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종대(太宗臺) 입문 - 국가 명승
▲ 태종대 정문 남쪽 다누비열차 승차장 주변 (가운데 솟은 산이 태종산) |
태종대 종점에 이르니 어느덧 11시에 이르렀다. 태종대의 품으로 들어서면 적어도 3시간은 지 나야 바깥으로 나오게 될 듯 싶어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란 크고 아름다운 진리 에 따라 먼저 점심을 들기로 했다.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태종대 종점에서 정문 사이로 많은 식당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그 중 적당한 식당을 골라 돼지불고기정식을 배불리 섭취하고 태종대 나들이에 임했다.
태종대 정문을 들어서면 다누비열차 승차장이 모습을 비춘다. '다누비'란 이름 그대로 태종대 를 다 누비는 태종대의 발로 정문 승차장에서 태종대순환도로(4.3km)를 따라 전망대, 영도등 대, 태종사 등 3곳을 거쳐 정문 승차장으로 돌아온다. 경유지 외에는 승하차가 안되며, 사방 이 모두 뚫린 개방형 차량 3량으로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행한다. 예전에는 택시와 일반 차량의 접근도 가능했으나 2006년에 이르러 태종대가 무료의 공간으로 해방되면서 차량 통행을 제한했다. (지금은 18~22시까지만 출입 가능, 23시까지 모두 나가야 됨) 대신 교통편의를 위해 다누비열차를 내놓아 쏠쏠하게 수입을 챙긴다. (다누비열차가 아니 면 무조건 걸어가야 됨) 다누비열차 승차권을 사면 편도 방향으로 최대 3~4번까지 이용이 가능한데 정문 승차장에서 전망대나 영도등대까지 이용하고, 거기서 다시 태종사까지, 그리고 태종사에서 정문 승차장까 지 이용하면 된다. 단 승차장으로 돌아왔을 경우 다시 탑승은 안되며, 비나 눈이 오거나 노면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바퀴를 접고 운행하지 않는다. 이럴 때는 무조건 도보로 이동해야 된다. |
▲ 태종대의 발, 다누비열차 |
여름 제국의 기운이 천하를 녹여먹을 정도로 무자비하여 벌써부터 땀범벅에 몸까지 은근히 지 친다. 게다가 태종대는 오르막길이 많아 이런 날씨에 전 구간을 걷는 것은 정신 건강에 실로 좋지 않다. 하여 여름의 핍박을 피해 관광객들은 모두 다누비열차로 몰렸고, 우리도 승차권을 구입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일단 오르막 일색인 전망대까지 이용하고, 이후는 두 발에 의지 해 전투적으로 움직일 요량이었다. 아무리 덥더라도 나의 길을 막을 수는 없다.
만석의 기쁨을 톡톡히 누린 열차는 태종대의 속살로 관광객들을 인도한다. 옛날 태종대와 첫 인연을 지었을 때는 친척과 택시로 1바퀴 돌았고, 2번째 인연 때는 친구와 영도등대, 신선바 위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그럼 여기서 잠시 태종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
▲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있는 주전자섬(생도) |
영도의 남쪽 끝을 잡고 있는 태종대는 해운대(海雲臺)와 더불어 부산의 대표적인 해안 명승지 이다. 태종산(太宗山, 252.4m) 자락에 넓게 자리한 태종대는 해송(海松)을 비롯한 120여 종의 나무 가 삼삼하게 숲을 이루고 있으며, 해안에는 대자연이 억겁의 세월을 두고 빚은 벼랑과 기암괴 석이 즐비하다. 또한 확 트인 바다로 날씨가 좋을 때는 수평선 너머로 우리의 옛 땅인 대마도 (對馬島)까지 흔쾌히 시야에 잡힌다. 산과 숲, 바위,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승지로 부산의 해금강(海金剛)으로 칭송을 받았 으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이곳의 경치를 즐겼다. 그리고 지금은 국내/외 관광객들로 늘 북새통을 이룬다.
태종대란 이름은 신라 29대 제왕인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金春秋)>이 백제(百濟)를 멸하고 먼 변방이나 다름이 없는 이곳을 찾아와 휴식을 취하며 활을 쏘았다고 해서 유래되었 다고 한다. 또한 백제의 오랜 속방(屬邦)인 왜(倭)를 공격하고자 영도에 수군기지를 설치하여 그 훈련을 참관하거나 왜를 정벌하러 갈 때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전해온다. 무열왕은 영도에서 육성한 수군으로 대마도와 백제의 속방인 왜를 때려잡았는데, 이런 사실은 안정복(安鼎福)이 쓴 동사강목(東史綱目)에 나와있으니 내용은 이렇다. '동래 절영도(絶影島, 영도)에 태종대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신라 무열왕이 대마도를 토 벌할 때 주필<駐蹕, 제왕이 잠시 어가를 멈추고 머물거나 묵는 것>했던 곳이라 전한다. 신라 는 조그만 구석진 땅이나 육지로는 능히 고구려(高句麗)와 백제에 대적하고, 바다로는 왜국을 정벌했으니 그 병력의 웅대함이 삼국을 통일할만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후세에 해동(海東 )의 온 땅덩어리가 섬나라 오랑캐(왜국)들에게 곤욕을 당한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에 위정자들은 그 방어책을 생각해야 될 것이다'
신라는 실제로 왜국(倭國)과 왜열도 담당 일진으로 왜를 무수히 공격하고 때려잡았다. 유례왕 (儒禮王) 같은 경우 수군을 보내 오사까를 공격하여 왜왕의 항복을 받았으며, 진평왕(眞平王) 과 성덕왕(聖德王)은 왜의 서변(西邊)을 마구 공격했다. 또한 백제계 세력을 토벌하고 왜열도 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왜열도 곳곳을 뒤집어놓거나 초토화시켰으며, 왜왕이 침범한 신 라 장수의 화살에 맞아죽기도 했다. 그리고 신라 후기에는 신라해적, 신라구(新羅寇)로 표현 된 신라 수군과 신라의 지방 세력 수군이 구주(九州, 규슈)와 혼슈, 시코쿠는 물론 경도(京都 , 교토)까지 허벌나게 공격하고 약탈했다.
우리 역사에 태종이란 묘호(廟號)를 지닌 제왕이 2명이 있는데, 신라 무열왕 외에 조선 태종( 太宗)이 있다. 하여 그와 관련된 이야기도 덧붙여 전하고 있는데, 1419년 5월 가뭄이 심하게 들자 상왕(上王)으로 물러난 태종이 여기서 비가 오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허나 태종은 부산 에 온 적이 없으므로 신라 무열왕과 햇갈린 듯 싶다. 또한 태종대에는 절영도신사(神祠)가 있 어 가뭄 때마다 동래부사(東萊府使)가 직접 기우제를 지냈으나 16세기 초 이전에 사라졌다. 한때는 신선바위의 명성이 대단하여 태종대 대신 신선대(神仙臺)라 불리기도 했으며, 왜정(倭 政) 때는 왜군이 이곳에 군사시설을 짓고 사람들의 접근을 금했다.
6.25 시절에는 함경도와 강원도 북부 지역에서 넘어온 청년들로 조직된 영도유격부대(1950년 10월~1952년 12월)가 창설되어 태종대 일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이북에 침투하여 특수 전을 전개하고 후방을 교란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상당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태종사입구에 그들의 충혼을 기리는 '6.25참전 영도유격부대 유적지비'가 있으나 그의 존재 를 알지 못해 지나치고 말았음)
1967년에 건설교통부가 유원지로 고시하고 1969년 관광지로 지정하면서 비로소 이곳의 빗장이 부분적으로 열렸다. 1970년 태종대순환도로를 닦기 시작하여 1973년 완성을 보았으며, 1972년 부산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74년 태종대유원지 조성 계획에 따라 개발에 들어갔다. 2005년 11월 국가 명승으로 승격되었으며, 백악기(白堊紀) 말, 호수에서 쌓인 퇴적층이 해수 면 상승으로 파도에 의해 침식되어 닦여진 파식대지(波蝕臺地)와 해안벼랑, 해안동굴, 공룡발 자국을 지녀 2013년 11월 국가지질공원의 지위까지 얻었다. 또한 난대(暖帶)에서 온대(溫帶) 로 이어지는 다양한 식생(植生)을 가진 숲과 보라매 서식지, 반딧불이 서식지까지 지닌 대자 연의 보고이다.
태종대는 1,713,763㎡ 정도만 개방이 되어 태종대유원지란 간판을 내걸고 있는데, 태종대순환 도로 주변과 전망대, 영도등대, 등대자갈마당, 구명사, 태종사, 태원자갈마당, 감지자갈마당 정도만 거닐 수 있으며, 태종산 정상을 비롯한 나머지 구역과 해변, 공룡발자국 화석은 군사 시설과 자연보호구역 등으로 묶여 속인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해안은 거의 절벽 수 준이라 태원자갈마당과 등대자갈마당, 감지해변을 제외하면 바닷가 접근이 불가능하다. 하여 태종대의 해안 벼랑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태종대 유람선을 이용해 태종대 앞바다를 1바퀴 돌 면 된다.
* 태종대 소재지 :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산 29-1 (전망로24, ☎ 051-405-8745~6) * 태종대유원지 홈페이지는 이곳을 ☞ 흔쾌히 클릭한다. |
▲ 태종대전망대 모자상(母子像) |
태종대 정문 남쪽을 출발한 다누비열차는 전망대에서 처음 바퀴를 멈춘다. 태종대의 남쪽 끝 을 잡고 있는 전망대는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1999년 8월, 현대화된 전망대와 휴게시설 로 새로 지었다. 그리고 2017년 3월에 다시 리모델링을 거쳐 편의점과 식당 등을 갖추고 있다. 바다 쪽으로는 망원경을 갖춘 전망대를 두어 넓게 펼쳐진 남해바다를 바라보게 했는데, 여기 까지만 보면 절경과 조망이 휼륭한 전망대로 여길 것이다. 허나 이곳은 자살 성지(聖地)로 영 좋지 않은 이름을 지녔던 자살바위가 있는 곳으로 전망대 밑에 그 바위와 벼랑이 있다.
자살바위는 전망대에 가려 거의 보이진 않으나 옛날부터 자살자들이 많아서 자살바위란 우울 한 이름을 지녔다. 이런 경승지가 속세살이에 지쳐 무리하게 삶을 정리하는 장소가 되었다니 아름다운 절경만큼이나 사연도 참 쓰라리다. 사람들의 속절없는 자살을 막고자 이곳에 천막으 로 절을 지어 자살자를 설득하거나 자살한 영혼들을 달랬으며, 절 이름도 이곳에 어울리게 목 숨을 구한다는 뜻의 구명사(救命寺)라 했다. 구명사는 1969년 태종대에 군작전도로를 만들면서 사고로 죽은 공병단(工兵團) 군인 4명의 영 령을 봉안하고자 군지원으로 1976년 태종대 한복판 쯤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여 절의 빈자리 를 채우고자 바로 그 해에 아이를 품은 어머니상인 모자상을 만들었고, 이후 자살이 크게 줄 었다고 한다. 게다가 전망대까지 씌워놓아 자살바위의 우울한 이미지를 덮고 있다.
요즘은 자살 사고는 거의 없다고 하니 삶의 경각심도 주고 바위의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세탁 할 겸 자살의 반대말인 '살자바위'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어떨까 싶다. |
▲ 확대해서 바라본 주전자섬(생도)의 위엄 |
전망대 앞바다에는 주전자섬이란 조그만 바위섬이 외롭게 자리해 사람들의 시선을 진하게 끈 다. 그는 태종대에 딸린 유일한 섬으로 전망대에서 남쪽으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영도 등대와 신선바위에서도 바라보이는 이곳의 상큼한 장식물이다.
이 섬은 8,088㎡ 규모로 주전자처럼 생겨서 주전자섬이란 단순한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그의 등에는 바닷길을 밝혀주는 등대시설이 닦여져 있는데, 그 모습이 굴뚝처럼 보여 섬 전체가 증 기기관차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기관차가 마치 푸른 세상을 천천히 움직이는 듯한 귀여운 모 습으로 섬의 식생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칼새가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어 도서 지역 생태계 보전 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특정도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런 이유로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어 전망대에서 이렇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그것이 인간과 주전자섬 서로에게 좋다. |
▲ 푸른색의 정석을 보여주는 전망대 앞바다와 여름 하늘 바다는 진한 푸른색, 그의 허공을 뒤덮은 하늘은 일반 푸른색을 띄고 있다.
▲ 태종대순환도로 영도등대 입구 |
전망대에서 순환도로를 300m 정도 가면 영도등대입구이다. 다누비열차가 전망대 다음으로 정 차하는 곳으로 여기서 영도등대까지는 내리막길이 오지게 펼쳐져 있는데, 영도등대만 있는 것 이 아니라 신선바위와 망부석, 등대자갈마당이 같이 있다. 내리막길의 끝은 등대 해변과 등대자갈마당으로 거기까지는 10분 정도 내려가야 되며, 그들을 둘러보고 다시 영도등대입구로 올라와야 된다. 길이 외길이기 때문이다. 오르락 내리락이 귀 찮다고 영도등대를 지나치는 사람도 있으니 이는 태종대의 50%를 놓친 것과 같다. 그러니 두 다리가 부담되더라도 영도등대와 신선바위는 꼭 찍어야 나중에 저승에 가서도 꾸중을 듣지 않 을 것이다. 그리고 더 욕심을 부려 등대 해변(유람선 선착장)과 등대자갈마당까지 싹 둘러보 면 정말 알찬 여로(旅路)가 될 것이다. (보통은 등대까지만 보고 돌아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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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도등대 숲길 조형물 | ▲ 해기사(海技士) 명예의전당 '바다의 혼' 조형물 |
영도등대 직전에는 '해기사 명예의전당'이 닦여져 있다. '바다의혼' 조형물과 하얀 피부의 병 풍석에 새겨진 바다와 배 부조물로 이루어진 이곳은 옛조선(고조선)부터 내려온 우리 겨레의 유구한 해양 역사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해기사의 위상을 높이고자 2009년 3월에 세워진 것 으로 그 옆에는 야외공연장이 자리해 있어 종종 공연 등이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