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7.7.....문경 장수황씨 종택의 종손이며 문경문화원 부원장님이신 황규욱선생님을 만난 것이 산양버스정류장이다.갑자기 만나게 되었고...종택을 방문하고자 했는데...갑자기 석문구곡을 안내 받았다..우리나라에서 유교의 영향으로 선비들의 구곡문화가 많이 발달했는데....◑중국 남송시대 주자가 학문을 완성한 곳인 무이구곡을 노래 했는데....우리 선비들도 구곡원림을 찾아 다니고 시회를 열고...경영하고..아름다움을 후세에 전한 것이다.
얼마전 영주 순흥의 죽계구곡을 다녀온바가 있다◑구곡문화는 문경이 제일 많이 발달해있고 한국의 구곡원림중 9개가 문경에 있고..구곡원림보존회가 한국에서 최초로 결성된곳도 문경이다.
문경의 구곡원림중 그 중에서 '석문구곡'을 안내를 받았다.그리고 근암서원과 주암정을 덤으로 안내받고.. 그중에 문경출신 채문식 전 국회의장이 출생한 마을(문경시 산양면 현리)을 지나친다..여기가 채문식의장이 출생한 곳이다.
경채정 1935 세움
주암정 입구에 능소화가 피어있다....
문경 가볼만한곳◑주암정.
위사진에 주암정에서 일어나서 나오시는 분이 채훈식선생님이시다.근처에 사시며 정자를 관리하고 계신다.
채헌선생이 구곡을 경영할때는 금천가에 있엇지만...세월이 물길을 돌렸고 현재는 연못으로 변했다.
조선 정조 때의 문신․학자. 자는 계징(季澄), 호는 근품재(近品齋).
영조 29년(1753)에 생원이 되었으나 벼슬하지 않고 처사로 지냈으며, 74세 때(1788) 석문정(石門亭)을 짓고 거기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석문정 건립을 계기로 석문정 관련 시문을 다양한 양식으로 지었는데, 일반적인 은일가사 유형의 <석문정가 石門亭歌>, 어부가계 가사인 <석문정구곡도가 石門亭九曲櫂歌>, 시조 <석문가 石門歌> 2수, 한시 <석문정구곡차무이도가운 石門亭九曲次武夷櫂歌韻> 등이 그것이다. 이 작품들은 ≪석문정심진동유록 石門亭尋眞同遊錄≫으로 묶여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채헌 [蔡瀗] (네이버고전문학사전, 2004.2.25)
배모양의 이물위에 주암(舟巖) 채익하(蔡翊夏; 1573-1615)의 학덕을 기려 후손들이 세웠다는 주암정((舟巖亭)이 고즈넉이 서있다.허리가 안좋으신 채훈식선생게서 몇십년을 정자를 쓸고 닦고 관리를 하신 것이다.
주암 채익하는 임진왜란때 안동의병장을 하신 유명한 근시재(近始齊) 김해(金垓,광산김씨)선생의 4남인 김광악의 둘째딸에게 장가들은 분이다.그러니까 김해선생의 손서(孫壻)가 되신다.주암 채익하를 검색하니 정부인 안동장씨의 아들인 갈암 이현일이 쓴 근시재 김해선생의 묘지명이 보인다..주암 채익하선생의 처고모부가 유명한 석계 이시명 선생(석계 이시명의 후처가 정부인 장씨)이고 그 아들이 바로 영의정으로 추증되신 갈암 이현일 선생이다.갈암 이현일과 주암 채익하선생의 부인과는 내외종4촌간이란 뜻인데...주암 채익하 선생이 그만큼 대단한 가문이고 대단한 양반이고 대단한 선비라는 뜻이다...
내가 알기로 안동의 광산김씨는 영남에서 특이하게 노론을 한 가문인데...사위가 석계 이시명이고....외손자인 갈암 이현일은 남인의 영수가 된다...갈암 이현일은 송시열선생과 많은 논쟁을 하게 되는 분이다.
대다수 영남의 남인선비들은 출세에 지장을 받고 과거시험도 통과 못하고....과거에 합격해도 정승이나오질 못했다...약 200년간....소설가 이문열선생의 14대조가 유명한 정부인장씨의 남편인 석계이시명선생이고 아들이 영의정에 추증된 갈암이현일인데....갈암의 조카항렬(족친)이 30여명되지만 한사람도 문과급제를 못 했다.그러나 서인인 율곡 이이선생께 배운 약봉 서성선생이 80세생신때 족친들중 과거급제자가 13명이었고...현직에 9명이나 있엇다...200년간 산림에 은거하며 벼슬을 못한,또는 안한 선비들(영남 남인들)이 제사때 바로 조상님들을 '처사(處士)**부군신위'하며 지문을 쓰고 위패를 모시는데 바로 이런 이유다...처사란 산림(향리)에 은거한 사람을 일컫는다...퇴계이황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남명조식선생은 묘비명에 '처사라고 써달라'고 했다한다...
약봉 서성과 소호헌편액(보물 지정)자료는 요기참고.
http://blog.naver.com/gaetuel/20194754861
주암앞에 연못에 핀 연꽃....연꽃이 만개할때 다시 한번 찾아야 겠다....예천 용궁 산택연꽃공원과 함께찾아 보리라....주말은 사람이 많으니...목요일쯤 가야겟다...
주암정은 옛 정자 그대로는 아니다....옛정자가 낡아서 훼손되자 후손이 새로 중수를 하였는데...그만 양철지붕을 썼다...물론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기에..그래서 문화재적 가치는 떨어진다고 하나....내가보니...경승(景勝)에 속한다고 본다....이러한 명승이 ...가슴이 탁 트인다.
주암정기-주암정에 올라 후손이신 채훈식선생님께 예의에 따라 인사를 드리고....기문(記文)을 잠시 보았다.
경상북도 문경시(聞慶市) 산북면(山北面) 서중리(書中里) 44-4번지에 있는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종(顯宗) 때의 생원인 주암 채익하(舟巖 蔡翊夏)가 세웠다. 마을의 동남쪽을 흐르는 강변에 배의 형상을 한 바위 위에 짓고 이름을 주암(舟巖)이라 하였다. 채익하(1633~1676)는 인천채씨(仁川蔡氏)이며 조선 전기의 문신인 나재 채수(懶齋 蔡壽)의 6세손이다. 주암의 9대손이 쓴 주암정기(舟巖亭記)가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주암정 [舟巖亭] (두산백과)
주암정기문은 아래에 한글로 풀이를 해놨습니다...한번 읽어보고 가시면....사진한장을 찍어도 좋은 구도가 나오겠지요...
주암정 중수기를 아래에 올려놧으니....한번 보세요....
정자나 누대는 기문이 없으면 격이 떨어진다.조선시대 성리학을 국가경영이념으로 삼던 사회.선비문화에서는 더욱 그렇다...그래서 후손들이 조상의 문집을 10대후손이라도 낼려고 노력하고...스승의 학덕을 그래서 기린다...그런 문화가 충효와 인성을 길렀고...바로 그런 문화가 양반제도와 선비문화를 길렀다.문중문화와 종택문화도 그렇게 보존되엇다.
인터넷에 ,안동 소호헌 편액을 누가 썼는지를 내가 최초로 밝혀 놓았고....주암정 기문을 아마도 내가 최초로 공개한 것 같다...
보물로 지정되었고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소개된, 유명한 안동 소호헌을 방문한 사람은 수만명이지만 아무도 편액을 쓴 사람을 안밝혀놓앗고...안동 문화원도 모르고 있었는데....내가 최초로 밝혔다....하하...그래서 그것은 참 기분이 좋다...
그런데 역사는 ..답사는...왜곡하거나..편향되면 안된다...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그런데...유홍준교수는 불국사종을 왜곡해서 책(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실은 것 같다....출판사에 전화해서 저자에게 보여주라고 했는데...1년 가까이 지났건만 아직 무대응이다.그것도 내가 최초로 밝힌 사람이다.(네이버에서 '불국사 종' 검색=개털기사 블로그)
http://blog.naver.com/gaetuel/20195309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