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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s- 수다방 스크랩 아프가니스탄-마약을 위한, 마약에 의한, 마약의 전쟁
TOMMY 추천 0 조회 57 09.12.13 07: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이비스 에너지 전략 연구소

 

 

마침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증파를 결정했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도 다시금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파병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1년에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다시금 국제 정치의 초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둘러싼 이해관계 가운데 언론들이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 점 한가지를 추가로 분석하려한다. 

그것은 마약과의 관련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정학적, 자원 패권의 관점에서 다루는 관점에 대해서는 본 연구소의 다른 글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 전쟁확대로 나아가는 오바마  http://blog.daum.net/sibad/3

* 러시아 vs 미국-위험한 판돈 늘리기 http://blog.daum.net/sibad/24

* 반테러 전쟁의 이면-아프가니스탄 자원 쟁탈전 http://blog.daum.net/sibad/119

* 파키스탄 혼란의 숨은 배경-에너지 패권,파키스탄 분열,발루치스탄 분리 http://blog.daum.net/sibad/124

* 어느 핵무기 보유국의 몰락-파키스탄 전쟁의 수수께끼 http://blog.daum.net/sibad/193

 

 

■ 전세계 마약 시장의 역사

 

 

 

지난 2004년 2월 29일 자 <인디펜던트(Independent)>지 보도에 따르면, 전세계적인 불법 마약 거래 규모는 석유와 무기 거래 다음을 차지할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전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마약 거래는 역사적으로 세계 경제와 국제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19세기 유럽 식민국가들이 극동과 남아시아에서 벌인 무역관계를 살펴보자.

이 당시 무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당사자는 바로 영국 식민지 확장의 첨병 역할을 한 동인도 회사다.

당시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의 농민들로 하여금 아편을 재배케하여 이를 중국에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영국 식민지 이전까지 인도 농민들은 아편을 상업적 이익을 고려하여 대규모로 재배하지 않았지만, 영국의 아편 재배 정책은 결과적으로는 그동안 생계형 작물을 재배하여 어느정도 시장의 횡포에서 비껴설 수 있었던 인도 농민들의 자립마저 앗아갔다. 

이 때문에 인도 농민들은 더욱 더 아편 생산에 매달리게 되었고, 이는 영국의 인도 통제와 착취를 용이하게 해주었다. 

다른 한편, 인도의 아편 수출은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메꾸어주는 측면도 있었기에 영국은 정책적으로 아편 생산을 확대했다.

또한, 수출지인 중국인들의 아편 중독 증가는 서방의 중국 식민지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저항을 누그러뜨리는데도 톡톡히 이바지 했다. 

이 점에서 마약 거래는 출발부터 서구 경제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채 제국주의의 대외정책의 한 도구로서 기능했다고 볼 수 있다.

 

 

 

 

                                                      아편을 피우고 있는 19세기 광동지방의 한 중국인 가족

 

 

 

이런 영국의 아편 생산 확대로 인해 1830년대에 아편은 당시까지 영국에게 매우 중요한 무역 상품 위치를 차지하던 차(tea)수출을 추월할 정도가 되었고, 1880년대 중반에 이르게 되면 아편은 국제적으로도 가장 값나가는 상품이 되었다.

이런 아편 무역의 확대는 경제적 영역을 넘어 무력충돌과도 결합되었다.  

아편 수입의 확대와 중국인들의 아편 중독 증가에 놀란 중국 정부는 1799년에 아편 금지를 단행했다.

그러나 영국은 아편을 중국에 계속 밀반입했고, 급기야 1838년 중국 정부는 아편 밀매, 밀수업자들을 사형에 처하겠다고 공표한다.

(그러나 영국 정부와의 충돌을 염려한 중국 정부는 이 처벌 조항에서 영국인들은 제외시켰다.)

그러나 아편 거래로 인한 이익이 막대했고, 이런 기회를 이용해 중국을 병탄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영국 정부와 무역업자들은 이러한 중국의 조치에 항의해 전쟁을 선포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아편 전쟁'이다. (1840-1843년)

전쟁에서 진 중국 정부는 난징 조약을 맺고 영국에 더한층의 경제적, 정치적 양보를 해야했으며 아편 유입도 더 늘어났다. 

이로 인해 중국 경제는 한층 더 취약해졌고, 중국에 있던 금과 은 보유고는 빠르게 해외로 유출되었다. 

이처럼 아편은 중국이 몰락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현재 마약 거래 시장은 과거 19세기와 비교할 수 없이 그 규모가 더욱 더 커졌다.

<Financial Times> 2000년 2월 24일자가 유엔 통계를 빌려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재 세계 마약 시장 규모는 대략 4000-5000억 달러 이른다고 한다.

또한,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2003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매년 전세계적으로 발생하는 국제 돈세탁 규모가 5천 9백억 달러에서 1조 5000억 달러(전세계 GDP의 2~5%)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러한 불법 돈세탁의 대분이 마약거래와 연관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불법 마약거래는 '황금알 낳는 거위'가 아니라 이제는 '황금 거위를 낳는 거위' 되버린 것이다.       

 

 

■ 미 중앙정보국(CIA)과 마약

 

 

미 중앙정보국은 미 정부의 공식 정부 부서로서 정식 예산을 배정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예산들은 미 의회의 감사와 보고 의무가 있어 중앙정보국이 벌이는 불법적인 공작활동에 내놓고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해외에서 벌이는 공작활동-요인 암살, 반대파 매수, 불법적인 정보 활동, 정부 전복, 반란군 무장 등등-의 경우가 그러한데, 이를 위해  미 중앙정보국(CIA)은 해외에서 벌이는 공작 활동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현지에서 직접 조달하기 시작했다. 

마약거래는 이러한 목적에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알프레드 맥코이(Alfred McCoy)가 쓴 <The Politic of Heroin>에 보면, 인도차이나 민족해방운동에 맞선 반공산주의 게릴라들의 자금 지원을 위해 처음에는 프랑스, 나중에는 미국이 어떻게 라오스와 베트남에서 헤로인 거래에 손을 댔는지 상세하게 폭로되어 있다.

심지어 미국은 베트남전 당시 Air America 항공을 통해 이들 마약을 해외로 날랐다.

 

이러한 구조는 1980년대 중남미 지역에서도 반복되었다.
중남미 지역은 아시아와는 달리 코카인이 주로 재배되었는데, 이러한 코카인 대량 재배의 발단은 지난 1979년 미국이 지원하는 소모사 독재 정권을 민중봉기로 타도한 니카라과 산다니스타 혁명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미국의 공작과 관련이 있다. 
당시 레이건 미 행정부는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이들에 대항하는 콘트라 반군을 배후에서 조직, 니카라과내에서  살인, 학살, 암살, 폭파 등 잔인무도한 테러 활동을 벌였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당시 콘트라 반군에 지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중남미 지역의 코카인 밀매업자들과 돈 세탁업자들을 지원했고, 이를 위해 레이건 정부의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는 이들 코카인의 미국 본토 유입을 묵인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지난 1998년 10월 15일 <Consortium>에 게재된 바 있는 CIA의 감찰관 프레드릭 히츠(Frederick Hitz)의 보고서에서 드러났는데, 심지어 레이건 정부의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는 해당 기관의 비밀 작전용 비행기를 이용하여 이들 밀매를 도와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파나마의 독재자이자 당시 이런 미국의 마약 불법 거래를 도와준 마누엘 노리에가와 미국 정부의 관계도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가능했던 것은 한편으로는 마약 거래가 가지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마약 거래는 특성상 무자비하면서도 비밀리에 이루어져야하는 필요 때문에 다른 범죄집단과 결합되기가 그만큼 쉽다. 

미 중앙정보국은 자신의 수입원을 위하여 마약 불법 거래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위해 미 중앙정보국은 마약 거래와 연관된 주요한 조직범죄집단과 복잡하고도 은폐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즉, 조직범죄집단과 정보 당국, 비즈니스가 결합하여 마약 생산, 거래,운송,판매 루트를 둘러싼 전략적 통제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약 불법 거래에 참여하는 이해당사자들 사이에 점차 합법과 불법, 기업가와 범죄자 사이의 구별을 모호하게하고 뒤섞이게 만든다.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혁명 정권을 전복하기위해 미국이 배후에서 조직한 악명높은 콘트라 반군

  

 

이는 마약 거래 자금이 순환되는 과정을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내 은행들은 매년 약 천억 달러에 달하는 마약 자금을 세탁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미국에서 코카인에 지불된 수 십억 달러 가운데 91% 정도가 해외로 나가지 않고 미국, 캐나다의 은행 시스템 계좌에 들어가는 식으로 북미주에 그대로 머문다.

결국 마약 자금이 서방의 은행들에게 일종의 '유동성'을 제공하는 셈인데, 이 때문에 서방의 거대 은행들도 마약 거래에 음으로 양으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돈 세탁은 주로 국제적인 상업 은행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지는데, 보통 스위스, 룩셈부르크, 케이먼 군도 따위의 offshore에 있는 회피처들이 주요한 세탁지다.  

이런 곳에서 돈 세탁은 국제 범죄조직과 세계 유수의 국제적인 상업은행들의 공조하에 이루어진다. 

이렇게 세탁된 마약 자금들은 다시금 부동산이나 호텔, 서비스업, 제조업은 물론 주식과 정부채권, 각종 파생상품에도 대거 투자된다.  

이러한 마약 거래 자금과 은행과의 관계는 작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일부 드러난 바 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국(UNODC)의 고위책임자인 안토니오 마리아 코스타(Antonio Maria Costa)는 금융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던 작년, 은행들이 유동성 공급을 위해 마약 거래로 만들어진 자본을 자주 사용했다고 언급했다. 
코스타는 "은행간 대부가 마약 거래와 다른 불법 활동에서 얻어진 돈으로 이루어졌다"며 "일부 은행들이 이런 식으로 구제된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 아프가니스탄과 아편

 

 

물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수 백년전부터 다양한 치료 목적으로 아편이 재배되었지만, 이 지역의 아편 생산은 지역의 소규모 시장을 겨냥한 것인데다가 이를 재료로 한 조직적인 헤로인 생산은 전무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세계 시장을 겨냥한 상업적 목적의 아편 대량 생산 시작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 중앙정보국의 활동과 관련이 깊다.

미국 프리랜서 작가인 데이브 깁슨(Dave Gibson)은 <American Chronicle> 기사에서 익명을 조건으로 지난 2002년 3월에 NewsMax.com 과 인터뷰한 한 미국 정보관리의 말을 상기시켰다. 

이 정보관리는 "CIA는 베트남 전쟁 당시 했던 일을 똑같이 하고 있다. 당시 이러한 작업은 1970년대부터 미국내에서 헤로인 거래의 증가라는 끔찍한 재앙을 낳았다. 이러한 결과는 직접적으로 미 중앙정보국에 책임이 있다. CIA는 수 년동안 국제적인 마약 거래에 공모해왔기에, 내 생각에 미 중앙정보국은 이들 사업을 지속시키길 원할 것 같다"
1979년 구 소련을 아프가니스탄 분쟁에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미국은 구 소련군에 맞선 이슬람 반군인 무자헤딘을 지원할 비용마련에 부심한다.
미 중앙정보국은 이를 위해 당시 중남미에서 콘트라 반군을 조직할 때도 그랬던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마약 재배 및 거래를 통해 그 비용을 충당하려고 계획한다.
단지 바뀐 것이 있다면 중남미에서는 코카인이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그 종목이 아편으로 바뀐 것 뿐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무자헤딘이 구 소련군에 대항해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조금씩 차지하면서 무자헤딘은 해당 지역 농민들에게 '혁명세'라는 명목으로 아편을 재배할 것을 강제했다. 

이 당시 아프가니스탄 헬만드 계곡에서 관계시설의 도움을 받아 생산된 아편의 60%가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지원을 받아 개발된 것이기도 했다.

이런 미국 중앙정보국의 노력에 힘입어 미국의 개입이 시작된 1979년과 1982년 사이에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생산은 세 배로 증가했고,  1981년에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가 세계 제 1위의 헤로인 생산지대로 부상했으며 미국 헤로인의 60%를 공급하게 된다. 

구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1989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생산량이 1350 메트릭 톤(metric ton)에 이르러 당시 세계 최고의 아편 생산(2645 메트릭 톤)을 자랑하던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라오스, 태국, 버마, 베트남을 잇는 지역)에 이어 2위로 부상하게 된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아편 생산은 지난 1979년보다 무려 15배가 증가하여 세계 최고 수준이며 세계 아편의 93%를 공급한다.

 

 

 

                                          

 

                                                                          아프가니스탄 아편 경작지  

 

 

반소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아편 무역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구조를 따랐다. 

BCCI 은행(Bank of Credit and Commerce International)과 이란-콘트라 스캔들에서 드러난 것처럼, 구 소련군에 맞선 아프가니스탄 군사작전에서 미 중앙정보국은 이에 협조한 파키스탄 정부와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에게 현금을 제공했는데, 주로 이러한 지원은 아프가니스탄 마약 자금을 세탁해서 사용했다.

이러한 "더러운 돈"은 국제적인 상업은행들과 익명의 미 중앙정보국 소속 회사들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불법 마약 자금을 돈세탁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BCCI 은행(Bank of Credit and Commerce International)이다.

1980년대에 미 중앙정보국과 미 국방부 국방정보국(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은 비밀 작전을 위해 BCCI를 자주 이용했다. 

BCCI는 파키스탄 정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반소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BCCI 관리들은 파키스탄 카라치 항구의 세관을 실제로 통제하기도 했다. 

파키스탄 카라치 항구는 미 중앙정보국이 반소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위해 파키스탄의 정보부인 ISI(Inter-Services Intelligence Directorate)에 보낸 무기들이 도착하는 곳이다. 

미 중앙정보국이 파키스탄측에 이러한 물자 선적을 통보하면, ISI와 파키스탄군의 병참부서가 이들 물자들을 카라치항에서 인도받는다.  

미 중앙정보국은 이들 무기들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운반하는 트럭, 노새, 낙타같은 각종 운송에 비용을 지불하거나 무자헤딘 전사들의 훈련장을 건설하는데 마약 거래 자금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들 운반수단들이 다시 카라치 항에 돌아올 때는 아프가니스탄의 아편이나 헤로인들을 싣고 왔다. 

이들 마약들은 대개 미국으로 향하고 이들 마약을 판매한 자금은 다시금 무자헤딘의 군자금을 마련하는데 투여된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지역의 일부 헤로인 공장들은 직접적으로 파키스탄 정보부인 ISI의 통제하에 있었고, 이들 작전들은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 무함마드 지아 울 하크(Muhammad Zia-ul-Haq)에 의해 북서 변경주(Northwest Frontier Province) 군사령관으로 임명된 파즐 하크(Fazle Haq) 장군의 직접적인 보호를 받았다. 

결국 파키스탄 정부와 군당국, 재계도 이러한 미국의 아편 생산 정책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것인데, 이 때문에 지난 1993년 유엔 마약 위원회 (U.N. Commission on Narcotics) 파키스탄 대표였던 라울프 알리 칸(Raoolf Ali Khan)은 "파키스탄 정부내에는 마약 자금과 관련한 부패가 만연해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미 중앙정보국도 지난 1994년 미 의회 보고에서 "헤로인은 파키스탄 경제와 정치 시스템의 생혈(生血)이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반면에 파키스탄 정부가 이러한 아편 생산 및 유통을 적극 도운 결과, 파키스탄에서는 헤로인 중독자수가 날로 급증하여 1979년에는 한 명도 없던 헤로인 중독자수가 불과 5년만인 1984년에는 120만명으로 급증했다. 

이는 당시 전세계 헤로인 중독자 증가율에서 최고를 기록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파키스탄 주재 미국 마약 단속국(DEA) 당국은 이러한 거래에 대해 대규모 압수나 체포를 단행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추적해 온 알프레드 맥코이(Alfred McCoy)가 지난 1997년 8월 <Progressive>에 쓴 <Drug Fallout: the CIA's Forty Year Complicity in the Narcotics Trade>라는 기사에는 그와 1995년 인터뷰한 전직 CIA 아프가니스탄 공작 고위 책임자였던 찰스 코건(Charles Cogan)의 언급이 실려있다.

코건은 "우리의 임무는 가능한 최대로 소련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마약 거래를 조사할 시간이나 재원이 실제로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냉전까지 종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약 자금이 독립한 구 소련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발칸반도의 반군들을 지원하는데 계속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아프가니스탄 마약 산업의 온존은 미국의 적극적인 비호, 적어도 묵인을 상정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는 <Time>지 1991년 7월 29일자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실제에 더 가깝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에게 스팅거 미사일과 기타 군사 물자들을 공급하길 원했기 때문에 파키스탄의 완전한 협조를 바랬다. 1980년대 중반, 파키스탄의 미 중앙정보국 지부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지부였는데, 한 미국 정보요원은 'BCCI에 대해 미국이 수사하지 않고 있다면, 그건 미국이 파키스탄의 헤로인 밀매를 못본척하려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탈레반의 등장과 아편 금지 정책

 

 

1989년 소련이 철수하고 내전이 아프가니스탄을 또다시 황폐하게 만들던 1994년 즈음에 탈레반 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물론 이들 탈레반 역시 지난 반소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의 지원과 협력하에 형성된 세력이었기에 소련 철수 후 탈레반의 부상에는 미국의 협조와 묵인이 있었다.   
그러나, 탈레반은 자신의 엄격한 종교적 교리에 따라 유엔의 협조를 얻어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아편 생산을 금지하려했다. 
아프가니스탄 북부지역을 통제하던 군벌들(우즈벡족 출신의 악랄한 군벌 라시드 도스툼이 대표적)과 아프가니스탄의 빈약한 일자리는 이러한 탈레반의 노력에 어려움을 조성했지만, 2001년 북부동맹이 장악한 마자르-이-샤리프를 탈레반이 장악하면서 탈레반의 아편재배 금지 노력은 급격한 성공을 거두었다. 

탈레반이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한 2001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급격한 아편재배 감소(90% 이상 감소)가 일어난 해인데, 이 점은 2001년 10월, 미국의 아프간 침공이 있고 불과 몇 일만에 열린 유엔에서도 인정한 사실이다.  

유엔이 발표한 다음의 통계를 보아도 이러한 추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통계: <아프가니스탄 아편 재배 현황>

 

 

                                  년                           경작지(헥타르 기준)                    생산량(톤 단위)

                                 1994                                 71,470                                    3,400

                                 1995                                 53,759                                    2,300

                                 1996                                 56,824                                    2,200

                                 1997                                 58,416                                    2,800

                                 1998                                 63,674                                    2,700

                          1999                         90,983                            4,600

                                 2000                                 82,172                                    3,300

                          2001                          7,606                              185

                          2002                         74,000                             3400

                                 2003                                 80,000                                    3,600

                                 2004                                131,000                                    4,200

                                 2005                                104,000                                    3,800                                   

                          2006                        165,000**                         6,100**

 

 

                              출처: 유엔 http://www.unodc.org/pdf/afg/afghanistan_opium_survey_2004.pdf

                               ** 추산

 

 

이것을 경작지만을 기준으로 다시 작성한 그래프로 확인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래프: <아프가니스탄 연도별 아편 재배면적>

 

 

 

 

 

 

 

 

위의 통계와 그래프를 검토해보면, 탈레반이 강경하게 아편 금지 정책을 펼쳤던 2001년(통계상 적색표시)에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생산량과 경작지 모두에서 가장 급격한 아편 감소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탈레반을 축출하고 난 2002년부터는 오히려 아프가니스탄 아편의 경작지와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급기야 2006년(녹색 표시)에는 미국 침공 이전 아편 경작지 면적과 생산량이 가장 높던 시기(흑색 표시)를 가볍게 추월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점령이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재배를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이런 탈레반의 아편 금지 정책에 대해 침공 이후 미국과 UNDOC는 이러한 탈레반의 아편 금지가 국제시장에서 헤로인의 가격 상승을 목적으로 한 공급 축소 시도였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도 지난 2003년 10월에 <Deseret News>에 보도된대로, 파키스탄 주재 UNDOC가 탈레반이 아편을 비축하지 않고 있다고 보고하면서 별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물론, 실제로 이 당시 탈레반의 아편 금지 정책은 국제 시장에서 헤로인의 급격한 공급 부족을 야기했다.

헤로인은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였던 거대한 사업이었다. 

UNDOC가 지난 2003년에 발표한 통계를 보면,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아편은 1kg 당 350달러에 판매되며, 아프가니스탄 재배 농민들이 수확지에서 아편을 따서 받는 수입은 매년 10억 달러, 아프가니스탄 국내 운반책들이 받는 수익은 13억 달러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수익은 이들 농민들이 경작을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에 대한 고율의 이자나 생산비, 지역 유력자에 대한 보호비등을 지출하고 나면 거의 남는 것이 없다. 

반면에 이런 아편이 헤로인으로 가공되어 유럽이나 북미에 팔리게 되면 거의 100배의 가격으로 '튀겨지게' 된다.  

이 때문에 마약 생산과 운반, 분배에는 거대한 국제 기업들과 조직범죄집단, 금융 집단들이 지대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사업이 계속 이해 당사자들에게 거대한 이익을 안겨주려면 안정적이고 꾸준한 상품 공급이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탈레반의 아편 공급 축소는 국제적인 마약 거래 이해당사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었고, 이런 혼란을 종식시키고 다시금 마약 거래 루트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는 것은 석유 수송로에 대한 전략적 통제만큼이나 사활적인 것으로 부상한다. 

실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국제 아편 시장이 다시금 회복되었던 점을 상기해보면, 탈레반이 아편 재배를 금지시킨 것이 미군 침공의 한 이유이기도 하다는 분석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또한, 미국 정부는 탈레반이 아편 재배를 통해 군자금을 조달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이조차 설득력이 별로 없다. 

아편을 헤로인으로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런 작업을 과연 아프가니스탄의 폄범한 농부들과 탈레반 전사들이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헤로인을 만들려면 우선, 양귀비 수액을 모아서 아편 타르로 변화시켜야하고 이것들을 파키스탄의 비밀 공장으로 운반하여 첫번째 모르핀 성분으로 변환시켜야한다. 최종적으로는 정제(精製)과정을 거쳐 헤로인이 생산되는데, 이 과정에서 국경을 넘거나 수입 화학 약품이 동원되는등 매우 까다로운  일들을 거쳐야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나 군벌들, 지방 파키스탄 관리들의 완전한 협조가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헤로인 수출은 파키스탄 카라치 항구를 이용해야하는데, 이는 파키스탄 정부나 카라치 항구의 보호가 없이는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재배 지역을 살펴보면, 탈레반이 확고하게 장악한 쿠나르(Kunar), 페티카(Pektika),팍티야(Paktya) 같은 지역은 아편 재배 비율이 낮은 반면, 미국과 동맹군이 지원하는 군벌들이 장악한 지역은 오히려 아편 재배률이 급상승하고 있다.
이들 군벌들이 장악한 지역은 미군의 침공이후 아편 생산율이 무려 4400% 증가했고 수출은 60~70%가 증가했다.

실제 아프가니스탄의 GDP의 절반 이상이 바로 이 아편 거래에서 나올 정도이며,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주요한 자금줄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아편거래 대금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직접적인 현금 지원.)

흥미있는 것은 미군이 탈레반을 축출한 2002년 이후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아편 뿐 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헤로인 생산국이 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2009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헤로인의 3/4가 아프가니스탄의 헬만드주와 칸다하르주에서 나온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인 카르자이의 동생 아흐메드 왈리가 바로 칸다하르를 지배하는 통치자이며 아프가니스탄의 '마약왕'이다. 

(최근의 언론보도로 드러났다시피 그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었다.)  

이 점에서 매년 8000 메트릭 톤에 이르는 대량의 아편 생산과 해외 유출이 어떻게 가능한 지 실마리가 잡힌다.

단적으로, 이는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미국과 중앙정보국의 지원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미국이 아편 생산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군벌들을 아예 아프가니스탄 정부 요직에 임명한 것도 이것을 가능케한다. 

굴부딘 헤크마티야르(Gulbuddin Hekmatyar) 역시 CIA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콜 이 솔탄(Koh-i-Soltan)에 6개의 헤로인 공장을 소유했었다. 그는 미국이 지원하는 또다른 사령관인 물라 나심 아쿤드자다(Mullah Nassim Akhundzada)와 헬만드 계곡에서 생산되는 아편 통제를 둘러싸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북부는 압둘 라시드 도스톰(Abdul Rashid Dostum)같은 군벌이 아편을 통제하고 있는데 그 역시 미국의 동맹자이다.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의 최연소 국회의원이자 나토와 미군, 군벌들, 탈레반에 반대해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싸우고 있는 여성 국회의원 말랄라야 조야(Malalai Joya)는 <Foreign Policy In Focus>지 2009년 10월 16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산업은 미국 단독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마약 산업은 냉전 기간인 1980년대 이전에 시작되었는데,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은 무자헤딘의 통제하에 있는 지역에서 아편 재배를 확대하려 부심했다. 

이 때문에 이들이 마약 근절 노력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미군 점령하에 매년 아편 생산 수준이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은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이 마약 산업 근절에 그토록 진지했다면, [카르자이 대통령의 동생이자 '마약왕'인] 아흐메드 왈리 카르자이나 군벌들인 카심 파힘, 라시드 도스툼, 아타 무함마드, 다우드 다우드, 부르하누딘 라바니같은 자들을 아프가니스탄 정부 요직에 들여놓진 않았을 것이다.....실제 미국과 동맹국들(특히 영국)은 수 십억 달러에 이르는 마약 산업에서 거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 

이들의 은폐된 지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아프가니스탄은 그렇게 엄청난 양의 마약들을 생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불쌍한 아프가니스탄 농민들과 탈레반이 얻는 마약이라고는 기껏해야 거대한 대양의 물 한방울 정도에 불과하다.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작고 무식하며 퇴행적인 세력인 탈레반조차 지난 2001년에 그리도 쉽게 아편을 금지시키고 그 생산량을 겨우 185 메트릭 톤으로 줄인 마당에 40여개국이 지원하는 거대 열강이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생산을 중지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아프가니스탄에서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미국의 점령을 종식시켜야한다.....외국군의 점령과 이들과 연계된 군벌들의 할거가 계속되는 한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산업은 번창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아편 및 헤로인의 국제적 유통 경로

                              

 

심지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아편을 해외로 운반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8년 초, 러시아의 24시간 뉴스 채널인 <Vesti>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된 마약들이 미국 수송기에 실려 인접국인 키르기즈스탄의 칸치(Ganci)와 터키의 인키르리크(Incirlik)에 소재한 미 공군기지들로 운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간치 공군기지는 미국이 키르기즈스탄에서 임대했던 마나스(Manas)국제공항에 위치한 곳이다.) 

중앙아시아 전문 러시아 저널리스트인 아르카디 두브노프(Arkady Dubnov)도 익명의 아프가니스탄 보안 관련 소식통을 인용해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동남부에서 생산된 마약의 85%가 미국 항공기를 통해 해외로 운반되고 있다 보도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따금 국제적 의혹에 밀려 미-영 당국이 아프가니스탄 아편에 대한 규제정책을 펼치겠다고 하지만, 별다른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실제로 미국과 나토는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측이 아프가니스탄 마약 근절을 위한 협력을 제안했을 때도 이에 대해 진지하게 응하지 않았다.  

CSTO 사무총장인 니콜라이 보르듀자(Nikolai Bordyuzha)는 이런 제안에 대해 한 미국 장군이 “우리는 마약 근절을 위해 싸우는게 아닙니다. 그건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의 과제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런 마약 거래는 단지 아프가니스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제적 차원의 성격을 띄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되는 아편은 다양한 루트로 해외로 유츌되고 있는데, 가장 번번하게 이용되고 있는 곳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루트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란을 거쳐 터키-유럽으로 향하는 루트, 러시아 방향으로 가는 루트 등이다.

이들 루트들은 지난 2001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으로 인해 그 거래량이 몇 갑절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는데, 이러한 루트가 경유하는 국가들은 증가하는 마약 중독으로 인해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있다.

한가지 지적할 것은 동유럽의 코소보와 알바니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럽으로 마약이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면서 유럽 마약 거래의 중심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코소보는 마약 거래와 불법 무기, 돈세탁이 결합되어 이루지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이런 일을 서방의 지원을 받는 코소보의 '민족해방군'인 KLA가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특징적인 것은 코소보는 인종청소를 빌미삼아 나토가 세르비아를 폭격하고 세르비아의 대통령인 밀로세비치를 제거한 이후 미-영의 군대 주둔이 이루어지면서 서방에 의해 점점 군사화되고 있는 곳이란 점이다. 

이 점에서 마약과 관련한 중요지역은 예외없이 서방에 의해 고도로 군사화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한다. 

아프가니스탄은 물론이고 또하나의 마약 생산국인 콜럼비아 역시 미국에 의해 고도로 군사화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군 점령하의 이라크에서도 아편 재배가 점점 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군이 주둔한 지역들마다 아편재배가 느는 것을 우연으로만 보기에는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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