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신복의 자손들이 돌아와
에스라 2장 55절 – 63절 2024년 5월 5일 주일 오후 말씀지
영광에 합당한 영적 생활은 나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신 영적 자녀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하시려 어린이 주일을 지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포로전 자녀들을 타락의 길로 인도했던 부모들이 이제 포로생활로 잘못된 것을 깨닫고 주신 자손과 함께 본토로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아직도 주일도 모르고 새벽도 깨우지 못한 자들은 여전히 1.애굽에 2.광야에 3.포로생활에 있는 자입니다. 한 톨의 열매를 더 맺게 하시려고 하루 하루를 새날로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려 주일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후5:17-
그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거나 잘못 말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가 되어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1서4:6-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라고 환경과 물질을 주셨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니 고통 중에서 깨닫게 하시려고 에스라서의 말씀을 주십니다. 지긋 지긋한 포로 생활에서 50년 만에 돌아오게 하셨는데 먼저는 11명의 앞선 분들과 두 번째는 제사장들과 레위 계통의 사람들의 족장과 그 자손들을 돌아오게 하셨는데 오늘 이때에도 제사장이면서 레위 사람들처럼 직분을 받았으나 그 일에 올바른 충성(온전히 은혜로 여기고 감사로 그 일을 감당)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감사하며 일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벧전4:11-
오늘은 지혜의 대왕 솔로몬의 신복들과 그들의 자손과 어디에 속한 자손인지 모르는 자들도 돌아온 것을 나타내어 주시는데 이렇게 기록케 하신 것은 지금도 누가 영적 생활을 하고 있는지 1.어린양의 생명책 2.상받을 생명책 3.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다 기록한다는 것입니다. 계13:8-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들은 솔로몬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받는 기회가 다른 자보다 더 있었습니다. 그때에 받았던 말씀들이 포로 생활을 견디게 해주었고 이제 깨달아지는 은혜를 주사 제사장과 레위인과 함께 올라가야 한다는 감동이 온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의 감화와 감동의 역사가 있는 자들이 포로의 자리에서 놓임을 받고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겔36:24-
오늘도 에스라서를 주셔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을 때에 앞으로 포로가 되지 않게 하시고 이미 포로가 되어 고통 중에 있는 자는 그 신앙을 회복하게 하시는 역사기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55절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하소베렛 자손과 브루다 자손과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이름의 뜻은 ‘평화’ 입니다. 20세 어린 나이에 왕으로 세우셨는데 어린 나이니 내가 이 큰 나라를 감당할 수 없다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왕상3:9-
그때 하나님께서 아주 높이 세우고 지혜를 주셨는데 어떻게 교만해집니까? 무엇이든 내가 한 줄 알면 그때부터 교만의 시작입니다. 잠8:13-
교만(驕慢)은 자기가 잘한 일이 있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내어 높아지려는 것이고,
거만(倨慢)은 가진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자기가 나보다 크다고 생각하며 남을 업신 여는 것이며, 자만(自慢)은 내가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오만(傲慢)은 한 것도 없으면서 잘난 척하며 건방지고 까부는 것입니다. 시1:1-
지혜의 대왕인 솔로몬이 왜 교만한 자리에 떨어졌습니까? 가진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아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 만세’ 했습니다. 그러니 높아졌던 것입니다. 왕상11:9에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켰다고 하셨는데 부귀와 영화가 극에 달할 때 솔로몬은 정욕에 넘어졌습니다. 교만해지니 정욕에 넘어져서 자기 마음대로 한 것입니다. 그아버지 다윗도 평안할 때에 정욕에 넘어졌고 욥도 사람들 앞에 서면 칭찬을 받는 자였기에 자만이 커져서 교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깨닫게 하신 것이니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어느새 ‘내가’ 나오면 이미 교만해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징치를 받게 됩니다. 에돔 자손이 일어나고 느손 자손이 일어나서 솔로몬의 노년은 괴롭다가 끝이 났습니다.
왕상11:14,23-
그래서 노후에 기록한 전도서에서 헛되다고 말합니다. 중년에는 아버지를 통해 받은 말씀으로 잠언서와 아가서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고전 8:1에 지식은 교만하게 합니다.
솔로몬의 신복들은 솔로몬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 지혜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었던 자들의 후손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혜의 말씀을 받았던 자들까지 왜 멸망되고 사로잡혀 갔느냐? 는 것입니다. 이들도 깨달아진 말씀을 통해서 도리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평안할 때에 유다에 아마샤 왕도 교만해졌고 하나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왕하14:10-
솔로몬이 깨달아진 것으로 인해 교만해져서 이스라엘 나라는 두 나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시138:6에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 구석구석을 살피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합니까? 잘한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교만입니다. 솔로몬의 신복들은 포로로 잡혀가서야 그 자손들이 깨닫고 회개한 것입니다. 잠29:23-
하소베렛은 ‘서기’ 라는 뜻으로 사무를 전념한 자입니다. 브루다는 ‘곡식 낱알’ 이라는 뜻으로 한 톨의 밀알도 귀히 여긴 자요 한 영혼을 귀히 여긴 자입니다.
56절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다르곤은 ‘대단히 빠른 것’ 이라는 뜻으로 일하는데 민첩하다는 것입니다. 깃델은 ‘강대하다’는 뜻으로 남보다 모든 일에 강하고 담대한 자였습니다.
57절 스바댜 자손과 하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미 자손이니
스바댜는 ‘여호와는 심판하심’ 이라는 뜻입니다. 하딜은 ‘요동하는’ 뜻으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열심있는 일군입니다. 아미는 ‘노동자’ 라는 뜻입니다.
58절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이 삼백 구십 이명이었더라
59절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델멜라는 지역이름으로 ‘소금’ 이라는 뜻입니다. 델하르사는 ‘태양의 언덕’ 이라는 뜻입니다. 그룹과 앗단은 바벨론의 땅입니다. 임멜은 ‘새끼양’ 이라는 뜻입니다.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어디에 속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60절 저희는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도합이 육백 오십 이명이요
들라야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 는 뜻이요 도비야는 ‘여호와는 선하시다’ 는 뜻이요
느고다는 ‘분별함’ 이라는 뜻입니다.
61절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하바야는 ‘여호와는 숨기심’ 이라는 뜻으로 복음은 하나님 나라안에 살게 하시는 복으로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 마13:44-
학고스는 ‘가시’ 라는 뜻으로 반차를 따라 제사장 직무에 충실한 자입니다. 느3:21-
바르실래는 ‘철인’ 이라는 뜻으로 다윗이 정욕으로 넘어져 징계하실 때에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에 왕을 도운 자입니다. (삼하17:27-29) 왕궁에 돌아온 다윗이 도움을 준 바르실래를 왕궁으로 청하니 자기는 늙어서 왕궁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며 끝내 사양을 한 자입니다.
원로 목사들이 후임자들에게 그 교회를 맡기지 못하고 자꾸 간섭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나이가 들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물러나야 합니다. 바르실래 이름의 뜻은 철인으로 ‘무쇠처럼 강하다’ 입니다.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에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이름한 자라
62절 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그 전에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자가 바르실래의 딸과 혼인을 하고 바르실래의 직분을 받아 제사장처럼 살고 있었지만 63절에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제사장이 나타나기 전에는 제사장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였습니다.
63절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구약에 제사장은 아무나 직분을 받을수 없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올 때에 제사장 직무를 하고는 있지만 그의 조상이 확인되기 전에는 제사를 집행하지 못하게 했는데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 정확히 분별하는 도구인데 출28:30-
다윗 때에 사용하였습니다. 오늘날은 주시는 말씀을 참과 거짓을 분별하며 사는 자들이 왕같은 제사장 노릇을 하는 자들입니다.
진리의 양식을 받아먹고 훈련 연단을 거쳐 제사장 직무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르실래의 제사장들은 아직 그 뿌리를 알 수 없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오늘도 누구를 통해서 복음이 믿어졌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기쁨의 생활을 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