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 죄를 버리고 반응해야합니다.(출3:1-10)
2023, 12/31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출3:1-10절 말씀으로“하나님이 찾아오실 때 죄를 버리고 반응해야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오늘이 2023년 마지막 날이고 마지막 주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달려온 한해가 이제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려하고 있습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한데, 잘한 것도 있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그러나 못한 것도 많고,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후회의 순간도 있었을 것이며, 빨리 잊고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올 한해를 반면교사로 삼아 내년에는 후회하지 않고 좋은 추억으로 영원히 남기고 싶은 것들만 많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2절)
둘째로, 하나님이 부르시면 우리는 즉각 반응해야합니다.(4절)
셋째로, 하나님께 나아간 자는 죄의 신발을 벗어야합니다.(5절)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는 약한 자나, 아쉬운 사람이 먼저 찾아가고 사정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나님은 온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 세상 천하가 다 그분의 것이기에 하나님보다 더 높고 강한 분은 없습니다. 그러면 당연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맞는데도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정말 사정사정하는 것 같은 모습인데,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소유하시고 막강한 힘을 가지신 분이 왜 우리에게 사정할까요? 그만큼 우리가 대단한 존재일까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분 앞에 나아가 즉각적인 반응을 하여야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죄를 버려야하는데, 죄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오히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원리들을 잘 깨달아 내년에는 하나님의 귀한 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 왜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반응해야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2절)
본문 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아멘.
모세가 양들에게 풀을 뜯기느라 목초지를 따라 가다보니 어느덧 호렙산까지 가게 됩니다. 그러다 눈을 들어 주변을 보았을 것이고, 시내산중턱에서 떨기나무에 붙은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는 것을 본 모세가 너무도 이상해서 가까이가봅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꺼지지 않던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셨는데, 여기서‘여호와의 사자’는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종종 당신이 현현하실 때 사용하는 용어로써 바로 성자 하나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이렇게‘여호와의 사자’를 ‘여호와’로 하나님으로 칭하는 것을 볼 때 여호와의 사자는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를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호렙산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으로 인도하여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지으신 분입니다. 때문에 모든 것을 당신 맘대로 하신다고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모세를 시내산으로 오라고 통지하면 되는데도 하나님은 직접 모세를 만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행하신 끝에 그를 시내산에서 만나십니다.
모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 요게벳을 통하여 동족인 히브리인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자연스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에도 그가 하나님을 찾았다는 기록도 없고, 추측할 근거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신앙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에 대해 인정은 하지만 교회는 안 다니는 것과 같고, 또 교회는 나오지만 말씀과는 상관없이 내 생각이 우선이고,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는 종교인과 같은 경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랬던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가 결혼하여 그저 평범한 양치기로 살아가던 그를 하나님이 부르셔서 자신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불러주셔서 하나님나라백성으로, 당신의 자녀로 삼으셔서 새 삶을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 막살다가 지옥으로 끌려갔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셔서 구원하시고, 이 땅에서도 복을 주셨으니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우리의 본성이 얼마나 악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담이 죄를 짓고 나서 어떻게 했나요? 하나님을 찾아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나무사이에 숨어버렸는데,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셔서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서 그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아담을 찾아오셨고, 그를 구원하셨던 것입니다.(창3:9-21)
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우상의 땅 갈대아우르에 있을 때에 그를 먼저 찾아가 구원하시고, 하나님나라백성으로 삼으신 것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창12:1)
또한 구약의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하나님이 먼저 찾으셨고 불러주셨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해도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찾아간 경우는 아마 찾기 힘들 겁니다.
예수님도 12제자를 세울 때 그들을 먼저 찾아가서 하나씩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믿고 교회 나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모든 환경을 예수를 믿을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심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구원은 어림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처럼 항상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을까요?
이건 다른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바로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일4: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렇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삼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찾아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찾아오셨고,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우리말에‘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부모가 자식을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못 이기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식이기는 집이 있긴 한데 이건 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여러분!!! 아니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하시고 부족함이 없는 분이 무엇이 아쉬워서 당신의 독생자를 죽이시면서까지 우리를 찾아오셨겠습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마치 시댁을 쫓겨나는 여자가 돈도 뭣도 다 포기하고 오직 아기만을 데리고 나오는 것과 같은데 아이를 너무도 사랑해서 모든 걸 희생한 엄마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런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항상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그분의 은혜를 추억하는 올 한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부르시면 우리는 즉각 반응해야합니다.(4절)
본문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멘.
떨기나무가 불에 타서 사그라지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모세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자 그가 즉각적으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면서 응답합니다.
보통은 갑자기 누가 부르면 당황해서 본능적으로 누가 부르는지 확인할 것이고, 또 짧은 시간이나마 대답할 것인지 숨을 것인지를 생각할 뗀데 모세는 지금 부르시는 분의 위엄에 압도당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부르시는 걸 알고 그랬는지 즉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또한 오늘 모세처럼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순종할 마음으로 즉각적인 응답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반응하지 못하는 것은 죄 때문에 양심이 찔려 숨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건 문제의 해결책도 아니고, 하나님께 복 받는 방법도 아닙니다.
아니 내 주인이자 왕이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데 아담처럼 숨고 멀리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끝납니다. 그러니까 회복은 물론 정상적인 관계도 어려워집니다.
또한 하나님께 사명을 받기도 어렵고, 그분의 축복도 은혜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도 하나님 말씀에 즉각 순종하여 갈 곳을 알지 못하면서도 무작정 집을 나서 큰 복을 받았고(창22:1) 사무엘도 하나님이 부르는 세미한 음성에 반응하여 자다가 엘리제사장에게까지 몇 번이고 달려가는 반응을 하였습니다.(삼상3:10) 또한 하나님이 "우리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이렇게 말씀하시자 이사야 선지자가 즉각적으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며 대답한 것을 볼 수 있는데,(사6:8)
여러분!!!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 자유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의 최우선 순위는 하나님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할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은 물론이고, 우리 삶 전체를 주관하시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면 우리에게 최상의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우리 수찬이가 지지리도 말 안 듣는다고 지 엄마가 하소연했다던데 그러면 봉창터지는 거죠. 하나님도 우리가 말 안 들으면 아마 봉창 터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하나님의 메세지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시는지요? 물론 영적으로 둔감해서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자랑은 아니겠지요. 또 음성을 듣고도 확신이 없거나, 확신이 있어도 귀찮거나, 내 시간 쓰고 돈 쓸 것 같아서 가만히 있을 수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믿음의 선배들이 복을 받았던 것은 그들이 한 결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자 저들은 즉시 그물과 배까지 버리고 예수님을 따름으로 위대한 사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께 나아간 자는 죄의 신발을 벗어야합니다.(5절)
본문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아멘.
하나님이 당신의 부름을 받고 가까이 다가오는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데, 여러분,‘신’이 무엇입니까? 신’은 더러운 것, 똥오줌 가리지 않고 밟고 다니고, 부정한 곳, 추한 곳 어디든 다 다니는 불결한 것에 속한 물건입니다.
유대인들은 왼손이 부정하다고 화장실에서 뒤처리는 왼손으로 하고, 더럽고 나쁜 짓을 할 때도 다 왼손으로 하는 상황인데 신발은 오죽 더럽게 여기겠습니까?
신’은 종교적으로 죄악에 오염된 인간의 온갖 더러운 행위와 성품을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신발을 벗으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군대장관을 만났을 때 그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자 여호수아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신을 벗는 일이 있었습니다.(수6:15)
이처럼 신을 벗는 것은 영적으로 인간이 더러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결단코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관계가 회복되고, 관계가 회복되어야 주의 일도 감당하며 복도 받을 뗀데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담부부처럼 죄를 가지고 뒤로 숨으려고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깨끗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인생은 자신의 죄를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고, 쓰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받길 원한다면 먼저 죄 문제를 해결해야합니다. 그런데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경험하셔서 아시겠지만 죄를 지으면 즉각적인 통회자복이 잘 안 되잖아요. 그래서 아담처럼 숨게 되고, 교회를 피하게 되는데, 왜 우리는 이런 못된 것에만 특화되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만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당신의 독생자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처리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었고, 예배하러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 믿고 나서의 죄 문제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삶속에서 짓는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모세처럼 더러운 신을 벗어야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인데, 행3: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이렇게 말씀하셨고, 사55:7절에는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죄를 자복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정상으로 만들어 가셔야합니다. 그래서 항상 긍정의 마인드로 올 한해를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