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078]蘇軾(소식)7절 - 東欄梨花(동란이화)
東欄梨花(동란이화)
蘇軾 (소식)
梨花淡白柳深靑(이화담백류심청)
柳絮飛時花滿城(류서비시화만성)
惆悵東欄一株雪(추창동란일주설)
人生看得幾淸明(인생간득기청명)
배꽃은 맑고 희며 버들은 짙푸르네
버들개지 날릴 때면 배꽃은 성에 만발하네
슬프구나 동쪽 난간 한 그루의 흰 배꽃
살면서 맑고 밝은 저 꽃을 몇 번이나 볼 것인가?
이 시는 <동파전집(東坡全集)>에
‘화공밀주오절 동란이화(和孔密州五絕·東欄梨花)’라는 제목으로 실려있으며
소동파가 후임인 공종한(孔宗翰) 밀주지사(密州知州)의 시 오언절구에 답한 것이다.
소식은 혁신 정치 세력에 밀려 항주(杭州),
밀주(密州 = 현 산동성(山東省) 제성(諸城)),
서주(徐州 = 현 강소(江蘇)),
호주(湖州 = 현 절강(浙江)) 등의 지방관을 주로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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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柳絮(유서) : 버드나무의 꽃, 버들개지
○ 惆悵(추창) : 근심하고 슬퍼함
○ 淸明(청명) : 맑고 밝음. <청명절>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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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和孔密州五絕·東欄梨花
作者:蘇軾 北宋
本作品收錄於:《東坡全集》
梨花淡白柳深青,柳絮飛時花滿城。
惆悵東欄二株雪,人生看得幾清明。
** 二株雪로 표기되어있다.
소식(蘇軾, 1037년~1101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이다.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였다.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부른다. 현 쓰촨 성 미산(眉山)현에서 태어났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소동파의 시는 송(宋)나라 때부터 중국은 물론 고려나 요(遼)나라 같은
이웃 나라에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었던 만큼 독자의 수요에 부응하여
그의 시집 역시 송나라 때부터 시작하여 줄곧 간행되어 왔으며,
이 가운데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도 아주 많다.
소동파(蘇東坡)가 우리 문단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했다.
그러기에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세상의 학자들이 처음에는 과거시험에 필요한 문체를 익히느라
풍월을 일삼을 겨를이 없다가 과거에 급제하고 나서
시 짓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 소동파 시 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에 매년 과거의 방이 나붙은 뒤에 사람마다
금년에 또 서른 명의 소동파가 나왔다고 여긴다”라고 했고,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는
오로지 만당(晩唐) 시만 익혔고 고려 중엽에는 오로지 소동파 시만 배웠다”라고 했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과 동생 김부철(金富轍)의 이름이
소동파(본명 軾)와 소철(蘇轍) 형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소동파에 대한 우리 문인들의 추앙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은 소동파 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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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파전집]東欄梨花(동란이화) - 蘇東坡(소동파:蘇軾)|작성자 swings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