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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코스모 3>, 2007-이네 실바 |
Spécial·차베스 없는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는 오랫동안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과 구별되는 면모를 보였다. 쿠바혁명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 미국 백악관의 한 자문관은 라틴아메리카 해방운동의 주역 시몬 볼리바르의 고향인 베네수엘라를 ‘민주주의의 모델’이라며 치켜세웠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뒤 ‘베네수엘라적 예외’가 또다시 희망을 싹트게 했지만 미국의 태도는 과거와 달라졌다. 서민계층 군인 출신인 우고 차베스(15면)의 1998년 대통령 당선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얼굴을 뒤바꾸어놓은 많은 선거 승리의 시발탄이 됐다. 그때까지 주류를 이루던 신자유주의를 철폐하려는 그의 시도(1, 14면)는 언론의 미움(아래 기사)과 엘리트층의 분노(12면)를 샀다. 그런 차베스가 지난 3월 5일 세상을 떠났다. 4월 14일 열릴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의 정당이 승리를 거두기만 하면 그의 ‘혁명’도 영구히 지속될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지난 3월 5일 사망하자 이튿날 <뉴욕타임스>는 '베네수엘라의 악당 차베스 사망'이라는 제목으로 1면에 보도했고, <타임스>는 '선동가의 죽음'이라는 헤드라인을 붙였다. <NBC방송>은 당일 저녁 뉴스에서 "그의 이름 앞에 붙던 '철권통치자'(Strongman)라는 표현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언급했다. 3월 6일 아침 <ABC 월드뉴스>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자국 대통령의 압제에서 벗어난 첫날의 해가 밝았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차베스의 '병적 반유대주의'를 맹렬히 비난했다(<르푸앵>, 3월 13일). 201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차베스가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카우디요(Caudillo·포퓰리즘을 발판으로 정권을 획득한 군사독재자) 전통을 잇는다며, 카우디요를 "손은 피로 물들고 주변인들의 굴종과 아첨의 결과 허영심에 충만한 짜증 나는 광대들"이라고 표현했다(<엘파이스>, 3월 10일).
차베스가 세상을 떠난 날 저녁, <ABC 월드뉴스> 보도국은 근거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많은 미국인들이 차베스를 독재자로 여긴다"고 강조할 필요성을 느낀 듯하다. 대표적인 반(反)차베스 논객인 마이클 시프터는 미국 공영 라디오 <NPR>에서 부고 소식을 언급하며 "따져보면 그는 진정한 전제자이자 독재군주였다"고 말했으니 어떤 분위기인지 감잡았을 것이다.
서구가 만들어 놓은 허상들
차베스에 대한 가장 큰 원망은, 베네수엘라가 석유로 벌어들인 돈을 그가 민간부문에 투자하는 대신 교육·의료·식량 지원 프로그램 등에 낭비했다는 것이다. <AP통신>은 유언비어 수준의 기사에서 "베네수엘라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가져다준 이점은 석유 갑부들이 중동의 화려한 도시에서 추진한 부동산개발계획에 비하면 보잘것없다"며 그 좋은 개발 사례로 "두바이에 들어선 초고층 빌딩들과, 아부다비에 제2의 루브르박물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을 건설하는 계획"을 언급했다(3월 5일). 한마디로, 빌딩을 지으면 좋을 돈을 왜 국민을 먹이는 데 사용하느냐는 이야기다.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언론계의 상투적 수사법을 총동원한 논설에서 차베스는 "전형적인 석유독재자"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선동가"일 뿐만 아니라 "우스꽝스러움과 도벽을 결합"해 보였고, 이는 그의 후계자들 덕분에 "사후에도 면면히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 신문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빈곤 퇴치 부문에서 거둔 성과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정부의 포퓰리즘과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국민, 특히 빈곤층의 생활이 악화됐을 뿐"(3월 6일)이라는, 미국 언론의 유일한 진단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차베스 사망 수개월 전, 공영방송 <프랑스2>의 뉴스 진행자 다비드 푸자다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80%가 빈곤한계선 이하의 생활을 한다"고 말했다(2012년 10월 3일). 결국 이는 오보로 밝혀졌고 <프랑스2>는 일주일 뒤 사과방송을 하는 난처한 상황을 겪었다. "차베스 집권기에 불평등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기사(2012년 10월 5일)를 내고도 아무런 제스처도 없던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보다는 그나마 낫지만 말이다. 유엔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경제위원회(CEPAL)에 따르면, 2010년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은 30% 미만이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14년 동안 남미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적은 국가로 자리잡았다.
<뉴욕타임스>는 "차베스가 국민에게 참담할 정도로 분열된 국가를 남겼다"며 이는 "차베스가 끊임없이 사회의 분열된 간극을 넓혀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3월 5일). 저널리즘에서 '분열'이라는 용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부의 재분배 시도를 지칭하는 데만 사용될 뿐, 정작 경제권력 주체들이 벌이는 계층 간 전쟁에는 쓰이지 않고 있다.
사실 차베스는 한 번도 미국 언론의 호감을 산 적이 없다. 그가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뉴욕타임스>의 라틴아메리카 전문기자 래리 로터는 이렇게 경고했다. "12월 6일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우고 차베스가 당선되면서 라틴아메리카 엘리트 지도층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는 바로 대중에 영합하는 독재자요 선동가인 '카우디요'다."(1998년 12월 20일)
남아메리카의 '엘리트 지도층'이 독재에 반대한다는 환상은 차치하고도, 영미권 언론은 늘 차베스를 말썽이나 피우고 경제를 망치고 선거를 조작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광대 정도로 치부했다. "차베스는 근본적으로 반민주적 폭군과 다름없다"(<데일리 비스트>, 3월 7일)는 사실은 이들에게는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세계 최고'라고 극찬한 선거 절차를 통해 차베스가 정정당당하게 반대파를 이겼음에도 베네수엘라의 "독재적 파행"을 경고(2010년 9월 23일)하면서 이탈리아에 마리오 몬티 총리 집권을 두고는 "의원 당선 경력이 없는 '기술관료'로만 구성된 정부의 출범"을 환영하기도 했다(2012년 1월 21일).
물론 베네수엘라 정부도 여느 정부와 마찬가지로 많은 측면에서 비판할 점이 있다. 미디어 감시그룹 페어(FAIR)는 야권 언론이 제 역할을 완벽히 해내고 있기는 하지만 베네수엘라에서 언론 탄압 시도가 있다며 여러 차례 우려를 표명했다. 재판 없이 3년간 징역살이를 한 수감자를 풀어줬다는 이유로 구속된 마리아 루데스 아피우니 판사의 경우를 보면 베네수엘라 정부가 독재적 성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따질 건 따지는 게 옳다. 하지만 문제는 서구 언론들이 베네수엘라에 들이대는 기준을 다른 나라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9년 페어는 미국 언론의 논설들이 인권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를 보면 미국 언론이 볼리바르 혁명에는 기계적으로 부정적 시각을 보이면서 동시에 콜롬비아 정권에는 호의를 표함을 알 수 있다.(1) 우고 차베스가 이끄는 베네수엘라가 아쉬운 점이 많기는 하지만 적어도 기자, 노조원,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콜롬비아처럼 납치·살해·고문을 당할 위협 속에 살아가지는 않는다. 다만 콜롬비아는 미국의 우방국이고, 미국 언론은 백악관의 입장에 자신의 시각을 맞추려다보니 국외 뉴스를 균형감 있게 다루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학자 그렉 그랜딘은 진보성향 주간지 <네이션>에서 베네수엘라에 수용된 정치범은 모두 11명이며 이 중 상당수가 2002년 실패한 쿠데타 주도자들이라고 밝혔다.(2) 물론 11명이 아닌 0명이어야 옳다. 하지만 차베스 집권기에 정치적 탄압과 공권력 남용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전문지 <라틴아메리칸 퍼스펙티브스>가 2005년 발표한 한 보고서는 "반대 의견을 피력할 권리가 베네수엘라에서 점차 신장돼 제도화되고 있다"고 밝혔다.(3)
왜 그토록 왜곡했는가?
서구 언론의 갖은 선전이 노리는 목표 중 하나는 베네수엘라가 경제적 파국을 맞이했다고 믿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다. 언론인들이 스스로 이용한 지표들만 봐도 베네수엘라 경제는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으니 말이다.
높은 물가상승률(2012년 20.1%), 인프라 부족, 저개발 상태의 석유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 등으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고통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03년 석유업계에서 차베스 정권에 반대하는 파업을 주도한 이후 베네수엘라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4.3%에 달했고, 빈곤층은 50%가량 낮아졌으며, 특히 절대빈곤층은 70%나 감소했다.
2012년 경제성장률은 5.8%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차베스 집권 전의 절반 수준인 6.4%로 떨어졌다. 이는 유로존에서도 부러워할 만한 성적이다. 이 모든 성과는 교육, 의료, 영양실조 퇴치를 위해 실시한 막대한 투자 덕분이다. 차베스가 대통령이 된 이후 영아사망률은 30% 줄었고, 2005년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문맹에서 해방된 지역'에 베네수엘라를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워싱턴포스트>는 "차베스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경제 침체를 초래했다"며 헐뜯었고 볼리바르 혁명이 "한때 융성했던 국가를 망쳐놓았다"고 비난했다(2013년 1월 5일).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는 베네수엘라의 민생고를 취재한 기사를 내보냈다. 기자는 "차베스가 야심찬 성격, 공적 재산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성향, 사회주의 혁명이 삶을 개선해줄 것이라고 국민에게 믿게 하는 수완에 힘입어 상당수의 이들이 자신의 뜻에 동조하도록 만들었다"고 보았다(2012년 12월 13일). 기자는 마치 자신들의 생활수준이 어떻게 나아졌는지 모르는 어리석은 국민의 코를 잡아 끌어와 이를 알려줘야겠다는 의무감이라도 느낀 모양이다.
한 달 뒤에는 <ABC 뉴스> 인터넷 사이트에 베네수엘라를 최악의 상황으로 묘사한 한 기사가 실렸다. 스페인어 채널 <유니비지온>의 경제보도 책임자 스티븐 케펠의 작품인 기사 제목은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경제를 망친 5가지 방법'이었다(2013년 1월 17일).
왜 이렇게 집요하게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를 암담한 독재체제로 왜곡하려는 것일까? 서구 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집착 때문일까? 만일 그렇다면 <뉴욕타임스>를 위시한 미국 언론이 2002년 쿠데타에 열렬히 환호(모리스 르무안 기사 참조)하지 않았을 것이며, 부정부패로 물든 자국의 선거제도를 오히려 더 걱정했을 것이다. 아니면 인권에 대한 지대한 관심 때문일까? 그렇다면 서구 기자들은 차베스가 집권한 14년 가운데 상당 시간을 차라리 미국의 여러 우방국을 비롯해 베네수엘라보다 훨씬 참담한 인권 실태를 자랑하는 국가들을 비난하는 데 할애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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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스티브 렌달 Steve Rendall 시민운동가. 미국의 미디어 감시그룹 '페어'(FAIR·Fairness&Accuracy In Reporting, 언론의 공정성·정확성) 회원.
번역 / 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 2>(공역·2010) 등이 있다.
(1) ‘FAIR Study: Human Rights Coverage Serving Washington’s Needs’, <Extra!>, 뉴욕, 2009년 2월.
(2) ‘On the legacy of Hugo Chavez’, <The Nation>, 뉴욕, 2013년 3월 5일.
(3) ‘Popular protest in Venezuela: novelties and continuities’, <Latin American Perspectives> vol.32, n°2, 사우전드 옥스, 2005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