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의 전도
내가 현명하고 이 세상이 현명하다면 주객이 전도되지 않는다. 주는 원인이고 객은 결과다. 하지만 내가 현명하지 못하고 이 세상이 현명하지 못하면 주객이 전도되어 진실이 숨는다. 내가 현명하면 결과만 놓고 보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본다. 하지만 내가 현명하지 못하면 원인은 보지 않고 문제의 결과만 본다. 이런 차이는 지혜의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원인은 보지 않고 결과만 본다. 하지만 지혜가 있는 사람은 결과는 보지 않고 원인을 찾는다. 결과란 원인이 만든 것이라서 눈여겨보지 않아도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 결과만 보는 사람은 원인을 몰라서 개선할 수 없다. 오직 원인을 아는 자만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개선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개선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것이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과거의 것이라 숨어있다. 숨어있는 원인을 아는 것은 오직 지혜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리석으면 나타난 결과에만 함몰되어 고통을 겪는다. 흥분하고 분노해서 괴로움을 겪으면 원인을 찾을 겨를이 없다. 이러한 원인을 찾는 것이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행위다.
어떤 문제나 원인은 현재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과거는 통찰 지혜가 없어서 나의 마음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오직 현재로 와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마음이 고요해져 자연스럽게 과거의 원인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과거의 원인은 이미 지난 것이라서 모두 기억할 수 없다. 그래서 과거의 원인은 항상 숨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차츰 숨어있는 과거의 원인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생긴 지혜의 힘이다. 그러면 과거의 원인이 현재의 결과가 생기고 다시 현재의 결과가 새로운 원인이 되어 미래의 결과로 상속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회전이 연기이며 윤회의 흐름이다.
이것을 아는 지혜가 생기면 이런 흐름에 누구도 개입할 수 없고 오직 자신의 의도가 있는 행위가 결과를 가져오는 일련의 과정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를 이끄는 것은 오직 자신의 의도가 있는 행위밖에 없다. 이런 행위에 대한 결과를 받는 것이 인간의 윤회다. 이때 이런 책임이 남이 아닌 나라고 알아 자신의 각성이 일어난다. 이런 각성이 일어나서 자신을 통찰하면 나중에 이런 나도 없어 해탈의 자유를 얻는다.
누구나 내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안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결과는 원인이 만들지 결과 자체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은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생긴다. 결과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원인이 만드는 것이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원인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눈에 드러난 결과만 얻으려고 한다.
이것은 사물의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음과 욕망을 갖고 본 견해다. 그러므로 나는 원인을 만드는 자지 결과를 만드는 자가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결과는 원인에 의해 자연스럽게 내려지는 단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원인이 좋으면 당연히 결과가 좋고, 원인이 나쁘면 당연히 결과도 나쁘다. 이것이 연기의 법칙이고 윤회의 법칙이다.
이런 연기의 법칙을 모르면 원인을 몰라 결코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1층이 원인이라면 2층은 결과다. 이때 1층이 없는 2층은 있을 수 없다. 원인은 지혜가 있는 자가 보고 결과는 어리석은 자가 본다. 결과만 보고 원인을 보지 않는 자는 근원을 몰라 뿌리가 없이 물 위를 떠다니는 부평초와 같다. 부평초도 살아있는 생명인 것은 분명하나, 자신의 의지로 사는 힘이 없어 정처 없는 생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