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의 갈등
나는 나라고 하는 하나의 세계와 밖에 있는 다른 세계의 틈새에서 치열하게 싸운다. 나의 세계는 이러한 데 밖에 있는 세계가 나의 세계와 다를 때 접촉의 마찰음이 생긴다. 때로는 가볍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강력한 부딪침이 일어나 파장을 키운다. 이러한 접촉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 한다. 이것이 내가 살아야 하는 생존의 이유이다.
그러나 밖에 있는 다른 세계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사이에서 괴로움을 겪는다. 이러한 구조적 괴로움은 피할 수 없는 마찰을 일으킨다. 인간은 이런 마찰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고단하고 괴로운 날을 지새운다. 하지만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의 세계와 밖에 있는 다른 세계가 접촉할 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밖에 있는 다른 세계로부터 무엇이나 얻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밖에 있는 세계를 나의 세계와 같게 만들려고 해서도 안 된다. 밖에 있는 세계는 그냥 그대로 두고, 나는 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해야 한다. 밖에 있는 세계로부터 유발되는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나의 세계가 괴롭지 않다.
나의 세계와 밖에 있는 세계의 틈새에서 느끼는 갈등과 다르게, 이 세상에는 또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윤회하는 세간이고, 다른 하나는 윤회가 끝나는 출세간이다. 이처럼 나의 세계와 밖에 있는 다른 세계와의 틈새에서 갈등을 느낀다고 할 때 사실은 세간을 지향하느냐 아니면 출세간을 지향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있다.
내가 세간을 지향하는 삶을 살면 나의 세계와 밖에 있는 세계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없다. 이러한 세간의 세계는 끝없이 윤회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업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출세간을 지향하는 삶을 살면 나의 세계와 밖에 있는 세계에서 부딪힐 일이 없다. 이러한 출세간의 세계는 윤회가 끝나기 때문에 더 이상 업의 노예로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처음 두 개의 세계 사이의 틈새에서 느끼는 고민은 세간을 선택하느냐 출세간을 선택하는가에서만 답을 얻을 수 있다. 내가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사념처 수행을 시작하면 그 순간에 출세간을 지향하기 때문에 틈새에서 느끼는 갈등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인간의 괴로움은 오직 출세간을 선택하는 길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여기서는 자아가 없고 무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