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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차르 알렉산데르 3세가 축사하며 개관하고 170개의 전구를 달아 러시아 최초로 전기로 불을 켜는 역이었던 브레스트 중앙역은 폐허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그 폐허에서 시작된 협상은 세계 최초의 외교적 실권을 가진 사회주의 정부로써 소비에트 러시아가 보여주는 기행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여성이 협상단에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저건 무엇이냐’라고 비난하는 독일 대표를 보며 비웃음을 흘린 사회혁명당 암살자 출신의 [아나스타샤 비첸카], 소비에트 러시아의 군대는 ‘계급을 폐지한다’라는 지령이 내려오자마자 계급장과 훈장을 뜯어버린 사모일로 장군, 나아가 ‘독일에도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면 참 좋겠군요.’라고 발언한 [아돌프 요페] 등은 독일과 동맹국 대표단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대표단은 금세 정신을 차렸습니다. 독일 외무상 폰 쿨만은 ‘소비에트 러시아가 발표한 민족 자결 성명에 맞게 점령지를 독립시키겠다’라는 망언을 하며 러시아 측의 논리를 이용하는 지략을 보여주었고, 일부러 조약안을 자신들이 원하는 것보다도 더 부풀려 발표했습니다.
1. 러시아는 서러시아 지역에서 쿠를란트, 리보니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핀란드, 베사라비아의 영유권을 포기한다.
2. 러시아는 1에 언급된 지역에 각 민족의 독립 국가가 세워지는 것을 용인할 것이며 민족국가의 원칙에 따라 루마니아 왕국이 베사라비아를 합병하는 것을 인정한다.
3. 러시아는 자캅카스 지역에서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의 영유권을 포기하고 오스만 제국에 할양한다.
4. 러시아는 독일 제국에 20억 마르크, 오스트리아-헝가리에 20억 마르크, 오스만 제국에 10억 마르크, 불가리아 차르국에 1억 마르크를 배상한다.
5. 4의 배상금 납부가 완료될 때까지 독일군은 드네프르강 연안에 주둔할 권리를 가진다.
조약안은 그럴듯했지만 하나하나 따지면 말이 안 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독일군은 아직 드비나강을 넘어오지 못한 상태였기에 쿠를란트 반도 정도나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러시아와 독일 등은 이미 핀란드의 독립을 함께 인정한 뒤였기에 핀란드에 대한 영유권 포기는 말이 되지 않았지요.
참패를 거듭해 이미 아르메니아고원을 러시아 제국군에 빼앗긴 데다 자캅카스 제민족을 상대로 대학살을 저지른 오스만 제국에 캅카스산맥 이남을 할양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요구였습니다. 드네프르강 연안 주둔에 대한 것도, 이미 ‘러시아 내의 자치 공화국’으로 남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던 문제였습니다. 더군다나 이는 배상금을 내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의 농작물을 약탈해 가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기도 했지요.
레닌은 자신의 견해를 거듭 재확인하며 적절한 협상을 거친 뒤 조약 원안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지만, 볼셰비키당 수뇌는 물론 연합전선 내의 다른 정당들도 이 원안을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혁명을 기다려 전쟁을 늦출 수 있다, 외무부 따위 선언문 몇 개 날리고 해산할 것이라고 외치며 별다른 준비도 하지 않고 협상장으로 왔던 외무위원 트로츠키는 뼈저린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독일군이 드네프르강에 주둔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겠소? 이건 우리가 배상금을 제때 뜯어내지 못하면 우크라이나 지역의 식량을 약탈해 가겠다는 의미요. 300년 만에 우크라이나에서 약탈이 부활하게 된다는 소리란 말이오! 그런데 이 조약에 동의한다면 우크라이나가 어떤 반응을 보이겠소?”
“우리 사회혁명당 좌파도 트로츠키 동무의 말에 동의합니다. 이 조약은 매국적이며 러시아 인민에 대한 배신입니다. 특히, 농민을 잔인하게 약탈하려는 도적 떼 같은 독일의 속셈을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동무들은 나만 설득하면 모든 게 풀릴 것이라 믿고 있구려. 이건 나 뿐만이 아니라 사회민주노동당 다수파 지도부 대부분이 동의한 의견이오. 부하린, 소콜니코프, 리코프가 동의했단 말이오. 레닌 동무 말고는 대다수가 협상을 지지부진하게 연장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소. 나는 설득되지 않을뿐더러, 나를 설득해도 페트로그라드의 동무들은 어떻게 설득할 생각이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레닌 다음으로 ‘나 자신만이 옳다’라고 외치고 다니던 트로츠키가 이 사안에서는 “온건파”라는 것이었습니다. 독일 출신의 사회주의자 [카를 라데크], 보그다노프와 부하린의 좌파공산주의 세력, 폭력혁명에 찬동한 아나키스트와 사회혁명당 좌파는 노골적으로 협상안을 거부했습니다. 볼셰비키가 주도하는 소비에트 정부를 거부하고 지방에서 때를 노리던 사회혁명당 우파와 멘셰비키 찬전파는 ‘역시 공산주의자 놈들이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다’라며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군사적 식견이 있는 데다 7월 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이름값이 있는 스워지니치니가 ‘협상안을 받지 않고 계속 미뤄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트로츠키의 말에 반대를 표명했지만, 사회혁명당 좌파의 대표단이 맞장구를 치며 협상 자체를 파투 내자고 우기는 상황에서는 트로츠키를 더 몰아붙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레닌이 등용한 ‘7월의 육인방’은 레닌 개인의 친위대였기에 레닌의 주장에 동조했지만, 볼셰비키당은 레닌을 당수로 옹위하는 일인 정당이 아니었으니까요. 트로츠키가 육인방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해도, 더 강경한 주장을 하는 볼셰비키 당중앙에 대한 설득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7월의 육인방’은 각자 흩어져 어떻게든 협상을 러시아 측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나섰습니다. 독일 대양함대가 해상봉쇄를 뚫지 못해 보급 사정이 좋지 못할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내에 민족주의가 발흥해 내부 사정이 좋지 못할 것이다, 오스만은 환자이고 불가리아는 발칸 지역 밖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같은 피상적인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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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내부와 민간정부, 카이저 간에 갈등이 있다. 민간정부는 현 전선을 기준으로 삼을 의향이 있고, 이유는 모른다. 정부는 혁명에 관심이 없는데, 이건 자기들이 우리 당을 지원했던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마도, 대전쟁 이전 러시아와 독일은 전통적 우방이었으니 대전쟁이 끝나고 정상적인 외교관계가 복구되리라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으음, 역시 차라리 문서를 훔쳐 오는 게 나을 수도…. 그래도 대단한 성과입니다. 아무리 루덴도르프가 난리를 치고 있다고 해도, 민간정부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파우코이 동무. 동무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능하니 아예 저들 사이에 내분을 일으키는 건 어떻겠습니까? 지금 보니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보상금 말고는 아예 얻는 게 없는데, 그 부분을 자극하면 큰 성과를 얻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독일 측엔 오스트리아가 얻는 게 없다고 배신하려 한다고, 오스트리아 측엔 독일이 도움 안 되는 동맹국인 오스트리아를 팽하려 한다고 소문을 내 보겠습니다. 이거, 드레퓌스 사건 이후로 직접 뛰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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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식견이 정확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대표단 내 최고참 볼셰비키 중 한 명이었던 파우코이는 동맹국의 협상안과 관련해 중요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불가리아와 오스만 제국은 독립적인 의견을 낼 수 없는 이들이었기에 아예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적당히 중립지대를 만들고 동부전선을 끝내자는 독일 외무성과 러시아를 반신불수로 만들자는 독일 군부가 대립 중이고, 빌헬름 2세는 즉흥적으로 군부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이었죠.
파우코이는 여기다 안 좋은 소문을 흘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대표단 간의 불신을 부채질했습니다. 마침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속국 대우하고 있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대표단도 이를 고깝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비록 트로츠키의 ‘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이 혁명으로 무너지기를 기다리자’라는 말에 혹한 표트르가 협상을 파투 내기 위해 브레스트 현지 농민들을 설득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었지만, 협상안은 대체로 현실적으로 수정되었습니다.
1. 러시아는 서러시아 지역에서 드비나강 서안의 쿠를란트와 리보니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핀란드, 베사라비아의 영유권을 포기한다. 오스만 제국과의 국경은 별도의 조약에서 협상한다.
2. 러시아는 1에 언급된 지역에 각 민족의 독립 국가가 세워지는 것을 용인할 것이며 민족국가의 원칙에 따라 루마니아 왕국이 베사라비아를 합병하는 것을 인정한다.
3. 러시아는 독일 제국에 20억 마르크, 오스트리아-헝가리에 20억 마르크, 오스만 제국에 10억 마르크, 불가리아 차르국에 1억 마르크를 배상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 타협된 방안이라도 볼셰비키 당중앙의 의사는 확고했습니다. ‘무배상-무병합’을 주장하던 트로츠키가 한 걸음 물러나 육인방의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이 합의를 덤터기쓸 수 없다고 주장하게 된 것은 큰 성과였습니다. 트로츠키 본인도 ‘당이 하나의 노선으로 단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일과의 전쟁이 재개되는 건 대재앙이다’라며, 레닌의 즉각적인 협상안 가결에 찬성한 것이었죠.
볼셰비키 당중앙은 21인의 위원 중 15인이 출석한 가운데, 4명 기권, 5인 반대, 6인 찬성이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협상안에 대한 찬성 결과를 내었습니다. 이어 긴급히 소집된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또한 비슷한 결과를 내었습니다. 당론에 동의하여 볼셰비키당의 위원은 좌파공산주의 세력의 위원 몇 명을 제외하면 찬성 투표를 던졌지만, 연합전선 내에서 마찬가지로 찬성표를 다수 던진 당은 멘셰비키와 정부를 이탈하지 않은 일부 사회혁명당 우파밖에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찬성표가 적었거나 기권표가 많았다면 애써 준비한 평화조약이 부결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요.
볼셰비키당은 어쩔 수 없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페트로그라드에서의 ‘아슬아슬한 타결’에 대한 소식을 들은 외무위원에서 사임한 트로츠키는 당연하게도 협상을 거부했습니다. 7월의 육인방은 ‘나서서 책임을 뒤집어쓰지 말라’라는 레닌의 엄포를 들은 데다, 파우코이 정도가 아니면 협상을 할 경력도 명예도 없었습니다. 좌파공산주의자인 젊은 당원 그리고리 소콜니코프가 ‘어차피 내년이면 아무 의미가 없어질 조약이니 책임을 지겠다’ 하고 나섰지만, 볼셰비키당 전체를 대표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때 나선 것은 한때 캅카스의 레닌이라 불렸으나 오랜 수감생활 끝에 정치적 명성을 상당히 많이 상실했던 [이오시브 ‘스탈린’ 주가시빌리]였습니다. 스탈린은 민족위원인 자신이 나서서 서명을 하면 충분히 무게감 있는 인사임을 강조하여 레닌을 설득하였습니다. ‘유럽에 사회주의 혁명이 나지 않을 것이다’와 같은 문제가 있는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은 덤이었지요.
마침내 1917년 9월 16일, 민족위원 스탈린, 외무부위원 [게오르기 치체린], 대표단 비서 [레프 카라한] 등이 나서서 후일 ‘브레스트-리토프츠크 평화조약’으로 알려질 조약에 서명하였습니다. 9월 27일에는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엄청난 수의 반대표와 기권표에도 불구하고 조약이 날인되며 독일과의 전쟁은 마침내 일단락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찰나의 평화였습니다. 레닌은 비밀리에 ‘연합전선의 욕받이’를 자처한 우스트랼로프에게 연립정당들을 설득할 임무를 맡겼고, 우스트랼로프는 ‘독일을 비롯한 동맹국 내에 혁명이 터지는 대로 조약은 무효가 될 것’이라는 밀약을 다른 정당 및 정치단체들과 맺어야 했습니다. 만약 이 밀약이 거짓말로 드러났을 경우, 그 여파는 분명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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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야노프는 혁명의 연금술사야. 러시아가 자본주의 없이 공산주의로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 연금술사라고!”
“그렇습니까….”
“내가 장담하지. 러시아 노동계급은 결코 사회변혁을 이뤄내지 못할 것이야. 오히려, 지난 2월에 얻어낸 정치권력을 잃어버릴 내전과 분란만 겪겠지. 그리고 그 권력의 빈자리는 볼셰비키가 차지할 거야. 결국엔 볼셰비키만 남을 것이란 말이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권력을 잡고 있겠지. 최후에는 자신을 스스로 파괴할 테고!”
사회민주노동당내 온건 찬전파이자 한때의 영수의 이름값으로 유지되는 '연합파'의 수장, 그리고 러시아 최고의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최초로 변증법적 유물론을 규명한 [게오르기 플레하노프]의 말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역사가 증명할 터였습니다. 하지만 파우코이와 제르진스키가 언론을 규제하고 체카의 권한을 점점 늘려가는 것은 마치 러시아의 비밀경찰 오흐라나의 부활을 보는 듯했습니다. 몽둥이와 최루탄으로 무장한 체카의 요원들은 저항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때려눕히고 진압하여 강제노동에 투입했습니다.
법무위원 [이사크 스테인베르그]만이 인민위원회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목이 터지라고 열변을 토해 체카에 제한 없는 즉결처분 권한이 부여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체카는 비밀리에 수많은 암살을 저질렀고, 본래부터 암살이 특기였던 사회혁명당 좌파 인사들은 열성적으로 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는 사이, 유럽의 전황은 그들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란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독일은 어설프게 여러 괴뢰국을 세우려는 루덴도르프의 의견을 과감히 반려시키고는 핀란드와 베사라비아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으로 묶어 괴뢰국을 건설하였습니다. 현지 여론은 무척이나 나빴지만, 책임과 관리를 떠넘길 하나의 괴뢰국으로 상황이 해결된다는 것은 독일에는 더없이 매력적인 선택지였습니다.
이윽고 과감하게 동부전선에서 거의 모든 병력을 빼내 서부로 돌린 독일군은 1917년 10월 발생한 이탈리아 카포레토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에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탈리아군이 반신불수가 되자, 독일은 전력을 프랑스 전선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는 러시아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던 ‘독일의 승리’가 가능성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더군다나 평화조약은 우스트랼로프가 주도한 밀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멘셰비키 찬전파와 사회혁명당 우파, 트루도비키 등은 노골적으로 ‘대립정부 건설’ 등을 운운하였고, 단독강화를 맺고 전쟁을 빠져나간 러시아에 대해 분노한 영국과 프랑스 등 협상국은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을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가 내전의 위기로 빠져드는 순간이었습니다.
한편, 7월의 육인방은 레닌의 전폭적인 지지를 통해 점차 입지를 늘렸습니다. 우스트랼로프는 ‘욕받이 토템’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계속해서 대립정부를 구성하려는 온건 좌익 세력과 접촉했습니다. 이는 당중앙의 불신을 불러일으켰지만, 우스트랼로프에게 있어서 좌익 연합전선은 포기할 수 없는 신념이었습니다. 스워지니치니는 현실적인 군사적 식견을 자랑했지만, 당과 대립하는 그의 태도는 호평받지 못했습니다.
표트르는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나, 카튜셰프의 강의를 농민들과 함께 들었음에도 ‘원시 공산사회가 최고인가’하는 이상한 생각만 들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아예 문맹 상태를 벗어난 것만은 다행이었지요. 이미 당간부로서 탄탄한 자신의 입지가 있던 파우코이가 운동으로 체력단련이나 하는 사이, 귀족 출신의 바레츠노프는 구 러시아군 내의 귀족 장교들을 영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전쟁은 전문가가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 트로츠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지요. 물론, 귀족 출신인 바레츠노프가 귀족 출신 장교들로 분파를 만들려는 시도는 이미 레닌에게 보고가 된 뒤였습니다.
첫댓글 근데 이것도 원작과 다르게 흘러가는 부분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소설의 리메이크입니다. 달라질 수 있죠..
@렌지파일 분기점이 생긴다면 어디가 될지 그것도 궁금해지네요.ㅋㅋ
저때 플레이하면서 트레잇이 바뀌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 그래도 키릴문자 50개는 쓸 줄 알아야지(..)
곧 체스클럽이 나오겠네요 ㄷ
그렇게 표트르는 라틴문자를 배우는데..
@렌지파일 ???: 누구? 한 낌? 타타르인인가? 타타르인이 라틴어를 안다고?(..)
ㅋㅋㅋ 그때나 지금이나 날뛰는건 비슷하네요 ㅋㅋ 저렇게 막 나갔었구나 싶기도 하구요?
원래 깽판이 핵심이었죠(?
@렌지파일 아앗 나는 원래 서폿이 아니라 딜포터였단 말인가(?) 초심 찾아야겠군요(???)
???: 굳이 쪼개놓지 말고 폴리투를 만들어놓으면 관리하기도 편하고 좋지 않을까? 작센공도 폴란드왕 해먹었는데 호엔촐레른도 쌉가능이지! (바로 가택연금당함)
실제 폴란드 괴뢰왕국도 피우수트스키한테 홀라당 나라 갖다바친거보면..
@렌지파일 본편에서는 아달베르트 황자가 옹립됐었는데, 사실 작센 왕가에서 가는 게 좀 더 그럴듯하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ㅋㅋㅋ
@E.E.샤츠슈나이더 오.. 그 분파인 윈저가를 옹립하면 (?)
@렌지파일 빈트조어-바텐베르크 왕조(?)
@E.E.샤츠슈나이더 여담으로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작센 왕가(베틴가)는 남성상속만 가능한주제에 남자가 아예 없어서, 1918년의 후보는 딱 세명뿐이네요(...) 혹은 제가 모르는 먼 방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아우구스트 2세 이전으로 가면 의미가....
(이미지 보면 조카한테 한번 형제한테 세번 계승한..)
@렌지파일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왕자(현 작센왕의 차남)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싶네요 ㅋㅋ
그럼 프리더릭 흐리스티안 1세인가…