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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는 ‘기도의 역사’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은 기도를 통해 이루어 왔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할 수 있기에 기도의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신학박사라 할지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로 알 수가 없고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이 능력있게 귀히 쓰신 종들은 모두 무릎 꿇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에 보면 한나는 자식을 못 낳아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손가락질을 받으며 모멸감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특히 대표적으로 자신을 괴협혔던 브닌나에게 강한 모멸감을 느낄 괴롭힘을 당하고 삶의 의욕마저 포기할 만큼 고달프게 살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는 이런 절박한 인생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와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생활중 응답을 확신하게 되는 일을 경험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며 근심빛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불임이었던 몸이 치유받았고 출산하게 되고 믿음의 어머니라는 칭송을 받을 위대한 선지자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런 기도의 비밀을 깨달은 죠지 뮬러는 생애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또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 오지를 중심으로 사역하면서 ‘faith mission’ ‘믿음 선교’라는 패러다임을 만들며 은혜의 선교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필요한 것을 기도하면서 채워나가는 신앙, 믿음으로 기도하며 살아가는 선교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E. M. 바운즈의 ‘기도의 강자’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드리는 기도는 승리의 전주곡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하시는 기도의 강자가 되어야 한다. 기도는 사명을 이루는 가장 강력한 하늘의 무기이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기도할 때 일어난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7장 7절에서 12절 말씀은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자격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기도응답의 복을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며 기도로 모든 삶의 역경을 이겨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응답의 비결, 첫째는 적극성과 간절성입니다.
마태복음 7장 7, 8절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인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특권 중에 가장 큰 특권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반드시 결과물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적극적인 기도 자세와 내적 확신이 무엇일까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입니다. 여기 ‘구하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기의 필요를 겸손히 아뢰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하는 것’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라면 ‘찾는 것’은 기도에 뒤따르는 적극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찾은 후에는 두드려야 합니다. ‘두드리라’는 말은 문이 열릴 때까지 집중적인 영적 씨름과 노력과 인내를 말합니다. 우리는 ‘내가 생각만 해도 내가 기도했다고 느끼며 내가 생각했으니 이 생각을 하나님께서 들어 주셔야지’라고 착각합니다. 물론 기도는 길을 가면서도 할 수 있고 눈을 뜨고 일하면서도 할 수 있고 묵상으로도 할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그냥 생각한 것이 하나님앞에 기도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찾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원하십니다. 진정 간절함이 있고 기도의 응답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목소리를 높여서 부르짖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체로 우리가 조용히 묵상하듯이 읊조리며 기도하면 기도를 시작하고 채 5분도 안되어 곧 잡념이 들거나 졸음이 찾아옵니다. 성경에는 목소리를 내서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말씀이 수 백번 나옵니다. 그래서 간절함으로 소리내어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리내서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 성령 충만과 여러 가지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목소리내여 기도하는 것만 바른 것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간절함과 확신이 있다면 부르짖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연스러운 간절함의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도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모르시는 것이 없고 우리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시는데 왜 꼭 기도해야만 응답해 주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채워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지만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 예수님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예레미야 29장 12,13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사야 58장 9절 상반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형편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그때그때 주시면 되는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가 꼭 기도해야 주신다고 하시는거지?” “왜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하시는건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간절함을 원하십니다.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자녀들도 용돈이 떨어지거나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없으면 연락조차 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부모라면 그런 자녀의 상황을 알아서 미리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좀 서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라도 나를 찾아주면 좋을텐데 부모를 나 몰라라 하며 연락조차 끊고 지내고 자기 스스로 다 할 수 있다라며 생활하는 자녀를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부모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함을 표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의 시간, 기도의 장소를 준비하고 그 자리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음성이 나오고 간절히 기도하는 행위가 보여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다니엘 6장 10.11절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다니엘의 삶을 아실 것입니다. 다니엘의 기적을 아실 것입니다. 다니엘의 형통함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니엘의 삶은 이렇게 기도에 목숨을 걸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기도응답의 방법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 4장 2절에서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며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곧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무슨 일을 행하시길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일이 우리 성도들을 통해서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기도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간절히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절실하게 찾고, 구하고, 두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절실함이 있어 적극적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를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응답의 비결, 둘째는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확신입니다.
마태복음 7장 9절에서 11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는 항상 우리가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기도에 대해 선언하신 내용은 우리가 기도한 것은 100%응답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끼지 않고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대로, 찾는 대로, 두드리는 대로 다 허락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고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선한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4절에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말씀하셨고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내가 기도했는데 응답을 주시지 않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관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내 기도의 문제를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자신의 관점에서 우리가 응답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사실은 분명하게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누차 말씀을 선포하면서 기도에 대한 응답은 흔히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잘 아는 응답 “Yes!” ‘그렇다’라는 응답입니다. 지금 당장 응답이 필요하고 기도 내용 그대로 들어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할 때 주시는 응답입니다. 두 번째는 “Wait!” ‘기다려’라는 응답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우리에게 유익하지만 지금보다 더 필요하고 적절한 시간이 되었을 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다림을 통해 신앙의 성숙이 일어나고 기다림 속에서 완전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응답입니다. 세 번째는 “No” ‘안돼’라는 응답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 응답이고 바른 응답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유지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쓰지도 못할 것이면서 그냥 달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당장 필요하다고 사달라고 해서 사줬더니 몇 번 안 쓰고 버려버리는 물건들이 참 많습니다. 혹은 자녀들이 사달라고 하지만 그것 사줬다가는 큰 사고 칠 게 분명하니 사주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자녀들은 분명히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녀에게 분명 해가 되는 것이 될 때 우리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는 자녀가 떼를 쓰고 졸라되어도 분명하게 “안돼”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돌과 뱀이 되는 간구일 때 우리 주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큰 사랑입니다. 어느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세상의 부모들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럼에도 그 인간이 자기 자식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줄 줄 압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냐?며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 인간의 본성으로 빗대어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본성이 악한 존재인 이 땅의 인간들도 자기 자녀에 대해서는 ‘기꺼이 가장 좋은 것’으로 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실로 온전한 선을 가지고 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 믿는 백성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시편 34편 10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가장 좋은 것을 주셨고, 현재도 주시고, 앞으로도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좋은 것’이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빌딩일 수도 있습니다. 통장에 가득 들어있는 잔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건강의 복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잘되는 복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리는 온갖 풍요로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우리의 상황속에서 가장 선하게 우리에게 부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할까요?
야고보서 4장 2,3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재력의 복을 받고 우리가 건강의 복을 받고 우리가 자녀가 잘되는 복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멸망과 죄악으로 떨어질 것을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을 아신다면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에게 그것을 주실까요? 우리가 부모라고 한다면 내가 자녀에게 가산을 물려주었을 때 우리 자녀들이 그 자산으로 부모를 모욕하고 부모를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 것을 안다면 자녀가 자신에게 물려줄 유산을 미리 빨리 달라고 할 때 과연 바로 줄 부모가 누가 있을까요? 결국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자신의 명예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사용하며 하나님을 외면한다면 하나님은 그 복을 안 주시는 게 오히려 복이 아닐까요?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구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하고 난 후에 성급하게 그 응답을 기대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뜻과 판단대로 속히 응답되길 소망하지만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형편과 처지를 가장 잘 아시기에 기도의 응답이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어떤 기도는 우리가 기도하다가 전혀 그 기도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을 때쯤 오히려 기도가 응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삶속에서 가장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응답의 때를 결정하시고 그 때까지 응답하시지 않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직 응답받지 않았다면 아직 우리가 응답받을 때가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에 우리에게는 최선을 다해 기도한 다음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그 때를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확신하며 때를 기다리며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며 믿음의 간절함이 더 커지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응답의 비결, 셋째는 바른 섬김, 올바른 대접의 가치관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우리가 믿는 신앙은 하나님과의 종적인 관계와 사람과의 횡적인 관계가 제대로 서야 바른 신앙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산상수훈의 말씀을 살펴보면 거의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주시는데 우리는 이 본문을 보며 사람들에게 잘 해야 우리가 바른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성경을 믿고 살아온 수 세기의 사람들은 이 본문을 성경의 ‘황금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신앙의 보석이라고 지칭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100%응답하시지만 우리가 이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참 신앙인으로서의 삶이 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응답받을 합당한 신앙적 삶이 필요하고 그것은 사람들을 잘 대접할 때 그렇다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본문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여기서 ‘대접’이란 우리들의 개념으로는 주로 먹는 것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내가 대접을 받고 싶거든 먼저 남에게 대접하라는 뜻으로 들리게 됩니다. 본래의 의미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가끔 번역상 매끄럽지 못한 부분으로 인해 본래 의미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동번역으로 이 본문을 보면 “너희는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 주제는 응답받는 기도에 대한 문제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만날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앙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말씀을 먼저 주시면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람에게로 이어지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람에게도 대해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이 말을 신학적으로 바꾸면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마음을 돌려서 대접하는 마음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즉 내 자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짊어지라는 명령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과 같은 중요한 가치관입니다. 내가 내 입장에서 요구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이 기분상하게 되는 일이 참 많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대접받으려고 하니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기적으로 보게 되고 차후에는 어떤 요구도 잘 들어주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일에서부터 내가 남을 잘 대우해 주고 귀하게 여겨줄 때 내가 더 대접받게 되는 일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뭔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을 인정하고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해며 먼저 그들을 존중하고 세워줘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을 ‘황금률’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바로 십자가의 원리, 하나님과 사람과의 종적인 관계, 사람과 사람사이의 횡적인 관계에 대한 설명이 이 본문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3~5절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섬겨주며 하나님의 참 사랑을 나눠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리이고 십자가의 죽으심이고 십자가의 헌신입니다. 그 심령이 될 때 우리는 기도응답의 실제적인 체험을 매일매일 경험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기도응답의 삶을 살아가기에 합당한 십자가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헌신을 닮아갈 때 정말 기도의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앞에 헌신하며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고 나눠줄 때 믿음의 역사를 보여주시는 분이심을 깨닫고 참 십자가의 인생, 십자가 신앙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이사야 49장 14,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었다”라고 말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낳은 육신의 어머니가 아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을 혹 잊을 수 있을지언정 우리 하나님께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응답하시고 구하는 것, 두드리는 것에 대해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항상 우리가 기도의 계획을 세우고 기도의 제목을 찾아 간절히 구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은혜를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응답을 느끼며 항상 매일 매일 기쁨이 충만한 얼굴로 살아가며 주변 사람들이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의 생활모습속에서 간증거리 넘치는 우리의 신앙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기도하며 기도의 역사를 체험하며 내 삶 자체가 기적의 인생인 것을 느끼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삶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허락된 특권입니다. 우리는 이 특권을 누려야 합니다. 이 특권을 가지고도 사용하지 못해 쭈굴한 인생, 힘든 삶, 날마다 불평과 원망이 앞서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지 마시고 이 기막힌 기도라는 백지수표, 이 기막힌 기도라는 특별한 권리를 누리며 기도의 역사를 체험하고 우리의 모든 삶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임재속에서 항상 은혜충만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