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2:17-23 순종한 백성에 대한 축복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20 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1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22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본문은 성전 건축이 중단되고 하나님 앞에 부정으로 인해 하나님께 받은 징계를 기억하고, 성전 재건 명령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17-19) 하나님의 성전은 중단되고 하나님 앞에 부정한 삶을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재앙이 임했습니다.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들의 창고에는 희망이었습니다.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서 열매도 심령이 완악하여 회개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아 심판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 재건을 시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부터는 9월 24일로 파종을 위해 비를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하나님은 시기적절한 비로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신 11:14; 욜 2:23). 성전 재건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오늘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20-23) 성전을 건축하려는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1차로 고국에 돌아온 스룹바벨입니다. 하지만 성전 기초를 놓고 16년 동안 성전 건축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그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런 스룹바벨에게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내 종이라 불러주시고,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전 건축을 위하여 내가 너를 택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로 다시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은 4년 만에 완공되고 하나님께 봉헌하게 됩니다(스 6장).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비전을 주시고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는 마침내 완성된 하늘 성전에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어떤 시련과 방해가 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택하여 자신의 인장 반지로 삼으시고 다윗 왕가의 정통성을 회복시키시며,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의 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입니다. 본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축복을 예표하신 것입니다(눅 1:32, 33; 3:27, 31).
적용: 당신 안에 참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감이 우리의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당신의 성전은 잘 지어져 가고 있습니까?
교회봉사에 누구보다 앞장서셨던 분들이 하나둘 요양원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교회에서 늘 기도하고 예배드리던 당신의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게 되고,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지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이 서글퍼집니다. 문득 그분들을 함께 모시고 예배드리는 날을 꿈꿔보기도 합니다. 언젠가 임종을 앞둔 장로님께서 당신이 예배드리던 자리를 그리워하시며,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라고 하셨던 말씀이 두고두고 기억납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이 자리가 누군가에겐 마지막까지 간절히 사모하던 자리였음을 생각하고 감사와 감동으로 가득 채움이 마땅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