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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0FbQZCsYXVg?si=VfG1Iym5lRhMCS9V
Evgeny Kissin - La Campanella (Liszt)
*리스트의 전반적인 생애(Franz Liszt 1811~1886)*
페렌츠 리스트는 1811년 10월 22일 헝가리의 라이딩에서 태어났다. 그 아버지는 헝가리 태생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둘 사이에 리스트는 외아들이었다.
리스트의 아버지는 헝가리의 전통적인 귀족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토지 관리인이었지만, 합창단에서 베이스를 맡았고 첼로를 연주하는 다소 음악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처럼 음악에 관심이 깊었던 리스트의 아버지는 리스트가 여섯 살 되는 해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리스트는 8세가 채 되기 전에 연주회를 가졌고, 또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아버지는 이에 용기를 얻어 리스트를 계속 공부시키기 위하여 체르니에게 보냈다. 체르니는 리스트를 헌신적으로 지도했고, 11살이 되는 해에는 빈에서 연주회를 열었는데 이 때 베토벤이 연주회에 왔다가 크게 감동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리스트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봉직하던 에스테르하지 궁정에서의 직업을 그만두고 리스트를 데리고 순회연주를 다녔으며, 파리에 가서 더 공부를 시키기로 하였다. 파리에 도착한 리스트는 오페라 극장에서의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런던에까지도 명성이 알려져 그 곳에 가서도 공연을 하였다.
이즈음에 첫사랑에 빠지게 되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였고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 리스트는 실의에 찬 나날을 보냈다. 1831년 리스트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감격하여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는 나날이 향상되었고 파리에서의 인기는 더욱 높아 갔다.
이때에 또 다른 여인을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다그 백작부인으로 남편이 있는 여인이었다. 서로는 사랑에 빠졌고 다그 백작 부인은 남편을 버리고 리스트를 따라 순회연주여행을 하며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두 명의 딸중에 둘째가 바그너의 2번째 아내가 된 코지마이다. 그러나 동거생활은 점차 파경에 이르렀고 마침내 둘은 헤어져서 리스트는 부다페스트로, 부인은 파리로 돌아갔다.
부다페스트에 돌아온 리스트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10여년 간 최정상의 연주자로 화려한 연주생활을 하였다. 1847년에 러시아에 자선연주회를 하러갔다 만난 비트겐슈타인 백작부인과 또 다시 열애에 빠졌으나 결혼에 이르지는 못 하였다. 이때부터 리스트는 연주생활에서 은퇴하고 창작활동에만 저년하였다. 또한 바그너, 베를리오즈 같은 유망한 음악가들을 후원해 주기도 하였다.
리스트는 1848년부터 1961년까지 바이마르 궁정 음악감독을 지내면서 많은 작품을 지휘하고 있었다. 1860년에는 비트겐슈타인 부인과 결혼 문제로 로마에 왔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이곳에 10여년간 머물면서 신학공부를 하고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 이 때에 리스트는 한창음악을 비롯한 다수의 종교음악을 작곡하였다. 1869년에는 다시 바이마르에 와서 활동하였다. 바이마르에 머무는 동안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기 위하여 바이로이트에 왔다가 급성 폐렴으로 사망하엿다. 이때가 1886년 7월 31일이었다.
*리스트의 어린 시절*
연약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린시절은 음악과 장난기로 가득차 있었다.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서의 불확실한 음악가의 길을 포기하고, 헝가리의 도보르얀에서의 공작의 영지 관리인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졌던 그의 아버지는, 그 대신 자신의 아들을 음악으로 성공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덕분에 프란쯔는 매일 해 뜰 무렵부터 정오까지 피아노 연습을 해야 했는데. 겨우 일곱살에 불과한 이 어린소년은 오히려 그것을 즐거운 시간으로 여겼다. 굳이 아버지의 강요가 없어도 피아노 앞에 앉기를 즐기는 프란츠를 보고, 그의 아버지는 그 어떤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 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프란츠에게 온갖 모험으로 가득찬 나날이었다. 유난히 장난이 심했던 이 어린 소년은 때때로 엉뚱한 사고를 일으켜 그의 부모를 긴장 시키곤 했다.
*베토벤을 만난 리스트*
리스트의 식구들이 오스트리아의 수도에 도착했을때 프란츠는 겨우 열살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연주에는 성숙한 대가의 기교와 감정이 깃들기 시작한 때였다. 프란츠에게 비인 최고의 음악 선생님을 구해 주려는 아버지의 노력으로, 그는 여기서 체르니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레슨을 거절하던 체르니가 이 어린 소년의 연주를 듣고는 '슈베르트 이래의 천재' 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쾌히 그를 학생으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한번 레슨에 2플로린, 일반적인 수업료의 극히 일부분을 내기로 하고, 리스트의 가족은 체르니의 음악실에서 약 한시간 거리의 그린 헷지오그의 작은방으로 이사했다. 춥건 덥건간에 프란츠는 일주일에 세번씩 음악실을 걸어서 다녔다. 밤에는 피아노밑의 마룻바닥에서 잠을 잤다. 그렇게 비좁은 잠자리와 부족한 음식에도 불구하고 프란츠는 자신의 생활을 행복해 했다. 음악은 그에겐 신앙과 같았고, 피아노는 생활의 중심이었기 때문이었다.
체르니에게 수업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는 '피아노에서 기도하는것'을 알게 되었다고 훗날 회고했다. 그의 재능은 점점 외국으로까지 알려지고 있었다. 체르니는 프란츠를 만나게 된것을 두고 체르니 자신과 프란츠, 두 사람 모두의 행운이었다고 두고두고 흐뭇해했다.
그러나 당분간은 공부를, 더욱 많은 공부를 해야 했다. 그에게는 일반적인 교양 교육을 받을 시간도, 놀 시간도 없었다. 아버지가 그의 연주회를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연주회에서 프란츠는 훗날 그의 음악 생활에 결정적인 역할로 자리잡은 소중한 추억을 접하게 된다.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을 만나게 된 것이다. 평소에는 웬만한 신동들에는 이력이 나 있던 베토벤이 프란츠의 연주를 듣고는 그의 미래를 축복하며 이마에 키스를 했다. 프란츠 리스트의 최고의 순간이었다. 비인, 프랑크푸르트, 부다페스트에서의 연주회, 귀족들의 환호, 선망의 대상- 그리고 그는 마침내 파리로 진출하게 되었다. 체르니가 그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프란츠의 나이 11살때였다.
그러나 프란츠는 파리 콩세르바트와르(파리 음악원)의 입학 허가를 받을수 없었다. 그곳은 단지 프랑스 학생만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란츠는 파에르의 제자로 입문하는데 성공했고, 그의 문하에서 당대 예술가의 최고봉을 향해 유성처럼 전진을 계속했다. 리스트의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고생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프란츠의 손가락이 황금을 낳는 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꼬마 리스트'를 보기를 원하는 음악 애호가들이 있었다.
가는 곳마다 리스트는 연주를 가졌고, 그다운 성공을 거두었다. 이 꼬마 신동은 '모짜르트'에 견줄만한 실력으로 평가 되었던것이다. 그의 연주에 매료된 조지 4세는 그들 부자를 윈저 궁에서 묵게 하는 배려를 하기도 했다. 도보르잔의 소몰이꾼의 아들로서는 결코 누리기 힘든 어려운 행운이었다. 그러나, 이 연약한 12살 짜리 아이는 언제나 성숙하고 숙련된 사람처럼 일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리스트는 첫번째 오페라를 완성하여 자신의 열 세번째 생일을 기념하기도 했다. 사실 그 처럼 재능을 혜택 받은 아이도 없었다. 그러나 또 그처럼 노는데 굶주린 아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는 그를 놀게 하려 하지 않았다. 보다 많은 연습, 보다 많은 연주회, 보다 큰 명성을 위해서 놀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 부자는 우럽의 전역을 여행했으나 경치 구경을 한 적은 없었다. 기차에서 호텔방으로, 호텔에서 연주회장으로, 연주회장에서 다음 기차로...
점점 신체적으로 여위어 간 프란츠는 결국 의사들의 명령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두 주일간에 걸친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끊임없는 피로의 결과가 나타난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마침내 1826년 여름, 아담 리스트는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너, 음악에 충실하여라. 내 아들아...그리고 여자들을 조심하여라.."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남긴 충고 겸 경고의 한마디였다.
*첫사랑의 실패, 파가니니의 연주에 매혹*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프란츠는 즉시 부친의 경고를 잊어 버린 채, 그보다 신분이 높은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다. 상대는 프란츠가 음악 수업을 해주던 프랑스 상업성 장관의 딸인 카를리느 생크리크였다. 그러나, 그녀와의 사랑은 그녀 부친의 반대로 벽에 부딪혔고, 마침내 그녀가 다르티고 백작과 약혼함으로써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절망에 빠진 리스트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고,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하기도 했다가, 심한 열에 들떠 앓기도 했다. 리스트의 심볼처럼 알려져있는 검은 옷은 이때부터 입기 시작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 동안 연주 무대와 음악계에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는 리스트는 죽었다고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두문불출한 상태였다. 그러나 가슴속에 불타오르는 음악 혼은 리스트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는 친구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과 쇼팽의 연주를 듣고 감동했으며, 또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에 완전히 매혹되어 리스트는 '나는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든지, 아니면 미치광이가 되겠다'는 유명한 말을 외치고 다시 연주와 작곡에 몰두하게 되었다.
*마리 다구 백작 부인과의 만남*
첫 사랑의 실패 후 냉소적이었던 리스트는 영혼을 다시금 사로잡은 상대는, 당시 파리의 젊은 사교계를 독점하고 있던 매력적인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이었다. 이미 두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던 다구 백작부인은, 그녀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감지하고 다가오는 리스트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리스트는 실망을 삼키면서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다구 백작부인의 한 아이가 죽자, 그녀의 비통의 눈물을 쏟으면서 리스트의 품으로 안겨왔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파리를 떠나 스위스의 제네바에 정착했다. 그러나 이들 떳떳하지 못한 결합은 그 뒤 결혼도 하지 못한채 불행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세명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끊임없이 세상의 부름을 받고 있는 이 천재는 제대로 된 아버지의 노릇을 할수가 없었다. 마리를 향한 사랑의 불꽃 역시 쓰라린 환멸의 재로 변했고, 두 사람은 증오에 빠져 6년만에 그들의 사랑행각은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리스트의 어머니가 맡아 키우게 된 세 아이도,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음울하게 살아가다가 병으로 두 아이가 죽고 작은 딸인 코지마만 남게 되었다.
이 시절 리스트는 1838년부터 수많은 연주를 통해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으며 세계 제1의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연주회를 통해 수입은 자선사업에 기부하여 불우한 사람을 도왔고 바그너와 스메타나 같은 음악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감싸주었다. 특히 그는 마리아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대 베니스에서 홍수에 휩쓸린 헝가리의 참상을 듣고 가슴 아파하며 독점욕이 강한 마리 부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빈으로 직행하여 수해 구제를 위한 연주회를 열었다. 수입은 대단하여 거액을 조국 헝가리에 기부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은 그의 예술가로서 강렬한 조국애를 나타낸 예로서그의 인간성과 철학을 느끼게 한다.
*카를리느 부인과의 사랑*
이즈음 리스트는 러시아 공연에서 또 하나의 운명을 만나게 되었다. 폴라드 영주의 딸이며, 리시아 장교의 아내인 카를리느 자인 비트겐슈타인 백작 부인과의 만남이 그것이었다. 카를리느는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까지 있던 몸이었으나, 남편과 별거 하면서 문학과 종교, 음악에 빠져 쓸쓸한 생활을 보내고 있던 인텔리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두번째 만남에서 곧장 결혼을 생각할 만큼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백작부인 남편의 정식 이혼 승인이 필요 했고, 그것은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해를 거듭하며 그들은 결혼의 기회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점차 카를리느는 희망을 잃은채 편협하고 신경질적인, 푸석푸석한 노년의 양상으로 쇠퇴해 갔다. 그 아름답던 영혼이 리스트를 괴롭히는 독설로 변해서 끊임없이 잔인하게 괴롭혀 댔다.
그래도 리스트는 그것을 꾹 참고 견뎌내었다. 이 모든것이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것이라고 믿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불행은 지나치게 잘생긴 그의 얼굴과 변덕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었고, 자신의 악마와도 같은 운명이 남의 가정마저 파탄에 빠뜨렸다고 생각했다.
*종교에 귀의하는 리스트*
결국 두 사람의 결혼은 백지화 되고 말았고, 카를리느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리스트와 이별을 고한뒤 종교 생활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모든것이 인과응보라고 생각한 리스트 역시 신앙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는 세속의 영예를 저버린 채 종교에 빠져들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성서를 읽을 정도로 신앙에 전념했던 그는 마침내 주(主)의 죄인으로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 카톨릭의 신부가 되었다.
성직 수임의 닷새 전, 그는 세속에서의 마지막 연주회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어제의 영광에 대한 화려한 이별의 표시로, 리스트는 정장을 하고 장식을 달았다. 그리곤 아직도 귓가에서 울리는 갈채의 메아리와 함께 검은 법의를 걸쳤다. 그리고는 수도원에 자신을 가두었던 것이다.
*리스트의 죽음*
리스트는 말년에 이르러 음악, 종교, 사랑에 몰두하며 살았다. 이런 삶은 그에게 만족스럽기는 했으나 힘에 부치기도 했다.
1886년 리스트는 기차를 타고 바이로이트로 가는 도중 치명적인 감기에 걸렸고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폐렴으로 자리에 누워 7월 31일 숨을 거뒀다.
*리스트의 열기*
그 당시 리스트의 열기는 전 유럽에서 대단했었다고 한다. 고전파에서 낭만파로 접어드는 과도기에 들어서면서 신분이 높은 귀족이 음악을 청탁하여도 자신의 음악세계와 부합되지 않으면 작곡가는 거절할 권리가 생겨나게 되었고, 내면에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을 외부의 간섭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표현할 자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작곡가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음악가가 베토벤이었으므로 우리는 그를 '힘의 음악가' 또는 '악성(樂聖)'이라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이후의 음악가들은 지위가 향상하게 되었고, 낭만파 시대부터는 대중의 우상으로까지 그 위치가 상승하게 된다.
'피아노의 귀재','피아노의 하느님'이란 칭호가 붙을 정도 실력의 피아니스트인 리스트는 수려한 용모와 더불어 뭇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연주 전에 항상 자신의 장갑을 피아노 위에 벗어 놓고 연주가 끝나면 그냥 남겨 놓은 채 나가버리는 습관으로 인해 언제나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가 끝난 이후의 공연장은 그 장갑을 서로 갖기 위해 싸우는 귀부인들로 인해 북새통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리스트의 작품*
<초절기교 연습곡>- 단순히 연습곡(Etude) 뿐만 아니라 600곡이 넘는 리스트의 피아노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12곡으로 짜여진 "초절기교 연습곡"은 바이마르 시대의 작품이며 그 이전에 유럽에 걸쳐 각지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얻은 그의 탁월한 피아노 연주의 묘기를 전하고 있다. 이들 작품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것은 리스트 자신만일 것이다.
*1곡 전주곡(Prelude) C장조 프레스토 4/4
장대한 곡집의 첫머리를 장식하기 알맞는 화려하고 기교적인 곡으로 특히 오른손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시종 경쾌한 패시지를 연주한다.
*2곡 a단조 몰토 비바체 2/4
처음연주는 모티프가 전체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한다.아 카프릿치오(A Capriccio-기분내키는 대로)의 지시와 같이 기분이 들뜬 모양의 카프릿치오풍으로 전개된다.스타카토의 사용이 눈에 띈다.
*3곡 풍경(Paysage) F장조 포코 아다지오 6/8박자
초여름의 전원 풍경을 연상할 만한 시정이 풍부한 조용한 곡이다.
*4곡 마제파(Mazeppa) d단조 알레그로 4/4
이곡은 같은해에 작곡된 그의 교향시 6번의 마제파와 같거나 혹은 그 부분적 개작처럼 전해지는데 이것은 부당하다. 두 개의 주제를 공통으로 하는 것뿐 결코 유사한 것이 아니며 교향시는 어디까지나 빅톨 위고의 시를 묘사한 것인데 반해 이곡은 변주곡 혹은 환상곡이라고 이름 붙이는 편이 어울린다.
*5곡 도깨비불(Feux follets) Bb장조 알레그렛토 2/4
도깨비불은 "사람 모습을 한 불이 나그네들을 사람들이 모르는 길로 유혹해 들인다" 라고 독일에서는 전해오고 있다. 도깨비불이 깜박깜박 보일 듯 말 듯 한 패시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리스트는 이를 반음계진행으로 암시하였다. 일종의 트레몰로형은 곡 전체에 걸쳐 많이 사용되는 움직임을 보인다.
*6곡 환영(Vision) g단조 렌토 3/4
아르페지오를 위한 연습곡인데 자유로운 변주로 되어있다. 곡의 도중에 G장조로 변화되는데 점차 가열되어 화려하게 전개된다.
*7곡 에로이카(Eroica) Eb장조 알레그로 4/4
템포 디 마르치아. 이 표제는 서주가 있는 행진곡풍을 주로 한 곡상과 조성으로 보아 적절하다.
*8곡 사냥 (Wild Jagd) c 단조 프레스토 푸리오소 6/8
전반적으로 사냥에 적합한 특유한 로맨틱한 요소는 적지만 거친 리듬으로 시작된다. 맹수 사냥을 연상케 하는 곡이다.
*9곡 회상(Ricordanza) Ab장조 안단티노 6/4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한 기분인데 그의 유명한 '사랑의 꿈'에 비할 만큼 감미로운 살롱풍의 음악이다. 후반에 이르러 점차 가해지는 격렬함을 회상하는 듯 정열적이다.
*10곡 f단조 알레그로 아지타토 몰토 2/4
여기서는 암시적인 것은 전혀 없으며 극히 정열적인 분위기가 기교주의적인 것을 표현한 훌륭한 연습곡이다.
*11곡 밤의 선율(Harmonies du soir) Db장조 안단티노 4/4
저녁의 정경을 그는 색채가 풍부하고 시적인 정취가 넘치는 곡으로 작곡하였다. 이에 대해 "대단히 매력적이고 전곡을 통해 인상적인 선율"이라고 슈만은 말했다.
*12곡 눈치우기(Chasse-Neige) Bb단조 안단테 콘 모토 6/8
탁월한 기교를 과시한 곡인데 눈치우기를 연상하는 음형이 계속 주요 선율을 색칠하여 최후를 장식하는 당당한 곡이다.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리스트는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젊은 시절 파가니니에 심취했던 그는 파가니니의 기교적인 바이올린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 개작하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6곡으로 된 파가니니 대연습곡이다. 이는 1838년에 작곡하였으며 1851년에 다시 부분적으로 개정하였다.
*제1곡 - G장조 Andante 4분의 4박자 / 아르페지오를 반복한다. 이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의 제 5.6번에 의한 전주곡이다.
*연습곡 - Non tropo lento 4분의 3박자 / 트레몰로의 연습곡이다.
*제2곡 - E♭장조 Andante 4/4박자 / 주부 안단티노 카프리치오조 테마가 경과부를 사이에 두고 몇번이고 반복한다. 이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 제 17번이다. 중간에 포코 피우 아니마토 부분은 옥타브의 연습곡이라 할 수 있다.
*제3곡 - 종(La campanella) G#단조 Allegretto 8분의 6박자 / 이 곡집에서 가장 유명한데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마지막 악작의 종의 음색을 교묘하게 모방한 자유로운 변주곡으로 하였다. 이는 원곡보다 더 선명하게 묘사되었고 더구나 고음부에 있어서 음및깔의 빛남은 피아노곡으로서 비할 바가 아니다.
*제4곡 - E장조 Vivo 4분의 2박자 / 아르페지오와 스타카토가 원곡 카프리치오 제1번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제5곡 - 사냥 (La Cahsse) E장조 알레그레토 4분의 2박자 / 첫머리에 나타난 플루트와 이어지는 혼을 모방한 소리는 사냥의 기분과 유사하다. 세도막형식 원작 카프리치오의 제9번이다.
*제6곡 - A단조 Presto 4분의 2박자 변주곡 /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제 24번을 원곡으로 한 유명한 테마에 의한 11번의 변주와 코다로 되어 있다.
<헝가리 광시곡>-리스트는 소년 시절을 헝가리의 시골에서 보냈는데 그 때 대중들의 노래와 집시들이 켜는 바이올인 소리를 듣고 헝가리의 민속 음악을 배웠다. 그 영향으로 피아노를 위한 헝가리 갭소디를 작곡하였다. 원래 랩소디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를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후세에 와서 정열적이고 자유 분방한 시를 일컫게 되었다. 리스트는 이것을 음악에 적용하여 자유롭게 열광적인 곡을 써서 랩소디라고 하였다. 이 <<헝가리 광시곡(랩소디)>>는 헝가리의 마자르 사람들의 춤곡인 차르다슈(Czardas)에서 나온 것으로 헝가리 민족적인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헝가리의 춤곡에는 느린 템포의 라싼(Lassan)조와 대단히 빠른 템포의 프리스카(Friska)조가 있는데 느린 템포의 라산조는 헝가리 사람들의 평화, 슬픔, 우울함을 나타낸 것이고 빠른 템포의 프리스카는 헝가리의 국민성이라 할만한 격렬하고 야성적인 면과 열정적인 기쁨을 나타낸 것이다.
리스트는 이 두가지 곡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헝가리 사람 고유의 기질과 생활을 아주 예리하게 표현하였다. 리스트는 조국인 헝가리 음악을 예술화하는데 힘썼으나 바르토크같이 철저히 연구하지는 못했다.
제1번 -E단조 (편곡 F단조)/ 이곡은 리스트가 34세부터 35세 사이에 작곡한 것으로 첫부분은 힘차고 레치타티보풍으로 되어있다. 전체적으로 주요 멜로디는 아르페지오로 나오면서, 즉흥적인 면을 지나 연주자의 기술을 보이기 위한 긴 카덴차로 옮겨진다. 중간부를 지나서 다시 힘차고 빠른 템포로 변하여 야성적이고 유콰한 헝가리 국민성을 나타내며 끝낸다. 애수가 깃든 헝가리 민속 무곡의 템포와 유쾌한 기분이 나는 빠른 템포를 교묘히 사용하였으며 피아노의 성능을 최대한도로 나타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제2번- C#단조/ 이곡은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누구나 즐겨 감상한다. 장대하고 화려한 곡이다. 서주부는 느린 카프리스풍으로 슬픈 분위기를 조성한다. 얼마 후 다시 밝은 조로 바뀌어 아름답고 화려하게 전개된다. 후반에서는 집시의 선율이 빠르고 야성적인 면을 풍부하게 보이며 연주된다. 다시 이국적인 색다른 춤곡조로 시작하여 힘차고 장대하며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 마지막에는 찬란한 클라이맥스를 지나 다시 조용한 선율이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며 연주된다.
*제6번- D♭장조/ 제2번 다음으로 인기있는 곡이다. 처음과 마지막의 빠른 멜로디 부분은 유명하다. 서주부에 이어 빠른 부분이 연주되다가 느리고 장중한 라산풍으로 옮겨진다. 카덴차를 지나 조가 바뀌면서 빠르게 고조되다가 힘찬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끝이 난다.
*제9번- E♭장조/ 페스트 마을의 사육제라는 표제가 붙어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본래 "부다"와 "페스트"라는 2개의 도시가 1872년부터 합병하여 생긴 명칭으로 역사적으로 부다가 빨리 이름이 났다. 이 표제는 페스트 거리의 사육제의 정경을 묘사했기에 붙인 이름이다. 제1부는 힘차게 연주하는 라산조에 해당하는 모데라토로서 장중하고 느슨한 부분이다. 카텐차를 지나면 제2부에서는 알레그레토로 변해 색다른 리듬으로 연주된다. 제3부 피날레에서 곡은 일변하여 강렬한 프리스카조로 옮겨진다. E장조의 빠른 선율로서 프레스토로 돌아온 후 다시 알레그레토, 마지막 프레스토-코다로 변화되면서 끝이난다.
*제11번- A단조/ 1839-40년대의 작품이다. 렌토 아 카프리치오의 템포에 의한 트레몰로와 아르페지오로 된 서주로 시작한다. 퍽이나 기교적인 부분이 끝나면 A장조 4분의 2박자 안단테 소스테누토인데 라산조로 짧으며 뒤이어 비바체 아사이로 변해 활기에 찬 기량을 보인다. 마지막 프레스티시모의 거친 프리스카 후반의 코다로 들어가서 당당하게 끝이 난다.
*제12번- C#단조/ 제2번, 제6번과 함꼐 널리 알려진 명작으로 음악적으로 가장 충실하다. 처음에 서주에서 메스토(Mesto)라고 슬프게 하라는 지시가 있다. 라산조의 리듬을 사용한 동기가 다소 어두운 정열을 가지고 표현된다. 알레그로 칭가레제 집시풍의 빠르고 경쾌한 선율이 연주되며 다시 제 템포로 돌아가 장중한 중간부를 만든다. D♭알레그레토 조코조로 바뀌어져 프리스크의 제2부에 이른다. 여기서도 2개의 악상이 사용되는데 처음에는 높은음으로 2개의 악상이 사용되는데 처음에는 높은음으로 테마가 나타난다. 뒤이어 제 2의 악상을 제시라며 그후 스트레타 비바체의 제3부에 이른다. 여기서는 기교적인 처리로써 그의 화려한 변용을 볼 수 있다. 마지막에 프리스카 제1부와 제2부의 테마가 짧게 회상되며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끝난다.
*제14번 F단조/ 이 곡은 1840년대의 작품인데 헝가리 민요에 의한 환상곡(Fantasie uber ungarische Volksmelodien)으로 알려진 작품의 원곡이다. 또한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된 헝가리 광시곡의 제1번으로 알려져있다. 먼저 장송행진곡풍의 지시대로 낮음음의 꿐틀거림같은 도입에 따라 무거운 으뜸선율이 연주된다. 다시금 F장조의 알레그로 에로이코로 옮겨져 당당히 연주된다. 전체의 구성에서 보면 위의 장송행진곡풍과 같은 테마를 취급한 것이 말하자면 라싼조라고 할 수 있다. 곡은 D장조로 변해 포코 알레그레토. 이는 새로운 악상의 간주부이다. 알레그레토 아 라 칭가레제는 프리스카에 해당된다. 그리고 집시풍의 빠른 템포가 A단조로 나타나며 뒤이어 알레그로 비바체로 변해 새로운 짧은 악상을 두고 다시 빠른 템포로 들어간다. 카덴차를 지나 F장조로 옮겨지고 마지막 선율인 비바체 아사이의 프리스카로 들어간다. 여기서 조성은 변하지 않고 민족적인 무도의 분위기를 표현했는데 소박하면서도 정열적이다. 마지막 코다까지 이 테마를 중심으로 전개, 변화하면서 화려하게 끝이 난다.
*제15번- A단조/ "라코치 행진곡(Rakoczy Marsch)"라는 유명한 표제가 붙은 곡이다. 이 곡은 국민적 선율을 취한 것으로 베를리오즈는 이 곡을 좋아하여 이것을 연주하기위해 그가 작곡한 <<파우스트의 겁벌>>의 제1장 배경을 헝가리 평원으로 옮기고 싶어했다고 한다. 아무튼 널리 알려진 곡임에는 확실하다. 곡의 형식은 간단한데 아르페지오의 긴 서주에 뒤이어 행진곡에 옮겨진다. 템포 디 마르치아 아니마토에는 아무래도 애국적인 정열이 담겨있다. 이 행진곡과 중간부에 해당하는 트리오는 침착하고 우아하다. 도중에 행진곡풍의 악구도 보인다. 행진곡의 주부로 돌아가 화려하개 전개되면서 코다에서 열렬하게 끝이난다.
<피아노 협주곡 1번>
'피아노의 하느님'이라고 까지 불린 리스트는 근세 피아노 연주계의 둘도 없는 거인이었다. 그 리고 그는 작곡 방면에서도 신기에 가까운 재능을 보여주며 많은 명곡을 남겼는데 이 ≪제1번 피 아노 협주곡≫과 ≪제2번 피아노 협주곡≫이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흔히 리 스트의 음악은 슈만과 비교가 되는데, 슈만의 작품이 시적이고 내성적이라면 그의 작품은 호화롭 고 장엄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 곡은 4개의 악장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서 종래의 협주곡들과는 다른 구성을 보인다. 이렇게 각 악장의 주제를 밀접하게 관계지은 것은 슈베르트의 ≪방랑하는 사람의 환상곡≫에서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의 방법에서 암시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곡은 협주곡에 스케르초 악장을 삽입해서 성공한 유일한 곡임과 동시에 자유로운 구 성을 통해 교향시를 창시한 작곡가로서의 리스트의 특성이 드러나 있는 곡인 셈이다.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4/4박자인 제1악장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일정한 형식이 없는 즉흥곡 풍 의 음악이 장엄한 기교로 연주된다. 테마다운 테마가 없는 듯 하면서도 전곡을 통해 반복되는 가 장 중요한 부분이다. 제2악장은 콰시 아다지오, 12/8박자로 아름답지만 애수를 띄는 마디마다 기 복이 있고 이것이 매력이 되어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든다. 알레그레토 비바체, 3/4박자의 제3악 장은 화제의 트라이앵글이 경쾌하게 나온다. 비평가들의 비난을 정면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박히는 효과는 훌륭하다. 경쾌하고 화려한 트라이앵글의 소리는 초등 학교 음악 시간에 갖고 놀던 그 소리와는 또 다르게 들릴 것이다. 알레그로 마르치알레, 4/4박자 의 제4악장은 현란한 피아노의 연주가 강하고 크게, 그리고 한없이 변화하여 싱싱한 힘이 느껴지 는 부분이다.
이 협주곡은 리스트가 19세일 때 대강의 스케치를 했지만 연주 활동이 바빠 완성을 못하다가 38 세가 되던 1849년에야 완성시켰다. 그리고 관현악 부분은 제자 라므가 도움을 주어 보충하였고, 1852년에 리스트 자신의 연주로 초연이 되었다. 제3악장에 협주곡에는 안 쓰던 악기인 트라이앵 글을 매우 독특하게 활용하는 부분이 있어서 '트라이앵글 협주곡'이라는 별명도 있다. 처음의 이 별명은 평론가들이 혹평을 하면서 만든 것이었고 때문에 이 곡은 10년이 넘게 연주되지 않기도 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JP5Ov3MnW5I?si=9F40IWcAZFzIYBkF
Daniel Barenboim plays "Consolation Nr. 3" by Lisz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