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지: 봉화청량산환종주
☞. 산행출발일시 및 장소 : 2015. 10. 10(토) 07:00
안동 옥동 (구) 양반탈앞 출발
☞.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주차장- 전망대 - 643.5봉- 묘지- 축융봉- 삼각점봉- 830.6봉- 두리봉- 847.6봉- 무명봉- 오마도터널- 삼각점- 210계단- 경일봉분기봉- 전망대-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뒷실고개- 자란봉- 하늘다리- 선학봉- 장인봉- 전망대- 전망쉼터- 금강대- 금강굴- 안내소- 주차장(약14.5km, 7시간)
☞. 산행준비물: 개인산행장비,중식,간식,식수등 기타산행에 필요한 장비
☞. 산행회비: 1/N원
☞. 산행에 관한 문의처
산행신청은 댓글로 표시하고 궁금한점 및 문의사항은 아래 연락처로 문의 바랍니다......
회장(팔방미인님) 010-2877-6464
사무국장(산토끼) 010-3508-2033
총무(길동무님) 010-5375-9371
산행팀
산행이사(소수추님) 011-9390-1721
산행대장(이승현님) 010-4132-5440
산행대장(바람님) 010-2505-0513
산행대장(캔디님) 010-5027-9435
산행대장(양반탈님) 010-5280-0975
☞산행지 소개:
청량산(淸凉山)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려진 명산이다.
기록에 의하면, 청량산은 고대에는 수산(水山)으로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청량산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조선시대 풍기군수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며 명명한 12봉우리(일명 6.6봉)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청량산에는 지난 날 연대사(蓮臺寺)를 비롯한 20여개의 암자가 있었으며 지금은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과 응진전(應眞殿)이 남아있다. 또한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와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서성(書聖) 김생(金生)이 글씨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김생굴(金生窟),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風穴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서 쌓았다는 산성 등이 있다.
청량산은 1982년 8월에 경상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3월에 청량사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공원 일부가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23호로 지정되었다
**청량산 12봉(6.6봉)
*장인봉(丈人峰)
외산(外山)의 주봉(主峯)인 장인봉은 청량사(淸凉寺) 유리보전(琉璃寶殿)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량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870m)이다. 봉우리 중 가장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축융봉(祝融峯)과 관리사무소에서 보았을 때 그 위용이 가장 잘 드러난다. 원래 이름은 대봉(大峯)이었는데 신재 주세붕(愼齋 周世鵬, 1495-1554)이 중국 태산(泰山) 장악(丈岳)의 장인봉에 비유하여 지은 이름이다. 정상에서 굽어보면 산 아래는 빼어난 기암절벽들이병풍처럼 늘어서고, 눈앞에 펼쳐지는 원근 수 백리의 크고 작은 산맥과 하천들이 연출하는 장관은 예부터 선인들의 아낌을 받아 왔고 현재까지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선학봉(仙鶴峰)
장인봉(丈人峯)의 동쪽에 우뚝 솟아 있으며 봉우리 모양이 학이 공중으로 날아 솟구치는 듯 하므로 주세붕이 선학봉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을 청량산 바깥쪽에 있다하여 외산(外山)이라 부르는데 선학봉은 이 외산 중에서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외산은 유리보전(琉璃寶殿)을 기준으로 그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자란봉(紫蘭峰)
선학봉(仙鶴峯)의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외산(外山) 중 가장 안 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연화봉(蓮花峯)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난(鸞)새가 마치 춤을 추는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주세붕(周世鵬)이 자란봉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자소봉
유리보전(琉璃寶殿)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봉우리이다. 원래 보살봉(菩薩峯)으로 불리었는데 주세붕(周世鵬)이 현재의 이름으로 고쳤다. 9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내산(內山) 가운데 가장 높으며 청량산에서 세 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자소봉은 9층의 층암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 11개의 암자가 각 층마다 나열되어 있었다고 전해지며 청량산 불교 유적지의 중심지였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암자의 유지(遺地)가 남아 있다.
*탁필봉(卓筆峰)
자소봉에서 서쪽으로 30m 정도에 위치하고 있고 있는 봉우리이다. 생긴 모습이 마치 붓끝을 모아 놓은 것과 같다하여 필봉(筆峯)이라 하였는데 주세붕(周世鵬)이 중국 여산(廬山)의 탁필봉과 비교하여 붙인 이름이다.
*연적봉(硯滴峰)
탁필봉(卓筆峯)에서 서쪽으로 약 6m 떨어진 곳에 있으며 형상이 마치 연적(硯滴)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탑봉(金塔峯)과 함께 옛 이름 그대로 전해져온 봉우리이다. 맑은 날 정상에서 바라보면 소백산(小白山)과 재산면(才山面) 일대까지 요원(遙遠)하게 보인다.
*연화봉(蓮花峰)
유리보전(琉璃寶殿)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봉우리의 모습이 처음 피어나는 연꽂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봉우리의 이름은 의상봉(義湘峰)이었으나 주세붕(周世鵬)이 연화봉으로 명명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향로봉(香爐峰)
연화봉(蓮花峯) 바로 옆에 위치한 봉우리로 생긴 모양이 향로(香爐)와 비슷하다 하여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경일봉(擎日峰)
경일봉은 유리보전(琉璃寶殿) 바로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봉우리이다.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에 경일봉 위로 해가 뜨는데 주세붕(周世鵬)이 ‘아침에 뜨는 해를 경건한 예의로 손님맞이 하듯이 한다’(寅賓旭日)의 뜻을 빌려 봉우리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일봉 아래에는 김생(金生, 711-791)이 글씨 공부를 했다는 김생굴(金生窟)과 이황(李滉)이 공부하였다던 청량정사(淸凉精舍)가 있다. 또한 김생암(金生庵) · 상대승암(上大乘庵) · 하대승암(下大乘庵)이 있었다고 하며 현재 그 자리가 남아 있다.
*탁립봉(卓立峰)
경일봉의 위 바깥 뒤쪽에 있으며 자소봉에서 볼 때 동쪽 끝에 높이 솟아있는 봉우리다.
옛날에 이름이 없었는데 주신재가 탁립봉이라 명명하였다.
*금탑봉(金塔峰)
유리보전(琉璃寶殿)을 기준으로 동남쪽에 있으며 경일봉(擎日峯)의 아래에 있다. 예전에 치원봉(致遠峯)으로 불려졌다. 기록에 따르면 봉우리 아래에는 치원암(致遠庵) · 극일암(克一庵) · 안중사(安中寺) · 상청량암(上淸凉庵) · 하청량암(下淸凉庵) 등 5개의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응진전(應眞殿)만 남아 있다. 금탑봉 아래에는 어풍대(御風臺) · 요초대(瑤草臺) · 총명수(聰明水) · 감로수(甘露水) · 풍혈대(風穴臺) 등의 볼거리가 있다.
*축융봉(祝融峰)
내산의 최남단 산성마을 서쪽에 위치하며 청량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유리보전에서 보면 남쪽에 자리한다. ‘축융’이란 말은 남방의 불을 담당하는 화신(火神)을 의미하며, 주세붕이 중국 남악(南嶽)의 이름을 본 따서 지은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는 화재를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이용했는데, 화재를 막기 위한 선인들의 깊은 뜻이 담긴 이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유리보전과 응진전, 외산에 있는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
*어풍대(御風臺)
대(臺)는 산에서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평탄한 곳을 말한다. 금탑봉 중층에 위치하고 있는 어풍대는 내외 청량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청량지(淸凉誌)』의 기록에 따르면, 열어구(列御寇 : 전국시대 정나라 사람인 열자를 말함)가 바람을 타고 보름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하여 어풍대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금탑봉 중층에는 어풍대와 함께 치원대, 반야대, 풍혈대, 요초대, 경유대 등이 나열되어 있으며 이들 대에서는 기암절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청량산의 여러 봉우리와 연꽃 꽃술에 자리한 청량사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밀성대(密城臺)
공민왕산성(恭愍王山城) 동문지 우측을 따라 올라가며 양벽이 끊어지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밀성대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와서 산성을 쌓고 군사들을 훈련시킬 때 명령을 어긴 죄인을 사형시키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밀성대 주위로는 성을 쌓은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풍혈대(風穴臺)
금탑봉 중간·고운대 뒤편에 위치해있다. 풍혈은 바람이 통하는 굴을 말한다. 이곳은 층암절벽이 남북으로 통하여 더운 여름철에도 항상 서늘한 바람이 분다. 신라 말 대문장가로 알려진 최치원(崔致遠, 857-?) 이 이 부근에 머물 때 이곳에서 독서하고 바둑을 즐겼다고 한다. 바로 앞에는 극일암터가 있다. 풍혈은 고운대 뒤편에 있다. 큰 암벽이 누적되어 있는 가운데에 구멍이 나 있어 맑은 바람이 항상 굴 입구에서 나온다. 옛날에 두개의 판이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최치원 선생이 바둑을 즐기던 곳이라 한다. 판이 굴 중에 있어 비를 면할 수 있음으로 천년을 썩지 않았다고 한다
*학소대
청량사(淸凉寺) 서편입구인 낙동강변(현 매표소 오른쪽)에 위치해 있으며 절벽이 솟아 푸른 강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산구곡(陶山九曲) 중 제 9곡인 청량곡(淸凉曲)을 일컫는다. 예로부터 학이 날아와 새끼를 치고 서식(棲息)하였다고 하여 학소대라 한다.
*금강대(金剛臺)
청량산 동구(洞口)인 낙동강변(현 탐방객 안내소 왼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학소대와 더불어 또 하나의 비경을 이루고 있다. 금강대 바로 뒤쪽에는 금강굴(金剛窟)과 금강암(金剛菴)으로 추정되는 암자터가 남아 있다.
*그밖의 대(臺)
청량지(淸凉誌)』에 의하면 원효대(元曉臺)는 원효암(元曉庵), 반야대(般若臺)는 반야암(般若庵), 만월대(滿月臺)는 만월암(滿月庵), 자비대(慈悲臺)는 자비암(慈悲庵)이 각 암자 앞에 있어서 상쾌한 경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외에도 청풍대(淸風臺)와 송풍대(松風臺)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굴
*김생굴
경일봉(擎日峯) 아래 청량정사 뒤편의 절벽 중간에 있다. 굴속의 면적이 넓어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신라의 명필 김생(金生, 711-791)이 이 굴 앞에 김생암이라 부르는 암자를 짓고 10여년간 글씨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붓을 씻었다는 우물의 흔적이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김생의 글씨와 봉녀(縫女)의 길쌈이 서로 기술을 겨루던 전설이 어린 곳이 기도 하다.
*금강굴
장인봉 아래 금강대 뒤편에 위치해 있다. 굴 앞에 금강암(金剛菴)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굴 주변으로 기와조각과 구들장이 남아있어 그 신빙성을 더해 준다.
*한생굴
금탑봉 아래 감성곡(甘城谷)에 위치해 있다. 한씨(邯氏) 성을 가진 이가 이 굴에서 수도했다고 하여 한생굴(邯生窟)로 불린다.
*원효굴
자소봉 중층 만월대 아래에 위치해 있다. 신라시대 고승 원효대사가 이 굴에서 수도했다고 하여 원효굴로 명명되었다. 굴속에는 우물이 있으며 사람이 기거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우물
*총명수(聰明水)
정신이 총명해지는 총명수(聰明水) 절벽 바위틈 사이에서 물이 솟아나는 곳으로 신라 시대 최치원이 수도하면서 이 물을 마시고 정신이 총명하여졌다고 해서 ‘총명수’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주세붕도 “총명수를 마시고 만월암에 누워 있으면 비록 하찮은 선비라도 신선이 된다”고 총명 수를 극찬했다고 한다.
*감로수(甘露水)
응진전(應眞殿) 뒤편에 있으며 층층이 높은 절벽사이에 스며들어 고인 물이라 물맛이 맑고 담백하다.
*김생우물
천길높이의 흰 물줄기가 장관인 김생폭(金生瀑)
김생굴(金生窟) 바로 옆에 있다. 김생이 굴에서 글씨 수도를 할 때 이곳에서 붓을 씻었다고 하여 일명 '세필정(洗筆井)'이라 부른다.
☞산행지도및 참고사진
|
첫댓글 삼일연휴라서
맴 편히 달립니다.
스마일.저.양반탈.커피사랑..ㅎ
자들은~~~미쳐서~종주를 하는것이고~~저는 정신이 아직 맑아서~~~자소봉으로ᆢ구름다리 찍고 청량사로 내려 올겁니다~~~^^
겁먹지 마시고~~~꼬리 다셔유~~~^^
스마일님 낼 B코스는 출발시간을 늦춰도 되겠죠?? 안동롯데마트앞에서 9시 출발합시다..
함께할 회원은 댓글남겨요 참고로 이도사님과 이도사 사모간다고함.
@아리랑*權成烈* 넵~~~~
알겠습니다~~~^^
나도 스마일과 같이 콜~~~~~참석합니다
토요일 살짝 우천 소식이 있으니
참고하시어 안전산행 바랍니다^^
낼.시간을 정정합니다.
9시 롯데마트앞으로 모여 주세요.
함께 하실분들은요.ㅎ
경애.경희가 함께 몬하게 되어서 종주는 담기회로.미루었네요...ㅎ
그날 3명이서 산행했어요 9시출발해서 청량산 다녀왔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