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려놓음과 합일의 미학: 이일희 「길 위에서」
내려놓고 내려놓고 백팔 번 내려놓고
마음을 내려놓고 하늘을 우러르니
두둥실 흰 구름 가네 그 속에 내가 있네
이일희 「길 위에서」 전문, 『길 위에서』 열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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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희 시인의 「길 위에서」는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내면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시 속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본질의 평화에 대해 탐구한다. 시조 형식을 활용하여 반복적인 구조와 명상적인 언어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속 평온을 찾는 여정을 그려낸다. 이 여정은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선(禪)적 사유와도 닮아 있는데, 이를 통해 시적 화자는 내면의 평화와 깨달음에 도달하려고 한다.
시조의 초장, “내려놓고 내려놓고 백팔 번 내려놓고”는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반복되는 표현은 무언가를 내려놓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얻는 해방감과 치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백팔 번’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번뇌를 의미하며, 그것을 모두 내려놓는 행위는 단순한 포기가 아닌, 더 깊은 치유와 정화의 과정으로 읽힌다. 이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 하늘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행위는,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느끼며 일체감을 경험하는 순간을 잘 나타낸다.
특히 마지막 종장에서 시적 화자가 스스로를 구름에 비유하는 장면은 주목할 만하다. 이 장면은 물질적 짐을 모두 벗어던진 뒤, 무게에서 자유로워진 화자가 더 넓은 존재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구름은 땅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시적 화자가 구름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세상의 무게에 구속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작품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영적 해방과 평온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이일희 시인의 「길 위에서」는, 자연 속에서 인간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으로, 독자에게 일상 속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내면의 고요와 평화를 찾는 방법을 묵직하게 전달한다. 시인의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그 속에 담긴 울림은 크다. 이 작품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고, 무언가를 내려놓는 경험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리뷰: 김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