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생김새가 여우를 닮았다고 하여 이리 낭(狼) 자를 써서 ‘낭도(狼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낭도(狼島)는 여수시에서 남쪽으로 26.2km 떨어진 섬으로, 주변에 적금도, 둔병도, 조발도, 상화도, 하화도, 사도가 있다. 낭도는 면적이 5.02km2, 해안선 길이 19.5km이다. 낭도에 206가구 347명(2010년 현재)이 살고 있다.
섬의 지형은 동쪽, 여산 마을에서 규포 쪽으로 약 3km 지점에 상산(280.2m)에는 임진왜란 당시 봉화로 연락하던 곳이며 일제 때 측량하던 기점인 십자 표시가 지금도 있다. 상산 외의 대부분은 낮은 구릉지로 서쪽과 남쪽은 밭과 논이 있다. 여산리를 중심으로 탑동까지 주로 들판이다. 서쪽 역시 산림 지대로 사람이 살기에는 어려운 곳이다. 해안은 만과 갑이 교대로 연이어져 해안선의 드나듦이 복잡하다. 만입부는 대부분 사질 해안이고, 남쪽 돌출부는 암석 해안이다.
낭도에 처음 사람이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때로 강릉 유씨가 처음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구전으로 전해 오며, 주민의 대다수는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농산물로는 쌀·보리·마늘·감자·고구마·약초·유자 등이 생산되고, 주요 수산물은 멸치·새꼬막·굴 등이다.
낭도 해수욕장과 농어 낚시가 유명하다. 감성돔·볼락·농어 등이 많이 물린다. 또한 천연기념물 제434호인 공룡 발자국 화석지가 있다. 이 공룡 화석지는 화정면에 속하는 사도, 추도, 목도, 적금도 인근의 다른 섬들에도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은 총 3,546점으로 사도에 755점, 추도에 1,759점, 낭도에 962점, 목도에 50점, 적금도에 20점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종류도 다양해 앞발을 들고 뒷발만으로 걷는 조각류, 육식 공룡인 수각류, 목이 긴 초식 공룡인 용각류 등의 발자국이 발견되었고, 이 중 조각류 발자국이 전체의 81%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수시가 공룡 발자국과 현대판 모세의 기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도의 바다 갈라짐 현상 등, 섬의 관광 활성화를 위해 사도와 낭도 간 연도교 가설공사를 계획했으나 문화재청의 불허로 보류되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수상 버스(유람선)를 건조해 사도 인근 섬을 선상 투어하기로 결정된 바 있다.
낭도에는 차를 싣고 다니는 여객선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낭도에서 여수까지 왕복하는 배가 하루에 한 번뿐이었기 때문에 낭도에 들어가면 그 다음날 나와야 했다. 지금은 연륙된 백야도에서 낭도까지 하루 왕복 세 차례 여객선이 운항한다. 배로 섬에 도착한 후 다음 배가 올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충분히 섬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다. 낭도에서 나오는 마지막 여객선은 오후 네 시 삼십 분에 있다.
낭도 하면 늘 사도가 따라다닌다. 그만큼 낭도와 사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여객선을 타고 사도 앞 등대를 지나면 움푹 들어간 긴 해안가가 나타난다. 이어 드러나는 방파제. 그 끝에는 빨간 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빨간 등대를 끼고 돌면 또 다른 방파제 그리고 그 위의 하얀 등대. 이 방파제는 일자형 방파제로 빨간 등대와는 다른 형태다. 육지와 떨어진 일자형 방파제에는 두 개의 등대가 있는데 하얀 등대 외에도 끝자락에 노란 등대가 있다. 노란 등대 옆으로 섬이 하나 있다. 바로 대납도이다.
빨간 등대가 있는 방파제 시작점은 대해도다. 그리고 그 앞에 두 개의 무인도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나무섬(木島)으로 섬에 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또 다른 섬 하나는 고래의 형태가 되며 일명 고래여라고도 한다. ‘여’는 바위나 암초를 뜻한다.
낭도 선착장은 국가 어항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크다. 사방이 탁 트인 낭산정(狼山亭)이 들어선 이곳은 원래 바다에 서식하는 게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기섬’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현재는 여객선 접안 시설로 부잔교가 설치되어 있다.
형형색색 지붕들을 이고 있는 마을 풍경. 학교도 보이고, 교회도 보인다. 화정면사무소 낭도출장소 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해안길이 있다. 그 입구에 낭도산 등산 안내도가 있다. 그 옆에 ‘화정면 낭도리 여산 마을’이라는 여산 마을 유래비 겸 표지석이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성명 미상의 강릉 유씨가 처음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낭도란 섬 전체가 여우를 닮았다고 하여 이리 낭(狼) 자를 써 ‘낭도’라 하였다가 이후 낭도의 모든 산이 수려하다 하여 고을 여(麗) 자와 뫼 산(山) 자를 써서 ‘여산’이라 하였다는 내용이다.
낭도의 중심지인 여산 마을에는 또 다른 포구가 있다.
옆 포구에는 작은 어선 몇 척이 정박해 있는데 물이 빠져 바닥이 드러나 배가 땅 위에 놓여 있다. 3층짜리 대리석으로 된 회색 건물인 낭도 복지관이 있다. 그 앞으로 난 작은 길은 ‘여산6길’이다. 이 길이 낭도산 등산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산행 시간은 왕복 두 시간 정도. 입구에 철탑이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밭이 나온다. 집 몇 채를 벗어나면 바로 섬 언저리를 돌아가는 시멘트 포장길이다. 이 길에서는 낭도 포구의 기다란 방파제와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파출소와 보건 진료소를 지나 농협이 있다. 농협 뒤의 포구는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물이 하나도 없어 배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마을 회관을 비롯하여 노인 회관 그리고 여자 경로당 등의 시설이 있다. 그 뒤로 여수 소방소 출장소가 있고 바닷가 쪽으로 배수 시설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 느티나무가 있다. 정자나무 터로 구전으로는 약 300년 동안 살았다는데 현재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낭도에는 두 개의 교회가 있는데 마을 이름을 그대로 따서 여산 마을의 여산 교회, 규포 마을의 규포 교회라 칭하고 있다.
여산 교회 뒤로 학교가 있는데 안일초등학교 여산분교다. 원래 이 학교는 분교가 아니라 본교였다. 일제 시대인 1939.4.13 낭도공립심상소학교로 시작했다.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2001.3.1 안일초등학교에 통합되어 여산분교로 격하되었다.
북쪽을 바라보니 섬이 몇 개 보인다. 정면으로 보이는 섬이 둔병도이고 오른쪽 섬은 조발도이다. 그리고 왼쪽으로 보이는 섬이 적금도이다.
밭 사이 길을 내려가면 2차선 국도(77번 일반국도)가 나타난다. ‘낭도로’이다. 구불구불한 이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계속 가면 낭도의 두 번째 마을인 규포리가 나온다. 섬의 길 치고는 잘 닦인 국도이다. 원래 이 길은 다리 건설을 염두에 두고 닦아 놓은 도로라고 한다. 적금도와 낭도를 잇는 다리는 원래 사도로 이어지게 되어 있으나 환경 문제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이 주변의 해변은 갯벌이 많고 수심이 얕아 예로부터 꼬막(참꼬막)이 많이 서식한다고 한다.
제법 넓은 공원묘지가 보이는데 십자가가 있다. 그리고 ‘부활 동산’이라는 표시판이 있는 납골당이다. 여산 마을 서북쪽 약 1.5km 지점에 ‘탑고지(塔古地)’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멸치 어장터로 변했다.
‘낭도서길’은 나중에 다리가 생기면 이어지게 될 길이다.
‘여산길’인 시멘트 길을 얼마 동안 걸어 들어가면 바닷가에는 모래밭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맞은편 왼쪽에 학교 건물이 하나 나온다. 1970년 개교한 화양중학교 낭도분교다. 학교 명패에는 여천낭도중학교로 되어 있으나 2001년에 통폐합되어 지금은 화양중학교 낭도분교가 되었다. 이 학교는 섬의 크기만큼이나 운동장도 제법 큰데 운동장이 조용하다.
화양중학교 낭도분교는 한때 학생 한 명에 교직원 네 명이 근무하는 섬 학교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자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오던 학교가 폐교가 될 것을 우려한 마을 사람들의 설득으로 섬 어른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족적인 학교 분위기 때문에 도시로의 전학을 포기하고 남아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학교는 폐교되지 않았고 아직 몇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학교 관사 옆에는 몇 기의 묘가 있고 그 앞에 큰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가족 묘지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1990년에 세워진 것으로 십자가가 새겨져 있고 성경 구절이 적혀 있는 형식을 보니 기독교 집안인 듯싶다.
‘답동(沓洞)’이다. 논이 많은 들에 마을이 있다 하여 답동으로 불러 왔으나 지금은 대부분 큰 마을로 이주하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좌우로 밭과 논이 있고 야산도 보인다. 전형적인 농가. 집이 몇 채 있다.
해수욕장 개발 예정지가 나오고 사도를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사도가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갯바위 위에 세워진 하얀 등대가 있다. 이곳은 중천여가 있어 옛날에 크고 작은 선박이 피해를 많이 당하였는데, 1971년도에 정부 지원으로 등대가 설립되었으니, 그 등대 이름이 ‘남포 등대’이다. 이곳 주변도 낚시터로 유명하다. 주요 어종은 감성돔·볼락·농어 등이며 물때는 낮 낚시는 5~8물, 밤낚시는 조금때가 좋고 릴낚시 및 갯바위가 낚시 포인트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