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1 살림교회 주일공동예배(성령강림절 후 제15주)
기억에서 현존으로
신4:1-2, 6-9; 약1:17-27; 막7:1-8, 14-15
처서가 지난 이후로 숨 막힐 것 같던 찜통더위가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하늘은 한없이 높고 맑습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처럼 작열하던 태양은 곡식이 잘 여물도록 여전히 뜨겁지만 한결 부드러운 햇살이 되어 우리 어깨위에 기분 좋게 내려앉습니다. 호수공원에도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붉은 나뭇잎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습니다. 무더위가 지나고 가을의 길목에 서있는 우리의 마음도 잘 여물어서 더 깊고, 아름답고, 풍요로워지길 바랍니다.
오늘 마가복음 본문은 ‘부정한 손’에 대한 논쟁으로 시작합니다.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씻지 않은 부정한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몰려와서 따져 묻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정결규례를 따라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거나,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몸과 손을 씻는 것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따져 묻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님은 위선자라고 하면서,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막7:6b-8) 이 말씀을 하시고는 장로들의 전통에 근거하여 그들이 부모님께 드릴 것이 고르반(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부모님을 부양하는 의무는 저버리던 당시의 관습을 예수님은 꼬집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겐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율법은 장로들의 전통이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였습니다. 손을 씻는 일보다,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대를 씻는 일보다, 그들의 마음에 담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우리도 습관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율법이나 규례로 표상되는 것 너머에 계신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시는 인간의 정신 안에 나타나는 살아계신 영입니다.
하나님을 살아계신 창조의 영으로 알고 그분과 친밀하게 관계를 맺게 되면,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보다 그 현상이 담고 있는 본질에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본질에 집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부정한 행동이나 어떤 말 한마디에 걸리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내 속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밖으로 향해있던 투사를 모두 거두어들이고 나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을 정말로 더럽히는 것은 더러운 손, 이방 사람, 부정한 물건이나 짐승, 음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밖으로 향해있던 투사를 거두어들이고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우리 안의 모순, 갈등, 대극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휘젓고 있는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대게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인데, 이것들을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 안의 어둠에 한줄기 빛이 비춰져 우리가 자기(self)와 접촉될 수 있습니다.
마치 달이 어두운 밤하늘을 은은하게 비추어주듯이, 열린 마음은 어둠 속에 한줄기 빛이 되어 우리의 역설을 부드럽게 비춰줍니다. 이 은은한 빛으로 우리 안의 역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사랑스런 눈길로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조명(illumination)이 되는 순간, 모든 문제는 분명해집니다. 어둠 속에 형체를 알 수 없던 시커먼 것들이 색을 입고 정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버려야 할 것들과 통합되어야 할 것들이 선명해집니다.
이 때, 버려야 할 것들은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의 생각입니다. 즉, 개인의 발달을 저해하는 집단적 태도, 고유하고 독립적인 인격이 아닌 무리 속의 개체가 되어 다른 사람들과 동일시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통합만큼이나 분리도 중요합니다. 분리는 우리에게 속해있지 않은 것들에 더 이상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도록 고정되고 고착되어 있는 시선에서 눈을 들어 전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밖으로 향해있던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들이고, 어둔 내면에 한줄기 빛을 비춰서 자기 안에 있는 불완전하고 모순적이어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들의 실체를 보고 비워내는 일련의 과정을 마음의 정화라고 합니다. 우리가 문자주의 적으로, 집단 무의식 속에서 인격체가 아닌 개체로 있다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마음을 쓰고 정화하기보다는 경건의 옷을 입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게 됩니다. 우리를 정말로 더럽히는 것이 무엇인지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정결 논쟁을 하신 뒤, 무리를 다시 가까이 부르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막7:14b) 본질에 다가가고, 마음의 정화를 위해서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먼저 말씀을 듣는 태도입니다.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고 고착되지 않도록 깨어서 알아차리려면 우리는 먼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신명기 말씀에서도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규례와 법도를 듣는 것이 먼저이고, 이후에 들은 그대로 지키라고 당부합니다.
호수공원에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메타세콰이어 길을 따라 있는 작은 등에 불이 켜집니다.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나무들 사이에 불이 켜지면, 어두웠던 길이 무척이나 운치 있게 바뀝니다. 작은 조명들이 나무들 사이로 내려앉은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어 환하게 밝혀주진 않지만, 어둠 사이사이에 피어난 불빛들은 어둠 속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도록 안내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이것은 마치 마음의 심연 속에서 말씀이 빛이 되고, 소리가 되어, 우리의 영혼이 지나가는 길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먼저 잘 들으십시오. 들은 말씀은 우리 안에서 빛이 되고, 길이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마음에 아로새겨져 하나의 기억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 속에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힘과 능력이 담겨있습니다. 마음속에 새겨진 말씀을 떠올려 기억하는 것은 우리를 현존의 자리로 안내합니다. 현존은 우리를 지금 이 순간에 생생하게 깨어있어서 알아차리도록 하는 열려있고 미분화된 비이원론적 상태입니다. 말씀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현존하여 다시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줍니다.
현존은 우리가 율법의 틀과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창조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그리고 기억을 통해 현존했던 경험들이 모이고 쌓여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신앙의 본질은 이성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경험에 근거합니다.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구별하지 않고 열려있도록 현존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일은 머리로 그 내용을 이해하고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일은 그 말씀이 담고 있는 생명력이 우리 마음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때까지 깊이깊이 말씀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형식과 틀보다는 율법에 담겨진 본질적인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열린 자세입니다. 이런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억한다면, 율법은 더 이상 고정된 규례와 규칙이 아닙니다. 각 사람 안에서 창조의 영이신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지켜야 할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각 사람에 알맞게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율법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그것을 자발적으로 실행할 힘이 되어 줍니다.
현존하도록 말씀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일은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특별히 함께 성시교독 했던 시편 15편 말씀을 이번 주에 묵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율법에 대한 우리의 고정된 생각을 깨고, 의식을 확장하는데 도움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주중에 교회 단톡방에 올라온 말씀이기도 한데요, 시편 15편 중 일부를 제가 잠시 읽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어 이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고정된 규례와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서 벗어나 주님의 장막에서 살고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물겠다는 마음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억한다면, 우리는 분명 율법의 틀이 아닌 본질에 더 가까이 접근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본질은 지금 이 순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데 머물지 않고, 이원론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열려있고 창조적인 현존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안내합니다. 바로 이것이 완전한 율법이 주는 자유입니다.
주님의 장막에 살고,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는 사람에게 율법은 자유이고 해방입니다. 창조의 영이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안에 있는 사람은 시선을 외부로 돌리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판단과 비난 없이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일은 우리가 현존하게 하는 힘이 되어 줍니다. 현존하는 사람은 창조의 영이신 하나님 안에서 말씀을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입힌 살아있는 생생한 스토리로 경험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 놀라운 은총을 삶 속에서 경험하도록 여러분은 모두 초대받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지금 이 순간을 누리십시오.
다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여 아버지 안에서 현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