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05년 11월 5일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의 편의점 앞 노상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다. 사건 발생 초기였던 2005년 당시에는 주로 선학동 먹자골목 살인사건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는 사건 발생 장소가 술집과 식당 등이 많은 골목가로 일명 먹자골목이었기 때문이다. "인천 보복 살인사건"은 2007년 특명 공개수배 방영 당시의 제목으로, 방영 당시 마지막 24시간이라는 부제로 방영되었다.
사건의 피고인만 8명이라 굉장히 사건 관계가 복잡한 사건이다.
2. 사건 경위[편집]2.1. 사건 발생 전의 상황
2005년 11월 5일 새벽, 당시 무직이던 김모(당시 29세)씨는 그 전날인 4일 밤부터 친구 B씨와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러 놀았다. 하지만 김씨는 노래방 도우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노래방 직원에게 노래방 도우미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한다.
이 과정에서 김씨 등은 노래방 도우미를 공급하는 일명 '보도방'을 운영하던 김○균(당시 31세)[1]과 시비가 붙었고, 근처 오락실 앞길에 나와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때 근처를 지나던 중에 우연히 싸움을 목격한 김○균의 후배 최○영이 싸움에 끼어들고, 이어서 김○균의 또다른 후배 C씨까지 끼어들어 2 대 3으로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김씨는 싸움에서 밀리자[2] 근처 횟집에서 가져온 회칼로 김○균을 위협하며 "죽여버린다!"라고 소리쳤다.
싸움이 끝난 후 김○균은 화가 극에 달해 인천광역시 내의 어떤 거리를 배회하다가 새벽 5시 30분경, 때마침 배회하던 거리에서 평소 친분이 있는 고향 후배 박병섭(당시 32세)[3]을 만났다.[4] 이때 그 거리에 서 있던 박병섭은 김○균을 보자 반갑게 맞은 후 둘이서 이야기를 나눴고, 대화 도중 싸우다가 싸움 상대[5]에게 일방적으로 폭행당했다는 김○균의 말[6]에 깜짝 놀란 박병섭은 "사람을 좀 모아달라"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후 박병섭은 자신이 김○균과 거리에서 만난 후 김○균의 자초지종을 듣기까지 약 1시간 동안 어떤 일이 발생한 건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최○영[7] 과 김○현, 김○윤에게 "○균이 형님한테 급한 일이 생겼으니 인천으로 넘어와라."라며 연락했다. 김○윤은 또 다른 후배 박○홍, 김○곤, 조○철에게 연락해 김○균과 박병섭이 거리에서 마주친 지 4시간 후인 아침 9시경 인천 남구(현 미추홀구)의 한 모텔에 8명이 모이게 된다.
2.2. 재충돌 및 용의자 검거
모텔에서 박병섭은 김○균과 사전에 모의한 대로 김○현에게 "오늘 새벽에 ○균 형님이 신포동 놈들과 대판 싸웠다. 다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니 칼을 준비해라"라고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김○현은 잡화점에서 길이 20cm의 회칼, 마스크, 목장갑을 4개씩 산 다음 차 트렁크에 싣고[8] 나머지 김○현, 최○영 등 5명은 김○균의 오락실 앞길로 가 차내에서 대기했다.
그날 오후 6시경, 김○균과 박병섭은 오락실 앞으로 김씨와 B씨, 그리고 이 두명의 선배 D씨를 불러내어, 사과를 요구하며 D씨에게 "후배인 김씨를 빠따로 쳐라"라며 요구했다. D씨가 이를 거부하자, 김○균은 차에서 대기하던 6명에게 "놈들이 나오면 쫓아가 칼 한두방 놓아라"라고 지시했다.
이에 박병섭은 김○현 등 6명에게 몇 시간 전 잡화점에서 구매한 회칼과 마스크, 목장갑을 차량 트렁크에서 꺼내 나눠주었고, 6명은 기아 카니발과 기아 포텐샤 차량[9] 2대에 나눠 탄 뒤 바로 앞에서 택시를 타고 가던 김씨 일행을 미행했다.
오후 8시 15분경, 김씨와 B씨가 선학동의 한 편의점 앞길에서 하차하자, 택시가 그 앞에 정차하는 것을 확인한 최○영은 차에서 내려 "야 이 XX들아! 느그들 이리 와봐" 라고 소리쳐 주의를 끌고 B씨를 준비한 회칼로 찌르려다 B씨가 도망쳐 실패했다.
최○영은 이번엔 김씨의 멱살을 잡고 "빨리 연장 가져와!"라고 소리치고, 박○홍에게 회칼을 건네받은 최○영과 김○현, 김○윤 3명이 김씨에게 달려들어 다리와 어깨 등을 총 14회 찔렀다.[10]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인 6일 아침에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도중 과다출혈로 끝내 숨졌다.
사건 15일 후인 2005년 11월 20일 아침, 경찰은 당시 박병섭과 김○균의 범행을 도운 공범 6명 중 3명을 긴급체포하였고, 이때 공범 중 한 명은 박병섭 형님이 김씨한테 사과를 요구했는데 안 해서 저희한테 회칼을 감추고 김씨한테 다가가서 찌르라고 시켰습니다 는 식의 진술을 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공범 중 2명이 서울의 한 술집에서 이제 자수하자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를 들은 술집 종업원의 신고에 의해 검거되었으며, 사건발생 10개월 후인 2006년 9월, 주범 김○균 역시 검거되었다.
박병섭은 2007년 상반기 중요지명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고유번호 1번[11]으로 최초 등록 후 2008년 상반기[12] 고유번호 3번[13]으로 등록되었고, 사건 이후 약 2년 반동안 종적을 감추고 잠적하다가 2007년 7월 26일 특명 공개수배 방송을 통해 공개수배되었고, 특명 공개수배가 종영되고 두 달 뒤인 2008년 5월 27일에 2007년 당시 특명 공개수배에서 방송된 내용을 기억하고 있던 시청자의 제보로 검거되었다.
특명공개수배 방영 당시 이창진 아나운서의 말에 따르면 살인에 가담한 후배들은 징역 6년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주범 김○균은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이후 박병섭은 같은 해 10월에 징역 10년[14]을 선고받았다.
정확한 선고 결과는 다음과 같다.
위의 관련 인물들은 현재 형기만료로 전원 출소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