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클라마칸사막(塔克拉玛干沙漠, Taklimakan Desert)


타클라마칸 사막(تەكلىماكان قۇملۇقى )또는 타커라마간 사막(塔克拉玛干沙漠)은 중앙 아시아의 사막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있다. 남쪽으로는 쿤룬 산맥(곤륜산 또는 곤륜산맥), 남서쪽으로는 파미르 고원, 서쪽과 북쪽으로는 톈산 산맥(천산 또는 천산산맥)에 의해 경계가 정해진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극이 아닌 사막 중에서 15번째의 크기이다. 면적은 270,000km²에 달하며 길이는 1,000km, 폭은 400km이다. 북부와 남부 가장자리에 비단길이 있으며 근래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타림 사막 고속도로를 건설하였는데 남쪽의 허톈과 북쪽의 룬타이를 연결하였다.
타클라마칸 사막(아래 지도에서 오른쪽 가운데에 있는 넓은 지역)은 타림 분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과 타림 분지의 북부에는 톈산 산맥이 있어 이 두 지역의 북쪽 경계를 이루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동쪽에는 비단길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던 둔황이 있다. 남쪽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 경계를 이루는 쿤룬 산맥이 있으며, 쿤룬 산맥의 남쪽에 티베트 고원(아래 지도에서 흰색 및 회색으로 나타나는 부분으로 쿤룬 산맥은 티베트 고원의 북쪽 경계를 이룬다)·카라코람 산맥·히말라야 산맥이 차례로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서쪽에는 파미르 고원과 힌두쿠시 산맥이 있다. 이들 지명들 중 카라코람 산맥과 힌두쿠시 산맥은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이다.
위 지도에서 노란색의 선은 비단길을 나타낸다. 지도에 나타난 바와 같이 비단길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부 경계를 통해 이어진 북쪽 비단길과 남부 경계를 통해 이어진 남쪽 비단길 두 가지가 있었다. 근래에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건설한 타림 사막 고속도로는 남쪽 비단길의 허톈과 북쪽 비단길의 룬타이 현(룬타이 현은 위 지도에서 "쿠를라"라고 표시된 쿠얼러 시의 서쪽과 접한다)을 연결한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 경계를 이루는 쿤룬과 알툰 산맥사이의 거대한 충적 선상지, 왼쪽에 많은 작은 시내에 흐르는 물에서 푸른색이 보인다.
기후
타클라마칸은 비교적 추운 기후를 가지고 있다.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받으면 때로는 영하 20℃ 이하로 떨어진다. 2008년에는 눈이 사막 전역을 덮었는데, 어떤 관측소에는 적설량이 4cm에 달하였다. 해양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이라서 여름밤은 매우 춥다.
오아시스
물이 많지만 먹을 수 있는 물은 없어 이 사막을 건너는 것은 위험하다. 타클라 마칸은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라는 뜻이다. 주요 오아시스 도시는 산맥에 내린 비로부터 물이 공급되며 남쪽에는 카스, 미란, 니야, 야르칸드, 호탄(헤티안), 북쪽에는 쿠처, 투루판, 동쪽에는 룰란, 둔황이 있다.
오늘날 신강 자치주의 마린과 가오창과 같은 많은 유적 도시에는 거주자가 많지 않다. 그곳에서 모래에 묻힌 유적은 토카리, 초기 그리스, 인도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발견되었다. 나중에 타클라마칸은 투르크족이 거주하였다. 당왕조가 시작되며 중국인들은 주기적으로 타클라마칸의 오아시스 도시로의 그들의 지배권을 확장하였다. 그것은 중앙 아시아를 가로 지르는 중요한 비단길을 지배하기 위해서였다. 중국 지배 시대는 투르크와 몽골 그리고 티베트 인들에 의한 지배가 혼재하였다. 현재의 인구는 주로 투르크인와 위구르인으로 구성되어있다.
면적 37만 킬로미터 제곱으로 대표적인 모래 사막에 속한다. 현재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속해 있으며 뤄부포(罗布泊) 호를 기준으로 서쪽은 사구로 이루어진 사막이, 동쪽은 자갈로 이뤄진 사막이 있다.
"타클라마칸"이란 뜻은 위구르어로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이라는 뜻으로 위구르어로는 타클리마칸(تەكلىماكان)이라 한다. 실제로 환경이 가혹하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는 혹한이, 여름에는 혹서가 이어진다. 사구가 바람에 밀려 이동하기 때문에 과거는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도 교통이 험악한 편이다. 중국이 고속도로를 뚫고 가도를 정비하면서 나아지긴 했지면 여전히 사람에게 속살을 잘 보여주지 않는 사막이다.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과거에는 실크로드를 잇는 동서간 교통로의 중심지였기에 수많은 크고 작은 도시국가와 군소왕국들이 사막위에 군림하였다. 실크로드를 타고온 바람에 번영을 누리기도 하였으나 이후 동서 교통로가 단절되어 가면서 서서히 몰락하였다. 때론 중국, 때론 유목민, 때로는 아랍, 때로는 티베트의 영향을 받으며 수많은 문화가 융화된 곳이기도 하며, 폐허뿐인 여러 유적들이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버려져 있다.
실크로드 문명의 소멸은 서구의 학자들에게 큰 흥미를 유발케 하였으며, 바닷속에 빠져버린 아틀란티스처럼 실크로드 문명들은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소멸되었다"라고 묘사되었으며, 이는 탐험가들과 역사학자들을 고무시켰다. 18, 19세기는 사실상 지구의 고봉들과 양 극지방이 인간에게 완전히 "정복"당한 때였고, 아직 신비에 싸여있는 타클라마칸은 이러한 탐험가들과 역사학자들에게 큰 매력을 불어넣었다. 수많은 탐험대가 모래 속에 묻혀있을 고대도시와 유물들을 바라고 이 지역을 방문했고, 측량을 하고, 탐사작업을 벌였다.
지리학적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 탐험이 성과를 거두었을지는 몰라도 유럽인이 기대한 것과 달리 고대의 유물과 유적들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모래바람에 순식간에 매장당했다는 환상도 깨져 실크로드 문명권의 붕괴와 함께 서서히 몰락했다는 것을 인지한다. 현지인들은 이를 이용해 조작한 가짜 유물을 팔아넘기기도 했고, 이것들은 진위가 불분명한 채 다른 유물과 섞여 유럽의 유명한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기도 하다.
유럽인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신비롭고 웅장한 고대도시 유적은 없었지만 문화학적으로, 인류학적으로 중요한 유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기타 유물들도 많이 발굴되는 편이라 역사학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둔황석굴이 유럽인들에게 순차적으로 털린 것도 이 때쯤이다. 알베르트 폰 르콕이 독일로 가져간 베제클릭 석굴의 벽화는 2차대전 중에 연합군이 베를린에 폭격을 쏟아붇다가 박물관이 날아가는 바람에 소실되어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에도 돈황석굴의 유물이 보관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돈황석굴에서 때어 온 벽화 한 점이 보관중인데 일본이 가져와 서울대학교(당시 경성제국대학)에 보관하다가 해방 때 그냥 두고 가버린 도둑놈 '오타니 컬렉션' 중 하나라고 한다. 중국 정부 측에서는 은근히 반환을 바라고 있으니 문화재청에서 쿨하게 무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