고 부러버라
현총무가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는걸 보니 러브호텔못간 恨?을 실화처럼 예기 한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