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염치불구하고...
2021년 11월 18일 목요일
음력 辛丑年 시월 열나흗날
비소식이 있다고 하더니
오늘 아침은 잔뜩 흐림으로 시작된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듯 찌푸린 하늘이다.
그나마 기온은 영하 1도 밖에 안되어 다행이다.
오늘은 수능일이라서 수험생과 학부모님들은
모두가 긴장되고 초조한 마음일텐데 수능 추위는
없을 것 같다. 수험생들 모두 힘내기를 바래본다.
문득 22년전 이맘때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하나뿐인 아들 녀석이 수능시험을 보러 가면서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그당시에 녀석은 고3
수험생이었지만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느긋했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공부하란 말을 전혀
하지 않은 부모였다. 그런 녀석이 수능시험 보러
집을 나서며 하는 말이 걸작이라서 우린 웃었다.
"엄마! 오늘 인터뷰할 준비하고 계셔!"라고 하여
"뭔일이 있는거야?"라고 했더니 피식 웃으면서
"수능 만점 받을거니까 인터뷰 준비하시라구!"
라고 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긴장하고 초조하긴
커녕 우리집은 이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녀석을
데리고 시험장으로 향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22년이 지났고 녀석도 벌써
불혹의 나이가 지나 마흔한 살이 되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이 나이가 되도록 장가들 생각을 않고
있으니 원...
어제는 본의아니게 염치없는 짓을 했다.
사연인즉슨 얼마전 인근 제재소에서 땔감용으로
쓸 토막나무를 톤백으로 10개를 사왔는데 와서
풀어봤더니 두 개가 나무로 채워진 것이 아니고
쓰레기와 나무찌끄레기가 담긴 톤백이 들어있어
이럴 수가 있냐며 항의를 했더니 얼마후에 전화가
왔다. 외국인 근로자가 잘 몰라서 그런 모양이니
추가로 톤백 하나 분량을 주겠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짐차가 없으니 당장 가지러 갈 수가
없었다. 그날 트랙터를 가져와 톤백을 내려주었던
마을 아우가 전화하는 것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렇잖아도 어제 아침나절에 아내와 제재소에서
주겠다는 나무를 어떻게 가져와야 할 것인가를
의논했다.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몇 번 나르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읽었는지
오후에 마을 아우가 전화를 했다. 하는 말이 너무
고마웠다. "형! 제재소에 가서 나무 가져옵시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염치가 없어 부탁을 못한
것인데 이미 마을 아우는 기억을 하고 있었던 것,
고맙다는 말 외 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었다.
그렇게 하여 함께 제재소에 갔더니 담당자가 너무
죄송하다고 몇 번씩 인사를 했다. 그러니까 오히려
내가 염치가 없는 것 같았다. 이미 준비해놨다면서
직원에게 시켜서 지게차로 마을 아우의 차에 톤백
하나를 실어주었다. 상냥하게 대해준 그 직원분의
말에 문득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것일까 싶었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을테니까 걱정말고 가져가
잘 때라고 했다. 염치불구하고 죄송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싣고왔다. 마을 아우네 집으로 가서
트랙터 바가지에 매달아 싣고 올라왔다. 제재소의
책임자 그 직원도 그렇고 마을 아우에게도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함께 했고 한편으로는 너무
염치없는 짓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가져다놓은 나무는 지난번에 가져온 것보다는 더
좋은 것 같았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까지
나무를 현관옆 다용도 창고로 옮기는 일을 했는데
아내가 저녁을 먹자고 했다. 바빠서 반찬을 제대로
준비를 못했다며 웃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더덕구이, 새송이버섯 간장볶음, 울외장아찌, 김치
또한 요즘은 문을 잠그고 먹는다는 아욱국까지...
이 정도면 산골 밥상치고는 훌륭한 것 아니겠냐고
하며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은 뒤 밖에 나가보니
시월 열사흗날 밝은 달이 둥실 떠있었다. 수능일에
모든 수험생들이 힘내서 시험 잘 치르기를 빌었다.
첫댓글 감사하며 사시는
촌부님의 넉넉한 마음이 푸근 합니다.
오늘도 즐거움 속에서 행복 가득 하세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혼자가 아니지요. 더불어 살아야 하고, 배려하며 살아야 하지요. 그런 면에서 이곳 산골의 인심은 아직 살아있구나 합니다. 감사한 것이지요. 늘 격려주시는 근정님께도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잘못된 것을 돌려놓는 작업은
아쉽지만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서로가 인정하고 도우면서 일을
풀어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어울렁 더울렁 사는게 인생이겠지요.
맞습니다.
고쳐야 하는 것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이 촌부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ㅎㅎ
식사 맛있게 드셨는지요..
세상사 실수도있고.고의도있고..
여하튼 항공마대에 하나를 더주셨으니. 노여움푸시고
이해.용서해주세요.물론 촌부님성격에 벌써 용서하셨
으리라 생각합니다.
삶이 항상 감사하는맘.감사해야할분들로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항상 진솔하신 심정으로 잡다한 미사여구없이
삶의글 올려주심에 항상 감명받고.감사드립니다.
그리고...부럽읍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