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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일서 3 장)
성경말씀 읽기는
반드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로 연결 되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의 지식 없이는 믿음은 결코 생겨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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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방향이 필요합니다.
나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향하는 것과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내 속으로 깊이 들어가므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면 나를 초월해서 주님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로 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깊이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의 간절한 열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대충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서도
자부심을 느꼈던 사람이 이제는 온전히 순종하기 전까지는
결코 마음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깨어짐의 이유가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깊이 살피고 예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그 사람의 마음은 물댄 동산과 같아서
각종 아름다운 삶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솟아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샘의 근원을 생수로 가득 채우는 경험을 할 것입니다.
1. 사랑으로 자녀됨.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한일서 3 :1)
우리는
전에 죄인이요
사망 아래 있던 사람이었고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한
사랑으로 사랑하심으로써 구원을 받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큰 복이며 큰 특권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의 이 복과 이 특권을 알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얻은 의도, 영생도, 하나님의 자녀 됨도 알지 못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신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거나 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재벌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 신분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알아주는 신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대해
세상은 철저히 외면합니다. 오히려 조롱하기까지 할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았더라면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복, 곧 성도들이
받아 누리고 있는 구원의 복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한일서 3 :2)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장래 영광의 모습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나타내심이 될 때 즉 그가 다시 오실 때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그와 같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의 모습을 보듯이, 우리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2. 소망과 삶.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한일서 3 :3)
구원받은 성도들은
주의 재림과 그때 이루어질
영광스런 몸의 구속(救贖)과 변화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는 천국 백성답게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는 의인답게, 영생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는 영생할 자답게 죄와 상관 없이 살아야 합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요한일서 3 :4-5)
불법(不法)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반대하고 거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해 오셨고 그 일을 이루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더 이상 범죄치 말아야 합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3 :6)
구원받은 자는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누가 죄 가운데 머물러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법적이고
이론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실제적이고
체험적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실제로 심령과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3. 마귀의 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요한일서 3 :7-8)
예수님의 의로움은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 있는 신자라면 예수님에게
순종을 배울 수 있고, 신자에게서는 순종이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세상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교제가 단절되고 생명에서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마귀의 일은 단순히 선악과를
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에 머물러 있는 인간을 하나님과 단절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에서 멀어지게
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잘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두게 한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꼐로서 났음이라"
(요한일서 3 :9)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하나님께서 주신
씨 곧 말씀과 성령을 마음 속에 심었습니다. 씨는 생명의 근본입니다.
씨를 잘 키워,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 밭이 좋아야 합니다. 항상 겸손하게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며 기도로 깨어 있어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야만 내 안의 생명의
씨를 잘 자라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우리의 피가 되고 살이 되도록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들 때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이기는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단의
자녀로 삼고자 하는 죄짓는 유혹에서 벗어나 의를 행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게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씨를
받고도 키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한일서 3 :10)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합니다. 의를 행하지
않거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입니다.
5. 가인같이 하지 말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요한일서 3 :11-12)
요한은 옛날 가인의
예를 들면서 우리가 가인같이 형제를
미워하고 죽이는 악을 행치 말고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요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것을 잘 증거하는 표가 됩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일서 3 :13-15)
사도 요한은 세상이 신자들을
미워할 때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백성된 신자들을 미워하고 또 서로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서로 미워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고 세상에 속한 자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의 구원을 얻은 자들이 아니고 사망에 거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예수님도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움이 마음속에
있으면 형제에 대한사랑은 없어지고, 허물과 연약함만 보입니다.
그리고 허물과 연약함을
덮어주기보다는 들어내어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게됩니다. 이러한 것은 인격 모독으로 영적 살인을 하는 것입니다.
미움은 남도
죽이고 자신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해야합니다.
6. 형제 사랑.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일서 3 :16)
형제 사랑의 방법은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우선 주님의 모범을 따라
형제를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합니다.
즉 참된 사랑은 자기 목숨까지 버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 :13)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확증이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가장 큰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합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지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일서 3 :17-18)
사도 요한은
또한 세상 재물을
가지고 궁핍한 형제를 돕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우리가 받은 자들이라면 우리는 참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목숨까지 형제를 위해 버리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재물로 궁핍한 형제를 구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7. 책망과 담대함.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요한일서 3 :19)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함으로써 진리에 속한 줄을
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은 진리에 속한 자들에게서만 보여질 수 있는 증거물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진실하게 형제를
사랑할 때 우리가 진리에 속한 자임을 알게 된다고 증거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때 진리에 속한 자임을 스스로
알게됩니다.진실한 형제 사랑은 진리에 속한 증거이며 미움은
세상에 속한 자, 비진리에 속한 자, 사탄에게 속한 자의 표입니다,
사랑은
교회에 속한 자,
생명 안에 있는 자, 진리에 속한 자, 하나님에게 속한 자의 표입니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요한일서 3 :20-21)
사람은 스스로를 책망할 줄 압니다.
‘내가 이래서야 되겠는가?’라는
책망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책망할 줄은 알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즉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정한다
할지라도 스스로 느끼고 인정하는 죄의 깊이는 너무 얕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으면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과 평안과 담대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한일서 3 :22)
사도 요한은 순종의 또 하나의
결과로서 기도의 응답에 대해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응답에 대해 가르쳐 주시면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시기를,"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와 간구에 대해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원하고 기대한다면 먼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범죄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8. 신자와 성령.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한일서 3 :23)
사도 요한은 우리가 따라야 할 하나님의
계명을 두 마디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요, 둘째는 그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에게
선언하신 가장 긴급하고 가장 중요한
내용은 무엇보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의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모든 계명을 요약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 (한일서 3 :24)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주 안에 거하고 주께서도 우리 안에 거하심을 안다고 증거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그의 계명으로 말씀하는
것은 계명이 믿음과 사랑 두가지가 서로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곧 형제 사랑이며 형제 사랑이 곧 믿음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이 없는 형제 사랑은
사랑이 아니며, 형제 사랑이 없는 믿음 역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알고 그 일을 믿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삶 가운데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이 생길 때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 마음속에
평안을 주시고 모든 무거운 짐들을 주님께로
옮겨 주신다고 약속하셨음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의 창문은 생명의 문이요
유일한 소망의 문인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비록 이 땅에 육신을 가지고 살고있지만
우리는 하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늘 마음에 새기며 기도로 세상을 이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12. 11.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