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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Professor Snape
여시들 안녕
자게에다 썼다가 ㅎㅎㅎ 몇몇 여시들이 다른 여시들도 읽을수있게 홍콩으로 가라고 해줘서 홍콩에 왔음. 문제시 알려주세요 바로 지움! 이건 내가 2015년에 실제로 겪은 일이고 한동안 잊고있다가 갑자기 꿈을 꿔서 그때 생각도 나고 기분이 뒤숭숭하고 그래서 쓰는 글이야 이글은 여시에서만 봤으면 좋겠고 내 경험인데 이게 그 귀신 특성상 내가 찍던 영화랑 내가 어떻게 그 영화 촬영에 끼게 되었는지 까지 밝히지 않으면 안될거같아서 되는지 자게에 물어보고써... 내가 어떤마음으로 거기를 가게 되었는지도 밝혀야할거 같아서 자세히 쓸건데 개개개스압 예상되고 ㅋㅋㅋ 너무 자세해서 자표같으면 지울게 근데 난 해외에 있어서 신상 털기도 힘들듯 -- 일단 나는 중학생때 호주로 이민을 갔었어. 어릴때 갑자기 호주로 가게된거라서 난 항상 한국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학창시절 친구들이랑 너무 하고 싶었던거 - 방과후에 떡볶이 먹으러 다니거나 그냥 로드샵 같은데서 화장품 구경하는거 이런 소소한게 너무 하고 싶었고 하이스쿨을 여기서 다니면서 인종차별에 언어적 문제에 너무 상처가 많았었지 그래서 난 언젠가 내가 모든걸 마음대로 할수있는 어른이 되면 한국에 가서 2년-3년정도 살다올거다 라는 생각을 막연하게갖고있었어.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난 2010년에 대학에 갔고 내 학과가 3년제라 원래 난 2013년에 졸업할 예정이었어. 그런데 2012년 졸업을 진짜 한달정도 앞둔 시기에 박근혜가 당선이 되었어. 난 2004년부터 그때까지 쭉 호주에서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동경이나 정치같은건 크게 관심이 없어진 상태였고 간간히 여시에서 읽는 한국 정치 뉴스를 보면서 내 취직에만 더 관심이 많았었어. 그러면서도 난 참 오만하게도 위안부 문제라던가 친일파 문제? 이런걸 내가 누구보다 더 잘알고 관심이 큰 참 깨어있는;;ㅋㅋㅋ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 지금 생각하면 참 등신같은ㅋㅋㅋㅋ 오만한 생각이었지. 게다가 여시에서 박근혜욕하는거나 그 여론을 보면서 난 정말 막연하게 그때 당연히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이 되겠지 미쳤다고 박근혜가 뽑히겠어?이런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또 난 문재인이 되면 위안부 할머님들의 한도 다 풀어줄거고 다 엄청 잘될거다 잘되겠지 이런 안일한 생각을 갖고있었어. 어짜피 난 투표권도 없었고... 근데 ㅋㅋㅋㅋ ㅅㅂ 박근혜가 당선되었잖아. 난 그날을 잊을수 없어. 12월 19일... 그때 10시까진가? 자다가 이제 이력서나 좀 수정해서 뿌리려고 컴터를 키고 이력서 수정은 안하고 ㅋㅋㅋ 네이버에 들어갔을때 박근혜 당선이라는 배너를 보고 갑자기 잠이 확 깬거야... 그래서 난 진짜 홀린듯 그 화면을 한 10분? 그정도를 너무 절망스럽게 쳐다보고 있다가 진짜 나도 왜그랬는지도 모르게 구글에 들어가서 위안부 이 세글자를 검색했어. 그리고 바로 뜨는 이미지를 눌러서 계속 보게됐지. 너무...잔인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들이 뜨는거야. 정말 기껏해야 11살? 14살 되어보이는 진짜 어린아이들이 트럭에 단체로 실려있는 모습이라던가 임신을 해서 배가부른 사진...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사진... 그때의 마음은 정말 엎드려서 침대에 올라가있는 내 몸이 땅으로 꺼지는거 같은 기분이었어 다시 생각해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눈물도 안나오는 그런... 그렇게 사진들을 막 보다가 어떤 링크를 타고 들어갔는데 거기서 할머님들 증언을 읽게되었어. 난 그 증언들을 읽으면서 사진을 볼때와는 또 다르게 너무 충격을 받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도 씻지도 못한채 거기있는 증언들을 모두 읽었어. 다 읽고나서 정신을 차려보니까 이미 밤 11시가 넘었고 노트북을 덮으니까 방이 엄청 깜깜해 지더라. 그 어두운방에 앉아서 난 계속 생각을 했어. 이렇게 잔인하고 아픈 이야기를 왜 다들 몰랐던 걸까... 아니 이렇게 힘들고 아픈걸 왜... 아무도 안알아주는거지? 왜 이게 국제적인 이슈가 아니고 왜 내 주변 호주사람들은 홀로코스트는 알아도 위안부는 뭔지도 모르는거지? 왜... 꽤 지성인이라고 생각했고 책도 많이 읽고 대학도 좋은대학을 나왔다고 자부하는 오만했던 나조차 이런걸 모르는거지?? 이런 생각들이 치솟았어. 그리고 또 들었던 의문이 이걸 어떻게 알려야 할까? 저분들의 증언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이런걸 다루는 영화나 소설 이런게 전혀 없을까? 글을 쓸까? 오페라 하우스앞에서 벌거벗고 1인 시위라도 할까? 돈을 들여 광고를 낼까? 신문에 기사를 낼까? 이런 별별 생각을 그 앉은 자리에서 다했어. 그렇게 난 한 일주일정도를 아무것도 못한채로 저런 생각을 반복만 했었어. 진짜 좀비처럼 침대에만 누웠다가 노트북을 켰다가 이것만 반복을 하면서 계속 생각을 했어. 현대 사회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분야외의 책을 읽으려들지도 않고 광고도 넘겨버리고 영화를 만들기엔 내가 역부족이고 일인 시위를 하자니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거같고...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계속 하다가 결론을 내렸어. 난 학과가 디지털 미디아과였지만 전공은 애니메이션이었거든. 내 결론은 학교로 돌아가 명예학사학위를 신청해서 (Honours year)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자였어. 그래서 난 바로 날 제일 좋아해주시고 이해해주셨던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지. 나한테 명예학사학위 신청해서 하라고 그렇게 하셨는데 내가 학교 그만다니고 이제 돈벌거라고 싫다고 했었거든. 전화를 드리면서 마음이 급해져서 날짜를 보니까 그날이 명예학사 신청하는 마지막 날이더라고... 그래서 존나 초초해서 전화를 3번인가 했는데 교수님이 받으셔서 받자마자 나 학교로 돌아갈래요!! 명예학사 신청좀 지금 해주세요!!!!! 이랬더니 ㅋㅋㅋ 교수님이 지금 새벽 4시라고 10시에 학교로 와서 얘기하자고 하셔서 엄청 사과드리고 씻고 밥을 먹고 10시에 가서 바로 신청을 하고 그날 바로 서류처리해달라고 학생센터에 가서 엄청 진상을 부리고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었어. ㅋㅋㅋㅋ 말이 졸라 길어지는데 이게 내가 영화판에 끼게될수있던 중요한 이유였어서 그래 ㅎㅎ 스압 미안.. 아무튼 난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혼자 5분이 좀 안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 논문도 쓰고 자료수집도 하고... 논문을 쓰기 위해서 난 학교에따져서 예산을 받아서 한국에 갔었어 ㅋㅋㅋ 2013년에 ㅋㅋㅋ 아니 논문을 써야하는데 그 크다는 학교 메인 도서관에도 위안부 자료가 달랑 세권인거야... 다른 책에선 언급은 해도 제대로 들어간 내용도 없고... 그래서 학교에다 졸라 따져서 마침 한국에 방문하시는 교수님 한분 보조로 뱅기값을 받아서 한국에 갔었어. 한국에 가서 난 교보문고 반스앤루디스? 그런 대형서점을 뒤지면서 위안부 관련 자료를 사들였는데 진짜 씁쓸했던 기억이 한국에서 그렇게 큰 서접입구에는 일본어 공부책 여행책이 그렇게 많은데 위안부 자료는 H 섹션에 딱 10권남짓... 그것도 제일 높은 선반에 있더라. 그 책들 다 사서 나오는데 계산대 옆에있던 일본어 어렵지 않아요? 뭐 이런 제목의 책이 너무 너무 미웠어... 암튼 각설하고 그렇게 힘들게 자료를 수집해서 논문을 쓰고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풀어가야 피해자분들께 누를 안끼치면서 이 소름끼치는 진실을 담을수 있을지 엄청 노력하고 고민하면서 난 우울증이 왔어. 정말 너무 우울해서 그림그리다 말고 여시에 들어갔는데 아이돌 얘기 무슨 음식 레시피 이런게 올라온걸 보고 더 속이 상했어. 세상에서 나만 이런 문제에 애쓰는거같고 사람들은 좆도 관심없는거 같고 엄청 속이 상했었지... (근데 이것도 존나 오만이었음) 그래서 난 자료나 다시 검색해보려고 다음으로 들어갔어. 근데 진짜 ㅋㅋㅋ 운명처럼...ㅋㅋㅋㅋ 다음 메인에 '언니야 집에가자' 이런 문구가 떠있는거야. 그래서 홀린듯 거기로 들어갔지. 아는 여시들은 알겠지만 그건 영화 귀향에서 하던 펀딩이었어. 거기서 난 14년동안 (영화 나올때엔 16년동안) 귀향이라는 영화를 만들고 계시던 조정래 감독님을 처음 알게되었어. 그리고 거기 올라온 글들을 전부 읽었지. 읽으면서 난 또 내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달았고 참 부끄러웠어. 기껏해야 난 7개월정도를 노력했을뿐인데 14년동안 고생하신 분을 보자마자 내가 힘들다고 투정하던게 다 무너져 내렸어 그래서 해외송금으로 5만원을 기부하고 ㅋㅋㅋ 다시 진짜 미친듯이 내 작품에 매달렸어. 그렇게 난 수석졸업을 했지(자랑ㅎ). 그렇게 졸업을 했고 난 작품이 완성되자마자 이걸 온갖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제출했어. 몇개는 뽑혔고 몇개는 안뽑혔는데 그중 서울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발에 초청이 되었어. 그게 2014년 6월쯤이었지. 난 국적이 호주기 때문에 해외 감독은 초청을 해서 숙소도 해주고 그렇더라고 ㅎㅎㅎ 개이득. 명동 한복판 호텔에 숙소를 해준다고 해서 난 다니던 회사 버리고 바로 짐을 정리해서 한국으로 갔지. 그때는 그렇게 한국에 오래있을 생각이 아니었어. 이렇게 해서 이 문제를 더 널리 알리고 내가 뭔가를 할수있을거란 생각으로 두달정도 생각하고 갔었거든. 암튼 그렇게 난 한국에 가게되었고 어떻게 하다가 아는 선배님의 후배의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어서 경력이나 늘리자라는 생각으로 한국에 좀더 머물게 되었어. 그러면서 난 수요집회도 가고 봉사활동도 가고 그러려고 했었지... 근데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ㅋㅋㅋ 월급이 사대보험없이 120... 월급이 너무 적고 야근에 밤샘도 많고 집은 인천이었는데(이모네집) 회사는 합정이라 출퇴근하면서 살기가 너무 힘들더라고... 계속 아프고 의료보험도 없어서 병원도 못가고 ㅋㅋㅋㅋ 진짜 지옥같아서 차없이는 너무 힘들어서 마티즈도 뽑아서 타고다녔는데 주차도 개힘들고 그냥 다 힘들었어 ㅠㅠㅠ 졸라 이래서 헬조선헬조선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난 6개월정도차에 퇴사를 하고 난 호주로 돌아갈 생각이었어. 그때 그 회사 대표님이 회사 페이스북에 나한테 하는 작별인사를 올리시면서 그때까지 온라인 상으로 공개하지 않았던 내 애니메이션을 공개해주셨었어. 근데 그거를 본 대표님 아는 지인이 우리 사무실에 놀러오셔서 나한테 혹시 귀향이라고 들어본적 없냐고... 그렇게 물어보는거야. 그래서 들어본적 있다고 그랬더니 자기가 이 영상을 조정래 감독님한테 보여드렸더니 날 만날수있으면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는거야. 근데 존나 대박인게 합정쪽이었던 그 사무실에서 존나 차로 5분거리에 귀향 사무실이 있다는거야. 그래서 감독님 번호를 받아서 연락을 드리고 퇴사하기 직전에 퇴근해서 바로 찾아갔었지. 퇴근해서 찾아간 귀향 사무실은 생각보다 넓었어. 근데 사람은 생각보다 없었어. 감독님이 아직 도착을 안하셔서 그냥 앉아서 좀 기다렸지. 사무실엔 그때 40대 중반 아저씨 한분 그리고 20대 중반 남자 한명 밖에 없었어. 40대 아재는 어색하게 말걸어주고 그랬는데 20대중반 남자는 컴터에 앉아서 뭘 편집하고 있더라고... 근데 자꾸 헤메는거 같아서 왜 저렇게 못하는 사람을 데려다 쓰는거지 이생각을 했었어 ㅋㅋㅋ 난 전공이 영상/애니쪽이라 툴도 다 다룰줄 알고 나도 엄청 잘하는건 아니었지만 딱봐도 어설퍼 보였거든... 나중에 알았지만 그사람은 영화 출연할 배우였고 사람을 뽑을 여력이 없어서 ㅋㅋㅋㅋ 배우가 편집을ㅋㅋㅋ 하고있던 거였음. 암튼 감독님이 한 10분쯤 뒤에 도착하셨는데 그때 귀향 첫티저를 보여주셨어. 혼자 보라고 사무실 내부에 있는 작은 감독님방에 들여보내줬는데 그걸 혼자 보면서 아리랑 노래가 나오는데 너무 울컥해서 좀 울었..;; 내가 호주에서 혼자 에니메이션 만들때 힘들었던거랑 그때 나를 힘내게해준 이런프로젝트를 하고계신분들을 만났다는 생각이 뒤엉켜서 감정이 엄청 격해졌던거 같아. 거기다 이렇게 열약해보이는 상황에서도 노력하고 계신 감독님을 뵈니 진짜 너무 부끄러워졌었거든. 좀있다가 다시 들어오신 감독님이 내가 우니까 휴지를 주시면서 예산도 부족하고 인력도 부족해서 아직 본촬영은 못했지만 4월부터 찍을거다 (당시 1월말) 라고 하셨어. 그래서 난 호주로 다시 갈생각도 다 버리고 제가 지금 받는 월급이 딱 120인데 이것만 맞춰주시면 딱 먹고는 살수있으니 그렇게만 해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어. 엄마도 보고싶고 돈에 허덕이는것도 사실 힘들었고 인천에서 출퇴근도 다 힘들었는데 그땐 그런생각보다는 그냥 이 영화를 만들어서 위안부 문제를 더 널리 알리고 이렇게라도 해서 할머님들께 도움이 되고 싶었거든. 그땐 정말 난 필사적이었어. 예산이 워낙 없어서 감독님도 바로 대답은 못하셨지만 좀 생각하신후에 알겠다고 하셨어. 그래서 난 2월부터 바로 출근을 하게되었어. 그렇게 참여하게 된 귀향에는 진짜 ㅋㅋㅋ 되어있는게 존나 없었어. 아직 촬영팀도 다 꾸려진게 아니었고 의상도 촬영지도 아무것도 된게 없었어. 내가 들어온후 이틀인가? 뒤에 다른 사람들 4명이 들어왔는데 같은 대학을 졸업한 연극부고 그사람들도 위안부 관련 내용으로 연극도 하고 그러는 진짜 멋진 사람들이었어. 그사람들은 제작부로, 난 기획팀으로 들어가서 촬영장소 의상 이런걸 같이 알아보고 촬영준비를 했어. 그렇게 일하면서 연출팀도 합류를 하고 촬영팀도 꾸려지고 조명팀도 추리고 의상팀과 분장팀 그리고 미술팀. 이렇게 얼추 모양새를 갖추고 드디어 4월중순 고사를 지내고 포천에서 첫 촬영을 시작했어. 사람도 예산도 적은데다 비용을 줄이려고 촬영일정을 엄청 빡빡하게 잡아놔서 다들 엄청 힘들어하면서 일했는데 거기다 연출팀 제작팀 그리고 나 ㅋㅋㅋ 다 영화판에선 처음이라 엄청 어설픈것도 많고 실수도 많았어. 조명팀이나 촬영팀 분장팀 의상팀들은 베테랑이시라 너무 멋지게 잘하셨음 ㅋㅋㅋ 그래도 우리 제작부 연출부 그리고 나까지 완전 초짜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다들 너무 재밌고 유쾌하고 즐겁게 열심히 일했었어. 참 젊고 힘찬 사람들이었지 ㅎ 난 기획팀이기 때문에 주로 예산관리 그리고 촬영때쓸 스토리보드 정리같은일을 맡았는데 내가 있던 기획팀은 위에 말했던 40대 아재 실장이랑 나뿐이었어. 실장이 주로 배우계약을 도맡아 했고 난 예산 기록을 하면서 현장 촬영기록팀이랑 같이 다니면서 메이킹 비디오도 찍고 다른팀들 간식 보충해드리고 소녀역을 맡은 배우들 간식지원? ㅋㅋㅋ 팀들 담배 심부름 이런것도 했어. 작은 차를 가지고 혼자 빨리 다닐수있는건 나뿐이었으니까. 근데 ㅅㅂ 이 실장새끼가 전형적인 도태 한남이었음. 나를 비롯한 제작부 여자애들 성희롱부터 나중에 들어온 연출부 애들한테도 개소리 찍찍해대고... 게다가 알고보니 임종이었음 ㅋㅋㅋㅋ 암튼 포천에선 세트내에서 진짜 엄청 힘들게 실내촬영을 삼주가량하고 그 다음장소인 철원으로 넘어가기전에 일주일정도 휴식기간이 있었어. 근데 그 기간동안 실장이 잠수를 탄거야... 그러고나서 철원 소집일에는 나타나지를 않았어... 그래서 난 그때부터 개멘붕이 왔지... 실장이 메일한개만 딸랑 보내고 서울 사무실에 노트북이랑 이런걸 전부 가져다 놓고는 잠수를 탄거야. 감독님도 그렇고 피디님도 그렇고 다들 멘붕이 좀 오셨던거같은데 두분다 너무 바쁘셔서 내가 자연스럽게 기획실일을 전부 맡아서 하게되었어. 근데 서울가서 그 노트북이랑 서류들을 들고와서보니 배우들 계약도 10명 남짓뿐이 안되어있었고... 계약금을 못받은 배우들도 허다했고 기록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고 계약서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어... 거기다 포천에 왔던 엑스트라들에게 3만원씩 일당 지급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 적은돈조차 주지도 않았던거야. 마지막으로 포천에서 해산하기전에 감독님께 받은 돈은 다 지가 들고 튄거지. 그때부터 난 ㅋㅋㅋ 시발 혼자 실장이 싸논 똥을 치우기 시작했어. 배우 계약이고 뭔 계약이고 한번도 해본적도 없던 내가 ㅋㅋㅋ 심지어 부동산 계약도 해본적없고 이모네 집에 얹혀살던 내가 ㅋㅋㅋ 계약서없는 배우들, 계약 안한 배우들 그리고 출연했던 엑스트라들 전부 찾아서 계약을 하기 시작했어. 처음엔 누가 누군지 너무 헷갈리고 그래서 촬영중 잠깐씩 쉬고있던 배우들을 불러서 몇번씩 이름 계약금 역활 다 물어보고 사과하고 나중에 피디님께 전화하고 감독님께 말씀드려서 계약금 맞는지 확인하고 올릴건 올리고 내릴건 내려서 계악하고 이런짓을 엄청 반복했어 ㅋㅋㅋㅋㅋㅋ 거기다 철원 버려진 군부대에서 (허가받고) 촬영을 하던때라 시내로 가려면 30분이상 나가야 하는 외진곳이었어. 거기서 난 엑스트라 분들께 전부 계약서를 우편으로 보내고 번호찾아서 문자보내고 연락드리고 사과드리고 계약서 두장보낸거 한장 도로 받으면 출연료 송금해드리고... 사무실이 따로 없어서 숙소로 쓰던 모텔방 구석에서 프린터기하나랑 내 노트북들고 다니면서 계약서 작성하고 프린트하고 우체국가서 등기로 보내고 나간김에 종이사고 클립사고 잉크사고 또 계약서 정리하고 못받은사람 발굴하고 다니면서 ㅋㅋㅋㅋ 진심 몸이 세개라도 힘들었어. 연출팀도 이번이 처음인 사람이 많아서 모든 엑스트라를 파악하지 못했고 잃어버린 명단도 있었고 오면서 친구가 같이온 경우도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전체 명단을 파악하는데에 너무 힘이들었어 ㅋㅋㅋ 동시에 포천에서 촬영하는 엑스트라분들은 또 그날 바로 계약하고 돈을 드려야 했기 때문에 현금도 구비해야했고 정신이 진짜 하나도 없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을 뽑아달라고 여러번 부탁을 드렸지만 감독님도 피디님도 눈코뜰새없이 바쁘셨기 때문에 그리고 피디님은 희귀병에 걸리셔서 엄청 아프시고 수술도 하시고 그러셔서 결국 난 혼자 일하게 되었지. 그래도 난 땡볕에서 촬영하는 다른 팀들이 너무 고생스러워 보여서 내가 시내 나갈때마다 뭐 필요한거 있냐고 물었었어. 그때가 5월에서 6월 넘어가는 사이여서 하루종일 거기 서있으면 진짜 엄청 더웠어. 그래서인지 물어보는 사람 모두가 필요한거 있냐고 물어볼때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러더라고 그래서 한번은 내가 우체국을 다녀오면서 카페를 들려서 큰맘먹고 내 사비로 커피 50잔을 주문했어. 그리고 거기 사장님이랑 가다가 흘릴까봐 빨때꼽는데에 스티커붙이고 트레이 만들어서 포장해서 내차에 싣고 촬영장으로 갔지. 내가 커피 사오니까 다들 너무 좋아하면서 마시는거야. 그래서 진짜 뿌듯했는데 누가그랬는지는 몰라도 ㅎ 커피 나눠주는데 지나가면서 내가 쏴도 되니까 나도 커피나 사러다닐 여유나 좀 있었으면 좋겠다 ㅎ 이렇게 말하는걸 들었어. 누가 말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ㅋㅋㅋ 근데 그말을 듣고 나도 기분이 확 나빠졌어 철원 도착하고 실장 잠수탄거 안 그날부터 난 계속 서류작성하고 감독님 인터뷰나 언론에서 요청자료들어오면 그거 보내고 관리하느라 밥먹을때빼고 계속 모텔방에 처박혀있었거든... 그때 저녁에 밥차와서 밥먹을때면 여시는 뭐하는 사람인데 왜 촬영장에선 안보이고 밥만먹으러와? 이런말을 가끔 들었었어. 근데 별상관없이 흘려들었었지 그냥 웃으면서 저 서류작업이요 ㅎ 이러면서. 짜피 나는 내일 있고 그사람들은 그사람들 일이 있으니까. 기분은 별로였지만 잘 무시해오고 흘려듣고 그랬는데 그날은 진짜 기분이 나쁘더라고... 아무튼 난 커피를 다 나눠주고 다시 방으로가서 또 보낸 계약서 체크하고 또 보내야 할거 체크하고 이체할거 이체하고 예산짜고 다음주 입급해야하는게 얼만지 따져보고 촬영쉬는날 다른사람들 밥먹은 영수증 처리하고 기록하고 뭐 잡다한걸 하고있었어. 그렇게 계속 일을 하고있는데 문득 시간을 보니까 3시가 넘었던거야.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는데 밥을 촬영장바로 옆에서 먹었는지 나는 안불러줫더라고... 그래서 바빠서 그랬겠지 ㅠ 이생각하면서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니는 컵라면하나를 먹고 다시 계속 일을 했어. 그러다 제작부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잠깐 내방에 들려서 결재서류주길래 나 점심도 못먹고 아침도 시내다녀오느라 못먹었으니 저녁밥차 오면 나좀 불러달라고 부탁을 했어. 동생은 알겠다고하고 다시 촬영장으로 갔지. 근데 내가 다시 스토리보드 편집하면서 일 삼매경에 빠져서 계속 일하고 있었는데 연출부 애가 스테이플러 빌리러 찾아온거야 그래서 시간 보니까 8시가 넘었길래 스테이플러 주면서 저녁은 안먹냐고 물어봤더니 ㅎㅎㅎ 이미 다 먹었다는거야 순간 내가 너무 화가나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보니 항상 밥먹던 주차장에서 이미 테이블 다 치우고 밥차 정리하고 있는거야... 그리고 제작부 그 동생이 그제서야 헐 언니! 이러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고... 근데 아무소리도 안들리고 눈물이 왈칵 났어. 나 진짜 너무 서럽고 배도고프고 화도나고 나도 같이 일하는 사람이고 도와주는 사람하나없이 나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내가 뭘 그렇게 못했다고 인당 이천원도 안되는 밥차밥도 못얻어먹나 싶었지. 엄마도 보고싶고 계약서좀 돌려보내달라고 문자보내는것도 싫고 늦게드려서 죄송하다고 비는것도 진절머리나고 연출부애들 바쁜데 잡아다 놓고 이사람 왔었는지 안왔었는지 연락처 있는지 다 확인해야하는것도 싫고 내일 촬영 스케쥴 바꼈는지 스토리보드 편집한거 다시 해야하는지 이런거 생각하는것도 너무 지긋지긋했었어. 존나 빡쳐서는 난 내방으로 다시 올라가서 차키 찾아서 내차몰고 존나 한 15분쯤 가서 어디 구석에 세워놓고 진짜 엉엉 울었어. 그러니까 좀이따가 미술감독님이 오시더라. 그러면서 고기사준다고 달래시는데 다 듣기 싫었어. 그리고 밥좀 못얻어먹었다고 서러워서 처우는 나도 너무 한심한거같았고 진짜 더이상 거기에 있기가 싫었어. 그래서 더는 못하겠다고... 다 때려치우겠다고 선언하고 다시 방으로 가서 짐을 존나 싸기 시작했어. 계속 눈물이나고 자꾸 못하겠는거야. 그래서 안되겠어서 야간촬영 하고 계시는 조감독님한테가서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차에다 짐을 다 때려실었어. 그러니까 제작부 동생이랑 미술팀이랑 다들 엄청 막고 애원하고 미술감독님은 차키까지 뺏어가셨어. 일본에서온 배우분들은 나 달래주려고 술도 꺼내고 막 계속 얘기를 해주시는데 난 아무것도 들리는 상태가 아니라 그냥 다 싫다고 집에 가겠다고 계속 버텼지. 내가 간다니까 노예하나 없어지면 안되겠으니까 이렇게 잡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들어서 엄청 꼬여서 다 짜증내면서 듣지도 않았어. 계속 나한테 술을 권했는데 (못가게 하려고) 마시면 운전 못하니까 술은 한모금도 안마시고 계속 버텼지. 그리고 단호하게 계속 간다고 우기면서 차키달라고 하는도중 병원에 계시던 피디님도 오시고 차마 피디님 두고 갈수가 없어서 그래서 난 새벽 3시까지 잡혀있었어. 울기도 많이 울었던 데다가 차키달라고 난리를 치고 별 지랄을 다하는 바람에 어어어엄청 피곤했는데 담배도 엄청 펴대서 목이 너무 아팠어. 그러다가 내가 상태가 안좋아 보이니까 운전하다 죽어도 괜찮으면 가라고 미술감독님이 차키 돌려주셔서 난 바로 차를 몰고 갔지. 철원 산골에서 가는길이라 길은 엄청 어두웠어.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었고 길도 엄청 구불구불했고 떨어지면 낭떨어지 같은데가 되게 많았어. 운전을 할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오로지 여길 벗어나서 집에가야겠다 얼른 티켓구해서 호주가야겠다 이생각만으로 차를 되게 험하게 몰았어. 최대속도가 60인데도 80 90가지 밟고 반쯤 실성상태였지. 한편으로는 그렇게 고생하면서 버텨온 지난 5개월이 너무 아깝고 서러운거야. 또 내 자신한테 실망도 좀 있었어. 이까짓거 힘들다고 너 이거밖에 안되냐 이런생각도 너무 많이 들었고 이꼴을 보려고 그때 내가 호주를 안가고 한국에 남았나 싶고... 아무튼 이런 저런 복잡한 상태로 난 운전을 하면서 봤어. 귀신을... 처음본건 터널 들어가기 직전 사거리에 도달해서였는데 난 반쯤 졸고있었던거 같아. 근데 갑자기 누가 도로에 뛰어드는거야. 그래서 미친듯이 급브레이크를 밟았지. 근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사람이고 짐슴이고 도로엔 아무것도 없고 신호는 빨간불이었어. 보니까 정지선에 아슬아슬하게 선거야. 그리고 눈앞으로 지나가는 큰 화물트럭을 봤어. 만약 급브레이크를 안밟았으면 큰 사고가 났을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 근데 난 그것보다는 눈에 보였던게 뭔지 알수도 없고 너무 놀라서 주변을 막 둘러보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운전대를 잡았어. 노래를 크게 틀고 창문을 다 내리고 같이 따라부르면서 갔지. 근데 터널에 들어가자마자 60 이라고 써있는 속도 표지판을 보는데 눈을 깜빡하니까 그게 사람이 된거야... 그것도 아무사람이나 된것도 아니고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여자애로 변했어... 근데 꼴이 너무 참담한거야... 어디 진짜 구르다온 거지마냥 머리는 누가 끄댕이 잡고 자른거마냥 들쭉날쭉 산발이고 얼굴은 처음보는 사람인데 엄청 지저분하고 근데 계속봐도 알수없는 얼굴이고 옷은 한복인거는 같은데 완전 누더기고 발은 맨발이었어. 내가 너무 놀래서 속도를 줄이고 비상주차대에 주차를 하고 내려서 주변을 엄청 두리번 거렸거든? 근데 진짜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터널안은 엄청 환했는데도 덜컥 겁이났지. 그래서 난 노래소리를 더 키우고 더 크게 어거지로 따라부르면서 다시 운전을 시작했어. 그때부터 속으로 너무 무서웠어. 그리고 험하게 몰던 차를 좀 천천히 몰았어. 그렇게 또 한 십분쯤? 터널을 나오고 다른터널 입구에 거의 다다랐는데 어떤 비슷한 차림의 여자애가 갑자기 도로에 뛰어들어서 보따리같은거? 천꾸러미를 주워들고는 나를 쳐다보는거야. 눈이 마주친순간 또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내가 완전히 멈추기전에 그애는 사라져버리고 없었어. 진짜 무서워져서 난 정신차리라고 내 뺨을 철썩철썩 때리면서 터널로 천천히 들어갔어. 근데 ㅋㅋㅋ 이말을 하는 나도 안믿기지만 비상주차대가 눈을 감았다 뜨니까 일본군 초소처럼 보이는거야. 그런데 내가 책에서 읽고 몇번을 사진을 찾아서 고증하던 그런 입구가 아니고 무슨 동굴같은 입구에 지푸라기도 많이 쌓아놓고 횃불도 들고 총도 메고있는 일본군이 둘이 보였어. 근데 또 눈깜빡할새에 없어지고 그냥 환한 비상주차대인거야... 그때부터 내가 너무 겁이나서 내가 미쳐버렸나 아니면 이거 꿈인가 싶어서 내뺨을 또 때려봤는데 아프더라고... 그리고 이게 내가 귀향에 너무 심취했다고 생각하기에는 일본군 군복도 귀향에서 나온 녹색 군복이 아닌 누런 베이지색? 그런색이었고 소녀들 의상도 우리는 좀 낡은 한복을 썼다 뿐이지 그렇게 넝마같은건 아니었고 귀향에 나온 소녀 배우들 머리도 짧은 단발은 맞았지만 누가 대충 가위로 쑤셔논거같은 모습은 아니었거든. 난 원래부터 귀신을 믿지도 않고 사실 감독님이 촬영전 고사를 올릴때도 이게 뭐하는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어. 근데 갑자기 이런게 보이니까 너무 무서운거야.. 그리고 솔직히 너무 억울했어. 귀신으로 나타날수있으면 가서 아베나 미친 헛소리하는 친일파 일본놈들이나 괴롭히지 왜 내앞에 나타나서 이러는지 난 그냥 집에좀 가고싶을 뿐인데 왜 이러는지 진짜 서럽고 두렵고 그렇더라고... 그래서 다시 차에 타서 막 밟으면서 소리를 질러댔어 (흑역사) 제발 나좀 내버려두라고! 가서 아베나 괴롭히지 왜 힘없는 나한테 이러냐고! 내가 할만큼 하지 않았냐고 거의 반 미친 상태로 차를 몰면서 존나 소리를 질렀어. 또 나타나볼수있으면 나타나보라고! 난 하나도 안무섭고 끝까지 집에 갈거라고 막 소리를 지르면서 달렸지. 근데 그러니까 한동안 또 안나타나더라? 그래서 다시 존나 열심히 가고있었는데 서울까지 한시간? 남은 거리에서 어떤 수산차? 냉동탑차가 ('00수산'이라고 써있었어) 내앞으로 끼어들었어. 근데 난 그 냉동탑차가 소녀들을 가득 싣고있는 지프차로 보였어. 일본군 두명이 서서 지키고 있고 소녀들은 바닥이나 뭔가에 옹기종기 앉아있었고 그애들을 보려고 내가 속도를 줄이는데 속도 계기판을 보다가 고개를 들자 어떤 애가 고개를 들어서 내눈을 마주쳤어. 근데 거기있던 일본군중 하나가 그 애를 때리려고 총을 치켜들더라. 그 총이 그애 머리에 맞기전에 내가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았어. 근데 그제서야 그차가 냉동탑차로 보이고 우회전을 하려고 속도를 줄인걸 본거야. 그래서 또 사고가 날뻔한걸 무사히 피했어. 그때 우회전해서 가는 냉동탑차를 보면서 불현듯 든 생각이 저 귀신이건 뭐건간에 저건 날 위협하려는게 아니구나. 나 살려주려고 나타난거구나 이런생각이 갑자기 들었어. 그걸 깨닫고 나니까 다시 심장이 막 뛰는데 그냥 계속 눈물이나고 갑자기 너무 죄송했어. 나는 나 힘들다고 다 뿌리치고 나온건데 저분들은 나 죽지말라고 나타나신건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진짜 죄송스러워서 운전하면서 죄송하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하면서 울었어. 그렇게 울면서 동이 터오는 하늘을 보니까 왠지 다시 돌아가야 할거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날이 밝고 서울 입구에 도착을 했어. 일단 서울 근처로 들어오니까 차가 굉장히 많더라고. 차가 많으니까 저절로 정신이 좀 들어서 제대로 운전을 해서 간신히 인천으로 도착을 했어. 이모가 살던곳이 아파트 단지인데 아무데나 주차를 하고 보니까 온몸에 피로가 몰려왔어. 그리고 시간을 보니까 벌써 6시반이 다되어서 이미 해는 떠서 환했는데 그제서야 이게 꿈이 아니구나 싶은거야. 그래서 일단 내 노트북이든 가방만 챙겨서 집으로 올라가서 샤워를 했는데 어떻게 옷을 갈아입었는지 기억도 안나고 계속 멍했어. 그러다 핸드폰을 보니까 연락이 엄청 많이 와있었어. 내가 원래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 꼽고 다니는데 가는내내 핸드폰이 울린 기억이 전혀 없었거든? 근데 내가 출발한 시점부터 연락이 엄청 와있더라고. 이것도 좀 무서웠어 ㅋㅋㅋ 그래서 일단 피디님한테 전화를 드렸어. 그랬더니 엄청 담담한 목소리로 잘 갔냐고 하셔서 네 근데 저 다시 돌아가야 할거 같아요 이런말을 불쑥 했다. 그랬더니 어 당연히 와야지. 한 이틀 쉬고 다시와. 와서 술한잔 하자. 이러셔서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바로 잤어. 그리고 며칠뒤에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가서 ㅋㅋㅋㅋ 죄송하다고 다 사과드리고 다시 열심히 일했지. 진짜 다행히 다들 뭐라고 안하시고 환영해주셨어. 왜 돌아왔는지 다들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 그냥 이해해주셨었어... 미술팀이랑 제작부도 그후로 밥먹을땐 나 계속 찾아주고 ㅋㅋㅋ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지인들이 되었지 다행히 촬영은 잘 마무리가 되었고 나중에 엑스트라로 나도 출연도 했어 ㅋㅋㅋㅋ 존나 2초 그후에도 힘든일은 종종 있었는데 그때 그날밤 그렇게 나타났던 소녀들을 생각하니까 안힘들어지더라... 그렇게 귀향은 고비를 고비를 넘겨서 2016년 초에 개봉을 하고 개봉을 하고나서도 난 그렇게 흥행할줄 몰랐어 ㅋㅋㅋㅋ 그때쯤은 난 귀향에서 이제 내가 할일은 더 없을거 같아서 귀향을 나와서 다른일을 하고있었는데 그때가 15년 12월달말쯤 이었거든? 그때까지만해도 시발 ㅋㅋㅋ 배급사가 없어서 우리 봉고차랑 빔프로젝터 사서 전국 상영하자라는 말까지 나왔으니까 ㅋㅋㅋ ㅋㅋ 영화는 평이 엄청 갈렸던걸로 기억하는데 난 아직도 귀향보면 엄청 울어 ㅎㅎㅎ 손숙 선생님의 마지막 대사가 너무 아프거든... 내가 귀향 영어자막까지 다했거든, 물론 도움을 이곳저곳에서 받았지만... 근데 자막하려고 귀향을 백번도 더 돌려본거같은데 그때마다 울었어. 다들 제발 그만좀 울어라 할때까지 처울음. 엔딩크레딧도 내가 했고 심지어 촬영중간에 촬영비가 부족해서 투자도했어 ㅋㅋㅋㅋㅋ 내 전재산이었는데 못돌려받을 각오하고 내놓은거야 (존나 천만원도 안됨ㅋㅋㅋㅋㅋ) 혹시나 가능하면 호주갈 비행기값이라도 돌려 받으려고 투자로 넣은거고... 투자금 넣고나선 월세낼돈도 진짜 없어서 호주는 도대체 어떻게 가나 걱정도 많았어 ㅋㅋㅋㅋㅋㅋ 영어학원에서 단기 회화 알바할까 고민도했음 다행히 많은분들이 봐주신 덕분에 투자금의 원금이상을 돌려받았고 원금빼고 남은돈은 전부 나눔의 집에 기부할수있었어. 결론적으로 난 내가 할수있는걸 다했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렇게 할수있었던건 내가 그만큼 간절했고,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사람도 너무 간절했고 그리고 소녀들이 이 영화에 내가 필요하셨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렇게 나타나셨던거고.. 만약 내가 그렇게 그냥 가버렸다면 난 나를 지금까지도 용서 못했을지 몰라... 물론 다시 그렇게 일하라그러면 난 할수있어.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난 소녀들이 잡아준 덕분에 후회하지 않는 25살을 보낼수있었고 내가 영화평이 어찌되었던 위안부라는 주제의 영화가 세상에 나올수있게 된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거에 감사하게 생각해. 이런 영화도 나오고 그후에 더 나은 영화도 나와야 그 주제에 대해서 대화가 생기고 인식이 생길수 있는거니까. (변명조금 하자면 ㅠㅠ 난 시나리오나 촬영구도나 설정에는 전혀 관여할수가 없어서 여시들이 써준 후기들에서 나온 지적은 공감은 하지만 내가 어쩔수 없었던 부분이야 ㅠㅠ 그리고 조감독님도 할머님들과 여러번 그장면에대해 의논하시고 촬영을 하셨기 때문에 난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 그냥 혼자 기억하기에는 너무 신기하고 죄송하고 아픈 기억이었어. 아직도 그 소녀들의 모습이 생각나 얼굴은 분명히 봤고 모르는 얼굴을 본건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이 나질않아 그리고 귀신은 발이 없다며;;; 근데 다들 맨발이었어 ㅠㅠ 암튼 긴글 읽어줘서 고마워 할머님들이 한분이라도 살아계실때 일본이 꼭 사과를 했으면 좋겠어 ;;;; 다쓰고나니 귀신얘기는 존나 짧고 쓸데없는 내 인생얘기만 존나 구구절절써논 kibun... 나는 2016년 여름에 다시 호주로 돌아와서 지금 잘살고있고 아직도 그때 귀향 스탭들이랑 연락하고 지내고 있어 졸라 가끔이지만...ㅎㅎ 그리고 기억하는 여시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내 마티즈는 여시 금겟에 나온적도 있음 ㅋㅋㅋㅋ 차팔고 다시 호주 가야되는데 차가 빨리 안팔려서 금겟에 내놔봤는데 여시에선 못팔았었어 ㅋㅋㅋㅋㅋㅋㅋ 한동안 바빠서 잊고 살고있었는데 어제밤에 꿈에 그날 촬영장이 나와서 갑자기 기억이 나고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어서 글을 써 말했듯이 홍콩가려다가 자게에 썼었다가 다시 홍콩으로 온건데 ㅋㅋㅋ 너무 자아표출 같으면 말해줘 바로 지울게 |
눈물 줄줄... 한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여시 정말 멋지게 살았다..
진짜 쩐다는 말 밖에..
멋있는여시ㅠㅠ
여시 진짜 너무 멋진 사람이다...고마워 귀향 또 보고 싶어졌어..
진짜 멋있다….. 귀향 아직 안 봤는데 왓챠에 있네 꼭 볼게
여샤 멋지다 광복절에 이 글을 봐서 더 뜻깊다 행복만 가득하길 바라!
와 여시 추진력도 행동력도 정말 멋있다 앞으로의 인생까지 응원해!
여시야 너무 고마워..! 정말 실행하는 행동의 표본이고 여시같은 사람 덕분에 세상이 더 밝아지고 나아진다고 생각해
많은부분 본받고 느끼게됐어 너무 고마워
와.. 진짜 멋진 사람이다 행동하는 것도 멋있고 온 힘을 다해서 해낸것도 멋져
아ㅜㅜㅜ진짜멋진사람이다
멋있어 정말 멋있어👏🏻👏🏻👏🏻👏🏻👏🏻👏🏻👏🏻👏🏻
정말 존경스러워..
와 나 귀향보고 진짜잘만들고 마음아팟는데...대박....여시가있었네....
정말 너무 멋진사람이다... 여시는 뭘 해도 될사람.. 존경해 여시
그 동안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이 안되지만 그걸 그렇게 끝까지 매듭지은것도 넘 멋지고...
고마워 여시야
진짜멋지다여시...진짜
와 살리려고 나타난 것 맞는 것 같아. 보는데 막 눈물이 글썽거린다ㅠㅠ 얼마나 간절하셨으면. 글고 여시 고생 정말 정말 많았고 고마워...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모든걸 다 했구나ㅠㅠ
여시야 너무 멋있고 존경스럽다
와 나 그 마티즈 기억해 살까 고민 엄청 하다가 팔렸다고 해서 아쉬웠는데ㅋㅋㅋㅋ 연두색? 마티즈 맞지ㅋㅋ 여시 대단하다.. 여시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한 거 알고 여시 살리려고 나타나셨나벼 와..
여시야 내가 왜 이글을 지금 봤을까? 지금이라도 본거에 대해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이드네..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 여시덕에 귀향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멋진 여시 호주에서도 늘 행복하길 바라
여시야 글이 너무 대박이다
진짜 멋지다 여시야ㅜㅜ 보고 줄줄 울었네 너무 멋짐 진짜 존경스럽다
여시야 진짜 존경스럽고 멋있고 고생했어ㅠㅠㅠㅠㅠ 보면서 눈물났다
여시야 진짜 고생했어! 글 너무 잘 읽었어!! 아직 영화 안봤는데 (존나 처울까봐....천프로...) 쉬는날 한 번 봐야겠어
그리고 금겟ㅋㅌㅋㅋ 보지는 못했는데 차도 올라왔다는 글 본적있는데 그게 여시차였구낰ㅋㅋ
여시야 고마워
아 너무 눈물나 눈물밖에안나 고마워 여시.
너무 멋있고 존경스럽다ㅜㅜ고마워
여시 너무 멋지다 눈물나진짜.. 나 아직 안봤는데 꼭보려고.. 고마워
여시 진짜 멋있다 긴 글이 술술읽히고 먹먹하네
여시 너무 멋있다.. 용기도 대단하고 존경해 진심으로 고마워!
여시야 고마워ㅠ귀향이 그렇게 만들어졌었구나ㅠㅠ
ㅠㅠ여시 진짜 멋지다.. 귀향 당시에 극장에서 못 보고 웨이브였나 사서 봤던 기억이 있는데 여시의 간절한 마음까지 느껴져서 영화가 더 좋아졌어 지금도 하고싶은일 멋진일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있길!!!
진짜 너무 멋있고 존경스럽다..
진짜 존경해! 눈물난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와 25살 진짜 어린나이에 엄청 힘들면서도 뿌듯했겠다
여시는 못할게 없을듯ㅠㅠㅠ 나 그나이땐 뭐했더라...대졸 후 집에서 프/듀보고있던것 같은데 ㅋㅋㅋㅋㅠㅠ 존경스럽다 나도 애니메이션 전공이어서 더 공감하면서 읽었어!
멋있고, 고맙고.. 맘이 많이 아프네. 고마워 정말!
눈물난다 진짜.....ㅠㅠ 여시의 간절함이 보여서 존경스럽고 감동적이야
아… 눈물나.. 고마워.. 고맙고 존경스러워여시야…
여시 진짜 대단하다 내가 오늘 이 글을 본 게 진짜 행운이다... 너무 감동적임
존경스럽다
와 대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