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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은혜로
사도행전 15장6-11절 / 김병덕 목사
➤“6. ¶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일을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함께 오니라. 7. 많은 논쟁이 있은 뒤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이방인들이 내 입을 통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매우 오래 전에 우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것 같이 그들에게도 주사 그들에게 증언하시며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사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 차별도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나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 하느냐? 11. 오직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을 줄을 믿노라, 하니라.”(행15:6-11 KJV)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은 정말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자들이 믿는다는 것으로 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일을 경계로 해서 그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으로는 도리어 그런 성경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주님께서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시고 처음과 나중이신 창조주로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우리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고 있고 또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인의 숫자라는 28억 명입니다. 지구 인구를 75억 명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구 전체에서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8억 명 중에서 적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적은가 하면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거짓 선지자가 많기 때문에 인생들이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적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100번을 읽고 그 이상을 읽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마태복음을 보면서 주님께서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정말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생 전체를 소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역시 성경을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자기는 소자가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씀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초도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성경을 100번 읽는다 해서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소경이면서도 실제 눈을 뜨고 보는 것으로 자기가 소경이라는 것도 모르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창조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알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인생들은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유대교인들과 같이 자기들만은 다르다고 하면서 자기 땅에 오신 독생 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주님께서 많다고 하면 많습니다. 어느 정도 많은가 하면 선지자들의 시재를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셨을 때 이스라엘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전하는 자가 없으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충성된 종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하고 광야 교회로 들어와서 생명의 도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이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와 그리고 우리의 거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거울로 보게 하기 위해서 인도하신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마치 이스라엘의 일로만 보고 거울로 비추어 보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거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일입니다.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어서 그러니까 종교 안에서 율법도 잘 지키고 종교 생활도 잘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하신 일의 영광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신 일을 알고 믿는 것이 영생을 얻게 하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슬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슬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육체의 소욕은 인생의 철학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성령은 진리로 인도하심으로 해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는 일을 증거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비교입니다. 하나가 되면 하나는 하지 못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인생들이 자기 철학에 따라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는 것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초등학문에 따라 도덕적으로 얼마나 잘 살아가는가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알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도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5장입니다. ➤“6. ¶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일을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함께 오니라. 7. 많은 논쟁이 있은 뒤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이방인들이 내 입을 통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매우 오래 전에 우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면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거짓 선지자들 곧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짓 선지자가 누군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라는 말씀에서 거짓 형제가 누군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를 지켜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참 이 율법의 문제를 언제까지 설명을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제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마치 세상 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말로 듣는 사람이 너무도 많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이 인생의 철학적 사고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분명히 생명의 도를 전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생명의 도로 보는 사람이 거의 없고 인생의 철학에 따라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보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는 모세를 통해서 반포하게 하신 율법은 당시 물론 근동 지방의 법이고 풍습이고 규례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오직 성령이 오신 성도만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생의 문제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성경의 문자를 보고 내가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는 거짓 형제이고 거짓 선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러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도덕(세상 초등학문)의 문제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 역시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거짓 형제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일을 의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도행전 15장7절에서 많은 변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그냥 불쑥하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게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으니까 이제 예루살렘에 와서 사도들과 장로들과 변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임함을 받는 사도들도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는 일이 바로 이 율법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리고 지난 삼년 반 동안 주님으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듣고 이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대로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시는 일을 이루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다른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게 하는 것을 보고 그 문제로 예루살렘 교회에 왔고 이제 변론을 마치면서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6-7에 “6. 이 신비는 곧 복음으로 통하여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라. 7.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라 그분의 권능이 효력 있게 활동함을 힘입어 내가 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노라.”고 이방에 복음을 전해서 믿게 하려고 사도로서 일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이방에 복음을 전해서 믿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세우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영생을 얻는다면 갈라디아서나 사도행전15장의 말씀은 굳이 기록하게 하실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것 같이 그들에게도 주사 그들에게 증언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복음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성경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을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는 일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사도들에게 마지막으로 내가 아버지께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 한다는 것과 이제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제자들이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자리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를 함으로 해서 이방인들도 역시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증거를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께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해서 이방인들이 믿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입니다. 주님께서 진리의 성령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가 오셔서 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내가 아버지께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들이 이렇게 성령을 받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도 역시 같은 믿음으로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문제입니다.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바로 이 문제로 변론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가장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곧 외식을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직접 듣고 성령을 받고 말씀을 증거하는 사도들을 통해 복음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 역시 같은 것을 받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사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 차별도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성령을 받는 자들이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셨다는 것을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몇 가지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지금 이 변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외식의 모양을 내고 있습니까? 바로 성령이 오셨는가를 알 수 있는 첫 번째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 역시 그래서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도서1장4절 “4. 공통된 믿음을 따라 나의 아들이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의 [구원자]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믿음입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역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역시 이 시대 나도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역시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심으로 해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었고 그리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한 이방인들 역시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한 사도 베드로나 그리고 그 복음을 듣고 믿은 이방인들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간치 아니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는 사도 베드로나 그 말씀을 듣고 믿어 역사를 하는 이방인들이나 같은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당 안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고 그것으로 지금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와서 변론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보고 이방의 종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니까 표면적으로 종교 안에서 믿는다고 하면서 행위를 하고 있고 그 행위를 따라 그들은 분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 그런데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나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 하느냐?”
오직 믿음입니다. 성령님의 임함을 받은 사도들이 이제 기초를 세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흔들리는 사람은 거짓에 속고 있다는 것을 갈라디아서강해를 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그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행전에서 이 말씀을 하는 것은 다시 말씀을 하지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와서 말씀을 하고 있고 초기 교회에 율법의 문제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1절 “1. 그리스도께서 자유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그 자유 안에 굳게 서고 다시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저 복음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전체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게 하는 행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에 사도들입니다. 율법의 문제에 대해서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는 결정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 역시 우리 조상들도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데 왜 이방인들에게 그런 율법을 지키게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방의 종교는 그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사도들과는 전혀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종의 멍에입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성경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비유로 해서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유대인들과 같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아시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 하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 안에서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다른 복음을 들으므로 모르고 있습니다.
➤“11. 오직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을 줄을 믿노라. 하니라.”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목적은 바로 이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인생들의 철학을 이용을 해서 율법을 지키는 종으로 만들고 있지만 성경과 다른 복음을 듣고 있기에 모르고 있습니다. 인생의 한계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율법에 대해서 결론을 내려주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다른 복음을 듣고 있는 인생들은 이 말씀을 바로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적 한계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문자로 아는 것을 온갖 종교적인 행위와 의식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율법이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1-2절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와 더불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얻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예수 우리 [주]를 아는 것을 통해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
행위종교인들이 28억 명이 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행위로 통일성을 이루려고 하는 종교인이 28억명의 각각의 행위는 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고 믿어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는 다릅니다. 그러나 믿음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으니까 동일한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일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되어 온갖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종교가 되어 행위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 역시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행위와 사도 베드로의 행위와 제 행위는 전혀 다릅니다. 물론 비슷한 것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동일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종교 안에서 좋아지는 행위의 변화를 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과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 역시 동일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일을 믿음으로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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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감사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오늘 하루도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우리들은 쉽게 성내지 않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고요했으면 좋겠고,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표 내지 않고
혼자 간직하다 이내 평온해지는 그러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고 좋은 일 많은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