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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우내 텃밭에 바짝 엎드리고 있었던 봄동들도 초록빛 대를 쑤욱쑥 밀어올리며 노오란 꽃을 피운다. 하지만 함안으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는 산골짝 곳곳에는 아직도 겨울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다. 바람이 숭숭 빠져나오는 미루나무 가지 사이에 덩그러니 매달린 까치집. 바위 틈새 허옇게 매달려 있는 고드름. 아직 봄은 멀었는가. 아니다. 깊은 산골짝 곳곳에는 아직도 겨울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산골짝을 끼고 층층히 드러누운 다랑이밭에서는 부지런한 농부들의 밭갈이가 한창이다. 저만치 보리가 파랗게 자라는 들판 곳곳에서도 쑥과 냉이를 캐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린다. 벼슬을 마다하고 자연과 더불어 신선처럼 살다간 조선 후기의 선비 주재성. 국담 주재성의 올곧은 선비정신이 깃든 주씨고가와 무기연당을 찾아가는 길목 곳곳에도 봄은 어김없이 다가와 있다. 잊을만 하면 '호오오 호오오' 소리 치며 파란 하늘로 푸더덕 날아오르는 장끼의 날개짓에도 연초록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년 앞에 상주(尙州) 주씨(周氏)들이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생겨난 주씨 집성촌(集姓村)이다. 국담 주재성이 이곳에 처음 터전을 잡고 살았다는 주씨고가(周氏古家)와 조선 후기 정원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무기연당(舞沂蓮塘)은 이 마을회관에서 왼쪽으로 난 골목길 끝자락에 있다. 이런 비좁은 골목길 끝자락에 뭐가 있으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금 걸어가면 이내 눈 앞에 웬 솟을대문 하나가 길을 떡 막아선다. 그리고 누구든지 오라는 투로 활짝 열린 그 솟을대문 안을 삐쭘히 바라보면 마치 누군가 일부러 꼭꼭 숨겨놓은 것 같은 오래 묵은 기왓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솟을대문이 주씨고가와 무기연당을 숨기고 있는 충효쌍정려문(忠孝雙旌閭門)이다. 근데, 이 대문 왼쪽 기둥에 솟을대문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보이는 노랗고 길다란 간판 하나가 걸려 있다. 조금 우습다. '교양 있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살자'라니. 고리타분한 내용의 까만 글씨가 마치 어린애를 가르치는 투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감은재(感恩齋)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대청마루를 둔 감은재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2호 국담문집책판(菊潭文集冊板) 56매가 보관되어 있다. 국담문집책판을 보기 위해 대청마루에 올라서자 방문마다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다. 국담문집은 1908년, 주재성의 후손들이 4권 2책으로 엮은 책으로 주재성이 쓴 시와 문장, 제문(祭文), 상소문 등이 실려있다고 한다. 그중 1728년, 영조4년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국담이 영남의 사림(士林)들에게 보낸 호소문이었던 '창의문'(倡義文)은 유교를 뿌리에 둔 군신관계를 강조한 대표적인 글이란다. 양파가 주렁주렁 매달린 감은재 옆에는 지금도 살림을 살고 있는 듯한 안채 하나가 조상을 잘 받들어 모시는 종손처럼 허리를 굽히고 있다. 고운 자갈마당 저 편에는 '영원히 위패를 옮기지 말라'는 영조의 왕명을 굳게 받들며 지금도 해마다 기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불조묘'(不祖廟)라는 사당이 지키미처럼 낮게 엎드려 있다. 밟을 때마다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나는 자갈마당 오른 편에는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마른 고춧대를 비웃으며 새파란 시금치가 봄을 노래하고 있다. 그 끝자락에 나즈막한 담장을 날개처럼 펼친 '한서문'(寒棲門)이 오도카니 서 있다. 한서문 안에 별채처럼 아담하게 보이는 건물이 하환정(何換亭)과 풍욕루(風浴樓)다.
주재성은 이 연못을 '국담(菊潭)'이라 이름 짓고 자신의 호로 삼아 늘 이곳에 머물며 학문을 닦고 후진양성에 힘썼다고 한다. '무기'(舞沂)라는 말 또한 논어에 나오는 '욕호기 풍호무우'(浴乎沂 風乎舞雩)에서 따 온 글자로 '이름에서 목욕하고 기우제 드리는 곳에서 바람을 쐰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세상사 모든 것에서 벗어났다는 그 말이다. 국담(菊潭)이라고도 불리는 이 네모난 연못은 2단의 돌둑을 쌓고, 연못 한가운데 산의 모양을 본뜬 작은 섬을 하나 띄워놓았다. 이 섬이 석가산(石假山, 정원에 돌을 쌓아올려 인공적으로 만든 산)이다. 그리고 이 석가산을 쌓아놓은 섬을 '양심대'(養心臺)라 부른다. 가로 20.2m, 세로 13.8m, 수심 약 0.7m. '바람에 목욕을 한다'는 풍욕루(앞면 3칸, 측면 3칸)는 이 연못의 북동쪽에, '못을 바라보며 즐겁게 사는 세상살이를 어찌 벼슬 따위와 바꿀 수 있겠는가'라는 뜻을 가진 하환정(앞면 2칸, 측면 2칸)은 이 연못의 서북쪽에 있다. 하지만 이 누각과 정자는 국담의 후손들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풍욕루와 하환정 마루에 걸터앉아 이 연못을 바라보는 풍경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담장 너머 현대식으로 지은 주택들만 아니라면 정말 신선이 따로 없다. 연못 옆에 서서 섬을 향해 한껏 드러누운 늙은 소나무의 모습도 멋드러지게 보인다. 언뜻 연초록빛 연못 속에 비친 저 늙은 소나무가 국담 주재성의 혼백처럼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가다가 시골의 들녘을 일렁거리며 가물가물 피어나는 아지랑이에도 포옥 젖어보고, 연초록 봄빛에 젖어드는 자그마한 연못에 내 얼굴도 한번 비춰보자. 국담에 비친 내 얼굴이 추해 보이거든 노오란 개나리꽃 하나 따서 연못 위에 연꽃처럼 띄워보자. 그 개나리꽃 조각배를 탄 내 얼굴에도 이내 환한 웃음이 번져나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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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면 3칸 측면 2칸에 대청마루를 둔 감은재, 국담문집책판이 보관되어 있는곳 어디 비슷한데 있어요. 내가 어렸을때 본것같아서...아닐수도 있지만.
사진이 정말예쁘다 나도가볼까??
우리의 얼굴이 저 연못에 비칠까??
사람이 만든거 아니죠?
우와 나무가 떨어질랑말랑 하는거같아요
무기연당 옆에있는 노송 한 그루가 참 멋있네요
이종찬씨 많이 힘들었겠다
사진이 이뻐요~ 저도 가보고 싶어요~
재호랑.. 같은 생각입니다;; 물도 더러워 보이고 ㅋㅋ
옛날사람들이 저기서 살았을떄는 참 좋켓어요..
신기해요
돌멩이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