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살아 ‘이방인들의 해방구’로 불리는 경기도 안산. 여기에 또 다른 이방인들이 ‘다리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모여 살고 있다. 무연고 탈북 청소년(꽃제비)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해 함께 살 수 있도록 ‘다리’가 되겠다는 취지다.
하얀 벽돌로 지은 아담한 2층집이 날이 밝자 부산해졌다. “빵 말고 밥 없습니까?” 색다른 밥투정으로 다리공동체의 아침은 시작됐다. 아이들의 입맛은 여전히 북한식이다. 시금치도 된장만 넣어 적당히 버무리면 된다.
올해 고3에 올라간 혁준(가명·21)과 민규(가명·21)는 보충수업 때문에 다른 식구들보다 일찍 일어나 나갔다. 뒤따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식탁에 앉았다. 등교시간에는 12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다 보니 꽤 널찍한 2층집도 정신이 없다.
‘다리공동체’는 1998년부터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꽃제비 아이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던 이영석(31)씨가 이 아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보살피는 공간이다. 이씨는 “처음 중국에서 쉼터를 운영한 것은 이 아이들을 잠시 보호하다가 북한으로 돌려보낼 목적에서였지만, 북한에 연고가 없는 아이들은 한국으로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원래 모임의 이름은 ‘꽃지모’(꽃제비 아이들을 지원하는 모임)이지만 아이들이 ‘꽃제비’라는 말을 싫어해 작년 6월 ‘다리공동체’로 바꿨다.
여기에는 북한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서 살다가 배가 고파 옆집 오빠의 등에 업혀 두만강을 넘어 왔다는 7살 미정이(가명·초등 1)부터 늦깎이 고3병(病)을 앓고 있는 21살 민규(가명)까지 10명의 무연고 탈북청소년들이 살고 있다. 이들 아이는 이영석씨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건물 1층은 아이들의 주된 생활 공간인 널찍한 마루가 있고 2층의 방 3개는 남자아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여자아이 3명은 맞은편 건물 2층에 있는 ‘이모’ 최경숙(39)씨의 집에 모여 산다. 최씨는 두 집을 오가며 살림을 담당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 학교에서 XXXX했거든, 그런데 말이야 XXXX했어” 등 아이들의 진한 함경도 사투리가 떠들썩하다. ‘삼촌’ 이씨가 “하나도 못 알아 듣겠다. 말 좀 천천히 해라”고 타박을 놓지만 아이들은 “우리는 다 알아듣는데 삼촌만 못 알아 듣는다”며 볼멘소리다.
매주 화·수·금 오후 5시부터는 과외수업 시간이다. 어린 나이에 북한에서 떠돌다 국경을 넘은 탈북청소년들은 북한에서 받은 공식적인 교육수준이 남한의 초등학교와 비슷한 인민학교 2~3학년이 전부다. 그나마 식량난 때문에 먹을거리를 찾아 다니느라 수업시간을 제대로 채운 적이 없다. 공동체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위해 1주일에 세 번씩 자원봉사 선생님이 찾아와 과외수업을 한다.
자원봉사로 학습지도를 온 국어선생님 하효성(河曉星·여·40)씨는 “애들이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데 다른 아이들보다 두 배는 시간이 더 걸린다”며 “얘들이 중학교에서야 그럭저럭 버티겠지만 고등학교에 가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3년 동안 꽃제비 생활을 하다 작년 말 한국으로 들어온 진경(가명·13·초등 5)은 학습수준이 떨어져 실제 나이에 비해 2~3년 낮은 학년에 편입했다. 진경은 “친구들이 나이를 물어보지 않아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며 “거짓말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많다는 걸 일부러 친구들에게 알리기 싫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인 철민(가명·17)은 “말하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들이 영어를 많이 섞어 쓰는 바람에 알아 듣기 힘들 때가 많다”고 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한국으로 들어온 북한이탈주민은 총 3131명(사망자 포함). 이 중에 연고가 없는 청소년들은 10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아이들이 먼저 들어오고 부모가 나중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북한이탈주민후원회’에서 관리하는 무연고탈북청소년들은 47명이다. 1990년대 후반 들어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증가하면서 무연고 청소년들의 수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1999년 이후 국내로 입국한 무연고 청소년의 수는 1998년 4명, 1999년 5명, 2000년 10명, 2001년 29명, 2002년(8월 기준) 47명에 이른다.
탈북청소년들은 한국에 입국한 뒤 경기도 안성의 ‘하나원’의 청소년교육과정인 ‘하나둘 학교’에서 8주간 교육을 받는다. 하나원 교육을 마친 아이들은 다리공동체와 같은 6개 탈북청소년 보호기관과 개인보호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대부분의 탈북청소년들이 검정고시를 준비하지만, 다리공동체 아이들은 모두 인근 학교에 다닌다. 이영석씨는 “아이들이 ‘고3병’도 겪어 보지 않고 어떻게 같은 또래들과 같은 정서를 공유할 수 있겠느냐”며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에 다니며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때로는 싸우는 것도 배워야 제대로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하튼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은 의외로 학교생활에 빨리 적응하는 편인 것 같다. 저녁식사 시간,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민수(14)는 생일날 같은 반 친구 4명을 집에 초대했다며 “케이크도 있어야 되고 PC방도 한번 ‘쏘기’로 했다”며 용돈을 달라고 삼촌을 졸랐다.
개그콘서트의 ‘갈갈이’ 박준형을 제일 좋아한다는 상수(17)는 “친구들을 웃기는 게 특기”라며 “앞으로 유명한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했다. 상수의 담임을 맡고 있는 정향은(32) 교사는 “학기 초에 상수가 우리 반에 온다고 해서 긴장했지만 상수가 의외로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명랑하다”며 “영어로 말하기가 좀 서툴지만 그래도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하나둘 학교’ 교육담당 성선희(38) 교사는 “무연고 청소년 대부분은 중국에서 어린 나이에 치열한 생존경쟁을 거친 아이들”이라며 “한국 아이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주고 약간의 배려만 해 준다면 어른들보다 쉽게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리 공동체 꾸려가는 4人
다리공동체에는 4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과 먹고 잔다. 다리공동체의 대표 이영석씨는 자칭 ‘얼굴마담’이다.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공동체와 관련해 외부에 나갈 일이 있거나 관련 단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이씨의 몫이다. 이씨는 “1998년 중국에 꽃제비아이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에서 돈을 마련해 무작정 중국에 건너갔다가 아이들에게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시(詩)를 전공한 이씨는 “졸업 무렵 ‘인생을 살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교수님의 조언이 자원봉사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2살 때 앓은 소아마비 때문에 항상 목발을 짚고 다니는 이씨는 “장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얻을 수 없는 것도 얻었다”며 “꽃제비아이들도 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사무국장 차승만(30)씨는 다리공동체 소식지와 후원회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인하대 공대를 나와 1995년 기술고시에 합격해 특허청 기술심사관(5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작년 초 사표를 썼다.
이런 차씨를 두고 이씨는 “저 친구 제 정신이 아니다”고 농담을 던졌지만 차씨는 “지금 있는 곳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받았다. 다리공동체 외에 경기도 안산의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차씨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다니면서 난민지원활동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있다.
부부 사이인 대외협력부장 염광주(42)씨와 총무 최경숙(39)씨는 다리공동체의 살림을 도맡아 꾸리고 있다. ‘아이들 10명의 살림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최씨는 “누구나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지 않느냐”며 “먹는 밥에 숟가락 몇 개 더 놓으면 된다”고 태평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최씨는 가족들 숟가락 4개에다 아이들 숟가락 12개를 더 놓아야 한다.
염씨는 결혼 전에는 “자원봉사 같은 것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아내 잘 만난 덕에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게 됐다”고 했다. 집안 청소·가구수리·운전 등 공동체에서 필요한 잡일이 염씨의 몫이다.
이들 4명은 다리공동체의 자원봉사자들이기도 하고 각자의 직업이 있는 월급쟁이이기도 하다. 이씨는 “아이들에게 사랑도 주고 싶지만 힘들게 ‘밥벌이’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