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일이 벌써 나흘이나 지났다. 녀석은 세상 밖에 나오면 고생길인 줄 아는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기다리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꿈쩍도 안한다. 빨리 나와야는데 벌써부터 만만치 않은 녀석이라는 걸 직감했다.
녀석이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한여름을 보냈다. 뜨거운 생명을 품고 보낸 여름은 정말 길었다. 평소에 잘 마시지 않던 콜라로 더위와 갈증을 달래다 보니 가을이 왔다. 책상 위 달력에 동그라미가 그려진 9.27일을 향하여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두 달간의 출산 휴가를 몸조리할 수 있도록 최대한 예정일까지는 출근하려고 애를 썼다. 결국 녀석은 예정일까지 나오질 않았다. 걷기도 힘들고 버스로 출퇴근하는 것도 감당이 안 되서 출산휴가를 받고 집에 있으니 이젠 마음이 더 갑갑했다.
'워매. 산달인가 보네.'
'네...'
'아이고, 아들이네. 아들이야. 영락없구먼.'
'아니에요. 딸인 거 같은데요.'
'모르는 소리. 내가 산모 배만 보면 다 알아. 에구구. 그나저나 이제부터 고생이겠네. 건강하게 잘 키워요.'
산통産痛을 기다리며 집에만 있기에 지루하고 답답하여 목욕탕에 갔더니, 할머니들이 내 배를 보며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셨다.
임신 무렵에 주민등록 전산화가 시작되었다. 임신 기간 내내 주민등록 전산화 작업을 하느라 출근 하면 하루 종일 앉아서 키보드를 쳤다. 내가 근무하는 송월동의 인구가 중구에서 제일 많은 데다가, 전산화 시작과 동시에 한 달 동안 교육을 다녀오는 바람에 우리 동洞 실적이 꼴찌였다. 쉬는 시간 없이,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거 빼고는 앉아서 그야말로 온종일 전산 입력을 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꼴찌를 면하긴 했지만, 이후로도 사무장님은 다른 동에 뒤쳐질까 봐 수시로 채근을 하셨다. 덕분에 중간 순위까지는 올라갔고, 때문에 내 체중은 나날이 늘어나 임신 말기에는 몸무게가 18킬로까지 늘었다.
일이 끝나 집으로 가는 길은 또 하나의 난관이었다. 동사무소에서 동인천 대한서림 앞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서 30분, 도림동 집까지 버스로 한 시간이 걸렸다. 소래포구가 종점인 버스 안에는 늘 생선냄새로 가득 찼다. 가뜩이나 울렁거리는 가슴이 메슥거려서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입을 틀어막고 견뎠다.
지옥 같은 버스에서 내리면 논두렁 옆에 전봇대가 하나 있었다. 한 시간 내내 참았던 구역질이 쏟아졌다. 어두워가는 저녁, 전봇대에 기대고 한참을 앉아서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야 정신이 들었다. 전봇대에 기대앉은 풍경이 차츰 바뀌고 있었다. 감꽃이 피던 봄에서 해바라기가 피는 여름을 지나, 코스모스가 피는 가을이 되었다.
임신 기간 중에 엄마가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는 게 답답했는지 녀석은 발길질을 자주 했다.
'엄마야. 운동 좀 해요. 일어나서 밖으로 좀 나가봐요. 날씨가 얼마나 좋은데 고지식한 우리 엄마는 저렇게 일만 하시나. 그리고 아저씨들 담배 연기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툭툭.'
녀석은 쉬지 않고 뱃속에서 신호를 보냈다. 노는 걸 보면 분명 아들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내 생각은 아무래도 딸인 것 같았다. 병원에서는 특별한 말도 없었다. 보통 산달이 다가오면 배냇저고리를 분홍색으로 해라, 이불을 파란 거로 해라. 넌지시 말을 해준다는데 의사는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태몽도 그렇고 내 마음도 그렇고 딸인 것만 같아서 아기용품을 분홍색으로만 모두 장만했다.
드디어 오늘은 아침부터 녀석이 세상 밖으로 나올 태세였다. 하루 종일 '나 나가요.' 하면서 열렬히 말을 걸어왔다. 특별히 통증이랄 만한 것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저녁을 일찍 먹고 병원에 가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친정 엄마가 낮에 가져다주신 미역국을 먹었다.
'장모님 미역국이 역시 최고야.'
미역국을 좋아하는 남편이 맛있게 먹으면서 한마디 더 했다.
'아, 이 녀석 예정일을 나흘이나 지나도록 안 나오더니, 제 엄마 생일 밥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나 보네.'
병원에 도착하니 간호사는 아직 멀었다면서 진통이 규칙적으로 자주 오면 다시 오라며 집에 가란다. 병원 앞에는 시민서점이 있었다. 시민 회관이 앞에 있어서 시민 서점이다. 남편이 생일 선물로 책을 사 주겠다고 해서 책방으로 들어갔다. 진통은 다가오고 마음은 초조하여 무슨 책을 골라야하는지 망설였다.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문정희 시인의 산문집 '사랑과 우수의 사이'를 집어 들었다. 문을 열고나서는 발길에 따라온 초승달처럼 녀석은 그 다음 날인 내 생일을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에 나왔다.
아기는 하얀 피부에 머리카락이 새카맣게 윤기가 흐르는 눈이 커다랗고 예쁜 딸이었다. 아무리 척 보면 안다는 할머니들의 예언보다 열 달 뱃속에 품었던 엄마의 예감이 옳았다. 두 달 후 출근을 하는 딸을 위해 친정엄마가 아기를 돌봐주셨다. 어느 정도 자라자 아기는 하루 종일 밖에 나가자고 보챈다고 하셨다. 뱃속에서 못 본 세상을 제 맘대로 보겠다는 건지 외할머니 등에 매달려 울었다. 어찌된 건지 집에 들어오면 울고, 밖에 나가면 울음을 그치니 외할머니는 늘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머나, 어쩜 아기가 이렇게 예쁘대요.'
'쌍커플이 백만 불이네.'
포대기로 업거나 유모차에 태워서 아파트를 돌아다니면 사람들마다 아기가 참 예쁘다며 다가와서 한마디씩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외할머니는 행복해 하셨다.
그렇게 동화 속 공주처럼 예쁜 아기는 점점 골목대장이 되어 갔다. 3년 후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긴 분풀이로 할머니 몰래 심술도 종종 부렸다. 힘으로 밀리는 작은 녀석은 가끔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울었다. 그런 날은 집에 와서 큰 아이를 더 오래 안아줬다. 아이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철이 들면서 동생도 잘 챙기고, 아픈 할머니 밥도 챙겨주는 따뜻한 아이로 자랐다.
같은 날에 태어난 엄마와 딸, 외향은 전혀 다르지만 속은 많이 닮았다. 우리는 눈물이 많다. 아기 때부터 잘 울었던 딸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나 역시 사는게 힘들었던 날들 속에서 밤마다 울었고, 남 몰래 혼자 울었다.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이의 존재였다. 나를 앞에 앉혀놓고 어깨를 가만히 주물러 주던 아이의 손길이 있었기에 힘든 시간을 건너왔다.
아마도 멀고 먼 어느 옛날에 그 아이는 나의 엄마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세상에서 내가 먼저, 그리고 그 아이가 나중에 태어나 서로의 역할이 바뀌었는지 모른다.
내 생일은 음력으로, 내 아이는 양력으로 생일을 따로 차렸다. 내 생일에는 내가 미역국을 끓여 왔는데,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부터는 해마다 딸이 끓여준 미역국을 먹게 되었다. 지금도 딸이 끓여준 첫 번째 미역국을 잊지 못한다. 어느 순간 나 보다 훌쩍 커버린 아이는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미역국을 끓이는 법을 배워 상에 올려놓았다. 엄마가 오래 살라고 미역을 자르지도 않았고, 미역을 좋아하는 엄마의 입맛을 알고 미역을 넉넉히 넣었다. 딸이 처음으로 끓여준 미역국을 앞에 놓고 눈물이 나서 목으로 넘기질 못했다. 그날의 먹먹했던 맛을 어찌 잊을까.
그런데 나는 왜 그 책을 골랐을까. 출산을 앞둔 산모가 '사랑과 우수'라는 낱말에 어쩌다가 마음을 주었을까.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그때의 선택이 기억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누렇게 변해버려 책장에 꽂혀 있을 뿐, 문정희 시인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가슴에 남아있지 않다.
여자로 산다는 건 사랑과 우수의 사이가 아닐까.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소녀에서 숙녀로 자라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딸을 낳고, 그 딸이 엄마가 되는 삶. 내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 내가 세상을 사랑하고, 내가 누군가를 또 사랑하여 또 엄마가 되어 내 딸을 품고 세상은 그렇게 쉬지 않고 끊임없이 사랑을 잉태한다. 사랑은 우수를 우수는 사랑을 품고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첫댓글 여자의 모성애는 위대합니다.
아이를 사랑으로 대하고 유학이나 결혼으로 곁을 떠나면 늘 근심 걱정으로 살펴주는 모성애~
그래서 우수도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겠지요.
딸이 직접 끊인 사랑의 미역국이 무척 부럽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랑이 깊으면 우수가 되고 우수가 계속되면 사랑이 되는 여자의 일~생~
딸이 이 글을 읽고 엄마를 생각하면 감동의 눈물이 흐르겠네요. 태어날 때의 자신의 모습이 은빛 물결처럼 잔잔히 그려지는 글 속에서 사랑과 우수의 의미를 깨달으며 더 성숙해지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아울러 지나왔던 날들의 세월이 모자이크처럼 정리되어 사랑과 우수의 사이로 다듬어지니 참 매끄럽습니다. 좋은 벗과 좋은 얘기 후 따뜻한 마음으로 잠시 생각하는 듯한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심전심, 모심여심인 모녀관계이지요..
내 마음을 세상에서 제일 깊이 알아주는 영원한 친구입니다..
감사합니다..
일부러 늦춘 것도 아닌데 생일에 딸을 낳다니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딸이라 그런지 마음 씀씀이도 예쁘군요. 우리 아들은 미역국은커녕 아빠 생일을 아는지나 모르겠네요 ^^
그러게요.. 생일도 같은데 생시도 같아요.. 내가 전생에 딸이었지 싶을 때도 있네요..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때는 딸 낳았다고 시어머니가 미역국도 안끓여주셨어요..ㅜㅜ
나중에 세상이 바뀌고 어머니도 손녀딸 효도 받고 가셨지만요..
어머니의 길과 딸의 길. 아버지의 길과 아들의 길을 생각하게 하는 오늘이네요.
김작가님.. 잘 지내시나요? 12월 한마당엔 꼭 올라오세요..
여인이 잉태하고 출산하기까지의 긴 과정과 인고의 시간을 지켜보면서도 무심하게 지나친 시간이 이제와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후회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자질구레한 가정사에도 가능한 참여하고 도와주려고 한답니다. 세상에는 아내의 마음을 조금도 몰라주는 철없는 남편들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남편들은 오십이 일단 넘어야 가정의 소중함을 알더라구요 ㅎ
뒤늦은 후회라도 깨달음은 좋은 거죠 ㅎㅎ
감사합니다 ^^
그저 머리 숙입니다. 모든 어머니의 사랑은 만물의 시작이지요. 또 감동이군요.
살다보니 살아졌네요
아버지가 지고 가는 삶의 무게도
다르지 않을 테지만
다시 돌아가라 하면 못 갈 세월이지요
감사합니다 ^^
생각없이 사용하다가 ...새삼,, 사전을 찾아보니..우수: 마음이나 분위기가 시름에 싸인 상태 .....사랑과 우수...그 사이, 여자의 삶이 그렇군요. 늘 행복하세요. ^*^
우수 어린 사랑이 더욱 애틋한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