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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신세계에 대한 강한 믿음을
기르십시오
연구기사19
요점: 1 믿음이 약해지지 않게 하려면 신세계가 곧 올 것이라는 분명한 증거를 정기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2 (1) 대속에 관해 묵상하고 (2) 여호와의 능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3) 영적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3 신세계가 매우 가깝다는 믿음을 기른다면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강한 믿음이 있다면 하느님의 약속들이 성취될 것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4 강한 믿음을 기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대속에 관해 묵상하는 것입니다. 5 그분은 전능한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을 하신다고 해서 놀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6 믿음이 강해지면 다른 사람들도 신세계에 대한 약속이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도록 더 잘 도와줄 수 있습니다. 7 강한 믿음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영적 활동은 개인 연구입니다. 8 “조금만” 있으면 “올 이가 도착할 것이며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히브리서 10:36, 37) 9 그날이 오기까지 최선을 다해 강한 믿음을 기르십시오. |
비평: 1"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는 표현은 여전히 그들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않고 반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슬기로운 자는 경험을 통하여 오류에서 벗어나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 오류를 반복한다. 그래서 워치타워 법인격(이사들)은 악하고 게으른 종의 집합체이다. 2 워치타워 법인의 가르침은 신세계가 이루어지는 시간을, 기차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여름이 지나면 가을)으로 착각한다. 바울의 말을 완전히 곡해하였다. 바울은 마지막 때가 가까왔으니 살림살이를 정리하여 워치타워 영업에 적합하게 하라든지, 학업을 그만두게 한다든지 보험계약을 해지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갖게하거나 행동을 촉구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울의 말의 본뜻은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여러분의 삶이 마지막 후에 있을 자유와 평등의 시대에 맞게 지금부터 그것을 누리라는 뜻이다. 가진 자는 없는 것처럼 가난한 자는 부한 것처럼 평등의 정신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부한 자라고 생각하면 자기의 재물을 나누어 줄 수 있고, 종살이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세상의 직분을 누리는 사람과 동등하다는 생각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이란 악한 제도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지 각종 문명과 문화가 단절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후에 있을 더 나은 제도를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또한 각종 산업 현장에서 필수적인 노우-하우들을 습득해야 하는 것이다. 재산을 정리하고 수술을 미루고 보험을 해약하고 학업을 중단시키는 것과 같은 일들은 워치타워의 잘못된 해석과 악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악한 생각이란 워치타워 법인의 확장을 위해 여호와의 증인들을 착취하겠다는 심보이다. 그래서 학업을 그만두고 그 시간을 워치타워 운동에 바치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판때기 장사나 하면서 워치타워 운동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악한 생각인가? 만일 워치타워가 진정으로 그 성원들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세상의 방식에 물들지 않는 직장을 만들 것인지를 고심할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공동직장을 중심으로 형제 사랑이 돈독해지며, 사회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이 세워지는 것이다. 떡이 오면 먹을 수 있다고 동네방네 아무리 떠들어봐야 떡이 없는데 어떻게 나누어 줄 수 있겠는가? 워치타워 운동이란 바로 그런 허상이다. 그 이론은 벌거숭이 임금님의 옷이요 사막의 신기루이다. 3,8 바울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 바울의 시대에는 마지막 때가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으나 우리 시대에서는 마지막 때가 한참 멀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왜 그러한가? 마지막 때라는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예수께서 다시 오시어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순서가 바뀐다. 우리가 모든 것을 준비하고 사물의 제도를 바로 잡을 때에, 예수는 다시 살아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예수께서 몸으로 살아 계신 것이 아니라, 그를 구주로 인정하는 모든 사람들의 정신 가운데만 살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다시 육의 몸을 입고 재회를 하기 위해서는 부활이 실제적으로 가능한 시대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므나의 비유에서 알려주듯이 그가 죽어 돌아 올 수 없다는 점을 먼 나라로 여행을 가신 것으로 비유하였다. 출판사인 워치타워가 자나깨나 마지막 때가 가까왔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 이유이다. 그것은 [사탄법인 워치타워 성서 및 책자 협회[를 확장하기 위한 것 뿐이다. 오직 그 법인체를 위하여 그럴싸한 좋은 말로 포장하여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법인격은 사실상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다거나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난다거나 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일반 여호와의 증인들을 사업 수단으로 착취하려고 구호로 외치는 위선일 뿐이다. 그 법인격은 마지막이 코 앞에 다가왔다고 외치면서, 호텔을 매입하고 부동산을 늘리는 데 열중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워치타워의 이중적 인격이 곧 우리가 신세계를 부인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세계에 대한 희망은 모든 철학사에서 나타나며, 성경의 중심 구원 사상이기 때문이다. 4 대속의 교리를 자기 죄를 용서받는 편리한 교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교리는 유대문화를 배경으로 나타난 것이며, 동물희생 대신 인간이 희생됨으로써 유대 제도를 바꾸어 설명한 것이다. 대속의 진정한 의미는 사랑과 이해와 용서이다. 무조건적으로 용서가 아니라, 죄를 짓지 않을 때에도 개인의 기준에 따라 일어나는 차이로 상대방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차이를 틀린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다름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개념이 우리 가운데 뿌리 박힐 때, 인간의 관계는 개선되며, 사회는 밝아지는 것이다. 5 신세계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은 신과 신으로 말미암은 이 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으로 정의한 예수와 같은 정신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강하고 훌륭한 믿음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우주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단계들은 무한하게 펼쳐진다. 그 중 첫 단계가 인간 사회가 유토피아가 되는 것이다. 유토피아가 이루어져야만 그 다음 단계로서 인간이 우주를 관리하고 개척하며 단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죄가 사라져야 되고 사망을 극복하는 것이다. 죄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행복이 깨어지고, 사망이 존재한다면 우주 저너머를 인간이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6 신세계에 대한 강한 확신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동기로써 전달하려는 욕망을 일으키게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를 통하여 논문으로 남긴다면, 그 논문은 자손대대로 전달될 것이다. 이 방법은 가가호호를 방문하면서 낯선 사람들에게 교리를 전달하는 것과는 천양지차의 효과를 가지게 될 것이다. 7 워치타워 법인은 '개인 연구'라는 용어를 그들의 출판물을 읽고 그 내용을 주입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리지만, 진정한 개인 연구란, 논리적 비판이 담긴 성서 연구이다. 논리는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므로 비이성적인 것을 발견하여 그 의미를 재해석해야 하며 이성을 뛰어넘는 계시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워치타워가 주장하는 개인연구란 그들 법인의 이익을 위한 지침을 주입시키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9 "그 날이 오기까지"라는 파수대 표현은 예정된 기차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신세계는 기차가 도착하듯이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깨달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신세계는 '우리 가운데' 존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인간 관계를 통해서 나타나는 제도이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가 특정화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수고를 통해서 결실이 이루어지는 농사와 같은 것이다. 오곡이 무르익을 때,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리듯이 우리는 장차 이루어진 신세계의 영예를 하나님께 돌려야 마땅한 것이다. |
신세계를 염원하는 인간의 희망 매년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떤 이유로 그 종교를 떠나게 된다. 떠나면서 그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대다수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거나, 아예 송두리째 부인해버리며, 하나님이라는 개념조차 지우고 그들의 가장 염원했던 희망인 신세계라는 낙원의 개념을 망상으로 돌려버린다.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신세계의 도래를 시한부종말론이라는 그릇에 담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 파수대 연구기사가 신세계에 대한 것이므로, 우리는 신세계라는 관념이 과거의 인류역사에서 차지했던 비중과 인간의 이상적 희망을 염원하고 있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음을 밝히고, 워치타워 법인이 제시하는 신세계의 개념과 전달방법이 어느 부분에서 잘못되었는지 알리며 그 대안을 간략하게 논의히고자 한다. 1 철학사 가운데 나타난 신세계 1) 플라톤의 이상국가론 ① 이상국가론의 개념과 가치 플라톤은 서양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가 가진 광범위한 지식과 그 영향력을 살펴보면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오늘날의 서양철학은 플라톤 사상의 주석에 불과하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철학사적 업적은 대단하다. 특히 플라톤은 국가경영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러한 고민의 결정체가 그의 대표작 『국가론(Politeia)』이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다루고자 했던 핵심적인 내용은 이상국가를 지향하기 위한 정치체계의 완성방법이었다. 스승인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체로 쓰여진 국가론에서는 그는 인간의 지성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이데아를 주장하였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정치의 이데아를 실현할 수 있는 산물은 바로 국가였다. 플라톤이 구상한 국가는 그 당시 도덕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플라톤 자신의 철학적 신념과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이성, 격정(기개), 욕구로 구분하였다. 인간의 심성은 reason의 덕목인 지혜와 sprit의 덕목인 용기, 그리고 passion의 덕목인 절제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 심성의 3요소가 잘 분배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reason이 지배하고, reason의 지배에 대해 sprit가 봉사하며 passion은 reason의 지배에 복종하는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과 국가는 모두 하나의 단일한 기본구조를 가진 것으로 이해하였기에 국가도 이성을 가진 통치자, 기개를 가진 군인, 욕구를 가진 생산자 세 가지 계층으로 구분 하여, 이들의 조화 속에 국가의 올바름이 달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통치자에게 복종하고 질서를 유지할 때 이상국가가 건설될 수 있음을 밝혔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국가는 참된 지식의 결합으로 완성되는 선이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이상국가는 국가가 지향해야 할 도덕적 책무, 정의를 수행함으로써 국가의 통치질서(herrschaftsornung)가 바로 선다고 보았다. 그러기에 플라톤은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산기능을 담당하는 주체와 수호기능을 담당하는 주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기에 이상국가는 지혜를 사랑하는 철인이 국가를 통치하도록 하고, 용기를 지닌 군인에게는 국가를 수호하도록 하고, 농민과 노동자들은 국민의 생활 필수품을 공급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철인은 이성에 입각해서 돈이나 기타의 것에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이상국가의 건 설에만 매진할 것을 강조하였고, 군인에게는 국가의 방위를 위해 노력하되, 유흥에 빠지지 말아야 함을, 농민과 노동자는 그리스인들이 아닌 이민족으로 구성된 노예들로, 국민의 물질적 수요충족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강조하였다. ② 플라톤 사상에 대한 가치 판단 플라톤의 주장은 오늘날과 같은 보편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보면, 플라톤의 주장은 전혀 가치 없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플라톤이 살았던 그 당시의 정치상황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그 이론은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첫째, 플라톤은 인류 역사 최초로 도덕적 이상을 추구하면서 정의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적합한 통치형태(herrschaftsform)를 고민한 학자이다. 둘째, 그 당시 계급사회를 반영한 사회현실적 헌법이론의 초석이었다. 셋째, 플라톤의 계층에 의한 역할 강조는 내생적 국가발생설(endogene entstehungstheorie)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 넷째, 그 당시에 통치를 위한 이론적 토대인 지배와 피지배의 관념을 분업설(arbeitsteilungstheorie)로 설명하였다. 다섯째, 사회안정적인 요인(sozialstabilisierender faktor)을 강화한 철인통치 개념을 정립하였다. 이러한 이론은 그 당시 계층적 불안요소의 대립보다는 국가 내의 소속감 내지는 연대 의식(zusammengehörigkeitsgefühl)을 강화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이다. 플라톤의 인식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구조로 전환시킨 것이었다. 이러한 사상사적인 접근은 추후에 이성의 지배(vernunftherrschaft), 이성법(vernunftrecht) 사상으로 전승되어 서구의 국가철학과 법철학의 중심주제가 되는 동력을 제공하였다는 점은 플라톤의 공헌이라 할 수 있다. 2) 칸트의 이상 사회 칸트는 오늘날과 같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국가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철학자이다. 그가 고안한 이상적인 국가는 도덕형이상학 기초에서 “목적의 왕국"으로 실현된다. 목적의 왕국에서의 모든 인간은 인격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는 인간을 목적자체로서 실존하는 존재라고 보고 인격(persönlichkeit)의 소유자이기에 물건이 아니며,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수단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보았다. 인격을 향유하는 자유로운 주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윤리적 요청을 받 을 수 있는 것이며, 서로 존중하여야 함을 도덕적 원리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사고는 오늘날과 같이 개개의 사회구성원인 사람들의 인간 존엄성을 인정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개 개의 다른 사람들에게 필수적으로 나타내어야 하는 존중과 관련된 의무를 부과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칸트에 있어서 인간에 대한 존중의 의무는 모든 인간에게까지 요구되며, 단일한 명제로 법규범화 될 것을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칸트의 규범학적 해석담론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칸트 자신의 저서인 <실천 이성 비판> 가운데서도 명시 되어 있는데, 칸트의 말대로 정언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언제나 손해를 보기 마련이며 불공평한 대우를 참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이 존재하지 않아 이상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면 정언 명령에 따라 살아야 될 이유도 없게 되므로 마땅히 이상적인 사회, 즉 그의 불리했던 처우를 만회할 수 있는 평등한 이상적 사회가 존재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3)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의 작품인 『유토피아』는 제목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이상 사회와 그 의미를 다룬다. 이상 사회의 중요한 과제이자 핵심은 행복이며 행복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점차 그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 특히, 르네상스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행복이 대두되었고 이를 모어가 문학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것이 『유토피아』이다. 그렇기에 『유토피아』는 르네상스 시대의 핵심가치를 집약적으로 점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유토피아인들은 인간의 행복을 항상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그들은 행복을 선하고 정직한 쾌락을 즐길 때 도달 가능한 것으로 보았고, 쾌락의 경우 덕이 존재할 때 형성 가능한 것으로 여겼다. 이를 통해 유토피아인들은 외적이고 제도적인 행복을 넘어서 내적이고 도덕적인 행복을 추구한다. 특히, 유토피아인들은 미덕을 함양시키기 위해 르네상스 휴머니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교육과 학문을 중요시하며 이 과정 속에서 인간의 행복에 대해 지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거듭한다. 유토피아인들은 일평생 다양한 책들을 읽고 깊은 인문학적 사유를 함으로써 지적 기반과 미덕 형성에 힘쓰고 마침내 지정의(知情意)를 골고루 갖춘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유토피아』에서는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균형 잡힌 질서를 유지하였다. 그중에서도 유토피아인들의 철학적 합리주의와 종교적 영혼불멸설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현세와 내세에서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이처럼, 유토피아인들의 철학적 이론과 종교적 원리를 통해 공동체를 위한 행복이 진정한 행복의 중요한 부분임을 깨닫고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여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균형 잡힌 행복을 추구하였다. 유토피아인들은 정의가 실현될 때 행복이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재산을 동등하게 분배하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동시에 유토피아인들은 도덕적 정의를 우선적으로 두었다. 이러한 덕목들이 충족될 때 비로소 탐욕, 나태,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으며 국가 전체가 정의를 바탕으로 행복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유토피아인들은 플라톤이 언급한 지혜, 용기, 절제가 균형 있게 지배하 는 정의로운 국가를 토대로 시민과 통치자가 함께하는 이상 사회의 행복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결국, 『유토피아』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적합한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는 사회를 보여준다. 4) 간디의 신세계 사상 간디는 자서전에서 밝혔듯이 예수의 희생과 초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지만 유일신 사상과 구원관 등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간디는 힌두교가 다른 종교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그것 때문에 타 종교를 배타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간디는 힌두교의 분파적 불일치와 독단론을 자유롭게 비판하면서도, 힌두교가 자이나교와 불교를 포함한 다양하고, 이슬람교의 형제애를 찬양하였지만 일부 무슬림 광신자들의 완고함에 대해서는 비난하였다.” 그는 또한 「산상수훈」을 읽고 감동을 받았으나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와 이 종교가 가지는 배타성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간디는 오로지 그리스도교인만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갈 수 있고, 예수를 믿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간디는 “하나님이 만일 아들을 둘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다 그의 아들일 것이요, 예수가 만약 하나님과 같거나 혹 하나님 자신이라면,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과 같이 생겼을 것이고, 하나님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성은 예수가 그의 죽음과 피로 세상의 죄를 대속했다는 것을 글자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라고 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윤리 도덕적인 가르침과 예수의 희생에 대해 감명 받았지만, “나의 종교를 바꿀 만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 각자는 모두 신에 대해 자신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신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이 세상 의 남녀의 수만큼이나 많은 정의들이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다양한 정의의 배후에 우리가 놓칠 수 없는 동일성 역시 존재한다. 뿌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개개의 종교는 그 종교가 성립되고 전개된 전통과 환경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그래서 간디는 “누구든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고 다른 신앙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각자 자신의 신앙을 따르면서 자신의 자유 즉 해탈을 얻어야 한다.”라고 하고 있다. 간디는 종교를 우주 내에 존재하는 질서정연한 도덕적 지배에 대한 신 념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간디에 있어 도덕과 종교는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간디는 “도덕이 모든 사물의 근본이며, 진리가 모든 도덕의 요체이다.” 라고 하고 있다. 간디에 있어 진리는 최고의 원리이다. 다른 여러 원리는 최고의 진리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진리는 말과 행동이 진실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또 상대적인 진리가 아닌 절대적인 진리, 영원한 진리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 자신이다. “신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분에게 저는 신이 ‘사랑이다’라고 말할 것 입니다. 하지만 마음 저 바닥에서 나는 신이 사랑일 수도 있지만 ‘신은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진리가 신이라고 할 때의 신은 인격신이 아닌 법칙 그 자체이며, 법칙의 부여자이고 이념이다. 신은 일체 만물에 편재한다. 신은 인격적인 현존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인격신으로 나타난다. 또한 신은 민중들을 구원하기 위해 여러 모습, 즉 라마, 나라야나, 이슈와라, 알라, 하느님 등으 로 화현한다. 그러나 신이 이같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본질은 진리 하나라는 것이다.” 간디는 신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논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신은 빛과 생명의 근원이고, 우리들의 양심이다. 그리고 신은 우리들의 언어적 표현과 이성을 넘어서 있다. 신이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우파니사드 문헌에서 절대자 브라흐만이나 아트만이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수한 영지(英知)로서 무엇에 의해서도 파악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신은 인간의 이성과 상상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론으로도 신에 대해 온전히 설명할 수도 묘사할 수도 없다. 사람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외견상으로 살생을 범하지 않고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사람이 산다는 사실 그 자체 즉 먹고 마시고 움직이는 그것이 비록 매우 작을지는 몰라도 필연적으로 어떤 생명의 파괴를 가져오게 한다. 사람이 사회적 존재로 계속하는 한, 온갖 사회적 존재가 연루된 살생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간디는 전쟁 없는 사회가 도래 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고, 그러한 사회의 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비폭력 운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같이 비폭력운동은 순수한 봉사와 사랑의 힘으로만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랑의 힘을 자기 내면화하면 그에 따라 다른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체 생명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게 되어 생명을 파괴하는 전쟁 없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 간디는 현대의학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다. 간디에 의하면 의학은 흑색 마법이 응축된 정수이다. “병원은 악마가 자신의 왕국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사용해 온 수단들이며, 악, 불행, 타락, 진정한 노예 신분 을 영속화시킨다고 본다. 성병이나 심지어 폐병을 치료하는 병원이 없었다면, 폐병은 더 적을 것이고, 성적인 사악함도 줄어들 것이라고 하고 있다.” 간디의 서구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인간의 기계화와 노동의 착취에 있다. 서구 물질문명의 결과로 사회는 극심한 계급 대립과 폭력적인 혁명이 생겨났고, 거기에 반대하는 세력을 낳게 되었다. 또한 서구의 물질주의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요구를 증대시켰다. 이에 따라 세계 각 국은 상품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격심한 경쟁을 하였다. 인도는 서구의 이러한 산업주의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간디는 주장한다. 간디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는 인간의 필요를 감당할 만큼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지만, 인간의 지나친 탐욕을 감당해 낼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간디는 부의 공유를 주장한다. 즉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만약 부를 공유하게 된다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의 의식주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간디는 자본주의의 만족할 줄 모르는 소유욕과 공산주의의 기계적 유물론을 함께 경멸하면서 현대문명의 토대 자체를 비난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간디의 현대문명의 비판은 그것이 인간 존엄성을 해치고 도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 있다. 인간은 모든 신성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물질적인 것에 대한 탐욕은 신성한 존재의 본성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물질에 탐닉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욕망 에서 허우적대는 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신성함을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 개인에게 최대한의 인격적 존엄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적 부정의를 척결하고, 경제적 착취나 어떤 형태로의 폭력이 없는 사랑과 진리에 근거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간디는 개인의 인격 완성과 육체적인 안락, 신을 실현하기 위한 자아실현의 자유를 가지는 사회를 이상사회의 조건으로 보고 있다. 즉 이상사회는 각 개인에게 최대의 자율과 자유, 인격적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간디는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각 개인에게 자기 정화, 자기 수양을 요구했다. 또한 이상사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폭력투쟁을 주장하고, 그 수단으로 건설적 프로그램, 사티아그라하, 새로운 교육을 주장했다. 그가 그리는 이상사회를 라므라쟈(Ramraja)라고 하는데, 그것은 신이 다스리는 사회로 도덕적 권위가 순수하게 살아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간디의 이상사회 건설에 근거가 된 것은 인간의 보편적 평등사상이다. 2 성서 가운데 나타난 신세계 복음서에 나타나는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유대인들이 꺼려했기 때문에 표현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천국은 장소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 특성을 가진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인간의 영혼이 사는 사후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이 통치가 완전하게 드러나는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가?"라고 물었을 때,하나님의 나라가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와는 상관 없음을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신 데서 알 수 있다. 이 의미를 교파마다 다르게 해석하는데 첫 번째 해석이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마음 천국'이라는 말로 나타낸다. 두 번째 해석은 하나님의 나라의 주체가 예수이므로 예수가 그들 가운데 계셨으므로 예수 자신을 하나님의 나라로 말씀하셨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 두 답변들은 질문의 취지에 맞지 않다 왜냐하면 질문은 하나님의 나라가 성립되는 시기를 물었으므로 당연히 그 답변은 시기와 관련된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희 가운데 있다"는 것은 그 시기가 너희에게 달려 있다라고 이해함이 옳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이라고 하면,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아무런 걱정이 없고 원하는 것은 마음대로 가능한 상태의 곳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하여 정의된 사회가 아니라, 정의와 평화와 그로 인한 기쁨이 공존하는 사회로 정의하였다(롬 14:17). 그렇다면 여기서 정의된 의와 평화를 이루어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당연히 그 사회의 구성원들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질문에서는 바리새인들)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정된 기차가 몇시 몇분에 도착하듯이 정해진 시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나라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간 관계로써 이루어 지므로 필요한 인성을 함양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하는 데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러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운동이 하나님의 나라 운동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운동의 중심에 서서 사회 운동을 하실 당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하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마 12:28). 왜냐하면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의 기운(성령)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사회가 변모해 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특히 축마와 병고침을 통해서 밝아지는 사회로 발전해 갔기 때문이다. 꼭,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분배를 통하여 식량은 충분히 공급되고도 남는다는 것을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의 그릇된 탐욕과 욕심을 버려야만이 사회는 밝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개입해서 강압적으로 해결시키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오직 인간의 정신을 새롭게 하여 인간과 인간의 관계개선을 통하여, 자유는 확대되고 불평등이 해소되므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파수대의 표현대로 하나님께서 아마겟돈이라는 강압적인 수단을 통하여 인류 대다수를 멸절시키더라도, 인간의 교만과 탐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사회가 하늘 특성을 반영하는 나라가 됨으로써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물질적 번영이다. 각 전문분야의 사람들이 탐욕적 정신이 아니라, 봉사의 정신으로 몰두할 때, 이기적 자본주의가 생산해내는 것보다 질이나 양에 있어서 월등해질 것이다. 인구가 너무 많아져서 걱정할 시기가 되기 전에 이미 지구와 같은 별에 사람이 살게 될 것이다. 우주의 비밀들은 하나씩 풀리게 될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온 세계에 울려 퍼지게 될 것이다. 성서, 특히 이사야서나 계시록에서는 그 당시의 환경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의 상태를 묘사하였을 뿐이다. 인간의 행복에 필수적인 것은 건강과 생명이다. 완전한 건강과 끝없는 장수를 누림으로써 자기가 살기 싫다고 몸부림치지 않는 이상 그는 생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상적인 사회를 성서는 여러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먼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차지하게 될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계약)을 지키는 것이었듯이, 인간의 물질적 풍요는 먼저 이상적인 사회가 이루어질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를 이루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책무이지,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세계를 이상적인 사회로 만들어 땅을 낙원화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이지 아마겟돈을 일으켜 하나님이 개입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3 신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확실한 근거 성경 전체에 흐르는 인간의 구원 사상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신화이든 전설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무엇을 의도하는 것인가가 본질적인 것이다. 첫 부부의 이야기에서 인간이 가장 염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인류가 가게 될 극한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죽음은 죄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행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사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힘껏 노력(수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수고해야 살 수 있다는 명제는 조금 달리 표현하면 연구하고 노력하면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있다. 단, 나(하나님)를 떠나지 않는 한이란 전제 조건이 붙는다. 그래서 인간은 노력하여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들었으며, 바다 속을 다니는 잠수함까지 만들고 대기권 위에 지구를 도는 인공별을 만들어 세계를 인터넷화 시켰다. 인간의 노력은 결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생명과 물질의 비밀을 밝혀내어 노화를 질병으로 규정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힉스 입자를 발견하여 물질의 비밀을 푸는 데 더욱 접근하였다. 워치타워맨을 포함한 보수 종교인들은 이것이 마치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인 듯 말하지만 신앙과 과학은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 참된 신앙은 과학의 발전에 새로운 눈을 떠 허구적 관념을 벗고 하나님을 좀 더 바르게 알 수 있게 한다. 우주는 모든 것이 빈 틈 없이 연결되어 하나를 이룬다. 우주는 신의 발현이므로 반드시 신세계는 도래 해야만 한다. 그 신세계를 이룰 주체가 되어야 할 자는 바로 우리인 것이다. 4 맺음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 신세계를 이루려는 우리의 노력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①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선하다는 것은 유익하다는 뜻이다. 내 자신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악한 자인 것이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인성을 능동적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며 2세 교육을 전인적 교육이 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② 근면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머리로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몸을 부지런히 움직일 것이 요구된다. 인간은 신체로 구성되어 있고, 신체에서 정신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나태함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자신과 2세를 가르쳐야 한다. ③ 언제나 공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시간만 나면 책이나 지식 매체를 통하여 전문적 지식과 박식함에 이르도록 습관화 되어야 한다. 지식은 곧 힘을 의미하기 때문에 선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식이 없으면 이 세계는 다시 지식 있는 악한 자들의 지배를 받아 자유와 평등이 깨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 가지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같은 땅이 있어 그곳에 모여 공동체를 결성하면 가장 최선이겠지만, 그런 환경이 이루어 질 수 없는 상태인 오늘날은 최소한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해 나가야 한다. 경제 공동체에서 가장 먼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배분의 문제이다. 이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 사도행전 2장의 기록에 실려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모범을 보이신 오병이어의 표적이 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 하셨을까? 그것은 사람들의 비이기심과 자발성을 유도한 것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어쨋든 오늘날 우리가 신세계를 향하여 내 딛어야 할 첫 단계는 경제 공동체인 것이다. 집회나 야외봉사랍시고 일주일에 몇번 모여 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오로지 경제공동체에서 함께 일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인성을 함양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새로운 구조(질서)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
질문:
1. 신세계에 대한 염원은 철학사상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2. 이상 사회에 대한 간디의 사상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무엇인가?
3. 성서 전체에 흐르는 구원 사상은 영혼의 사후세계인가?
4. 경제 공동체 결성에서 연합을 깰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인가?(행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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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감안할 때, 글을 써는 기법이나 관련된 지식에서 매우 부족함을 느낍니다. 여러 시간 고심하여 쓴 글이 졸작임을 시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