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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가 담요를 몸에 감고 마천령 벼랑을 구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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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가 劍閣(검각)을 지키고 있는데 제갈서가 싸움을 걸어왔다. 강유가 군사를 이끌고 적진을 뚫고 들어가니 위군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갈서는 수십 리를 달아나서야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 검각 가까이 진군한 종회는 제갈서가 강유를 두 번이나 놓친 죄를 물어 참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제갈서가 등애의 부하라는 점을 생각하여 죽이지는 않았다.
이를 안 등애는 격분하여 종회를 찾아갔다. 한중을 먼저 탈취해 오만해진 종회에게 등애가 계책을 내놓았다. 험난한 陰平(음평)의 샛길로 돌아가 成都(성도)를 공격하면 강유가 군사를 철수시킬 터이니 그때 검각을 공격한다는 거였다. 그러나 종회는 어리석은 계책이라 비웃으며 큰길로 검각을 공격하겠다고 하였다.
그날 밤 등애는 종회가 강유와 대치하고 있는 틈을 타서 몰래 서쪽의 음평으로 갔다. 그곳에서 3만 군사에게 도끼와 괭이, 밧줄과 마른 양식을 준비시키고 산을 깎아 길을 내고 잔도를 만들며 3000명씩 주둔시키며 이십여 일 동안 칠백여 리를 행군하였다. 최후에 남은 2000명의 군사가 摩天嶺(마천령)을 오르자 낭떠러지여서 더 이상 나갈 수 없었다. 등애가 담요로 몸을 감싸고 천길 낭떠러지를 굴렀다. 이를 본 부장과 병사들도 따라 굴러 내렸다. 담요가 없는 사람은 나무에 밧줄을 묶고 마치 자신을 굴비처럼 엮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출처:국제신문 글 서성 열린사이버대학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