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여러분, 너도 나도 선생이 되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다 아는 일이지만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한동안 인기있던 교사직에 대한 인기가 예전만 못합니다. 그만큼 교육환경이 악화되어 있고, 부모들과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순수한 마음들이 오염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학교교육이 이럴진대 교회학교 교육은 더더욱 어러운 환경에 직면했습니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한국교회는 다음세대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가득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가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는 남아 있는 학생들과 어린이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라는 과제고, 다른 하나는 교회밖의 아이들을 어떻게 교회로 인도할 것인가? 에 대한 과제입니다. 둘 다 쉽지 않고, 무척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 어느때보다 교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 때입니다. 이런 때에 교사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다만 우리의 수고가 열매없는 수고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할 중요한 일들을 놓치지 않고 잘 감당함으로서 열매를 거두는 기쁨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교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바울의 이 역설적인 말은 선생으로서의 삶이 어렵고 힘들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실제로 교사는 가르치는 자라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가르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한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교사는 끊임없이 다시 배우고 효과적인 학습을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어떤 선생님들은 매년 똑같은 학습법과 교재로 시간을 때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곧 학생들은 그 교사에게 진보가 없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챌 것입니다.
제가 감신대학원에 다닐 때 숭실대교수님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았습니다. 대학원의 커리큘럼은 벌써 10년째 같은 과목을, 같은 교수가, 같은 책으로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교수님들은 매년 교재를 바꿨습니다. 그것이 두 대학의 교수님들의 수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사는 늘 학생들보다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학생들도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는 무엇보다 믿음으로 사는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들이 말씀에 사로잡혀 그 은혜를 받고 산다는 뜻입니다. 사실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교사는 아니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씀에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시도를 하게 됩니다. 성경은 눈으로 읽히는 문자가 아니라, 우리를 삶으로 행동으로 이끄는 책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한주간 말씀앞에 서서 어떤 은혜를 받았습니까?
당연히 말씀의 은혜없이도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안읽었다고 아무런 손해보는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겠죠? 그 일들은 대부분 유투브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는 시간으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즐거움을 채우는 그 시간에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앙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우리 영혼은 물이 없어 말라갈 것입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사무적이 될 것입니다. 교사의 직분은 의무감으로 감당하는 일이 되고, 습관화되어 기계처럼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일생 성경을 읽고 은혜받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묻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지만 개인적으로 조용한 시간을 만들고 하나님께 집중함으로서 그분이 내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는 기도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한주간 하나님앞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교사로서 자기 생각과 뜻대로 살면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살라고 가르친다면 아이들을 잘못 인도하는 교사가 될 것입니다. 일주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앞에 아이들을 위해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하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맡겨진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께 특별히 올려드려야할 기도제목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기 바랍니다. 학생부, 아동부, 각 선교회가 한 사람을 놓고 하루 3분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를 쉬지 않고 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교회가, 아이들이 기도의 공동체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바울의 말에는 당시 유대인 랍비들의 부정적인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많은 랍비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몰려드는 유명한 교사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경건한 척, 더 깊은 지혜가 있는 척 꾸미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모습으로 인해 속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살피시기에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아이들도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줄 알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 한 장로들이 죽고 난 뒤에 믿음의 본을 볼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이 없음으로 모두 자기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그 시대를 사사기라고 말하고, 영적 어둠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그들이 정복했던 땅에 그 땅의 원주민들에게 착취와 억압을 당하며 사는 삶으로 30년만에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는 다른 세대는 선조들의 맏음의 삶을 따르지 않음으로 고통과 지배를 받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 아이들에게 짓눌려 살아가는 어둠의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그들에게 복을 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믿음의 본을 보이는 교사가 되기를 당부합니다.
교사는 인격적인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지난 83년 미국 캘리포니아 조그마한 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주 술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한 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들은 두 사람이 술집에 들어가 술을 먹다가 서로 잘났다고 말싸움을 하였습니다. 그 때 마침 읍장 선거가 있었는데 서로 잘났다고 싸우다가 둘이 읍장선거에 출마해 동네사람들의 신임을 묻기로 합의했습니다. 평소 이들을 못마땅해 하던 술집주인은 이들이 출마하면 자신의 사냥개를 출마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읍장 선거에 술꾼 둘이 출마했습니다. 술집 주인도 사냥개를 후보로 등록했습니다. 읍장 선거에 두 사람의 술꾼과 한 마리의 사냥개가 후보로 등록해 치열한 선거전을 벌인 끝에 사냥개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 사냥개는 11년 간 여섯 차례나 연임하면서 읍장직을 '성실하게(?)' 수행하다가 94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기이한 역사' 라는 책에 수록된 실화입니다.
오즉하면 개를 읍장으로 선출했을까? 뉴욕대 경영학 교수 데일 잔드는 " 리더십의 3 요소는 지식, 신뢰, 권력이다."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인격입니다.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지도자는 힘으로 다스릴 수는 있지만 존경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 따르는 사람을 원하는 곳으로 원만하게 이끌고 갈수 없습니다. 분열과 원망, 대립과 갈등 속에서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21세기의 지식 사회를 이끌어갈 리더에 대해서 말하면서 리더십이란 어떤 사람의 문제이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즉 방법론보다 인격이 먼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에게 인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모범적인 인격은 우연히 갖추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강의 상류에서 모난 돌이 하류까지 내려오면서 정교한 돌로 다듬어지는 것처럼 원만한 인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훈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훈련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인격적인 삶은 자기 훈련의 과정을 만들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비만 인격은 하루아침에 만즐어지지 않습니다. 오래 시간 원칙과 기준을 만들어 지키고 생활함으로서 만들어지는 보석과 같은 것입니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 고전이 된 에릭 리델의 이야기등> 삶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가치있는 일을 하고, 가치 있는 인생을 만드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적응을 잘 하는 사람이 필요할까요? 사회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원칙을 고수하고 지키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원칙과 기준, 공정과 기회균등의 원칙이 자기 편과 적에게 다르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사위원회, 사회성이 좋은 목사보다 영성이 깊은 목사가 하나님께 더 필요한 시대입니다.> 여러분들의 말과 행동이 아이들에게 책으로 읽히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스스로 신앙의 원칙과 기준을 만들고, 생활의 원칙을 정해서 스스로 인격적인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훈련의 과정이 없이 좋은 교사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 모든 사람이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열린 마음, 상대방의 허물과 잘못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예수님의 인격을 본으로 보여주는 교사가 되기 바랍니다.
제인 블루스턴의 <내 안의 1%를 믿어준 사람>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교사다. 교사는 누군가를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
여기엔 마법이 있을 수 없다. 나는 물 위를 걸을 수 없으며 바다를 가를 수도 없다. 다만 아이들을 사랑할 뿐이다.
누군가의 교사가 된다는 것, 누군가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특별한 비법이 따로 없습니다. 그저 믿어주고, 지켜봐주는 것이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사람을 키워내고 이끌어 주는 일에 사랑보다 더한 마법은 없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장군이 훈장을 받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자는 무명의 용사들입니다. 교육학자들은 보통 학문의 업적을 자랑하지만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무명의 교사들입니다. 선생님은 갈채도 없고 금메달도 없습니다. 단지 내일의 소망인 학생들에게 희망의 촛불을 밝혀줄 뿐입니다.
지혜로운 교사는 학생들의 미래를 사랑의 망원경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둔한 교사는 학생들의 행동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실수만을 찾아냅니다. 사랑과 격려가 최선의 교육입니다. 교사는 연을 날리는 사람과 같아서 연이 땅에 떨어지려고 할 때마다 적당히 줄을 잡아당겨 하늘로 향하도록 조절합니다. 그리고 한시도 연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연이 푸른 창공에 날아오를 때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교사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으로 헌신하는 교사들이 되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