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無念)이 즉 진여(眞如)
대승불교나 근본불교의 공통된 주요 사상 가운데 하나가 이 무아(無我) 사상, 공(空) 사상입니다.
대승불교의 중도일승(中道一乘)이라든가 일승원교(一乘圓敎)라든가 하는 이론들은
모두 공 사상(空思想)을 밑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전반적인 인도 사상계에서도 불교만큼 철두철미하게 공(空) 사상을 주장하는 종교나 철학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공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흔히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단멸공(斷滅空)이지 중도공(中道空)이 아닙니다.
아주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물질인 색(色)이 멸해서 아주 아무것도 없다는 색멸공(色滅空)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란,
근본불교와 대승불교는 물론 심지어 선종(禪宗)에 이르기까지 색의 자성이 공하다는 색성공(色性空)을 말합니다.
색(色) 이대로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색의 자성이 본래 공하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공을 바람과 같다고 비유로써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은 모양을 볼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공이란 그 모양을 볼 수는 없지만 결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심(無心)을 ‘마음이 없다.’ 또 무념을 ‘생각이 없다.’라고 해석하였는데,
없다고만 하면 그것은 단견(斷見)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없는[無] 마음’이요, ‘없는[無] 생각’입니다.
일체 진로가 없고 두 가지 상이 없는 생각[念]이니 이 염(念)은 진여의 작용이 됩니다.
즉, 무념(無念)이라고 하는 것은 양변이 떨어진 진여의 염(念)이니,
이것이 실지로 쌍차쌍조(雙遮雙照)한 중도 정각입니다.
그러니 무념(無念)이 즉 진여(眞如)입니다.
육조 스님이 무념을 으뜸[宗]으로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념이라고 하여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단멸공(斷滅空)이 아니고
모든 두 가지 상이 다 떨어진 동시에 진여의 항사묘용(恒沙妙用)이 거기서 일어나는 무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철스님 백일법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