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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서는 아가서와 쌍벽을 이루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룻기서를 통해서 사랑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 어떤 말씀으로도 말씀의 서정으로 넘치는 사랑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룻기서는 주해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삶의 서정으로 이해하면 더욱 은혜의 서정으로 넘칠 것입니다.
룻기서는 공간과 시간의 정서가 묻어나는그 향기로운 밭의 동산에
삶의 정취로 가득한 여호와의 신앙이 말씀의 꽃으로 피어나고 아름다운 사랑의 줄로 엮어내는
감동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나안 땅의 베들레헴, 곧 에브랏은 유다 지파의 지경이요,
다윗이 태어나고 또 우리 주께서 탄생하신 곳입니다.
결과적으로 룻기서는 다윗의 위, 그 영광의 선포요,
장차 베들레헴 땅에 다윗의 혈통으로 오실 메시야 바라기입니다.
보아스와 룻의 만남은 기업 무를 율법적인 고엘 제도의 성취요,
그 고엘법은 이방의 빛이 되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완전 성취되어
천하만민이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영적 메세지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룻기서의 구속사적 이해는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에 접붙임이 된 돌감나무인 이방을 구원하는 메시야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게 하는 메시야 탄생의 전주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룻과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라는 말씀의 성취로 이루어진 사랑의 가정이요,
삶의 정취에 묻어난 말씀의 순종으로 아름다운 여호와의 신앙, 그 뜻을 이루는 감동의 네레티브입니다.
룻기서는 일상의 죽음을 심판으로 묻고
그 죽음을 딛고 선 산 사람의 그 희망으로 살아가는 네레티브를 귀납법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가정의 주도권을 가진 엘리멜렉은
베들레헴 땅의 가뭄으로 풍요로운 삶으로 꿈꾸며 모압 땅으로 갔습니다.
가정의 주도권을 가진 엘리멜렉의 선택은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뜻하지 않는 죽음이 찾아 들었고
가정의 중심이 된 두 아들, 곧 말론과 기룐은 자유 연애를 선택하여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가정의 주도권을 가진 두 아들의 선택은 행복한 사랑이 아니라 또 다시 뜻하지 않는 죽음이 찾아 들었고
이제 가정의 주도권을 가진 나오미는 베들레헴 귀향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나오미의 베들레헴 귀향길은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론의 죽음이라는 너무나 큰 댓가를 치른 참회의 길이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 온 나모미는 나오미가 아니냐는 떠들석한 동네 사람들의 말을 듣고
아름다운 그 이름 "나오미"를 버리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은혜롭고 사랑스럽고 감미로운 이름의 뜻을 가졌지만
마라는 괴로움과 쓰라림, 쓴 쑥과 같은 의미입니다.
나오미의 참회는 심판의 죽음을 딛고 깨달은 각성 그 자체였으며
참회의 선택, 그 앞길에 펼쳐진 인생은 오벳을 품에 안는 노년의 행복이었습니다.
나오미의 참회는
돈독한 싱앙이 발로였습니다.
☞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룻1:18-21)
풍족하게 갔다고 빈 손으로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는
참회의 선택으로 그 앞에 믿음의 길로 동행한 룻의 행보로 서광이 깃들었습니다.
나오미의 자부 룻은 시모를 홀로 돌아가게 하지 않고
믿음의 길로 동행하여 새 삶의 길을 열었습니다.
시모의 사랑에 감동을 받은 룻은
이방 여인으로 놀라운 믿음의 고백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복이 되었습니다.
☞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룻1:15-17)
이렇게 나오미와 룻은 시모와 자부로 같은 믿음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아름다운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시모 나오미의 자부 룻에 대한 사랑은두 아들을 잡아먹은 모압의 여시로 보지 않고
가정의 모든 불행은 자기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남편 잃고 두 아들 마저 잃었지만모압의 자부 룻과 함께
모진 비난과 조롱을 각오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당장의 끼니를 위해
보리 추수하는 밭으로 가서 보리 이삭을 줍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어지는 룻의 보리 이삭 줍기는
베들레헴에 울려퍼진 보리 이삭으로 시모를 봉양하는 미덕으로 회자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보리밭의 서정은롯과 보아스의 사랑을 싹트고
열매맺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마침 룻이 보리 이삭을 줍든 밭은 보아스의 소유였고
보리 이삭을 줍는 룻을 발견한 보아스는 일꾼들어게 호의를 베풀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보아스의 호의를 받은 룻은 보아스를 만나자 엎드려 절하며 은혜를 감사하였고
보아스는 룻에 대한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보아스는 룻에 대하여 아름다운 소문만 들었고
그 선행의 화두는 위대한 사랑을 싹트게 하였습니다.
비난의 말은 증오와 미움을 낳지만
칭찬하는 아름다운 말은 좋은 관계를 맺습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비난의 말은 서로에게 큰 상처가 되고
부부지간에도 비난의 말은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됩니다.
낯선 사람에게 칭찬하는 말은 좋은 관계로 발전하지만
친구일지라도 나쁜 말은 우정이 깨어지고 친구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합니다.
보아스는 룻에 대한 정확한 정보로 얼마든지 비난의 말로 룻으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지만
믿음으로 성숙한 보아스는 아름다운 말로 낯선 이방 여인을 감싸안았습니다.
룻에 대한 보아스의 호의는 칭찬의 말뿐만 아니라
다른 데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계속 이삭을 줍게 하였고
일꾼들에 일부러 곡식단을 떨어뜨려 이삭을 많이 줍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하는 일꾼들과 함께 음식을 베불리 먹게 하였고
룻은 그 남은 음식으로 시모를 공양하였습니다.
☞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룻2:3-17)
보아스는 모압 여자 롯에게 딸이라고 말하였고
룻은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며 감격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보리밭의 서정은
룻과 보아스의 은혜와 감사로 순환하는 소통과 공유의 정감으로 넘쳤습니다.
룻에 대한 보아스의 호의를 모두 들은 나오미는
보아스를 기업무를 자로 결단하고 자부 룻을 보아스의 발치에 밀어 넣었습니다.
보릿단 사이에서 노숙하던 보아스는
자가다 발치에 어떤 여인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네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 룻은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고 말하며 보아스의 처분을 기다렸습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기업무를 자에 대한 이해를 하였으며
절차를 밟아 마침내 기업무를 자가 되었고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오벳을 낳았습니다.
룻기서는 짧은 성경이지만
계명으로만 있는 모세의 율법을 삶의 현장에서 역사적으로 이루었으며
베들레헴의 기업무를 자에 대한 그 말씀의 성취는
믿음으로 낳은 이방 여인의 아들에 대한 다윗의 혈통과 그 언약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암시가 메세지로 녹았습니다.
특히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의 삼겹줄을 엮어 낸 룻기의 저자는
기업무를 자에 대한 말씀의 순종과 일상으로 만나는 여호와의 신앙의 그 축복을 강조하였습니다.
☞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룻1:6)
☞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룻1:8-9)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룻1:21)
☞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룻2:4)
☞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룻2:12)
☞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룻2:20)
☞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룻3:10-11)
☞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룻4:12-17)
이렇게 룻기서는 여호와의 복으로 축복하는 일상의 삶, 그 신앙의 정취로 넘치며
말씀의 순종과 여호와의 복으로 그 은혜의 서정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하나님의 작은 마을 동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