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네가 진정으로 그 일을 하고싶다면
하여라.
열심으로 하여라.
아들아
네가 진정으로 그 일을 하고싶다면
하여라.
나는 믿는다 그 일이 옳다는 것을
아들아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여라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단하지 말고
열심으로 하여라.
열심히 하여라.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한다는 것을
다 지난 다음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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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남부 도시 타이난은 정성공이 처음으로 정착한 마을이다.
특이하게도 정성공은 중국 공산당, 대만 그리고 일본에서도 영웅으로 대접받는 인물이다. 1600년도 중반 명나라가 멸망하고 만주족인 청나라가 새워지던 시대 인물이다. 더욱이 정성공은 콕싱가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알려진 몇 않되는 명나라 장군이다.
간단히 살펴보면,
어머니는 일본인이고 7세까지 일본에서 성장했다. 중국인인 아버지 정지룡은 성공한 상인이며 해적이었다고 한다. 명나라 말 청나라에 쫓기어 남으로 피신한 왕을 도와준 일로 관직을 얻었으나 결국 왕을 배신한 인물이다.
아버지는 정성공에게 멸망해가는 명나라를 버리고, 청나라를 섬겨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정성공은 아버지 말을 듣지 않고 명나라 왕을 섬기며 청나라와 투쟁한다.10만대군을 동원 할 정도로 초기에는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대세는 이미 기운 상태였다.
그래서 배후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대만으로 넘어 왔다.
이때 대만은 네델란드인이 지배하는 곳이였다. 네델란드와 교전끝에 1661년 그들을 물리치고 이곳 타이난을 거점으로 본토을 수복할 꿈을 세우지만 다음해 1662년 38살의 젊은 나이에 죽는다. 아들이 아버지의 유업을 받들어 청나라와 대립하지만 결국 20년을 버티지 못하고 청나라에 귀속된다.
정성공은
대만에서는 국가의 선조로
중국에서는 외세를 물리친 장군으로
일본에서는 일본의 영토를 넓히려고 한 장군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9시30분 숙소 앞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타이중은 모든 버스요금이 10키로 이내는 무료이다.
4일간 타이중에 채류하는 동안 사용한 버스요금은 단 3위안이 전부이다.
무지개 마을을 갈 때 10키로가 넘는 부분에 대해 부과되는 요금이 우리돈으로 120원인 셈이다.
기차역 앞 Ubus 터미널에서 타이난으로 가는 버스를 탑승한 시각이 10시18분이다. 타이중에서 타이난까지 3시간 거리를 밭과 논 그리고 과수원을 보면서 왔다.
아마도 대만의 곡창지대가 여기인 모양이다. 버스터미널에서 어렵지 않게 숙소를 찾았다. gather hostel은 한국인 청년과 대만 아가씨가 공동으로 경영하는 작은 도미토리이다.
각층에 돔이 2방씩 4층인 건물 전체를 호스텔로 운영하고 있다.
남자 주인은 러시아로 여행을 떠났고 , 대만인 여자 주인은 낮 동안 다른 직장에 다닌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자아이와 인도 남자아이가 숙소일을 보고 있다.
짐을 맡기고 공자묘가 있는 공묘로 갔다.
대만에서 최초로 새운 공묘라고 한다.
1665년 정성공이 죽고 아들의 지시에의해 만들어진 학교인 셈이다.
대만 세 도시에서 처음 찾아간 곳이 공교롭게도 모두 공묘이다.
주변에 옛건물들이 많다.
특별히 안내문이 없어 자세한 내역을 알 수 없었지만 귀가하는 짧은 거리에도 유적같은 느낌이 드는 건축물이 많았다.
4거리,5거리는 보았어도 정확하게 대로 7개가 만나는 회전식 7거리 중앙공원.
공묘. 1665년에 세워진 대만 최초의 공자묘이다.
4층 8각정은 공부을 잘하게 해달라고 비는 곳이라고 한다.
미술관 건물이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층의 구별이 없이 외부로 4층까지 오를 수 있게 작은 계단 공원이 있다.
안쪽에 묘셔진 인물이 정성공이다.
대만,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영웅으로 추대 받는 특이한 인물이다.
개인 박물관이라고 소개하는 곳은 넓은 공간에 정원이 있고, 야외 공연장이 있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도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마치 인도 힌두교 사원에 들어 온 느낌을 받았다.
수많은 신을 모시는 음침한 분위기가 귀신을 부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