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은 오행학이 아니라 간지학이다.
사주명리학을 공부할 때 대부분 음양설과 오행의 상생 상극설을 배우게 되는 데 필자 또한 그러한 과정을 거쳤다. 명리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논리로서 음양과 오행을 떠날 수 없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필자가 실제 운명 감정을 경험하면서 무엇인가 해석의 수단으로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 학문을 오랜 세월 연구한 뒤였다. 권위 있는 이론서들도 오행적인 논리에 어긋나는 것들은 오히려 큰 원칙을 벗어나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오행의 논리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힘들었었다. 그러나 문자 이전에 대자연이 있었고 대자연을 옮겨놓은 것이 문자라면 그 사이에 생겨나는 문제는 반드시 있다는 생각에 다다른 것이다. 오행은 말 그대로 자연 운동의 다섯 단계의 운행 과정을 거친다는 뜻인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자연 운동을 설명하는 논리로서 참으로 포괄적이고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사주 명리학은 오행학이 아닐까? 우리가 사주 명리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십간(十干)은 이미 자연 운동을 열 개의 단계로 나누어 놓은 것이고 십이지(十二支)는 열 두 단계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십간십이지의 숫자만 세어도 이미 이십이행(二十二行)의 논리로 구성된 학문인 것이다. 천간 지지의 조합으로 이루어놓은 육십간지(六十干支)는 이미 육십행(六十行)으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이미 간지로서 정밀하게 자연 운행의 단계를 나누어 놓았는데 이것을 도리어 오행이라는 둔탁한 논리 속에 집어넣고 해석하려고 했으니
여러 가지 문제와 모순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甲, 乙, 寅, 卯가 모두 다른 기운을 표현하는 문자들인데 이것을 木으로 동일시하여 해석의 기초를 삼게 되니 연두색, 초록색, 청색, 남색을 대강 묶어 푸른색이라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개별적인 특성을 이미 충분히 구별하여 놓았는데도 큰 논리로 아우르다 보니 사주 해석에서 여러 가지 왜곡이 생기는 것이다. 오행이 헌법인 줄 알았는데 적어도 사주 명리학에서는 간지가 헌법으로 이미 채택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행이 상위법이 아니라 간지가 훨씬 상위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전환이 없이는 명리학의 완전한 정복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이 책의 여러 가지 논리를 통하여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주 명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이 점을 꼭 염두에 두고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
간지의 새로운 이해
사주 해석을 할 때 오행으로 이해하는 습성이나 음양 분류의 습성으로 인하여 甲, 乙, 寅, 卯를 모두 木으로 이해하거나 甲과 庚이 양간에 속하므로 양적인 속성이 강하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또한 묘월(卯月) 무일(戊日)과 사월(巳月) 신일(辛日)을 월에 정관이 있는 모양으로 비슷하게 해석한다는 것은 육친이나 격국 용신의 습성에 따른 것으로, 해석에 큰 왜곡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논리의 비약을 막기 위하여 간단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첫째, 甲의 운동 속성과 寅의 운동 속성은 천간 지지로서 큰 의미의 차이가 있으니 똑같은 木으로 보아 해석을 하는 것은 실제 사주 해석에서 큰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甲은 己를 보아 合을 이루어 土의 속성을 강화한다. 寅은 己를 보아 合하는 것이 아니고 午에 삼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火의 기운을 조성한다. 이렇게 간섭하는
글자에 의하여 작용이나 변화 과정이 크게 달라지는데 甲과 寅을 동일한 기운으로 처리하는 것은 정확한 사주 해석을 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둘째, 甲과 庚이 양간에 속하므로 활동성이 남성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식의 해석 논리는 기본적으로 음양의 속성을 잘못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甲과 庚은 그 방향성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甲이 초봄의 기운으로 밖으로 솟아오르려는 기운이라면, 庚은 초가을의 기운으로 도리어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기운이 강한 것이다. 비밀을 간직하려는 요소를 기준으로 甲과 庚에 비유한다면 甲은 밖으로 발산하는 기운이 庚보다 강하므로 비밀을 지키지 못하는 요소가 강하고 庚은 행동에 있어서 남성적인 인자가 강하더라도 비밀을 간직하는 힘이 甲보다 강한 것이다. 단순히 간지의 음양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것은 이런 간단한 예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셋째, 卯를 정관으로 쓰는 것과 巳를 정관으로 쓰는 것은 어떤 차이가 날 것인가? 卯(토끼)는 독성이 적고 공격성이 약한 모양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을 정관(벼슬)으로 쓴다면 권력성 조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정신적, 교육적, 상징적 요소를 많이 가진 조직사회가 될 것이다. 巳(뱀)는 독성이 있고 발이 없이 다닐 만큼 陽氣의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 있으니 조직의 속성상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력성 조직이 될 것이다. 또한 역동적으
로 움직이는 인자가 강하므로 역마(驛馬) 속성이 있는 조직사회가 될 것이다. 비유하건대 卯를 정관으로 쓰는 사람이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에 인연하여 조직사회 활동을 구한다면 巳를 정관으로 쓰는 사람은 사법, 의료, 검·경찰, 세무, 역마(驛馬)관련분야(항공, 해운, 무역, 건설, 통신, 외교, 언론방송 등) 등의 조직사회 중심으로 활동을 하기 쉽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조직의 속성 차이에 의하여 행동이나 역량의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오행적으로 무리를 지어 해석할 수 있는 寅卯, 巳午, 申酉, 亥子의 경우에 寅卯를 식신 상관이나 재성으로 쓰는 경우와 申酉를 식신 상관이나 재성으로 쓸 경우 해석의 차이가 크게 발생한다. 寅卯를 재성으로 쓴다면 교육, 기획, 디자인, 건설, 의류섬유, 문구, 식품, 즉 아침과 봄에 이루어지는
속성 속에서 주로 성공을 하게 된다. 申酉를 재성으로 쓴다면 주로 금융, 조정, 의료, 법무, 행정, 금속, 포장 등의 분야에 인연하여 활동할 때 성공이 쉬운 것이다. 그런데 왜 寅卯가 교육, 기획, 디자인, 건설, 의류섬유, 문구, 식품으로 해석되고 申酉가 금융, 조정, 의료, 법무, 행정, 금속, 공업, 포장 등으로 해석되는지 의심스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寅卯는 인생의 봄이요, 하루의 아침이요, 계절의 봄을 의미하므로 소년에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은 교육이기 때문에 교육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사업을 시작할 때 기초와 터전이 되는 공간을 지어야 하므로 봄에 싹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물리적 기초를 마련하는 건설행위와 통한다. 아침에 의복을 새로이 하고 문구 가방을 챙기고 노동을 위해 밥을 먹는 행위가 식품, 의류섬유, 문구에 통하는 것이다. 나머지의 것도 상기와 같이 유추하면 될 것이다.
申酉는 인생의 가을이요 하루의 해질녘이 되므로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고 절제하고 매듭짓는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행정적인 제어나 압력을 갖는 행위, 금전을 분배하는 행위 등이 상기 분야로 드러나는 것이다. 寅卯, 申酉가 꼭 재성에 해당하지 않고 관성이나 식상에 해당하더라도 상기 특성을 충분히 드러나는데 지지에 성분이 무엇이냐가 해석의 중요한 틀에 해당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용신 개념의 적용에서도 지지의 개념이 중요하다. 어떤 팔자에서 해자축(亥子丑)이 용신이라면 어떻게 쓸 것인가? 해자(亥子)가 재성이라 해도 계절적으로 외부적인 것보다 내부적인 것을 다루는 특성을 가지므로 일반 사업보다 금융, 교육, 의약, 종교 등의 소극성으로 사용하기 쉽고,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해도 눈에 잘 드러내지 않는 야간의 유흥업이나 해외에 관련된 업무로써 성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사업을 해도 성공한다라는 식의 표현은 자제해야 되는 것이다. 음양, 오행, 육친 등의 포괄적 해석 수단을 우선적으로 터득하다 보면 실제 운명 감정에 있어서 간지의 속성을 놓치고 육친 중심으로 우선 해석하여 버리는 일이 잘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천간이 무엇이든 지지에 놓여있는 글자들이 그 사람의 운명적 특성을 여러 형태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될 것이다. 인간사에 있어서 각각 인간들이 고유의 인격이 있다고 하더라도 환경에 의하여 의식이나 행동이 크게 제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지지의 모양을 관찰하는 것이 정확한 해석에 도움을 줄 것이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바닷물 속으로 밀어넣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상상해 보면 이해가 깊어질 것이다. 천간이 각 개인들의 의지나 속성이라면 지지는 바닷물과 같은 작용을 일으키는 것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천간 없이 지지만으로 그 사주의 기본적인 특질을 분석하는 연습을 많이 하여본다면 정확한 운명 해석의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
박청화 책- 춘화추동-춘편- 읽기전에 12p에서
청오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