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Chapter 1 팡틴
주교 미리엘
1815년, 프랑스 남부에 있는 도시 디뉴에 샤를 프랑수아 비앵브뉘 미리엘이라는 주교가 살고 있었다. 그는 75세의 노인으로 1806년 이후 줄곧 그곳 주교로 재직해 왔다.
미리엘 주교는 디뉴에 올 때 누이동생 바티스틴과 마글루아르란 하녀를 함께 데리고 왔다. 노처녀인 바티스틴은 오빠인 주교보다 나이가 10살 아래였다. 그녀는 키가 크고 안색이 창백하며 말랐으나 온순한 여자였다. 이 여자는 한번도 아름다워지기 위해 얼굴이나 몸을 치장해 본적이 없었다.
종교 생활의 연속에 불과했던 그녀의 일생은 이 여자에게 순결과 명랑함을 가져다주었고, 나이가 듦에 따라 이른바 선량한 아름다움이란 것을 갖게 하였다. 젊어서부터 말랐던 그녀의 육체는 나이가 들면서는 투명한 느낌마저 들었고 이 투명성은 천사를 연상케 했다. 처녀라기보다는 오히려 영혼이었다. 그녀는 마치 그림자로 만들어져 있는 듯 겨우 성(性)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육체와 빛을 지닌 물질 같았다. 큰 눈은 언제나 내리뜨고 있어서 영혼이 지상에 머무르기 위한 구실과 같은 모습이었다.
마글루아르는 살이 희고 체구가 작으며 지방질이 많은 뚱뚱한 노파로 언제나 성급하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것은 잠시도 가만히 있을 새없이 항상 몸을 움직이는 바지런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천식도 그 원인의 하나였다.
미리엘은 제법 성대한 의식을 받아 가며 부임했다. 그 의식은 주교의 지위가 준장에 버금간다고 규정한 칙령에 따른 것이었다. 주교관에서 그는 먼저 시장과 재판소장의 방문을 받았고 이어서 장군과 지사도 방문했다. 취임식이 끝나자 디뉴시는 새 주교의 활약을 주목했다.
디뉴의 주교관은 자선병원과 이웃해 있었다. 주교관은 18세기 초에 앙리 퓌제 예하가 지은 넓고 훌륭한 석조 건물인데 비해, 병원은 작은 뜰이 있는 나직하고 비좁은 2층 건물이었다.
미리엘 주교는 부임 후 사흘재 되던 날 병원을 시찰했다. 시찰이 끝나자 주교는 원장에게 자기 집에 와 달라고 부탁했다.
“원장님, 환자는 지금 몇 명이나 있습니까?”
“26명입니다.”
“내 계산이 맞는군요.”
주교가 말하는 데 원장이 말을 받았다.
“침대가 너무 빽빽이 놓여 있죠.”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병실이 너무 비좁고 공기도 소통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더군요.”
“그리고 햇빛이 들 때 회복기에 있는 환자에게는 뜰이 너무 좁고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어요.”
“금년에는 티푸스, 2년 전에는 장티푸스가 유행했습니다. 전염병이 돌 때는 환자가 10명이나 생겨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할 수 없는 일이죠.”
원장이 반복해서 말했다.
“체념할밖에요.”
이 대화는 주교관 2층에 있는 복도식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주교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갑자기 원장 쪽으로 몸을 돌리며 물었다.
“원장님. 이 방이라면 침대가 몇 개나 놓일까요?”
“주교님, 식당 말씀입니까?”
원장은 깜짝 놀라 말했다. 주교는 실내를 둘러보며 눈대중으로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스무 개는 놓이겠군.”
주교는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하고는 목청을 높였다.
“원장님, 말슴드릴 게 있는데요. 이건 분명히 잘못되었습니다. 환자들은 대여섯 개밖에 안 되는 작은 방에 26명이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 식구가 60명이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이 아니고 무엇이냔 말씀입니다. 병원으로 우리 집을 사용하세요. 우리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내게 당신 병원을 비워 주세요. 여기가 이제부터 환자들의 집입니다.
이튿날 26명의 환자들은 주교관으로 옮겨 오고 주교는 병원으로 옮겨 갔다.
바티스틴도 이 결정에 절대 복종했다. 이 성스러운 처녀에게 있어서 디뉴의 주교는 오빠인 동시에 신부님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친구이며 종교적으로는 윗사람이었다. 이 여자는 그를 사랑했고 또 순수하게 존경했다.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나 복종했고 그가 행동할 때는 협력했다. 다만 하녀인 마글루아르만이 약간의 불평을 털어놓았다.
주교들은 명령서나 교서 첫머리에 자기 세례명을 쓰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이 지방의 가난한 사람들은 일종의 본능적 애정으로 주교의 성명 가운데서 자기들에게 뜻있는 것말 골라 비앵브뉘(bienvenu, 환영의 뜻)예하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불리는 것을 주교도 좋아했다.
“나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소. 비앵브뉘라 부르게 되면 예하라는 호칭이 없어질 테니까.”
주교는 말했다. 프로방스 출신인 그는 남부 지방의 사투리를 쉽게 익혔다. 예컨대 랑그도크 말로 “별일 없었어요?”라거나 알프스 지방 사투리로 “어디 갑니까?” 또는 도피네 사투리로 “맛있는 양고기랑 기름기 있는 치즈를 갖고 왔구면?”하는 말을 잘했다. 이런 말이 민중의 마음에 들어 어떤 사람과도 친근해지는 힘이 되었다. 그는 오두막집에 가건 산속에 가건 자기 집처럼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그는 아주 중요한 일도 평범한 용어로 표현하는 재간을 지녔다. 어떤 사투리로든 말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 다른 이의 영혼 깊숙이 파고들 수도 있었다.
그는 기도와 예배를 보고 남는 시간을 가난한 자와 병자 그리고 고민을 가진 사람에게 바쳤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이 있으면 노동으로 충당했다. 정원의 땅을 파기도 하고 독서를 하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일에 대하여 그는 똑같은 말로밖에는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가리켜 뜰을 가꾸는 일이라 말했다. 주교는 인간의 정신도 ‘뜰’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오에는 점심을 먹었다. 그의 점심도 조반과 같이 간소한 것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2시쯤 외출하여 들이나 시내를 돌아다녔고 자주 오막살이집에 들렀다. 혼자 걸을 때면 흔히 눈을 내리뜨고 사색에 잠겼다. 긴 지팡이를 짚고 솜을 넣은 자줏빛 외투를 입었으며, 보랏빛 양말에 큼직한 신을 신고 있었다. 머리에는 세 귀퉁이에 금빛 술을 단 납작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디뉴 지방에서는 환자나 죽어 가는 사람이 생겨도 미리엘 주교를 부르러 갈 필요가 없었다. 언제나 주교 쪽에서 먼저 알고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미리엘 주교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편이나 자식을 잃은 어머니 곁에 가면 몇 시간이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침묵을 지켜야 할 때와 말을 해야 할 때를 잘 가릴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가 나타나는 곳에는 언제나 즐거움이 있었다.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훈훈함을 느꼈다. 주교를 보면 마치 햇빛을 찾아 나서듯 노인이나 어린이들이 문밖으로 나왔다. 그는 축복을 내렸고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누구나 주교의 집을 찾았다.
그는 여기저기서 걸음을 멈추고 소년 소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어머니들에게는 웃음을 선사했다. 돈만 있으면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고, 돈이 떨어지면 부자를 방문했다.
그는 오랫동안 같은 수단(성직자가 입는 평상복)만 입고 있었는데, 이것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고 외출할 때에는 언제나 자줏빛 외투를 입었다. 그래서 여름철인 경우에는 몹시 거북했다.
저녁에는 8시 반에 누이동생과 함께 식사를 했고, 마글루아르는 그들 뒤에 서서 시중을 들었다. 이처럼 간소한 식사는 다시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른 신부와 식사를 하게 될 때면 마글루아르는 호수에서 잡은 고급 생선이나 산에서 잡은 맛 좋은 짐승의 고기를 대접하였다. 신부란 신부는 모두 이 성찬의 구실이 되었다. 주교는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그의 평소 식사는 데친 야채와 기름이 뜬 수프 정도였다.
주교는 저녁 식사가 끝나면 바티스틴과 마글루아르를 상대로 30분가량 잡담을 한다. 그러고는 거실에 들어가 원고지나 책의 여백에 글을 쓴다. 그는 문장력도 있고 어느 정도는 학자이기도 했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가 살고 있는 집은 2층으로 되어 있었다. 아래층에는 방이 셋, 위층에도 셋 그리고 다락방이 있었다. 집 뒤에는 100평 가량 되는 뜰이 있었다. 두 여자는 2층을 차지하고 주교는 아래층을 썼다. 한길 쪽으로 난 첫 번째 방은 식당, 두 번째 방은 침실, 세 번째 방은 기도실이었다. 기도실에서 나오려면 침실과 식당을 자야만 하며, 기도실 안쪽에는 숙박객을 위한 침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주교는 이 침대를 교구의 용무나 그 밖의 일로 디뉴에 찾아오는 신부들에게 기꺼이 제공했다.
안채에서 정원으로 달아내어 지은 조그마한 건물은 원래 병원의 약국이었던 곳으로 지금은 부엌 겸 창고로 바뀌어 있었다. 이 밖에 조리실이었던 외양간이 있는데, 주교는 여기서 암소 두 마리를 길렀다. 거기서 나오는 우유는 양이 아무리 적을 때라도 반드시 아침마다 그 절반을 병원에 있는 환자들에게 보냈다. 그러면서 주교는 말하였다.
“나는 세금을 내고 있네.”
아래층 방도 2층과 마찬가지로 모두 예외 없이 석회로 희게 칠해져 있었는데 이것은 병영이나 병원의 방식과 같았다. 훨씬 뒤에 마글루아르는 바티스틴의 방에서 하얗게 칠 한 벽에 그림이 걸려 있음을 발견했다. 이 집은 병원이 되기 전에는 공회당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벽에 이러한 장식화가 있었다.
방마다 바닥에는 붉은 벽돌이 껄려 있어서 매주 이것을 물로 닦았다. 침대 앞에는 짚으로 만든 자리가 깔려 있었다. 이 집은 두 여자가 돌보고 있었으므로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다. 이것만이 주교가 허락한 단 하나의 사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이 아니니까.”
미리엘 주교는 모든 불행한 사람들의 아버지였다. 많은 돈이 미리엘 주교의 손을 거쳐 가난한 사람에게로 보내졌다. 그뿐 아니라 자기의 재산까지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버렸다.
이제 주교의 집에 남아 있는 것 가운데 값비싼 것이라고는 은으로 만든 포크, 숟가락, 접시 여섯 개씩 뿐이었다. 마글루아르는 그것이 무명으로 된 허름한 흰 테이블보 위에서 번쩍거리는 것을 매일같이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은식기 외에도 왕고모가 유산으로 물려준 은촛대가 두 개 있었다. 이 촛대에 두 개의 양초를 꽂아 평소 주교의 벽난로 위에 놓았다. 그러다가 누군가를 식사에 초대하기라도 하면 마글루아르가 촛불을 켜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주교의 방 침대 머리에는 작은 벽장이 있었다. 마글루아르는 저녁마다 거기에 여섯 벌의 은식기와 커다란 숟가락을 잘 닦아 보관했다. 벽장 열쇠를 언제나 거기 걸어 두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집에는 열쇠로 잠그게 되어 있는 문이 하나도 없었다. 곧바로 성당 앞의 광장과 통하게 되어 있는 식당 문에는 원래 감옥의 문처럼 자물쇠와 빗장이 붙어 있었다. 주교는 이 같은 철물들을 모두 없애 버렸다. 그러므로 이 문은 낮이나 밤이나 걸쇠만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누구든지 지나가다가 그 문을 밀기만 하면 들어올 수가 있었고, 주교의 따뜻한 대접을 받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에 두 여자는 잠가 두지 않는 이 문 때문에 무척 걱정했다. 주교는 이들에게 말했다.
“정 그렇다면 너희 방에는 빗장을 걸려무나.”
결국은 그들도 주교처럼 안심하게 되었다. 아니, 안심하는 체했다. 그러나 마글루아르만은 가끔 무서워지는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