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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두 번째 신물(神物)
“아침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 새벽 4시경 부산시 북구 덕천동에 위치한 종합상가 건물이 작은여진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지금 현장에 나가 있는 이혜경기자를 불러 자세한 상황을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혜경기자.”
“네. 이혜경기자입니다."
“덕천동 상가 붕괴사고에 대해 자세히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네. 어제 새벽 3시경 부산시 북구 덕천동에 위치한 한 종합상가 건물이 알 수 없는 작은 여진에 의해 갑자기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사건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의 말에 따르면 건물 주위의 지반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건물 한쪽 외벽에 금이 가면서 건물 전체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고 합니다.”
“사상자는 얼마나 됩니까?”
“현재 소방대원들과 인명구조요원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조사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건물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보, TV 그만보고 어서 아침 먹고 출근준비 해야죠.”
장군이 엄마는 갓 구워낸 토스트와 우유를 들고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장군이 아빠에게 다가갔다.
“요즘 나라 안이 왜 이리 시끄러운지... 장군이는 깨웠어?”
“네, 방금 일어나서 씻고 있어요.”
“유나는?”
“저는 벌써 일어났어요.”
유나는 여행용 가방을 챙겨들고는 자기 방에서 나왔다.
“엄마, 나 오늘 현장체험학습 가는데 용돈 좀 주세요.”
“너 얼마 전에 엄마가 용돈 줬잖아?”
“소희 생일 선물 산다고 다 써버렸어요. 헤헤~”
“학생이 돈을 아껴써야지...... 얼마나 필요한데?”
“5만원. 히힛”
“5만원씩이나? 안 돼! 자~ 2만원.”
장군이 엄마는 지갑에서 2만원을 꺼내어 유나에게 내밀었다.
“며칠 동안 경주에 있을 건데 2만원은 좀....”
유나는 용돈이 적은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받기 싫다는 거야?”
엄마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자 유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아침부터 조폭모드로 바뀌면 2만원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2만원이면 충분해요. 헤헤..”
유나는 억지웃음을 보이며 2만원을 조심스럽게 받아 지갑에 집어넣었다.
“아껴 써! 알았지?”
“네..”
유나는 여행 가방을 챙겨들고는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유나야. 잠시만 이리로...”
아빠가 조용히 유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유나 호주머니에 몰래 집어넣어주었다.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아빠, 땡큐!!”
유나는 아빠 볼에다가 입을 맞춘 후 가볍게 윙크를 했다.
“엄마, 내방에 있던 리코더 못 봤어요?”
2층에서 장군이가 내려왔다.
“아참! 엄마가 어제 음악학원에서 사용하려고 가지고 갔었는데, 깜박하고 거기에 놔두고 온 것 같네. 오늘 필요하니?”
“반별 장기자랑 때문에 오늘부터 매일 1시간씩 연습해야 되요.”
“반별 장기자랑? 그게 뭔데?”
“1년에 한번 있는 학교 행사인데... 아무튼 그런 게 있어요.”
“어쩌지? 나중에 엄마가 학교로 갖다 주면 안 될까?”
“오늘은 그냥 옆 반 친구에게 빌려 쓸게요. 오늘 학원가면 꼭 가져오세요.”
“알았어. 오늘 엄마가 학원가면 꼭 가지고 올게.”
“장군아! 할아버지 방에 가서 할아버지가 일어나셨는지 보고 올래?”
“네. 아빠.”
장군이는 토스트 한 개를 입에 물고는 할아버지가 계신 서재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장군이는 피곤에 지쳐 주무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급히 소리를 낮췄다.
‘주무시고 계시는구나.’
장군이는 할아버지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서재에서 나왔다.
"삐리리~~~~"
그때였다. 할아버지가 계신 서재에서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선율의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이게 무슨 소리지?”
장군이는 거실로 향하던 발길을 멈추고 피리소리가 들리는 서재로 다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주무시고 계신데, 어디서 들려오는 거지?’
장군이는 할아버지의 서재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서재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 평소 보지 못했던 작은 나무 상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저건 뭐지?”
호기심이 발동한 장군이는 조심스레 상자 뚜껑을 열어보았다.
상자 속에는 은으로 만든 작은 피리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이었다.
“오~~ 죽이는데? 학교에 가져가면 인기 짱이겠는걸! 리코더 대신에 이걸 가져가야겠다.”
장군이는 피리를 조심스럽게 꺼낸 후 서재 밖으로 조용히 빠져나왔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오늘 하루만 빌릴게요.”
장군이는 서재 문을 조용히 닫고는 가지고 나온 피리를 들고 있던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장군아, 학교가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슬이가 집밖에서 장군이를 불렀다.
“엄마, 아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장군아, 할아버지는?”
“지금 주무시고 계시던데요.”
“그래?
“그럼 다녀올게요.”
“차 조심하고 잘 다녀와.”
“네.”
장군이와 이슬이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등교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학교를 향해 뛰어갔다.
“웨엥~ 웨엥~ 웨엥~”
무슨 일인지 경찰차 한대가 학교 앞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서있었고, 그 주위에 보라 가족과 담임선생님 그리고 몇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지?”
장군이와 이슬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야!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경찰차가 학교 왔에 있냐?"
“장군아, 어서와.”
무리 중에 끼어있던 같은 반 광욱이가 장군이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냐?”
“어제 저녁에 보라가 실종되었대.”
“뭐라고! 보라가?”
“응, 어제 영규랑 학교에 남아서 미술실 청소를 했는데, 영규가 대걸레를 씻으러 간 사이에 보라가 사라졌대.”
“혹시 친구 집에 갔거나 다른 곳에 간 거 아니니?”
이슬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광욱이에게 물어보았다.
“영규가 그러는데, 어제 미술실에서 보라의 비명소리가 들렸대. 영규가 급히 뛰어 갔지만 미술실에는 보라의 머리띠만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고 하던데.”
“비명소리라고?”
“응. 어제 저녁부터 경찰들이 보라를 찾기 위해 학교와 학교 주변을 모두 수색했다는데, 아직까지 보라를 찾지 못하고 있대.”
“핸드폰으로 연락해보면 되잖아.”
“어제 저녁부터 핸드폰이 꺼져있대.”
“얘들아, 여기 있지 말고 어서 교실로 들어가거라.”
교감선생님이 나와 교문 앞에 서있는 학생들을 모두 교실로 보내었다.
경옥이 아버지 일과 보라 실종 사건 때문에 교실 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싸늘 그 자체였다.
“이승준. 원다래 일어나봐!!”“..........”
“어제 내가 함께 청소하라고 했는데, 너희들은 어디 갔었지?”
“그게....”
승준이와 다래는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을 살폈다.
“내가 분명히 4명이 함께 청소해라고 했는데 너희들은 반장과 부반장이면서 왜 그냥 집에 갔지? 책임감이 그것 밖에 안 되니?”
“............”
담임선생님은 보라의 일 때문인지 약간 흥분되어 있는 상태였다.
“너희들 중에 혹시 방과 후에 보라를 본 사람?”
“.........”
“보라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니?”
“.........”
그 누구도 보라를 본 사람이 없기에 보라의 행적에 대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혹시 이 이후에 보라를 보게 되거나 연락이 오면 선생님에게 바로 연락해! 알았지?”
“네~~~~”
담임선생님이 나가자 교실 안은 보라의 이야기로 어수선해졌다.
“혹시 귀신에게 잡혀 간 게 아냐? 애들이 미술실에 귀신이 나온다고 했잖아!”
광욱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다고 그래?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마!”
이슬이가 광욱이의 말에 반박하며 일어섰다.
“왜 말이 안 돼? 미술실 귀신을 본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닌데...”
“광욱이 네가 직접 봤니?”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교실안이 시끄러워지자 반장인 승준이가 일어났다.
“모두 조용히 하고 수업준비하자. 우리까지 이러면 안 되잖아. 경찰들이 조사하고 있으니까 분명 보라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경주 - 김유신묘 근처]
학생들을 태운 버스 10여대가 김유신묘 입구에 있는 주차장으로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자 모두들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내릴 때는 반드시 중요한 소지품은 가지고 내리도록 해. 그리고 김유신묘를 한번 둘러본 후에 곧바로 점심을 먹을거니까 도시락도 반드시 챙겨가고... 알았지?”
“네~”
버스의 문이 열리자 덕문여고 학생들은 신이라도 난 듯 주차장 주위를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진아야!”
버스에서 내리고 있는 진아를 향해 유나가 손을 흔들자 진아도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다리에 깁스한 거 다 풀었네?”
“응. 어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이제 깁스 풀어도 된다고 해서 바로 풀었지 뭐~”
“축하! 축하!”
“깁스 풀고 나니까 정말 살 것 같다. 그동안 얼마나 불편했었던지... 휴~”
“담부터 조심해! 또 넘어지지 말구.”
“알았어. 킥킥!!”
“2학년 8반 모여라.”
주차장 한쪽에서 각 반별로 인원체크를 하고 있었다.
“진아야. 담임선생님이 부르신다. 조금 있다가 견학 마치면 점심 같이 먹도록 하자.”
“그래. 알았어.”
유나는 반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관광지에서는 선생님이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지?”
“질서를 지켜야 된다고 했어요.”
“그래. 너희들은 고등학생이니까 알아서 잘 하리라 선생님은 믿는다. 반장~ 화장실 갔던 애들 다 왔니?”
“네, 선생님.”
“자~ 그럼 모두들 출발!”
각 반의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을 주축으로 김유신 묘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김유신묘 앞에는 학년부장 선생님이 확성기를 들고 서있었다.
“자~ 다들 모였으면 조용히! 지금부터 김유신묘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할 테니까 모두들 잘 듣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네~”
“이 곳은 사적 제21호로 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674(문무왕 14)년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묘의 지름만 30미터에 달하는 아주 큰 무덤입니다. 묘를 지키는 호석(護石)으로는 12방위 주석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조각되어 있으며 십이지신상의 각 손에는 무기가 하나씩 들려져 있고......”
[경주 김유신묘]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진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뭐지?”
“점심은 언제 먹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 쓰러질 것 같아요.”
“맞아요!”
여기저기서 점심부터 먹자는 학생들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점심은 조금 있다가....”
“금강산도 식후경이잖아요. 배가 너무 고파서 십이지신상들이 모두 음식으로 보여서 못 참겠어요.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
“하하하!!!”
진아의 한마디에 주위가 모두 웃음바다가 되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1시간동안 자유 시간입니다. 모두들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1시간 후에 주차장으로 모이도록 하세요. 알겠죠?”
“네~~”
“그럼 모두 해산!!”
“와~~~”
학생들은 제각기 점심 먹을 장소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교사들은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석준은 수업시간에 활용할 자료를 만들기 위해 김유신묘 앞에 남아 묘에 새겨져있는 십이지신상을 디지털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선생님, 거기서 뭐하세요?”
유나가 석준 곁으로 살며시 다가왔다.
“유나야 어서와. 점심은?”
“조금 있다가 진아가 오면 먹을 거예요.”
“진아는 어디 갔는데?”
“도시락을 차에 놔두고 왔다고 해서 가지러 갔었어. 조금 있으면 여기로 올 거예요.”
“그래?”
“근데, 뭘 그리 찍으세요?”
“응~~ 여기에 있는 십이지신상. 미술 시간에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서 몇 장 찍고 있어.”
“아~~ 네.”
석준은 묘 주위를 돌아가며 사진들을 찍어댔고 유나를 그런 석준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유나의 시선이 조금 신경이 쓰였는지 석준은 사진 찍는 것을 멈추고 유나에게 다가왔다.
“유나.. 사진 찍어줄까?”
“정말요?”
“여기까지 왔는데 묘(墓)앞에서 한 컷 찍어야겠지? 저기 한번 서볼래?”
유나는 김유신묘 앞에 서서 석준을 향해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찰칵, 찰칵”
석준은 3장의 사진을 연속해서 찍었다.
“선생님 예쁘게 나왔어요?”
“잠시만, 확인해 볼게.”
석준은 액정을 통해 방금 찍은 사진들을 확인해 보았다.
“어라? 사진이 왜 이리 흐리게 나왔지?”
유나를 찍은 사진 모두가 한쪽이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선생님, 잘 나왔어요?”
“아니, 사진이 잘못 찍혔는지 조금 뿌옇게 나왔네. 다시 한 번 찍을게.”
석준이 카메라를 들자 유나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이며 약간 쑥스러운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선생님 이번에는 잘 나왔어요?”
석준은 액정을 통해 방금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보았지만, 여전히 한쪽 구석이 흐리게 나왔다.
“이상하네? 조리개도 제대로 설정되어 있고.. 렌즈도 괜찮은데.. 사진이 왜 이리 나오지?”
석준은 근처 배경을 바꿔가며 사진을 몇 장 찍어보았다. 다른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은 모두 깨끗하게 나왔다.
“이상하네? 김유신 묘가 있는 곳만 이렇게 나오네. 역광이라서 그런가?”
“선생님, 사진이 잘 안 나와요?”
“응. 그쪽 배경으로는 흐리게 나오네. 우리 배경을 바꿔서 한번 찍어볼까? 저기에 있는 소나무 옆에 한번 서볼래?”
“유나야~”
진아가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진아야 어서와!”
“유나랑 사진 찍고 있었나 봐요?”
“응.”
“그럼, 저도 한 장 찍어주세요.”
진아는 가지고 온 돗자리와 도시락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유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럼, 유나랑 같이 저기 나무 옆에 한번 서볼래?”
유나와 진아는 김유신 묘 옆에 우뚝 솟아 있는 소나무 앞으로 다가가 자신들의 우정을 과시라도 하는 듯 서로의 손을 모아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선생님, 이번에는 잘 나왔어요?”
“응. 아주 예쁘게 나왔는걸.”
“정말요? 어디 한번 봐요.”
유나와 진아는 석준 옆으로 다가가 방금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와~ 유나야 너 정말 예쁘게 나왔다.”
“그래? 진아 너도 예쁘게 나왔는걸?”
유나와 진아는 방금 찍은 사진에 만족하는지 싱글벙글 웃어댔다.
“선생님, 점심 안 드셨죠? 제가 김밥 5인분을 준비했는데, 같이 드실래요?”
“5인분씩이나?”
“유나가 글쎄 석준 쌤 드려야 된다고 하면서 저보고 김밥을 5인분이나 만들어오라고 하지 뭐예요.”
“어머! 내가 언제?”
유나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진아 말이 맞나 보네. 유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는걸. 하하하하!!!!”
“아이~~ 참...”
석준의 말에 유나의 얼굴이 더욱더 붉어졌다.
진아는 가지고 온 돗자리를 펴기 위해 근처 큰 나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꺅~”
진아가 비명을 지르자 석준과 유나는 진아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진아야, 무슨 일이니?”
“여기......”
진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나무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미토끼 한마리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옆으로 어린토끼 한마리가 어미 곁에 서서 그를 지키고 있었다.
“어미가 죽었나보네. 가엽게..”
석준은 죽은 어미토끼와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새끼토끼를 보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 어떡해요? 훌쩍~”
진아와 유나의 두 눈에 눈물이 조금씩 고이기 시작했다.
“우선 어미토끼가 죽은 것 같으니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도록 하자.”
석준은 어미토끼를 조심스럽게 들어 근처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에다 묻어주었다.
진아와 유나는 어린토끼와 어미토끼의 무덤을 번갈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얘들아, 어린토끼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숲속에다 놓아주도록 하자.”
“엄마도 없는데 혼자서 어떻게 살아요? 저희가 집에 데려다가 키우면 안 될까요?”
“그건 안 된단다. 자연 속에 있는 것은 그대로 자연 속에 있어야 하는 법. 다른 환경 속에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단다. 마음은 아프겠지만 놓아주도록 하자.”
석준은 진아에게 어린 토끼를 건네받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숲속에다 놓아주었다.
어린 토끼는 석준 일행이 있는 곳을 잠시 동안 쳐다보더니 이내 숲속으로 뛰어갔다.
유나와 진아는 눈물이 글썽이며 토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 배고파. 배고파서 쓰러지겠는걸.”
석준은 배를 움켜잡으며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리려고 했다.
“아~ 맞다. 선생님 죄송해요. 점심 드셔야죠?”
진아는 근처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는 가지고 왔던 김밥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우와! 맛있겠다. 한입 먹어볼까?”
“선생님, 잠시 만요.”
“왜?”
“손으로 그냥 먹으면 신종 플루 걸린단 말이에요. 진아야, 젓가락은?”
“깜빡하고 버스 안에 그냥 두고 왔는데.”
“너도 참 덜렁되긴.”
“얘들아, 그냥 먹자.”
석준이 손으로 김밥을 들려하자 유나가 석준의 손을 꼬집었다.
“아얏!”
“안돼요! 선생님. 손도 씻지 않았는데, 진아랑 같이 가서 젓가락을 가지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드시면 안돼요. 알았죠?”
“그래. 알았어.”
유나는 진아의 손을 붙잡고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녀석들, 귀엽긴.. 후후후!!!”
방금 전까지 수많았던 학생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주위가 한적해 보였다.
석준은 디지털카메라를 꺼내어 방금 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묘 앞에 찍은 사진만 왜 이리 흐리게 나왔지?”
석준은 뿌옇게 나온 부분을 자세히 보기 위해 카메라의 확대 버튼을 눌렀다.
“아니 이건?”
사진 한쪽에 뿌옇게 나온 부분을 자세히 보는 순간 석준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면은 흐리게 나왔지만 분명 방금 전에 보았던 토끼 2마리가 묘 옆 서서 석준을 향해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설마.. 방금 전에 봤던 토끼가.... 2마리 모두 살아 있잖아?”
석준은 묘한 기분이 들어 사진 속 토끼가 있던 자리로 가보았다.
거기에는 묘상(卯像;토끼)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방금 전에 죽어 있던 어미토끼와 거의 흡사해보였다.
[김유신 묘의 묘(토끼)석]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금 전에 토끼를 묻어주었던 곳으로 가보았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어미토끼와 새끼토끼가 나란히 서서 석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석준은 귀신에게 홀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신 차리자. 정신. 내가 오늘 왜 이러지?’
석준은 양손으로 눈을 비빈 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석준 앞에 있던 토끼들은 온데간데없고, 어미를 묻어 주었던 무덤이 파헤쳐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어라~ 방금 있던 토끼들은 어디로 갔지? 그리고.. 무덤을 누가 파헤쳐 놓은 거야?”
석준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 곳에는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석준은 토끼를 묻어줬던 자리를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비단으로 보이는 천 조각이 흙속에 파묻혀 있었다.
“이건 뭐지?”
석준은 손으로 주위의 흙을 파낸 뒤 비단에 감싸여져 있는 것을 꺼내들었다.
“아니, 이건?”
그 속에는 대나무로 만든 대금(大笒) 하나가 들어있었는데, 취구(吹口)와 청공(淸孔), 지공(指孔), 칠성공(七星孔) 사이에 12개의 띠가 은으로 둘러져 있었다.
‘혹시 이거 국보급 보물? 발견하면 먼저 신고를 해야 할 텐데... 혹시 내가 도굴범으로 오해받기라도 한다면?’
“선생님!”
저 멀리서 진아와 유나가 석준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석준은 혹시나 오해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고 있던 대금을 도면통에 재빨리 집어넣었다.
“선생님, 많이 기다리셨죠?”
“으..응. 아니.. 별로.”
“여기 젓가락이요.”
“응. 고마워.”
‘어떡하지? 이 녀석들에게 말을 해야 하나? 방금 전의 토끼 이야기... 아마 믿지 않을 건데, 어쩌지..’
석준의 머릿속에는 온통 토끼와 대금 생각뿐이었다.
“선생님, 근데 옆에 있는 도면 통은 뭐예요? 항상 들고 다니시던데..”
“으..응. 아~ 이거.. 돌아다니다가 좋은 소재가 있으면 바로 스케치를 하려고 도면통 안에 항상 종이를 넣어 다녀.”
“안에 볼 수 있어요?”
유나가 도면통을 만지려고 하자 석준은 옆에 있던 도면통을 살짝 뒤로 치워버렸다.
“아직까지 그린 그림이 없어서 볼게 없어. 나중에 그리면 보여줄게.”
“네.”
“유나야 지금 몇 시지?”
“1시 40분요.”
“벌써? 2시까지 주차장으로 모이라고 했지?”
“네.”
“그럼, 선생님은 먼저 가있을 테니 너희들은 점심 먹고 천천히 와.”
석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더 안하세요?”
“많이 먹었어.”
“이제 겨우 3개 먹어놓고는...”
“담임선생님께는 내가 말씀드려 놓을 테니, 점심 다 먹으면 주차장으로 와. 알았지?”
“네.”
석준은 도면통과 카메라를 챙겨들고는 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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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김유신묘 :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동에 있는 신라의 명장 김유신 무덤. 주위에 12개의 신상들이 조각되어 있으며, 12지신을 의인화하여 형상화하였다.
주2. 12지신 : 땅을 지키는 열두 신장. 12방위에 맞추어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로 나타낸다.
주3. 호석 (護石) : 무덤 외부를 보호하기 위하여 돌로 만든 시설물. 열석이라고도 한다.
주4. 대금 : 한국음악에서 널리 사용되는 관악기로 젓대라고도 한다. 대나무로 만들며 옆으로 부는 형태의 피리이다. 중금, 소금과 함께 신라의 삼죽(三竹)으로 불리우며, 취공, 청공, 지공, 칠성공이라는 구멍이 뚫려있다.
주5. 도면통 : 화구통이라고도 불리며 중요도면, 서류, 그림등을 넣을 수 있는 원통의 긴 통이다.
첫댓글 도면통이 뭔지 몰라서 멍 때리고 있었어요ㅇ_ㅇ; ㅋㅋ 두 마리 토끼는 귀신인 건가
주석을 단다는 것이 어제 너무 피곤해서 퇴고 작업만 하고 올렸네요 ^^; 주석 달았습니다. 오늘도 미리 적어둔 글 짤라서 올리겠습니다.
드디어 2번째 신물도 나왔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