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수상작품 ▣
나이테 외 5편 / 최지원
꽃을 주고
그늘을 주고
열매를 주고
새들을 품어 주던
나무
받는 것보다
주는 걸 더 좋아해
하나님 마음에 쏙 들었나보다
몸속에
점점 커져가는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산
누가 읽다 엎어 놓았을까
한 걸음 한 걸음 읽으며
들어갈수록
깊고 높아지는 책
눈이 멀고
귀가 먼 애벌레들이
꾸물꾸물 기어들어가
봄을 읽고 여름을 읽고 가을을 읽고 겨울을 읽는 동안
눈이 뜨이고
귀가 밝아져
허물을 벗고
훨훨 날아간다.
고라니 생각
강가 풀을 뜯어 먹다
사람들 고함소리에 놀라
겅중겅중 도망 다니던 고라니
눈 감아도 자꾸 떠올라
후들후들 떨리던 다리,
화들짝 놀란 눈망울,
예민하게 세운 귀를 일기장에 그려 봅니다
사람들 눈에 띄어
얼어붙은 몸 숨길 덤불을
왕버들 아래 우거지게 그리고
덤불 바로 앞에는
고픈 배 달랠 풀을 무성하게 그리고
풀들 사이에
놀란 가슴 주저앉힐 들꽃도
해맑게 그려놓아요
고라니가 외롭지 않게
친구 고라니 짝지어 놓고
저녁 늦도록 강가 풀숲을 뛰놀다
산으로 돌아가는 길 헤매지 않게
보름달도 환하게 걸어놓아요.
나비가 되어
선풍기 그물망 안에
감겨진 바람타래
끝도 없이
솔솔 풀려 나오네
아침부터 시장에서 일하고
돌아와 누운 엄마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돌 감네
바람타래에 감겨
고치가 된 엄마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르네
바람 타래에서 풀려나면
잠에서 깨어난 엄마
어깨에 날개가 돋을 거야
나비처럼 훨훨 날을 거야.
꽃씨 달리기
캄캄한 흙 속에
웅크리고 있던 꽃씨
껍질을 깨고 나와
달렸어요
떡잎을 지나
쭈욱
속잎을 지나
쭈욱쭉
줄기를 지나
쭈욱쭉
있는 힘을 다해
달렸어요
덥고 목이 말라
쓰러질 것 같았지만
땀 닦아 주고
목 축여 준
비와 바람의 응원으로
꽃봉오리에 도착했어요
하늘에서 지켜보던
해님이
꽃잎 메달을 걸어 주었어요
나비와 벌들
축하의 입맞춤해 주고
나풀나풀 박수쳐 주었어요.
미운오리새끼
누가 붙여준 이름인지 몰라요
언제부터 불러준 이름인지 몰라요
종종 나를 검정이라고도 했어요
미운오리새끼는 외톨이여서
외톨이는 구석이어서
구석은 어두워서 검정으로 부르겠지만요
짐작해보니
코끼리 코를 만진 혹은 코끼리 귀를 만진
혹은 코끼리 다리를 만진 장님들이 붙여준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떻게 보면
검정이란 이름도 괜찮은것같아요
검정이라 불러보면 깜깜한 밤이 떠오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밤은
벌거벗은 나무들 가려주는 옷,
숨어 다니던 길고양이들 놀이터,
아기를 품은 엄마 배 속……
그러고 보니
검정이란 이름 아주 따뜻한 걸요!
검정이란 이름 아주 편안한 걸요!
첫댓글 잘 읽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