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나비 없는 꽃밭
유 여 촌
날씨가 웬일일까요. 조금전까지만도 참으로 깨끗하게 맑았는데 갑자가 우중충 해졌읍니다. 민수는 걷기가 힘들었읍니다. 책보가 무거운 탓도 아나었습니다. 책보는 언제나 무거우니 말입니다.
꼬불꼬불한 뒷골목의 담장 밑을 민수는 한참 동안 지나갔읍니다. 자기 집쪽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어쩐지 처음 걷는 길 같기도 했읍니다. 하지만 걷고 있는 동안 그런 생각을 잊어버렸읍니다.
----하늘이 활짝 개었으면 좋겠다.
민수는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렸읍니다.
뒷골목은 조용했읍니다. 지나는 사람이 적은 때문입니다.
민수는 줄곧 하늘만 쳐다보고 걸었읍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평소 눈에 익은 공원이 나타났읍니다. 공원은 5월의 녹음으로 한창입니다. 조금전만도 하늘이 흐렸다고 느낀 것은 짙은 녹음 빛깔에 하
늘이 가려서 짧은 하늘빛 따위 힘도 못 쓰게 된 때문이라는 것을 민수는 비로소 깨달았융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런 줄을 알자 민수의 기분은 한결 누그러졌읍니다. 이제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자꾸 걸어갔읍니다.
담장 둘레를 끼고 구멍가게가 다닥다닥 문을 열고 있읍니다. 마치 솜털을 덮어쓴 복슬 강아지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사랑스런 눈동자를 반짝이는 것 같습니다. 그 강아지들의 눈동자가 그 어느 가게에서 졸면서 가게를 지키고 앉아 있는 아줌마를 지켜보다가 민수를 만나 깜짝 놀라 고개를 갸웃대는 그런 시늉입니다.
차츰 멀뚱멀뚱한 뭉게구름이 하늘 한 끝을 잡고 우거진 숲속에서 제멋대로 을렁이다가 간신히 나무그늘에서 벗어났읍니다. 구름이 벗어나자 여봐라는 듯이 푸른 하늘이 지켜보는 동안 민수의 눈앞까지 흘러내렸읍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물결이 스르르 잦아진 곳에 잘 손질한 풍성한 장미꽃 화단이 폭넓게 주위를 둘러쌌읍니다.
무쇠문이 활짝 열려 있잖아요.
대문 안 그 집 화단이 온통 장미꽃입니다.
----멋진 화단인데!
민수는 대문 앞에서 발길을 멈췄읍니다. 민수의 말소리가 가느다란 혼잣말이지만 그러나 장미 화단은 오래전부터 누군가를 손꼽아 가다리기나 하듯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읍니다.
민수는 곧 수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조용히 장미 화단을 지켜봤읍니다. 풍기는 장미의 향기가 염치없을이만큼 청하늘 깊숙이 골고루 퍼져서 그 주위를 꽃향기 투성이로 만들었읍니다. 민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콧구멍을 실룩실룩했읍니다. 다만 콧구멍이 실룩거렸을 뿐 푸른 하늘에 범벅이 흰 꽃향기가 그렇게 거추장스럽게는 느껴지지 않았읍니다. 조금후 민수는 날랜 걸음으로 대문 안에 들어섰읍니다.
나이 먹은 석류나무 한그루가 꽃밭 곁에 서 있었읍니다. 마치 청하지도 않았는데 할 일 없는 손님이 불쑥 얼굴을 나타낸 그런 투였읍니다.
석류나무의 잎새는 얼핏 봐도 별난 반짝반짝 기진 모습입니다.
민수를 만난 석류나무의 새잎들도 일제히 눈을 떴읍니다.
민수는 조금 현기증을 느꼈읍니다. 하지만 그렇다는 핑계로 뒷걸음을 치거나 볼품없는 비겁한 행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읍니다.
한참 동안 적적한 순간이 지났읍니다.
자셰히 보니 석류나무의 보드라운 잎새의 곳곳에도 주황빛 꽃봉우리가 아름답게 수놓아 있었읍니다. 그 꽃몽우리에도 어느새 벌써 욕심장이 하늘이 빠짐없이 붉은 등불을 켜고 있었읍니다. 몽우리마다 주황빛 불꽃이 아줌마들의 입술연지 크기로 돌돌 말려서 넓은 청하늘 속이지만 그 속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반짝이는 잎새에 속절없이 사로잡혀 있었읍니다.
그 중 한 몽우리는 민수가 찾아오기 전부터 살며시 수줍은 듯 꽃잎을 벌리고 있었읍니다. 꽃잎을 벌린 뜻은 여간 꼼꼼히 생각해보지 않고는 냉큼 알아낼 수 없는 긴한 사연을 푸른 하늘에 보기좋게 수놓아보고 싶다는 표정 그대로입니다.
“------------!?”
그런 줄을 알자 민수는 뭣엔가에 단단히 자신이 사로잡힌 것 같은 착각마저 느끼고 그 자리에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읍니다. 다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소담스레 핀 꽃잎에 다정스런 손길이라도 뻗쳐보고 싶을 뿐입니다.
다음 순간 푸르기만 했던 심술장이 하늘이 온데간데 없이 짧은 장막을 걷어올렸읍니다.
---벌나비 없는 꽃밭.
우중충해진 하늘에서 말이 새나왔읍니다. 사방에 그런 말이 새나을 것만 갈이 느껴진 민수가 놀란 표정이 되자,
“꿀벌님도 뒤뚱이님도 찾아온 지가 옛날이야.”
또록한 장미꽃의 음성입니다.
“뒤뚱이가 뭔데?”
민수가 부산하게 물어봤읍니다.
“그 호박벌인가 하는 친구 말이지.”
“……?”
민수가 어리둥절해져서 새삼 사방을 돌아봤읍니다. 정말이지 어떻게 된 셈인지 꽃향기가 그렇게도 요란했지만 어디를 살펴봐도 벌나비는 물론 날벌레 한마리 날고 있지 않았읍니다. 이거야 예사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민수는 우르르 장미꽃밭 속으로 걸어들어갔읍니다. 민수를 보자 화단의 꽃들도 웅성대기 시작했읍니다.
“어떻게 된 셈이지?”
민수가 다시 입을 열었읍니다.
“날벌레 한 마리 구경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니까.”
“무슨 뜻이지? 자세히 말해봐.”
“세상이 달라졌어.”
“어떻게?”
“아름다움이 사라진 세상이란 뜻이야.”
민수가 점점 알 수 없다는 표정이 되자,
“바보야, 바보!”
온 뜨락의 장미가 웅성대며 꽃수술을 와들와들 흔들었읍니다.
민수는 몹시 난처해졌읍니다. 이럴 바에야 주인 없는 무쇠대문 집 꽃밭에 주착없이 들어선 것이 무척 후회가 되었읍니다. 자기에게는 장미꽃의 그런 질문에 대답할 만한 마음의 준비가 조금도 되어 있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는 장미꽃은 민수가 멍하니 서 있으면 서 있을수록 자기를 바보 취급할 것이 뻔합니다.
--어떻게 한담?
민수는 화단의 깊은 사연을 깨닫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생각을 가다듬어 보기로 했읍니다. 하지만 눈은 감고 있으니 꽃밭은 되레 민수의 그런 행동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때 실바람이 일며 어디선가에서 퀴퀴한 냄새가 풍겨왔읍니다. 민수가 눈을 뜨기 무섭게,
“나비님이다!”
“정말, 정말!”
“나비님!”
“나버님!”
“이쪽으로 오셔요!”
“이리요!”
“이리요!”
민수는 퀴퀴한 안개 속에서 콧구멍을 실룩대며 새삼 사방을 돌아봤읍니다.
노랑나비 한 마리가 어디선지 날라왔읍니다.
푸른 하늘의 책보 속에서 노량나비는 한참 동안 서성대다가 화단쪽을 향해 날개 바람을 움직이고 있읍니다.
하지만 노랑나비는 꽃밭의 생각과는 딴판 같았읍니다. 냉큼 화단에는 앉아주지 않았읍니다.
그럴수록 온 화단은 야단입니다.
“나비님!”
“나비님!”
“이리요!”
“이리요!”
노랑나비는 이곳저곳의 화초 주위를 맴돌며 날았읍니다. 그러나 노량나비의 날개 바람이 어딘지 좀 어색해 보였읍니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피로에 지쳤거나 병든 나비입니다. 그렇게도 꽃밭에서 야단스레 아우성소리가 났지만 그런 것에는 본체 만체 화단 둘레만 자꾸 맴돌았읍니다. 뒤뚱뒤뚱 어색한 솜씨로 날고만 있더니 마침내 화단에는 앉지를 않고 어이없게도 바람에 낙엽이 날리듯 툭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읍니다.
나비가 땅바닥에 떨어지자 아우성을 치듯 화단의 꽃들도 일제히 입을 다물었읍니다.
민수는 병든 나비가 몹시 측은했읍니다. 조용조용 나비가 떨어진 땅바닥을 향해 발길을 옮겼읍니다.
그러나 나비는 성급하게 숨을 거두지는 않았읍니다. 민수가 가까이 가자 힘없는 날개 끝으로 두서너 번 도닥도닥 땅바닥을 두들겼읍니다. 그때서야 햇님이 구름을 헤치고 얼굴을 내밀었융니다. 그리고 햇님도 민수와 함께 아직도 꿈틀대고 있는 나비를 지켜봤읍니다.
민수의 그림자가 차츰 늘어져서 꽃밭 쪽에서부터 민수 그림자가 골고루 깔리자 나비가 힘없는 눈을 떴읍니다.
“나비야?”
하며, 그야말로 아름답고 멋있는 줄무늬를 규칙적으로 수놓은 노량나비의 날개를 지켜보며 민수가 입을 열었읍니다.
“나는 이제 곧 눈을 감을 거야.”
노랑나비가 모기 우는 소리를 냈읍니다.
“힘을 내라.”
노랑나비가 고개를 흔들며,
“농약의 구름바다야, 과수원지대가 말야. 나는 그 구름바다를 지났을 뿐이야,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단지 그런 일 뿐이야.”
“-----그래서?”
“그래서가 뭐야, 아이 무서워!”
“정신을 차려.”
민수의 말소리도 조금 떨렸읍니다.
하지만 노랑나비는 두 번 다시 입을 열지 않았읍니다.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숨을 거두었융니다.
민수는 더욱 멍해지고 말았읍니다. 그곳에만 유난스레 맑게 개인 하늘이 원망스럽게 느껴졌읍니다. 그렇게도 맑은 5월의 녹음 속에서도 맑은 세상이 지고 말았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노릇입니다.
그때 민수의 등 뒷편에 가벼운 발자국소리가 났읍니다.
꿈에서 깨어난 듯 민수는 뒤를 돌아봤읍니다. 솥ii를ll|.
민수의등둥뒤에 낯선 아줌마 한분이 서서 민수를 노려보는 것입니다.
“너 누구야?”
김 민수입니다
“민수라니?”
웬일인지 아줌마의 표정이 민수를 냉큼 용서해주지 않을 것 같읍니다. 말문이 막힌 민수가 어물어물하는데,
“너 꽃 홈치러 왔지?”
합니다.
민수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처음부터 꽃을 훔쳐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럼 어째서 남의 집에 들어왔니?”
“꽃이 아름다와서요. 또 그리고.”
“또 그리고 뭐야?”
아줌마가 소리를 빽 질랬읍니다.
민수는 알맞은 대답이 없나 하고 생각을 쫓으며 고개를 들었읍니다. 조금전 숨진 노랑나비의 날개에 어느새 저녁 햇빛이 유난스레 곱게 깔려 있었읍니다.
빛이 어쨌든 주인 없는 집에 들어왔으니 자기 행동이 분별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민수는 고개를 들었읍니다. 이렇게 아줌마에게 사과하는 민수를 비웃기나 하듯 주위의 하늘이 다시 우중충해졌읍니다.
---이제는 집으로 가야지.
민수가 힘없이 발길을 돌리는데,
“민수야!”
하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났읍니다. 뜻밖에도 학교의 같은 반 동무인 윤희가 툭 튀어나섰읍니다. 민수는 몹시 어색했던 순간에 윤회가 구세주 같았읍니다.
“윤회야!”
민수는 밝은 얼굴이 되어 윤희 앞으로 뛰어갔읍니다.
“웬일이지, 민수야?”
“지나다가 그만.”
“그래서 어떻게 됐어 ?”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래서 ?”
“꽃이 너무나 아륨답기에·”
“걱정 마, 여기는 우리집이야.”
“ ----그래?”
“민수는 좋은 아이예요 엄마.”
하고, 윤회가 자기 어머니께 민수 설명을 해드렸지만 어머니는 아무말씀도 하시지 않았읍니다. 조금 후 윤희와 민수를 그곳에 남겨놓고 윤회 어머니는 안으로 들어가셨읍니다.
“민수야!”
어머니가 들어가시고 곧 윤희가 말을 이었읍니다. 민수도 차츰 가슴속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읍니다. 그래서,
“왜 그러지?”
하고, 밝은 표정을 얼굴에 지었읍니다.
“여기서 오래 서성거렸어 ?”
“아니.”
“그럼, 내 이름이나 크게 불러볼 거지.”
민수는 대답대신 피식 웃고는,
“그런데 말야.”
했읍니다.
“---?”
“저기 나비가 숨져 있단다.”
“나비가?”
“그럼.”
윤희는 민수가 손가락질하는 곳으로 얼굴을 돌렸읍니다.
그때까지 아직도 저녁 해가 숨진 나비의 날개를 골고루 따스한 빛을 보내고
있었읍니다.
“참!”
“농약구름을 덮어쓴 거야.”
“------------?”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 농약구름이 이 꽃밭에까지 번져 있었다니까.”
민수의 설명을 듣고 윤회의 눈동자가 새삼 동그랗게 되었읍니다.
민수는 이제는 윤희와 더 할 말이 없었읍니다. 어려운 순간에 윤희가 내달아서 무척 고마왔지만 그러나 벌나비 없는 화단의 사연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가슴에 꽉 찼읍니다.
윤희와 헤어진 민수는 복슬강아지들이 조롱조롱 눈길을 모은 듯한 길다란 뒷골목에 옹기종기 늘어선 구멍가게 앞을 혼자서 돌아오며 새삼 생각에 잠겼읍니다.
그것은 다음날 학교에 나가서 동무들에게 벌나비 없는 꽃밭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냉큼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읍니다. 윤희가 곁에서 도와준다지만 꿀벌이나 노량나비는 물론 곤충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던 아름다운 대자연의 생명이나 숨소리는 물론, 그런 이야기를 생각이 부족한 사람들의 잘못으로 옛날의 전젤 속에서만 찾아내서는 안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